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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노의 정치 피처링
19대 대통령 선거 못다 한 이야기-리플레이 본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으로 선출되며 19대 대선은 막을 내렸다. ‘어대문’(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이자 ‘이래문’(이래도 저래도 문재인)이었다. 문 후보는 41.4%라는 다소 낮은 득표율을 기록했지만, 보수층 후보의 난립으로 신승했다. 13대 대선 때처럼 다자대결 구도가 되면서, 당시는 진보진영의 분열로, 이번에는 보수진영의 분열로, 비교적 무난하게 승리했다. 그의 당선을 둘러싼 각종 ‘헌사’들이 넘쳐난다. 언론 보도들도 ‘마치 잘 짠 시나리오처럼 전략과 운이 잘 맞아떨어진 결과’라며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넘쳐나는 칭찬 퍼레이드에 한자락 걸친들 티도 안 날 것 같아 ‘기승전문재인’ 류의 기사는 자제하겠다.
오히려 눈길이 가는 것은 패배자들이다. 2위를 기록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한자리수 지지율에 허덕거리던 그였지만, 후반 놀라운 피치로 24%라는 경이적인 득표율을 올렸다. ‘부덕의 소치’라거나 ‘민심을 겸허히 수용한다’는 것과 같은 의례적이지만 겸손한 멘트를 기대했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는 ‘당을 재건한 것에 만족한다’는 다소 ‘건방진’ 멘트를 날려 역시 홍준표라는 반응을 얻었다. “나 하는 것 봤지? 선거 뒤 내 뒤로 모두 줄 서기 바란다”는 말로 들린다. 국민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한 것이 아니라, ‘나 대선에서 이만큼 해서 당을 살렸으니 전당대회에서도 나 밀어줘’ 하며 당원들에게 전당대회 인사하는 것처럼 한 것이다.
역시 홍준표답다. 이기적이고 소아병적이다. 선거 초반 한자리수 지지율로 허우적거릴 때의 조급함이나 민망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게 다 홍준표 후보 개인의 역량 때문일까. 물론 그렇다고 우기면 할 말은 없지만, 이번 대선도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도 절대 사라지지 않을 강고한 묻지마 보수층’의 존재를 확인한 것에 불과할 뿐이다. 자당 출신 대통령이 탄핵까지 당한 정당의 후보가 24%라는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 수치는 한국 정치에서 ‘물구나무를 서도 청와대에 입성할 수 있는’ 보수층의 마지노선이다. 익히 유시민 작가 등이 말해왔던 ‘콘크리트 보수층’이다.
이들은 누가 대선 후보가 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그들이 추구하는 보수적인 가치에 더 관심이 있다. 막말 파문에 대중적으로도 별 인기가 없는 홍준표 같은 후보에게도 표를 과감히 던지는 집단이다(절대 그들의 선택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추구하는 보수의 가치가 더 잘 실현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홍 후보는 이것을 자신의 역량과 연결시키고 있다. ‘모래시계’에 나온 검사가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송지나 작가는 자신이 인터뷰 했던 여러 검사 가운데 홍준표도 그 중 한 사람일 뿐, 그를 특정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대단히 후안무치한 행동이자 견강부회다.
그래서 홍준표의 24% 득표 요인은 따로 설명할 게 없다. 그냥 숨어있던 콘크리트 보수층이 자연스럽게 투표한 것이다. “내가 잘 나서 24%를 얻었다”고 말한다면 그렇게 믿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 정도의 센스로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그 ‘무대포’에 경의를 표할 뿐이다. 또한 그런 사람을 차기 ‘대안’이라고 받아들이려 하는 자유한국당이 못내 안쓰럽기까지 하다. 이왕 이렇게 된 마당에, 10년을 내다보고 ‘물건’을 키워보면 어떨까. 문재인도 ‘포스트 노무현’으로 친노진영에서 과감하게 키운 인물이다. 그런데 왜 자유한국당은 노인에 꼰대 이미지가 강한 것일까. 젊고 똑똑한 ‘영건’들이 많이 나올 수 있도록, 지금 있는 ‘영감탱이’들이 그들 놀 자리부터 좀 만들어주면 안될까. 내년 지방선거 대비해서 홍준표를 다시 당 대표로 옹립할 움직임이라니, 역시 한국당스럽다.
