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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노의 정치 피처링
미래통합당, n번방 여권 유명인사 연루설 주말 공개 불발...김어준의 '선빵' 통했나? 본문
총선을 불과 며칠 앞두고 미래통합당은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당 지도부와 지역구 후보, 비례대표 후보들이 완전히 따로 놀고 있다. 선거를 총괄지휘하기 위해 모셔온 김종인 위원장의 영입효과는 사실상 제로상태다. 김 위원장은 막말 후보들에 대해 제명으로 강하게 나갔지만 당 윤리위가 하극상을 일으키며 반발하자, 그의 위상도 급격히 추락했다. 본인도 선거운동을 할 의욕을 잃고 있다. 전권을 휘둘러도 오합지졸을 통솔하기 버거운데 그마저도 확실하게 힘을 실어주지 않는다.
황교안 대표는 종로 지역구에 바빠 당 선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조차 모른다. 차명진 후보 징계안만 해도 황 대표는 유세 도중 질문을 받고 ‘숙의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수도권 민심이 초 단위로 돌아가는데 당 대표가 최대현안에 대해 몇 시간을 허비했다. 뒤늦게 ‘우리 당 후보가 아니다’라는 안드로메다식의 답변을 내놓았다.
황 대표는 사실상 선거총괄 역할을 포기한 상태다. 아무리 종로에서 제 발등에 불이 떨어졌지만, 당 대표가 챙겨야 할 중앙당 단위의 대응전략이라는 게 있다. 초임 대표에게 전국단위의 선거를 맡긴 미래통합당도 대책 없는 당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제 살길 찾기 바빠 당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당 대표의 무기력한 모습에서 선거 분위기는 최악의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당 차원의 선거전략도 체계적이지 못하고 주먹구구식이다. 누가 하나 물어오면 ‘아 그거 해보자’는 식인 것 같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미래통합당이 야심차게 준비한 것으로 보였던 ‘n번방 사건’이다. n번방 사건 해프닝을 역추적 해보면 미래통합당의 전략이 얼마나 수준이하였는지 드러난다. 일단 시계를 며칠 전으로 되돌려보자.
김어준은 현재 유시민과 함께 진보진영 여론형성의 ‘투톱’으로 평가받는다. 두 사람은 친문 호위병들이 행진을 할 때 옆에서 보폭을 맞추는 호루라기를 불어주고 길 안내도 해준다. 유시민은 ‘어용 지식인’으로 김어준은 ‘방송인’이라는 가면을 쓰고 사실상 친문의 향도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두 사람은 선거 경험도 많다. 유시민은 국민참여당과 지역구 선거 등으로 쌓은 실패의 노하우가, 김어준은 ‘나꼼수’로 쌓은 조직 노하우가 축적돼 있다. 이론 무장도 잘 돼 있고, 판세를 읽는 감각도 남다르다.
특히 김어준은 오랫동안 관전자에 머물러 있기는 하지만 선거판 흐름을 잘 읽는다. 이번에도 더불어민주당의 비례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의 콘셉트와 기획에 김어준이 참여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가 열린민주당을 극도로 경계하는 것도, 자신이 기획한 더불어시민당을 히트상품으로 만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n번방 사건이 터지고 나서 며칠 뒤 김어준은 자신의 방송에서 작심 발언을 하게 된다. 교통방송의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현재 아침 청취율 톱을 달리는 대표적인 정치시사 프로그램이다. 게스트들도 화려하다. 웬만한 민주당 중진들도 김어준 앞에서는 쩔쩔 맨다. 눈치도 본다(2년 전 김어준의 뉴스공장 스튜디오에 직접가볼 기회가 있었다. 그때 김어준을 대하던 한 민주당 중진의원의 저자세가 기억에 남는다). 김어준은 그런 것을 즐긴다. 그의 한 마디에 게시판에는 수천개의 댓글이 달리고 ‘주니 마음대로 해’ 분위기가 친문세력 사이에 형성돼 있다.
그런 그가 작심하고 한 발언은 ‘n번방’ 사건에 관한 것이었다. 특히 네거티브 공방에 강한(김어준은 딴지일보 총수로 있으면서 가장 잘 만들었던 게 음모론 소재였다) 그가 먼저 선빵을 날린 것이다. 그는 지난 6일 자신의 방송에서 미래통합당 측이 ‘우리 당에 n번방 연루자가 있다면 정계에서 퇴출시키겠다'고 한 것을 두고 “이것은 정반대로 민주당에서 나올 테니 완전 퇴출시키라는 이야기다. 공작 냄새가 진하게 난다”고 했다.
