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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노의 정치 피처링
'위민관'이든 '여민관'이든 뭣이 중헌디? 본문
문재인 정권 출범 뒤 며칠 사이에 ‘위민관’ ‘여민관’의 호칭을 두고 잠시 해프닝이 있었다. 청와대는 애초 대통령 비서실과 국가안보실 등이 위치한 위민관의 명칭을 그대로 사용키로 했다. “과거 참여정부 때 여민관으로 불렀지만 새 정부에서는 기존 명칭 그대로 위민관으로 쓰기로 했다”는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직원들이 위민관 명칭 변경 여부를 묻자 ‘그대로 쓰라’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되기도 했다.
지난 1991년 완공된 지금의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근무하는 본관과 비서실이 있는 위민관은 500m 떨어져 있다. 비서실장, 안보실장이 대면 보고하려면 차를 불러 타야 한다. 아니면 10분 가까이 부지런히 걸어야 한다. 커다란 본관엔 사실상 대통령 혼자 있다. 빨간 카펫이 깔린 계단을 통해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가면 문에서 책상까지 15m 거리다. 2008년 첫 출근한 이명박 대통령이 이를 보고 “테니스 쳐도 되겠구먼” 했다고 한다. 이런 불편함 때문에 문 대통령은 참모들이 모여있는 ‘위민관’에서 집무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명칭이 왜 논란이 되었느냐 하면 노무현 정부 때 ‘여민관’(與民館)으로 불렸으나 이명박 정부에서 ‘위민관’(爲民館)으로 바꾸어 버렸기 때문이다. 전임 대통령이 명명한 것을 정권이 바뀌자 다시 바꾼 것에 대해 노무현 정권 사람들은 기분이 좋았을 리 없다. 그래서 이번에 문재인 정권이 집권하자 그 명칭을 두고 ‘내부논의’가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처음에는 문 대통령이 그대로 쓰라고 했다는 것이 전해지면서 명칭 재변경의 ‘악순환’을 끊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그런데 청와대는 몇시간이 지나자 다시 말을 바꿨다. 청와대는 비서동인 위민관 명칭을 다시 ‘여민관’으로 바꾸기로 했다고 밝혔다. 무슨 속사정이 있었던 것일까.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오후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갖고 “위민관을 여민관으로 바꾸기로 했다. 참여정부 시절에 여민관으로 했던 적이 있다. 구체적으로 대통령에게 말씀을 듣지는 못했지만 여민관은 대통령과 국민이 함께 한다는, 청와대가 함께 한다는 의미다. 촛불혁명으로 선거가 시작되고 선거로 인해 국민이 (대통령을) 만들어줬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 여민관이라는 개념을 선호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명박 정권이 바꾼 이름을 되찾는다는 의미보다 촛불민심을 대변하기 위해 ‘여민관’이라는 개념이 더 적확하다는 의미같다.
그러면 ‘여민’과 ‘위민’은 다른 말일까. 여민은 ‘여민고락’(與民苦樂)에서 나온 말이다. ‘백성과 즐거움을 함께 하다’라는 뜻으로 백성과 동고동락하는 통치자의 자세를 비유하는 말이다. 맹자에서 유래되었다. ‘위민’은 ‘위민정치’(爲民政治)에서 나온 말이다. 민(民)을 위한 정치라는 뜻이다. 유교적인 사상을 바탕에 둔 정치개념 중 하나로 지배자의 정치활동 지침이자 규칙이며 정치활동의 방향이 백성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개념이다. 두 단어가 비슷한 뉘앙스이지만 ‘여민’이란 말이 백성과 같이 슬프하고 기뻐한다는 의미에서 청와대가 더 선호하는 말로 보인다. 아마도 처음에는 ‘위민’이나 ‘여민’이나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다가 뒤늦게 두 단어의 뉘앙스 차이를 발견하고 다시 ‘여민’으로 돌아선 것이 아닌가 추측해본다. 아니면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은 이름이 기분 나쁘다고 다시 바꾸었든지.
필자가 한끗 차이의 말장난같은 이번 변경 해프닝에 주목한 것은, 우리 정치에 아직도 뿌리내리지 못한 정권교체의 후유증과 악습 때문이다. ‘너무 거창한 것 아니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겠지만, 전임자가 만든 이름을 정권이 바뀌면 바꾸고, 그것을 또 후임자가 바꾸고 이런 식의 ‘악순환’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제기다. 처음 문재인 대통령이 이명박 정권 때 바꾼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다고 했을 때, 내심 ‘기분은 나쁘겠지만 그래도 전임자의 전통을 존중해주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존중하고 승복하면서 전통을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청와대는 결국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은 이름으로 다시 바꾼 것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라고 하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전임 대통령의 모든 흔적을 지울 수는 없다. 그것은 좋든 싫든 우리의 역사 궤도 속에서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명칭 변경 악순환의 근원을 따라가 보니, 역시 이명박 전 대통령의 흔적이 아른거린다. 보수세력은 ‘비주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등장을 상당히 못마땅해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부터 그런 기류가 더욱 노골화됐다. 이명박 정권이 시작되자마자 당시 청와대는 지난 정부 ‘지우기’에 대대적으로 나섰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정권 출범 직후인 2008년 4월 청와대 로고를 바꾼데 이어 5월11일에는 온라인 업무관리시스템 ‘e지원(知園)’을 ‘위민’으로 개칭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시스템이긴 하지만 정권이 교체된 만큼 새로운 명칭이 필요하다는 내부 의견을 수렴한 결과였다는 것이다.
