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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노의 정치 피처링
대학 기숙사 워밍턴 타워의 화재 진압(?) 이야기 본문
런던 고층 아파트의 대형화재 사건을 보면서 마음이 착잡합니다. 저 역시 런던 유학 때 학교 기숙사가 10층 이상의 고층건물이었기 때문에 그때의 기억이 다시 나네요. 영국사람들은 화재에 관한 한 일종의 집착증이 있을 정도로 매사에 굉장히 조심하는 편입니다. 바로 런던 대화재(Great Fire of London)의 아픈 추억이 대대로 ‘화재 위험 DNA’를 물려받은 것 같습니다. 런던 대화재는 1666년 9월 2일 새벽 2시경, 빵 공장에서 일어난 불이 런던 시내로 번진 대화재를 말하는데 무려 10일동안 계속 불이 났었다고 합니다. 당시 화재는 소방담당자의 무책임으로 인해 조기에 진화되지 않아, 5일간 87채의 교회, 1만 3천채의 집이 불탔다고 합니다. 당시 런던 인구 8만 명 중 7만여 명이 집을 잃고 노숙자가 되었다고 하니 화재의 규모를 짐작케 합니다. 또한 이 화재로 세인트폴 대성당이 불타 버리기도 했죠. 당시 영국 국왕인 찰스 2세는 이재민들에게 식량지급약속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대화재는 새로운 도시계획을 실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하는 아이러니컬한 상황을 연출합니다. 찰스 2세는 불이 완전히 잡히기도 전에 포고를 냈습니다. “템스 강 연안에 집을 세우는 것은 소화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금지한다. 또 시내의 건물은 벽돌이나 돌로 만들어야만 하고, 이러한 건물에 양조업, 염색업 등 매연을 배출하는 업종의 입주를 금한다”는 요지의 칙령이었습니다. 지금도 테임즈강 연안에는 높은 빌딩이나 건물이 거의 없습니다. 우리나라 한강이 고층 아파트에 묻힌 것과는 대조적인 것도 바로 런던대화재로 인한 도시계획의 전통이 남아있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살던 고층 기숙사는 화재에 대비한 설계가 잘 돼 있었는데요. 엘리베이터 외에 비상계단이 설계돼 있었는데 화재 시 연기배출이 용이하도록 건물 외벽 모서리를 아예 뚫어놨습니다. 가끔 지나가다보면 무섭기도 하지만 비교적 오래된 건물이라 그렇게라도 화재에 대비해 건축 설계를 한 영국인들의 의식이 돋보이기도 했죠. 가끔 소방서에서 불시에 소방대피훈련을 하기도 해서 학생들이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죠. 학생들 기숙사라 아마 소방서의 중점 관리 대상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일반 아파트와 달리 기숙사는 많은 학생들이 들락거리고 화재에도 취약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숙사에는 영국인 학생들도 꽤 많이 살았습니다. 빙 둘러 방이 있고 가운데 공동부엌과 거실이 있는 구조였는데요. 학생들은 부엌에서 파스타 등 음식을 직접 해먹었습니다. 그런데 이 취사기구가 화재에 취약했습니다. 특히 학생들이 부주의한 경우가 많았죠. 제가 사는 층(기억으로는 10층인가 그랬습니다)에 영국인 학생 존이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학생은 ‘개념’이 별로 없었습니다. 부엌을 지저분하게 사용하는 것은 기본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끔 자신이 쓰던 가스 오븐레인지를 끄지도 않아 가끔 제가 그것을 끄곤 했습니다. 드디어 하루는 일이 터졌습니다. 그날도 가스 레인지를 끄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불이 커지고 말았습니다. 저는 부엌에서 불길이 치솟는 걸 보고, 너무 당황했습니다. 학생들에게 ‘리얼 파이어’(Real Fire)라고 고함친 뒤 소화기를 찾으러 나갔습니다. 그때 그 존이란 ‘놈’은 자기가 불을 내 놓고 그냥 도망을 치는 게 아니겠습니까. 황당한 마음도 잠시, 소화기를 들고 불길이 치솟는 가스 레인지를 향해 분무를 시작했습니다.
1996년 제가 머물렀던 대학교기숙사 워밍턴 타워(Warmington Tower) 전경입니다.
다행히 불은 그에 끄졌고, 알람소리(영국 알람이나 싸이렌소리는 정말 큽니다. 그리고 경찰차들은 비상출동일 때 무지막지한 속도로 달립니다. 2차 사고도 가끔씩 날 정도죠)만이 계속 귓청을 때리고 있었죠. 곧이어 소방관 아저씨들이 출동을 했습니다. 자주 보는 익숙한, 덩치 큰 아저씨들이죠. 제가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초기에 대처를 잘 했다며 말 그대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예비역 복학생 아저씨라, 아마도 군대의 기억이 몸에 좀 남아 있어서 그런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행동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제 여자친구(지금의 집사람입니다)가 저의 민첩한(?) 행동을 보고 경탄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나네요(자랑 아니고 실제로 위급한 상황이었습니다). 집사람은 일본여성인데 군대에서 모포 어떻게 털었는지만 얘기해도 재밌다고 웃곤 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로컬라이즈(본인 표현) 되어서 군대이야기도 심드렁한 모양이네요.
이번 런던 고층아파트 대형 화재로 사망자가 30명으로 늘었다고 하네요. 일부에서는 세자리 숫자의 사망자도 예상하네요. 그런데 파이어 알람도 울리지 않았다는 증언도 있네요. 제가 있던 기숙사는 작은 연기에도 자주 알람이 울려 소방관들이 수시로 출동을 했었는데, 그곳은 아니었나 봐요. 영국의 고층 아파트 이미지는 한국의 타워팰리스같은 고급 이미지가 아닙니다. 대부분의 고층 아파트는 이민자들이나 빈자들이 사는 곳입니다. 영국인들에게 ‘집’은 ‘스위트 홈’의 이미지가 있습니다. 정원(garden)과 거실 등이 있는 단독주택을 선호하는 편이죠.
이번 대화재를 보면서 문득 20여년전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대화재로 고통을 받고 있는, 한때 이웃이었던 런던 주민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싶네요.
성기노 피처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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