김어준의 폭탄발언은 정치권에서 크게 회자됐다. 그가 n번방을 야당의 네거티브 소재로 특정하자 여권에서도 비상이 걸렸다. n번방 사건 자체가 상당히 감성적인 이슈인 데다 피해자들이 미성년자도 포함돼 있어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서 사건의 철저수사를 주문할 정도로 휘발성이 큰 사안이었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도 지난 8일 김씨의 팟캐스트에 출연해 "(야당이 의혹을) 2~3개 준비하는 것 같더라. 이번 주말에 하나 터뜨려서 바로 선거까지 몰고 가려고 준비하는 것 같다"고 거들었다. 집권여당의 대표가 개인의 팟캐스트에 출연하는 것도(이해찬 대표가 언론접촉을 얼마나 꺼리는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의 출연은 다분히 정치적 행보로 비친다) 이례적이지만, 김어준이 차 한잔 하면서 내뱉을 수준의 야당 n번방 공작음모론을 여당 대표가 다시 리플레이 해줄 정도면 여권 차원에서 이미 대책마련이 이뤄졌음을 짐작케 한다.
미래통합당은 완전히 김이 빠져버렸다. 김어준의 김빼기 작전은 성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뒤의 경과는 현재 언론보도에 나오는 그대로다. 미래통합당이 얼마나 수준이하의 네거티브 싸움을 하는가 하면 김어준이 쳐놓은 덫이 있는지 알면서도 그것에 발을 들여 덥석 걸려버린 것이다.
미래통합당은 사전투표 첫날인 10일 '텔레그램 n번방' 사건에 여권 인사가 연루된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예고했다. 사실 폭로를 예고하는 것 자체가 이미 김빠진 맥주다. 폭로는 예고 없이, 누구도 준비하지 못하고 생각지도 못했을 때 빵 터뜨리는 것이다. 그래야 충격파가 크다. 여론이 여과장치 없이 바로 흡수해버리기 때문에 그 여파는 상당히 크다. 김어준은 이를 염려했을 것이다. 뒤치다꺼리 하다 보면 선거가 끝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우둔한 미래통합당은 김어준의 김빠진 맥주를 들이킨 것이다. 오로지 승리와 복수에 대한 갈증 때문이었을 것이다. 통합당 이진복 총괄선거대책본부장은 순전한 것인지, 전후좌우를 잘 살피지 않은 것인지는 몰라도 n번방 사건과 관련해 기자들과 백브리핑 형식으로 이 중대한 사안을 아주 중대하지 않은 방식으로 덜컥 공개를 해버렸다. 김빠진 맥주에 완전히 김을 다 빼버린 것이다.
이진복 선대위총괄본부장은 지난 10일 국회에서 열린 미래통합당 미래한국당 합동선거전략대책회의 참석 후 기자들과 만나 최근 정치권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n번방 사건 가해자 명단에 유력 여권 인사가 포함됐다는 소문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기자들과 질문 도중 "(성착취 동영상 제작유포 사건인) 'n번방'과 관련된 많은 제보가 있었고, 선거 중에 이를 제시하려고 한다"고 폭탄발언을 했다. 실체도 없는 제보수준의 첩보를 흘린 것이다. 이 제보라는 것도, 누가 작심하고 의도적으로 잘못된 역정보를 흘릴 수도 있는데 그런 것은 안중에 없는 듯했다. 이 본부장은 '여권 인사가 연루됐다는 내용이 있나'라고 묻자 "그런 이야기를 듣긴 했다. 구체적으로는 확인하지 못했다"면서, '주말에 공개되느냐'는 질문엔 "그렇게 할 계획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본부장은 앞서 유튜브 '신의 한 수'에 출연해 "저쪽(여당)에서 터질 것이 있다. 그걸 막기 위해 온갖 방법을 쓰고 있다"며 "점검이 상당히 됐다. 주말쯤 국민들이 보시면 가증스러울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메가톤급 의혹을 터뜨릴 것이라고 사전 예고를 하는 미래통합당의 네거티브 전략 수준은 다시 언급하지 않겠다. 더불어민주당은 일단 '마타도어'라며 태스크포스(TF) 대응팀 구성을 검토하겠다며 상황을 지켜봤다.
그런데 또 반전이 일어났다. 통합당은 음모론이 제기된 날 오후 폭로 예고가 와전됐다며 한발짝 물러서버린 것이다. 여기서부터 미래통합당의 스텝은 완전히 꼬여버렸다. 정원석 선대위 상근 대변인은 "현재 많은 제보를 받고 있고 여기에는 여권 인사가 포함되어 있는 것은 맞지만, 사실관계가 명확히 체크된 것은 없다"며 "당에서 '한 방'을 발표한다거나 하는 내용은 와전된 부분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섣부른 폭로가 불러올 역풍을 고려한 것이다.