그러고 정권 출범 7개월 뒤인 2008년 9월, 청와대는 대통령실 직원들이 상주하는 ‘여민관’(與民官)도 ‘위민관’으로 이름을 바꿔버렸다. 그에 따라 여민1관·2관·3관이 위민1관·2관·3관으로 변경됐다. 이에 대해 당시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여민관의 ‘여민’이라는 표현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즐겨 부르던 말로 이명박 정부는 ‘위민’으로 바꿔 부를 것이다. 다음 정권에서 다시 자신들의 철학에 맞는 이름으로 어떻게 바꿀지는 모르지만 이름 하나에도 예민해지는 게 사실이다”이라고 밝힌 바 있다.
미국 백악관의 웨스트 윙(west wing:대통령 집무실과 비서진 사무실이 있는 공간)이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바뀌었다는 말을 필자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이 명칭 변경의 단초는 물론 이명박 전 대통령이 제공했다. 하지만 그것을 또 바꾼 문재인 대통령도 이 갈등의 악순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필자가 이 명칭 변경에 민감한 것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임자는 전부 적폐와 구시대 유물이고 그 사람이 물러나면 또 그렇게 내몰리는 현실이 안타까워서다. 사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별다른 이유도 없이, 그냥 기분 나쁘다는 이유만으로 청와대의 건물 이름을 바꾼 것은 백번 옳지 않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 또한 그것을 반복한다면 그것은 ‘한통속’이 된다. 기분은 나쁘겠지만, 속은 쓰리겠지만, 누군가는 그런 악순환을 끊어야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처음에 명칭을 변경하지 않겠다고 해서 살짝 ‘기대’를 했지만 역시 그 단절은 쉽지 않았다.
사실 정권교체 과정의 이런 악순환은 부정적인 ‘나비효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이명박 정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물러나면서 청와대 기록물을 봉하마을에 반입하는 것을 극도로 반대하며 갈등을 빚었다. 전임자에 대한 예우를 해주지 않았다는 평가도 많았다. 이런 양측의 갈등과 감정싸움의 끝은 노무현 전 대통령 가족 수사로까지 이어지는 촉매가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친노세력이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 ‘이를 갈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결말 때문이다.
필자는 청와대의 이번 명칭 변경 해프닝을 가볍게 보지 않는다. 청와대의 ‘분노’ 기류를 간접적으로 읽을 수 있다. 그것이 지향하는 목표점은 분명하다. 한바탕 복수의 광풍이 불 수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선거기간 내내 ‘적폐청산’을 내걸었고, 이명박 정권 때의 4대강 사업 예산 전용과 16개 보 문제점 등에 대해서도 면밀히 검토할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한바탕 또 사정국면이 조성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과정 내내 ‘김대중 정신’을 설파하고 다녔다. 그런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작 자신을 핍박했던 ‘전두환을 용서했다’고 했다. ‘죄는 미워해도 인간 그 자체는 미워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4대강이든 뭐든 죄가 있는데 처벌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그것이 최대한 법의 테두리 안에서 엄정하고 냉엄하게, 이성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정적들이 봐도 인정할 정도로 완벽하게 적폐를 청산하라는 얘기다. 그렇지 않으면, ‘위민’에서 ‘여민’으로 바뀐 것에 대해 이명박 사람들은 또 ‘두고 보자’며 이를 갈 것 아닌가. 언제까지 이렇게 감정의 싸움으로 국력을 소모할 것인가.
사실 따지고 보면 국민들에게 ‘여민’이든 ‘위민’이든 그 명칭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어찌 보면 정권끼리의 ‘자존심 싸움’이다. 그런 사소한(권력자들은 사소하지 않다고 생각하겠지만) 감정싸움이 정권차원의 권력충돌로 이어지는 뇌관 역할을 하고 있다. ‘여민’이든 ‘위민’이든 국민을 위하는 마음은 똑같은 것 아닌가.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씨 결혼을 축하하며 붓글씨를 하나 써서 보냈다고 한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어지러이 걷지 마라. 오늘 내가 남기는 발자취는 뒤에 오는 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서산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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