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 1 | 2 | |||||
| 3 | 4 | 5 | 6 | 7 | 8 | 9 |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31 |
- 아카이브X지식채널ⓔ #강원도산불 #사회적가치 #피처링
- 이낙연 총리 대권 도전 대선 차기 대통령
- 런던대화재 고층아파트
- 대통령선거 문재인 안철수 김정은 북풍
- 자원봉사 #
- #문재인대통령 #공약 #국정기획자문위 #김상조 #유의동 #인사청문회 #대통령경호실 #광화문대통령 #지지율
- #홍준표 #민심 #주제파악 #임금님장화 #제1야당대표
- #윤석열 #지지율 #민심 #대통령 #설날 #여론조사
- 이재명 김부선 신체비밀
- 이재명 #전재수 #방산주 #주식매입 #국민의힘 #민주당
- Today
- Total
성기노의 정치 피처링
[성기노 칼럼] 국익을 말하는 노욕(老慾), 홍준표와 김종필 본문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전 총리 지지를 선언했다. 난데없는 그의 지지에 김 전 총리는 일단 “홍 전 시장을 만나겠다”며 화답했다. 승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선거판에서는 원수의 표라도 가져오고 싶을 것이니 김부겸으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느끼는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19대 대통령선거 때 자유한국당의 대선후보로까지 뛴 보수의 국가대표가 ‘적군’ 편으로 돌아서 그 후보를 지지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진종오 의원이 “노망난 정치인의 말로를 보여준다”고 일갈했을까.
홍준표의 김부겸 지지 선언을 보면서 다시 한번 정치의 본질을 생각해보게 된다. 정치는 명분을 뛰어넘는 통합의 영역일까, 아니면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지키는 소신의 영역일까. 홍준표의 선택을 바라보는 시선은 양 갈래로 갈라진다.
그의 지지는 통합의 제스처로 읽힐 수도 있지만 동시에 정치적 계산의 산물로도 보일 수 있다. 통합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홍준표의 김부겸 지지 선언은 진영대결로 쑥대밭이 돼가는 현재의 정치판을 한 단계 도약케 하는 의미 있는 ‘변신’일 수 있다.
반면 정치를 소신의 영역에서 보면 홍준표의 선택은 정치적 이해타산에 따라 신념도 명분도 언제든 버릴 수 있다는 뜻과도 상통한다. 홍준표의 김부겸 지지 선언의 배경에 순수한 통합의 의지보다 개인의 정치적 입지, 국민의힘에 대한 배신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홍준표가 김부겸을 지지한 뒤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면 김민석 총리가 당대표 도전으로 나선 총리 자리에 그가 ‘입성’한다는 설이 나돌고 있다. 또한 홍준표가 지난해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2차 경선 뒤 바로 정계은퇴를 선언한 것은 국민의힘과 그 당원들에게 큰 배신감을 느낀 나머지 ‘친정’에 대한 악감정이 표출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 바 있다. 그래서 이번에도 타오르는 복수심으로 ‘에라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김부겸이나 지지해주고 속풀이나 하자’는 앙심이 발현된 것인지도 모른다.
정치는 늘 명분과 욕망 사이에서 흔들린다. 겉으로는 대의를 말하지만 그 이면에는 계산과 묵은 감정이 뒤섞여 인간의 판단력을 흐리게 할 때가 많다. 1997년 신한국당 대선 경선에서 이회창에게 패한 뒤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탈당해 국민신당을 창당하여 독자 출마했던 이인제.
친정인 한나라당에서 경기도지사까지 지냈다가 반대편 진영으로 넘어 가서 스스로의 정치적 길을 새로 쓰려 했지만 실패했던 손학규. 민주당에서 대선후보 경선까지 치렀다가 단일화로 자리를 내준 뒤 그 여파로 지금은 국민의힘에 적을 둔 안철수. 이들은 모두 소신과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결국 욕망의 길을 택했고 그 끝에서 정치적 몰락이나 긴 침체를 맞았다.
홍준표의 김부겸 지지는 이 낡은 패턴의 최신 버전처럼 보이기도 한다. 당에 대한 섭섭함, 패배의 기억, 노년 정치인의 마지막 자존심이 뒤엉킨 자리에서 통합과 실용이라는 단어는 때깔만 좋은, 속이 텅 빈 개살구 같다.
홍준표의 지지는 정말 대의를 위한 결단일까, 아니면 버림받은 자의 욕망과 질투가 빚어낸 또 하나의 노욕이자 복수심일까. 정치는 명분과 욕망 사이에서 흔들린다고 했지만 명분은 언제나 욕망을 가리기 위해 씌워지는 가면일 뿐인지도 모른다.
김종필은 자민련 총재 시절이었던 2001년 1월 7일, 75세 생일을 맞아 그 축하연을 가졌다. 이때는 DJP 연합이 삐걱거리고 자민련의 세력이 예전만 못하던 정치적 황혼기였다.
당시 이인제는 그를 향해 ‘서산의 지는 해’라고 비꼬기도 했다. JP는 정계 은퇴 압박과 ‘뒷방 늙은이’ 취급을 받던 상황에서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하고 마지막 정치적 승부수를 던지기 위해 작심 발언을 했다.
“해는 서산에 걸렸을 때가 가장 붉고 찬란하다. 나도 서산낙조처럼 마지막을 불태워 국가를 위해 봉사하고 싶다.”
김종필은 스스로를 서산에 지는 해에 비유하며 말년의 정치적 욕망을 ‘국가를 위한 봉사’라는 이름으로 포장했다. 사람들은 ‘석양처럼 한 번 더 눈부시게 타오르고 싶다’는 말에서 노정객의 숨은 욕망이 꿈틀거리는 걸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홍준표의 욕망과 김종필의 노욕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JP의 낙조가 쇠락해가는 당세를 움켜쥐고 ‘나를 잊지 마라’며 던진 비장한 로맨티시즘이었다면, 홍준표의 ‘변신’은 ‘나를 버린 너희를 가만두지 않겠다’는 서늘한 리얼리즘에 가깝다.
홍준표는 자신의 배신에 대해 국민의힘에서 비판 목소리가 커지자 “당적은 버렸지만 소신과 원칙은 버린 적이 한 번도 없다. 내 정치의 목표는 늘 국익에 있다”라고 맞받았다. 김종필이나 홍준표나 말년에 ‘국가’와 ‘국익’을 입에 달고 살았거나, 살고 있다.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고 했다. 70세까지 사는 것도 드문 행운이라는 뜻이다. 그 나이에 도달해서도 권력이나 재물같은 세속적 욕망을 움켜쥐려 하는 것은 얼마나 덧없고 추한 것일까.
*이 글은 2026년 4월 3일자 투데이신문 칼럼입니다.
'정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성기노 칼럼] 정치가 하정우를 소비하는 법 (0) | 2026.04.17 |
|---|---|
| [성기노 칼럼] 이재명 대통령의 개혁 시계 (1) | 2026.04.10 |
| [성기노 칼럼] ABC로 무너지는 진보의 가치 (1) | 2026.03.27 |
| [성기노 칼럼] ‘유시민은 간신’ 정청래의 20년 악연 (0) | 2026.03.20 |
| [성기노 칼럼] 공소취소 거래설과 슈퍼챗의 힘 (0) | 2026.03.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