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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노의 정치 피처링
[성기노 칼럼] 이재명 대통령의 개혁 시계 본문

이재명 대통령이 개혁에 대한 조급함과 초조함을 에둘러 표현했다. 이 대통령은 9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회의장으로) 오면서 생각해보니 우리가 이렇게 일할 시간이 4년 1개월 남짓밖에 안 남았더군요”라며 “(남은) 시간이 짧긴 하지만 국정 속도를 두 배로 올리면 9년 2개월이 남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사실 “9년 2개월이 남는 것”이라는 발언을 들었을 때 요즘 진보진영 일각에서 제기되는 이 대통령 연임 이야기와 맞물려 화들짝 놀랐다. 이 대통령이 내심 자신의 연임을 열망하다가 그 속내가 터져 나온 것 아닐까 고개가 갸웃거려지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이 대통령이 현재의 국정과제와 중요 의제 추진이 얼마나 어려웠으면 속도를 2배로 해서 일하는 시간을 늘려보자는 제안을 했을까 싶기도 했다. 얼핏 솔깃한 발상의 전환이기도 하다.
한달에 할 일을 보름만에 한다면 보름의 시간이 세이브 되고 그것으로 또 다른 과제를 추진할 수도 있다. 속도의 힘이 시간의 답답함을 따라잡는 순간이다.
이 대통령은 특히 “공직자들이 힘들긴 하겠지만 속도를 배가해야겠다”며 “무슨 계획을 하기만 하면 6개월, 1년 (걸린다고) 그러던데 그렇게 해서 어느 세월에 격변의 시기를 견뎌내겠느냐. 완전히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 공무원의 일이란 게 오늘 입안해서 내일 바로 추진하는 게 별로 없다. 절차와 보고가 공무원의 시작이자 끝이다. 관료들의 시간은 본질적으로 느리다. 정책 하나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기획, 검토, 협의, 보고, 재검토라는 절차가 층층이 쌓인다.
그 과정은 책임을 분산시키고 오류를 줄이기 위한 장치이지만 동시에 아무도 결정을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구조이기도 하다. 그래서 공무원 조직에서 시간은 ‘줄여야 할 대상’이 아니라 ‘거쳐야 할 과정’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대통령의 시간은 전혀 다르다. 임기는 정해져 있고 위기는 저절로 잠잠해지지 않는다. “6개월, 1년은 기본”이라는 보고를 들었을 때 이 대통령이 느꼈을 조급함은 단순한 성격 문제가 아니라 두 개의 시간 체계가 충돌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관료들의 시계와 대통령의 시계 사이에 가로놓인 극단적인 간극 속에서 이 대통령의 시간은 필연적으로 더 빠르고, 더 외로워진다. 하지만 대통령 혼자 저 멀리 앞서간다고 해서 개혁이 완결되는 것은 아니다.
개혁은 군대의 선착순 달리기 같은 것 아닐까. 1등이 도착했을 때 끝나는 게 아니라 숨을 헐떡이거나 요령을 피우거나 게으른 사람들까지, 그래서 꼴찌의 발이 결승선을 넘어야 비로소 그때 ‘정렬’이 이뤄진다.
대통령의 개혁도 마찬가지다. 리더 혼자 결승선에서 초시계를 누른다고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뒤처진 관료를 다독이고 반대하는 이들을 설득해 함께 선을 넘어야 비로소 그 시간은 역사적 개혁의 완결점에 이른다.
아주 오래 전에 군대훈련소를 마치고 자대 배치를 받기 위해 밤샘 기차를 탄 적이 있었다. 훈련을 마친 동기들은 모두 들떠서 맛있는 도시락도 먹으며 왁자지껄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나는 불행하게도 기차를 타던 그 순간부터 몸살 기운에 열이 나 도시락은커녕 밤새 오한에 떨며 보낸 적이 있었다.
그때 내가 보낸 혼자만의 10여시간은 억겁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수많은 동기들 속에서 혼자 끙끙 앓는 내가 문득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옆에 앉아 “괜찮냐”고 한마디만 건넸어도 그 시간은 지금처럼 외로운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견뎌야 했던 그 억겁의 시간은 속도를 낼 수 없어서 길었던 것이 아니라 혼자였기 때문에, 그래서 버텨야 했기에 길었을 것이다.
최근에 본 프로젝트 헤일메리라는 영화에서도 종말 위기에 놓인 지구를 구하기 위해 아득한 우주의 한 가운데에서 깨어난 중학교 교사 그레이스도 혼자 남겨진 채 외로움과 사투를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우연히 우주 한복판에서 같은 목적으로 온 뜻밖의 존재 ‘로키’를 만나게 되고 그레이스의 외로움은 로키의 등장으로 반으로 또 반으로 차츰 줄어든다.
시간은 외로움이다. 그러나 그 외로움을 해소하는 유일한 방법은 시곗바늘을 빨리 돌리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손을 잡거나 잡아주는 것이다. 이 대통령의 개혁 시계는 외롭다. 아무리 시계를 앞당기고 속도를 높여도 국민들과, 참모들과 함께 가지 않는 시간은 결국 대통령에게는 ‘버텨야 할 시간’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9년으로 늘이는 게 아니라 절반의 시간을 누구와 ‘함께’ 건너가느냐가 개혁 성공의 요체일 수 있다. 대통령의 시계가 9년을 향해 달리기보다 국민의 보폭과 함께 행복하게 결승선을 맞기를 기대해본다. 4월의 빗줄기가 훈련병 기차 창가에 맺혔던 그날의 이슬처럼 창밖에 흘러내린다.
*이 글은 2026년 4월 10일자 투데이신문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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