이진복 본부장의 폭탄발언 이후 당내에서 회오리같은 의견교환과 논란이 있었을 것이고, ‘내부 검증’ 결과 주말에 전 국민들을 꼼짝 못하게 할 정도의 메가톤급이 아님을 알아차리고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 것이다. 애처롭다.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출신인 미래한국당 조수진 수석대변인은 "여권에 진짜 터질 게 없다면 저토록 호들갑 떨지는 않을 것"이라며 "잊지 않아야 할 것은 여권의 '두꼼수'(이해찬 김어준)가 연일 사태를 정쟁화하면서 피해자들의 상처는 커지고 있다는 점"이라고 역공했지만 더욱 애처롭게 들렸다. 김이 완전히 빠진 맥주를 그래도 팔겠다고 미련이 남은 안쓰러운 성명서였다.
이진복 본부장의 발언 이후 정치권에서는 "국민적 공분을 산 초유의 사건을 두고 여야가 공작이니, 폭로니 하며 선거 유불리에 급급한 모습을 보니 분노가 치민다"는 반응이 나왔다. n번방 연루자들도 비난 받아 마땅하지만, 그것을 선거에까지 이용하려는 세력은 더 나쁘다는 여론이 급속히 퍼진 것이다.
승기를 잡은 더불어민주당은 10일 '텔레그램 n번방' 사건에 여권 실세 인사가 연루돼 있다는 소문과 관련해 "무슨 얘기가 나와도 가짜뉴스"라며 짐짓 느긋한 대응을 했다. 미래통합당이 폭로를 한다고 해도 국민들이 믿어주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선거 이후 팩트가 밝혀지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민주당 이근형 전략기획위원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선거를 앞두고 국민들이 문재인 정부가 더 잘해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며 "야권 측이 판을 바꾸고 흔들기 위해 (의혹 제기를) 기도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보인다"고 점잖게 말했다.
김어준이 김을 빼놓았기 때문에 여당 대응이 이토록 편해진 것이다. 미래통합당의 주말 공개도 공수표로 끝나버린 마당이라 더욱 그랬다. 여권 차원에서 보면 선제적 대응이 성공한 셈이다. 친문세력 길라잡이 중 한명인 김어준의 공이었다.
미래통합당은 뒤늦게 자신들이 덫에 걸린 것을 알고 폭로를 하지 않겠다면 발을 뺐지만 이런 좌충우돌이 표심의 엄청난 불신을 불러온 것은 자명하다. 김종인 위원장의 선거 전략 수립능력은 단연 최고다. 특히 선거 흐름을 읽는 능력이 뛰어나고 형세판단을 잘 한다. 그는 이 바쁜 와중에 황교안 대표와 다시 아침상을 마주했다. 밥상머리 교육을 아무리 시켜도 잘 안 되고 있지만, 그래도 두 사람 사이에 최소한의 교통정리는 필요했을 것이다.
김 위원장은 황 대표를 만난 11일 조찬자리에서 "당 지도부에 '제발 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아 달라'고 지시하라"고 쏘아붙였다고 한다. 특히 김 위원장은 "선대위 총괄본부장이 'n번방 사태' 같은 정확한 확신도 없는 것을 자꾸 이야기하면 혼란스러움만 일으키고 쓸데없이 상대방에게 빌미를 주는 짓"이라고 일갈했다. 김 위원장은 자신이 모르거나 최소한의 인지만 하고 있는 상태에서 오합지졸 ‘부하’들이 사고친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나아가 김 위원장은 "(이 본부장에게) 가급적 입을 닫고 있으라고 하라"며 "다른 일을 못하더라도 입을 다물고 있음으로써 선거에 도움이 되는…"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황 대표는 즉각적인 언급을 내놓지 않았다고 한다. 모르기도 하거니와, 오로지 종로에만 빠져있는 황 대표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황 대표는 회동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김 위원장이 n번방 언급과 관련해 이 본부장에게 경고했는데 어떤 입장이냐'는 질문에 직접적인 답변을 삼간 채 "n번방 관련자들에 대해서는 참여한 사람이든 주도한 사람이든 최대한의 엄벌을 해야 한다"며 동문서답을 했다고 한다.
n번방 네거티브 여야 공방전은 “김어준 김빼기-이진복 무시 뒤 주말 공개 폭탄발언-대변인 부인 뒤 슬그머미 발 빼기-김종인 ‘제발 쓸데 없는 소리 하지 마라’”로 이어지는 일주일짜리 단막극이었다. 한국 정치의 수준을 가늠해볼 수 있는 교훈적인 드라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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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2020. 4월 6일 )
통합당, 성범죄와 전면전 선포 “N번방 사건 연루시 정계퇴출”…김어준 “공작 냄새 난다”
출처: https://politicsplot.tistory.com/1741 ['사람 중심의 뉴스' 성기노의 피처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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