사실 필자가 이번 대선에서 가장 주목했던 점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선전 여부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필자가 지적한 대로 오랜 국정경험, 잘 정비된 정책과 조직, 상대후보의 전력 미비 등의 요인(대선기획특집-문재인 대세론)으로 대세론의 꽃가마위에서 선거운동을 한 셈이다. 하지만 단기필마 안철수는 달랐다. 40석이라는 의석수가 말해주듯 전국에 풀뿌리 조직이 갖춰지지 않았고, 선대위는 여기저기서 영입한 인사들로 따로 노는 분위기였다. 오로지 후보의 역량으로 지금까지 왔다고 보는 게 맞다. 하지만 또 이것이 결국 그의 발등을 찍고 말았다.
사실 안철수 후보에게도 기회는 있었다. 그는 대선을 한달여 앞둔 지난 4월 4일 국민의당 경선에서 압도적 지지로 선출됐다. 8~10%를 맴돌던 안 후보의 지지율은 민주당 경선 탈락자인 안희정 충남지사 지지층을 흡수하며 열흘 만에 37.3%로 치솟았다. 문 당선인(38.5%)의 턱밑까지 추격했던 것이다(중앙일보 4월 15~16일 여론조사). 3자 대결이나 양자 대결에선 문 당선인을 이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때 안 후보는 “이번 대선은 나와 문재인의 대결”이라며 기세를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그의 지지율은 거짓말처럼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왜였을까.
그 시점은 바로 TV토론회가 시작되던 때와 일치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적한 대로 TV토론회가 안철수 후보 대참사의 시발이었다. 물론 TV토론을 독보적으로 잘 했다고 해도 홍준표 후보가 완주하는 한 승리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갈 곳 없이 떠돌던 부동층이나 보수층 일부가 안 후보의 TV토론회를 보고 등을 완전히 돌린 것으로 보인다. ‘초딩’ 안철수라는 비아냥까지 나왔다.
말 잘하는 사람이 대통령 되는 기준으로 한다면 웅변가들이 대통령 하지,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통령 혹은 리더가 될 사람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게 바로 ‘말’이다. 그 리더의 생각과 철학은 말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더구나 토론같은 상대와의 상호작용 속에서는 평소 그 리더의 국정지식이 오롯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권력은 설득하는 권력’이라는 말도 있다. 아무리 머릿속에 지식이 많이 들어있다고 해도 그것을 일목요연하게, 때로는 격정적으로 풀어내지 못하면 ‘헛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TV토론은 또한 다분히 기술적, 심리적 요인에도 많이 영향을 받는다. 토론의 달인이 곧 유능한 정치인은 아니지만 유능한 정치인은 토론에 능하다고 볼 수 있다. 프랑스의 마크롱이 대통령이 된 결정적 계기도 TV토론회였다. 그는 르펜과의 양자 TV토론 이후 지지율을 높이며 승리를 굳혔다고 한다. 르펜이 비방과 인신공격으로 일관한 반면 마르롱은 해박한 지식과 날카로운 말솜씨로 르펜을 압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토론이 리더의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처럼 결정적 순간에 그 정치인의 역량과 경쟁력을 돋보이게 하는 마술과 같은 기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안철수에게 “토론 과외라도 좀 받으라”고 말할 수는 없다. 말이란 그 사람 인생의 총화다. 말이란 그냥 나오는 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과 부딪치고 갈등하고 토론하고 상호작용 하며 쌓은 체화된 언어다. 정치는 더욱 그렇다. 