|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 1 | 2 | 3 | 4 | 5 | 6 | 7 |
| 8 | 9 | 10 | 11 | 12 | 13 | 14 |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 이낙연 총리 대권 도전 대선 차기 대통령
- #홍준표 #민심 #주제파악 #임금님장화 #제1야당대표
- 이재명 김부선 신체비밀
- 런던대화재 고층아파트
- #문재인대통령 #공약 #국정기획자문위 #김상조 #유의동 #인사청문회 #대통령경호실 #광화문대통령 #지지율
- 자원봉사 #
- 이재명 #전재수 #방산주 #주식매입 #국민의힘 #민주당
- #윤석열 #지지율 #민심 #대통령 #설날 #여론조사
- 대통령선거 문재인 안철수 김정은 북풍
- 아카이브X지식채널ⓔ #강원도산불 #사회적가치 #피처링
- Today
- Total
목록분류 전체보기 (2210)
성기노의 정치 피처링
한국 보수 정당사에서 전직 대표가 ‘가족 비위’ 문제로 당에서 제명되는 사례가 있었을까. 단언컨대 없다. 김영삼 전 대통령 제명은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이 야당 총재를 찍어 눌러 국회의원 배지를 떼버린 ‘정치 탄압’의 성격이었지 당 내부 시스템이 당수를 도려낸 케이스가 아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도 탄핵과 구속이라는 사법적 판단이 끝난 후 옥중에서 당적 정리(제명)가 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한동훈 전 대표 제명 처리는 당내 주도권을 놓고 다투다가 벌어진 일종의 ‘숙청 참사’다. ‘장동혁 대표가 과했다’는 의견과 ‘한동훈 전 대표가 좁쌀 정치로 자기 인생을 망쳤다’는 평가가 오간다. 누가 더 잘못했느냐를 따지기 이전에 정당의 전.현직 대표가 한줌 자존심 때문에 당은 물론..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정치는 금품 수수의 사슬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당시 정치권을 둘러싼 여러 가지 소문, 그리고 현장을 취재하며 체감했던 분위기를 떠올리면 지금도 아찔할 때가 많다. 국회의원들의 금품 수수 패턴을 보면 몇 가지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먼저 상상을 초월하는 ‘대범함’이다.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상당히 ‘간 크게’ 남의 돈을 스스럼없이 받는다. 여기서 사실 ‘남’은 남이 아니라 정치 입문 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막역한 경우가 많다. ‘받아도 되는’ 돈이라는 상호 간의 묵계와 신뢰가 대가성의 법적 경계를 허무는 배경이 된다. 죄의식을 마비시키는 ‘관행의 대물림’도 넙죽넙죽 돈을 받을 수 있는 명분이 된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기자들에게 촌지를 주는 것이 관행이었고 그 돈은..
사진을 좋아한다. 하지만 사진은 진실이 아니다. 렌즈가 선택한 ‘해석’일 뿐이다. 똑같은 풍경 앞에서도 어떤 렌즈를 끼우느냐에 따라 세상은 전혀 다르게 보인다. 광활한 개방감을 줄 수도, 숨 막히는 압박감을 줄 수도 있다. 사진을 좀 찍어본 사람들은 말한다. “광각렌즈가 다루기 어렵다”는 것을. 광각은 넓은 배경을 오롯이 담을 수 있지만 자칫하면 주제가 산만해지기 쉽다. 중심을 잡지 못하면, 조율되지 않은 파편들의 집합체만 남아 어정쩡한 사진이 된다. 하지만 넓은 화면 위에 피사체와 배경을 조화롭게 얹을 수만 있다면 멋진 사진이 된다. 조화와 공존이 광각의 상징이다. 반면 ‘망원 렌즈’의 유혹은 달콤하다. 망원은 초심자도 쉽게 다룰 수 있다. 줌을 당기면 배경을 뭉개버리고(아웃포커싱) 내가 보고 싶은 피..
아주 오래전 기억이다. 1999년 말부터 2000년 초반까지 대한민국은 ‘닷컴 열풍’으로 주식시장에도 광풍이 불고 있었다. 그때 놀기 좋아하던 한 고등학교 동창이 불쑥 전화가 왔다. 그는 “주식을 하는데 대박이 났다”면서 “너도 빨리 신세계에 뛰어들어라”며 흥분했다. 당시 증권 시황은 “주식을 안 하면 바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광기의 도가니였다. 그때만 해도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이 보급되기 시작하는 시점이라 여전히 증권사 객장에 나가 시세 전광판을 보는 것이 익숙한 세대가 많았다. 그 친구도 아침 일찍 객장에 나가 붉고 푸른 전광판을 뚫어지게 바라본다고 했다. 그러면서 경제 공부도 열심히 한다고 하면서, 자신이 찍어주는 종목은 해볼 만하다며 나를 부추겼다. 물론 나는 그 흥분된 제안을 거절했다...
