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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노의 정치 피처링
[성기노 칼럼] 생명의 광주, 정치의 광주 본문

학생회관에 불이 꺼지고 그마저 남은 조명도 더욱 어두워졌다. 검은 암막 커튼을 친 내부에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고 떨리는 마음으로 화면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작은 텔레비전에서 몰래 복사해 돌려보던 비디오 녹화 테이프가 돌아가고 있었다.
자상이나 총상을 입고 널브러져 있는 시체들과 몸통을 덮은 거적때기 사이로 피 묻은 팔이 삐져나와 있었다. 총을 든 남자들이 보이는가 싶더니 같은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바로 죽은 시체가 나타났다.
그것은 살육의 기록이었다. 거칠게 편집된 ‘광주의 비디오 테이프’는 몇 십분 동안, 무음으로 그날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었다. 그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날 밥을 먹을 수 없었다. 생전 처음 목격한 사체와 폭력의 현장을 아무런 게이트키핑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나는 너무 어렸다.
전두환 노태우 군사독재 시절 대부분의 대학생들이나 젊은이들은 그렇게 광주를 처음 접했다. 전남도청 최후의 밤에 깜깜한 운명을 뻔히 알면서도 그 무언가를 지키려 생명을 내놓았던 고등학생과 ‘저항군’의 마지막 모습이 아직도 마음 한 구석을 저릿하게 한다.
군인의 총칼이 화면을 가르며 들이닥칠 때마다 형언할 수 없는 공포가 밀려왔다. 동시에 왜 무고한 시민들이 죽어야 했는지, 그들이 계엄군의 총칼에 무참하게 짓밟힐 만큼 무슨 죄를 지었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불가해함은 오래도록 분노가 되어 내 안을 침식했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으면서 그때의 분노는 하나의 확신, 하나의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국가는 어떤 이유로도 국민을 죽일 권리가 없다는 것, 그것이 내가 광주를 통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깊게 배운 진실이다.
그렇게 광주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늘 마음 한 켠에 있었고 직접 피해자는 아니지만 광주에 대해 늘 빚을 진 심정으로 살았다. 그렇다고 해서 큰 희생을 치르며 투쟁을 한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생명이 폭도라는 미명 하에 무참히 살육당하는 나라의 현실이, 국가의 공권력이, 독재자의 그릇된 욕망이 다시 우리 일상을 유린한다면 용기를 가지고 저항할 것이라는 다짐도 하게 되었다.
그것이 광주다. 광주는 아픈 역사, 과거의 일이지만 오늘의 일이기도 하다. 국가 공권력이 남용되고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심지어 폭력까지 행사하는 무도한 권력과 마주할 때 우리는 지금도 광주를 떠올린다. 2024년 12월 3일 밤 국회로 달려간 시민들의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광주는 우리에게 용기이자 인간 존엄성의 마지막 보루로 남아있다. 여기에는 그 어떤 좌우의 이념도 없다. 아까운 꽃들이, 건강한 젊음들이 이유도 없이 살해당했다는 그 사실만 기억될 뿐이다. 광주는 우리 가슴속에 살아 있고 앞으로도 살아있을 것이다.
그런 광주가 능욕을 당했다. 스타벅스는 미국 자본이고 신세계는 그 브랜드로 한국에서 돈을 버는 대기업이다. 실무자의 오버라고 하기에 ‘탱크’의 조롱은 너무도 직설적이었고 폭력적이었다. 그것이 단순히 일베에 중독된 한 실무자의 은밀한 암호 전달이었다면, 그래서 해프닝성의 사고였다면 스타벅스 문양에 대해 그리 화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광주는 시간이 흘러도 끝나지 않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특정 진영의 기억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에게 어디까지 폭력적일 수 있는가를 보여준 가해의 역사로 지금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기억을 통해 다시는 국가와 권력이 인간의 존엄 위에 군림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피로써 배웠다.
광주는 평가와 재단의 대상이 아니다. 오직 인간과 생명이라는 단 하나의 명제만 남겨두는 자리다. 학생회관 어둠 속에서 보았던 그 광주 비디오 테이프는 국가가 시민의 생명을 빼앗을 권리는 없다는 사실을 이른 나이에 깨닫게 해준 소중한 기억이었다. 그날의 충격과 교훈은 세월이 흐른 지금도 내 마음 깊은 곳에 지워지지 않는 상흔으로 남아 있다.
그런 광주가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소비되고 조롱받는 현실은 여전히 낯설고, 두렵다. 생명의 광주와 정치의 광주 사이에 놓인 넓고 긴 간극은 지금도 유령처럼 한국 사회를 떠돌고 있다. 광주를 생명과 상식이 아닌 정치적 취향과 유희로 삼는 특권적 감각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더 먼 길을 가야만 한다.
*이 글은 2026년 5월 29일자 투데이신문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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