자신을 내려놓고 ‘민중’들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그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언어를 듣고 그것을 정치인의 말로 풀어내야 한다. 안철수 후보가 부족했던 것은 바로 이런 부분이다. 그가 수많은 책을 읽고 쌓은 지식이 많다고는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자신만의 성에 쌓은 사상누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지적으로 충만해 있지만 그 지식이 국민과, 아랫사람들과 상호작용하며 체화하지 않으면 정치인의 ‘말’이 될 수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런 ‘기술’에 능했다. 말을 잘 하는 편은 아니지만 상대가 알아듣기 쉽게, 상대의 마음을 울리는 말의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안 후보는 TV토론회를 통해 많이 느꼈을 것이다. 살아있는 말을 해야 한다. ‘살아있다’는 것은 국민들에게 울림을 주는 말이다. 지식이란 것이 자신의 머릿속에 고이 담아놓은, 다이아몬드같이 빛나는 고매한 것이 아니라 국민들과의 ‘교통’ 속에서 생긴 체화된 언어라야 한다. 물론 다분히 기술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많았지만 그것보다 안철수의 삶이, (적어도 정치에 입문하기 전까지는) 대중과 유리된 측면이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안 후보가 재기를 하기 위해서는 그가 유세 막바지에 했던 것처럼 ‘국민 속으로’ 뛰어 들어가야 한다. 철저하게 밑바닥에서부터 국민들과 소통하고 대화해야 한다. 그런 과정 속에서 ‘말’은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다. 선대위 참모들이 적당히 써준 원고를 읽는 수준으로는 절대 안 된다. 자신의 것이기 아니기 때문이다. 국민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후보들이 토론을 잘 했다는 것은 아니다. 안철수 후보는, 문재인 후보의 조직도 팬덤도 없는 상황이라면 오로지 본인의 개인기로 돌파해야 한다. 그 비장의 무기가 바로 국민 속에서 녹아 나온 언어라야 한다.
안철수 후보의 패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자강론이 취지는 좋았지만 선거구도 상 역부족이었음이 드러났다. 당의 전국 조직력도 취약했다. 선대위의 선거전략도 다분히 즉흥적이었다. 긴급사안에 대처하는 순발력이 절대 부족했다. ‘박지원 상왕론’에 대해서도 적극 대처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부분들보다 안철수 후보 개인의 역량이 부족한 것이 이번 선거의 첫 번째 패인이었다. 그는 IT기업가 출신의 전문가다. 그의 강점을 부각하기보다 익숙치 않은 네거티브에 치중하다 보니 안철수의 경쟁력이 겉돌게 된 것이다. 안철수 후보는 선대위 해단식에서 “패배했지만 좌절하지 않을 것”이라며 일단 대선 재수의 뜻을 간접적으로 밝혔다.
이번 19대 대선은 문재인으로 시작해서 문재인으로 끝났다. 대통령 탄핵사태에 따른 조기대선이 그에게 큰 운을 가져다 주었다. 문재인의 역량도 뛰어났지만 탄핵의 반사이익 최대 수혜자임을 부인할 수 없다. 득표율도 14대 대선 때 김대중 대통령의 40.3% 이래 41.4%로 역대 최저치에 가깝다. 진보진영 주자에게 좋은 선거 환경이었음에도 득표율은 그리 높지 않았다. 이는 진보와 보수의 싸움에 ‘미래’라는 가치가 더해지면서 그쪽으로 표가 많이 분산돼 나타난 결과다.
안철수는 비록 3위에 그쳤지만 자신에게 표를 준 21.4%의 국민들은 미래를 위해 표를 던졌다. 이렇게 국민들은 또 한 명의 미래주자를 키워냈다. 그가 다음 대선에 다시 선다면 ‘국민속의 언어’로 무장한 달라진 안철수를 보여줘야 할 것이다. 대통령감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만들어주는 것이다. 시련을 통해 한층 단련된 대선주자들을 많이 보고 싶다. 그것이 곧 우리 정치의 자산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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