친구의 갑작스런 부음을 접했다. 대학동기였지만 그리 친분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부고를 받기 2주 전쯤에 잠시 대화를 나눠본 기억이 있어 그의 죽음은 충격이었다. 황망한 마음으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친구들이 모여 슬퍼하고 있었다. 부모상을 당했을 때와는 또 다른 분위기였다. 부모의 죽음이 삶의 한 장이 넘어가는 아픔이라면 또래의 죽음은 나와 연결되는 것 같다. ‘타자’의 죽음이 나와 동일시되는 건 ‘나이’라는 같은 물리적 시간과 공간을 친구와 같이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서 있던 자리는 곧 내가 서 있는 자리였고 그가 통과하던 생의 마디는 내가 지금 겪어내는 현재였다. 빈소에 앉아 고인을 생각했지만 함께 했던 기억들이 손에 꼽을 만큼 적어 말없이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너는 말이..
몇 년 전 서울시내 유명 호텔 뷔페식당에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 가족을 본 적이 있다. 간간이 대화 소리가 들리기도 했지만 개의치 않고 호텔을 나왔다. 그때 들었던 생각은, 김 원내대표가 가족을 잘 챙긴다는 것과 함께 아들의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조언하는 모습에서 사려 깊은 가장의 면모를 보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김 원내대표를 둘러싼 대한항공 숙박권 특혜와 공항 의전 청탁 의혹이 잇따라 불거지고 있다. 여기에 더해 김 원내대표의 지역구에 있는 한 종합병원에서 가족의 진료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도 나오는 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김병기 원내대표를 둘러싼 여러 가지 의혹은 공교롭게도 그의 개인 권력형 비리가 아니라 주로 가족들과 관련된 것들이라는 점에서 이채롭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요즘 정부부처 업무보고 생방송이 장안의 화제다. 이재명 대통령이 “넷플릭스보다 더 재미있다는 설도 있다”고 언급했던 것이 과장이 아닐 정도다. 국민들의 관심사는 이 대통령의 돌발질문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장관이나 기관장의 업무 파악도나 장악력 등 ‘능력시험’에 더 쏠려 있는 것 같다. 이 대통령은 밤늦게까지 부처별로 미리 받은 업무보고서를 꼼꼼하게 읽어본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이 대통령은 관가에 나도는 ‘족보’의 예상문제에서 질문내용을 뽑는 게 아니라 구석에 박혀서 잘 보이지도 않는, 언뜻 사소해보이지만 책임자들의 능력을 평가해볼 수 있는 문제만을 골라 그들을 곤혹스럽게 한다. 그런데 이 대통령이 업무보고 자리에서 지식자랑을 한다고 고개를 돌리는 사람들도 있다. 국민의힘은 ‘왜 야당 인사들만 콕 찍어 더..
윤석열 전 대통령은 2021년 3월 4일 검찰총장직을 사퇴했다. 문재인 정권과 검찰개혁 등을 놓고 대립각을 세우다 결국은 스스로 옷을 벗었다. 이후 그는 단박에 보수세력의 유력한 대권주자로 발돋움했다. 그로부터 두 어 달 뒤 한 지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제일 친한 정치인 A가 지금 거기에 베팅을 하려고 하는데 대선에 당선 될 수 있겠느냐.” 의외의 물음에 당황했다. 평소의 신중한 그답지 않게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대권 가능성을 노골적이고 직설적으로 대뜸 물었다. 물론 답변은 부정적이었다. 그때 칼럼을 연재하고 있었던 터라 정치권과도 계속 교류를 하고 있었지만 당시만 해도 ‘윤석열’이라는 인물에 대한 정치적 검증이 거의 이뤄지지 않아 대선 승리까지 멀..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때는 2004년 3월 24일. 그날은, 한나라당이 여의도 당사를 떠나 여의도공원 맞은편 옛 중소기업전시장 부지 한가운데 천막당사로 이사를 했던 날이다. 한나라당의 천막당사 입주는 박근혜 신임 대표의 전격적인 결정 때문에 이뤄졌다. 차떼기와 탄핵 역풍 등에 대해 반성하고 속죄하겠다는 의미였다. 당시 당직자들은 설마설마하던 차에 박 대표가 현판을 떼어낸 뒤 도보로 이동해 입주식까지 가지자 당황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초봄의 쌀쌀한 날씨에 여의도의 유명한 칼바람이 천막당사와 컨테이너의 문틈을 헤집고 들어와 바닥에는 모래가 수북이 쌓였다. 하지만 그 모래를 쓸어낼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던 당직자들과, 씁쓸하게 천막당사를 바라보던 남경필 의원의 뒷모습이 지금도 필자의 머릿속에 뚜렷하게 남아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