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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노의 정치 피처링
대선 막판 변수, 안철수-유승민 단일화 급부상 내막 본문
며칠 남겨둔 5.9 대선에 ‘유승민 변수’가 발생했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그동안 ‘후보의 자질에 비해’ 지지율이 반등하지 않아 당 소속 의원들로부터 단일화(라고 읽고 사퇴라고 쓴다) 압박을 받아왔다. 이런 요구는 한국 정치판에서 흔히 있어왔다. 대표적인 경우가 2002년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후단협’ 사태였다. 박상천 정균환 등 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16대 대선을 앞두고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를 출범시켰다.
후단협은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15% 안팎으로 떨어지자 무소속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명분은 지지율 1위를 달리던 이회창 후보에 맞설 단일 후보를 뽑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민주당 의원들의 탈당 사태가 이어졌고 당은 내홍에 휘말렸다. 후단협 소속 의원들은 대선 뒤 대부분 철새의 오명을 쓰며 침몰해갔다. 후단협은 오히려 반 이회창 세력이 노무현을 중심으로 결집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17년이 지난 지금, 제 2의 후단협 사태가 발생했다. 한국정치는 또 이렇게 거꾸로 가고 있다. 바른정당 소속 국회의원 김성태 권성동 장제원 홍문표 김재경 김학용 박성중 박순자 여상규 이군현 이진복 홍일표 의원 등 12명은 탈당계를 내고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황영철 의원은 발표 뒤 곧바로 원대복귀를 선언했고, 나머지 4~5명 의원들도 복당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리지만 돌아온다고 바른정당에서 곧바로 받아줄지도 의문이다.
사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고 주로 친이계로 분류되는 탈당파들은 나름대로 합리적인 개혁성향의 의원들로 분류돼왔다. 하지만 선거를 불과 10여일 앞두고 뜨지 않는 배에서 자기들끼리만 뛰어내려 국민들을 아연실색케 했다. 한국 정치에서 가장 경원시되고 비난을 받는 행위가 바로 ‘철새’다. 코앞의 이익만 좇아가는 정치인들은 대부분 사멸했다. 2002년 대선 과정에서 ‘철새’ 논란을 빚은 김민석 현 민주당 최고위원은 아직도 완전한 정치적 재기를 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로 국민들은 이런 배신 행위에 대해 냉혹한 시선을 보낸다.
필자가 앞서 지적했듯이 유승민 후보는 평소에 ‘까칠하다’는 평가를 자주 듣는 편이다. 아직 계파 수장으로서의 스킨십이나 화통한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본다. 그런 우려들이 현실로 드러난 것이 이번 탈당 사태의 이면이다. 물론 선거 과정에서 유승민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국민들과의 소통이나 토론회에서 능력을 발휘했다는 평가도 있다. 그런떼 탈당파 내부에서는 ‘유승민 후보가 선거판 최전선에서 그를 위해 뛰고 있는 의원들에게 전화를 하거나 식사를 함께 하며 독려를 하지 않고 있다’는 불만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었다.
사실 대선이라는 큰 선거판이 서면 의원들이 사재를 털어서라도 당 후보를 위해 뛰게 된다. 이런 ‘자발적 참여’에 후보도 그들과 식사를 하거나 수시로 전화를 하며 격려를 하는 게 관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이런 ‘스킬’에 아주 능숙했다. 물론 참모진들이 건의를 하는 것도 있었지만 이 전 대통령은 대선 때 장거리 이동을 하거나 할 때 ‘통화 리스트’를 만들고 직접 전화를 걸어 자신을 위해 뛰는 의원들을 격려해주고 칭찬해주었다. 하도 후보가 열심히 전화를 해서 참모들이 말릴 정도였다고 한다. 이런 행위 자체가 간접 선거이자 표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실용주의자 이명박 전 대통령의 마인드였다.
하지만 유승민 후보는 ‘생색내기’나 ‘이미지 정치’에 능숙하지 않다. 본인이 그런 행위를 진심이 담기지 않는 것으로 보고 경원시하는 편이다. 어쩌면 정치는 ‘경제학자’ 유승민이 보기에는 비효율적이고, 또한 위선적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과정들을 통해 계량화되지 않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니 어찌 하겠는가. 싫어도, 불편해도, 인사하고 껴안고 보듬어 안아줘야 한다. 그게 정치의 속성이다.
유승민 후보에게는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좀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당 내부에서도 ‘후보가 너무 혼자만 뛴다’ ‘도와주려는 의원들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화답하려는 자세를 보여줬으면 그 정도(탈당)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뒷말이 나오고 있다. 이런 심정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필자가 보기에 탈당은 너무 나간 것이다.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것’이었다. 선거 기간 동안 후보의 스킨십 부족은 대선 뒤 ‘정산과정’에서 얼마든지 복기가 가능한 대목이다. 그래서 안 되면 결별하면 된다. 유세기간 동안, 그것도 선거를 10여일 앞두고 후보가 마음에 들지 않고, 자기들을 알아봐주지 않는다고(표면적으로는 이렇지만 사실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경쟁력이 없어보이는 유승민 깃발 아래에서는 힘들다고 보고 미리 짐을 싼 것에 불과하지만), 후보의 등에 칼을 꽂는 것은 정치적으로 있을 수 없는 배신행위다.
정치는 과정이다. 선거는 텃밭에 씨앗을 뿌리는 행위다. 비록 당장 수확은 하지 못해도 미래를 위해 씨를 뿌리는 것이다. 당장 선택을 받지 못해도,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당장 이익실현이 안 되더라도 미래를 위해 씨를 뿌리는 것이다. 그것이 정치인의 비전이자 자산이다. 선거는 비록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지만, 패자 또한 ‘미래’를 그 자양분으로 먹을 수 있다. 그래서 아름다운 패배가 중요한 것이다. 아름다운 승복이 중요한 것이다. 국민들은 그것을 영원히 기억한다. 아름답기 때문이다. 노무현의 ‘지역구도 청산’의 그 험난한 길은 대통령 당선이라는 국민들의 집단 기억 덕분에 보답을 받은 것 아닐까. 이런 점에서 이번 바른정당 소속 의원들의 집단 배신 행위는 또 국민들 머릿속에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아름다움이 아닌 추한 모습으로.
탈당파의 배신 효과(?) 덕분에 유승민 후보는 그야말로 기사회생하고 있다. 후원금이 쇄도하고 있고, 젊은층 가운데서도 보수성향층은 유승민 후보에게 ‘기 죽지 말라’며 뜨거운 응원을 보내고 있다. ‘노무현 이래 이렇게 뜨거운 열정을 느껴본 후보가 없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이런 반전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러브콜’을 이끌어내는 모멘텀이 되었다. 안 후보는 집권하면 유승민 후보와 정부를 공동으로 구성할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유 후보에게는 ‘경제분야를 부탁하고 싶다’는 것이다. 유 후보는 이에 ‘안 후보의 덕담에 감사한다’고 화답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국민의당에서는 안철수-유승민의 단일화에 막판 기대를 걸고 있다. 유 후보가 막판에 안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사퇴할 경우 마지막 빅뱅 변수가 발생할 수도 있다. 당의 한 관계자는 “지금도 계속 (유 후보를) 설득중이다”라고 말했다. 정치가 생물이라면 이럴 때 쓰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는 "유승민 후보와의 단일화는 없다"며 선을 긋고 있다.
한편 보수의 대표주자로 떠오르던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마지막 후보 토론회에서 유승민 후보를 향해 ‘덕이 없으니 의원들이 당신을 떠나는 것 아니냐’며 힐난한 바 있다. 이런 ‘비열한 정치공세’에 홍 후보를 향하던 일부 중도보수층들이 등을 돌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선거에서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이 바로 ‘오만’이다. 토론회에 나온 후보 모두는 여론조사 지표와 의석수라는 편의적인 기준으로 만든 기준에 의해 ‘서열’이 정해질 것일 뿐 모두 똑같은 후보들이다. 선거는 뚜껑을 열기 전까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냥 후보에 불과할 뿐이다. 특정 시기나 상황에서 우세하다고 자만하며 상대를 비하하거나 조롱하는 것은 자살행위다.
국민들은 생각보다 오랫동안, 또렷하게 정치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머릿속에 기억해두고 있다. 그리고 선거당일 그것을 기표소에서 꺼낸다. 그 기억의 행위는 상식이라는 상자 속에 있었던 것이다. 지금 누가 가장 상식적인 길을 걷고 있는지, 그것을 발견했다면 그에게 과감하게 표를 던지는 게 어떨까. 국민들의 기억은 언제든지 옳았고, 맞았다. 그게 민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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