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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노의 정치 피처링
19대 대선 못다 한 이야기-유승민 심상정 본문
다음은 정치전문웹진 '피처링'에 게재한 기사 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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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19대 대선에서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선거로만 따지면 가장 ‘신인’에 가까웠다. 그는 지역구, 그것도 보수의 아성 대구(동을)에서만 4선을 했던 온실속의 꽃이었다. 국회의원들도 묘한 ‘서열의식’이 있다. 수도권이나 서울 출신 의원들의 경우 당선되거나, 또는 재선 3선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상당히 우월의식이 강한 반면 영호남의 지역구 의원들은 그 무게감이 좀 떨어지는 편이다. 유승민 의원 또한 4선을 했지만 수도권이나 서울의 4선과는 정치적 중량감에서 좀 차이가 난다. 선거를 일주일 앞두고 바른정당을 탈당한 재선 3선 등의 중진의원들도 자기들보다 별로 나아보이지 않았던 유승민 후보에게 질투도 났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들의 몸을 던져 ‘유승민 구하기’를 하기가 더욱 쉽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유 후보가 살갑게 다가가지 못하고 스킨십도 부족한 터라 결국 곪았던 게 터진 것이다.
바른정당 의원들의 집단 탈당은 유승민의 대선 도전에 숙제와 희망을 동시에 던져주었다. 숙제는 필자가 지적했듯이 유승민의 ‘정치력’이다. 정치란 자신의 가치와 철학을 끊임없이 설파하고 그에 동조하는 동지들을 규합해나가는 과정 그 자체다. 자신의 뜻과 맞지 않는 사람을, 경쟁자를 자신의 우군으로 끌어들이는 설득의 과정은 정치를 예술의 경지로까지 끌어올리는 중요한 동인이다. 이런 점에서 유승민의 ‘동지’들이 선거를 불과 일주일 앞두고 탈당한 것은 이유가 어찌되었든 유승민이 책임져야 할 정치력의 부재라고 할 수 있다. 여론이 탈당한 정치인들을 맹비난한 것이 유승민의 부담을 상당 부분 덜어주고 그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긴 했지만, 이 과정에서 유승민 스스로가 정치력을 발휘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냥 ‘여론’이 물에 빠진 유승민을 구한 셈이다. 어찌 보면 행운도 따른 셈이다. 그 결과로 득표율(6.8%)도 심상정 정의당 후보(6.2%)를 간신히 따돌리고 4위를 기록했다.
유승민 후보가 앞으로 대선에 재도전하기 위해서는 정치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집안 단속’을 잘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이 후보의 첫 번째 정치적 의무이자 핵심 역할이다. 물론 명분도 없이 탈당한 정치인들에게도 책임은 있지만, 대선과 같은 중요한 선거는 후보에서 시작해 후보에서 끝이 난다. 약한 곳은 땜질을 해야 하고 독려가 필요한 곳은 달려가서 위로해주고 힘을 북돋아줘야 한다. 여론이 탈당파들을 심하게 매질해 바른정당의 ‘균열’이 그나마 덜 부각됐지만 사실 바른정당이나 유승민 후보 입장에서 보면 이번 대선은 명백하게 실패한 선거다
적전분열은 전쟁에서 가장 좋지 않은 패배의 징후다. 흔히 스포츠에서 감독들이 강조하는 게 있다. 지더라도 내용이 있게 지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얼토당토 않는 이상한 이유로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어이없이 지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이런 점에서 유승민 후보의 패배는 뼈아프다. 내용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향후 그가 다시 대선을 도전한다면 반드시 복기를 해야하는 부분이다. 집안단속을 확실히 해 응집력을 가지고 똘똘 뭉쳐서 구성원들이 2배 3배의 힘을 발휘하도록 하는 게 후보의 역할이다. 이는 그가 청와대를 가더라도 마찬가지다. 참모들이 돌고래처럼 펄펄 날며 일하도록 독려해야 한다.
탈당하는 ‘동지’들을 우두커니 바라보고 비난하는 하는 것은 후보의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었다. 불가항력이었다고 변명할 수도 있지만, 전쟁터에서 내용이 좋지 않게 패배하는 것은 미래를 담보해주지 못하는 치명적인 약점이다. 유 후보가 비록 선전했다고 주변에서 칭찬을 하고 있고 그도 백의종군의 자세를 보여주고 있지만, 선거 직전 탈당 사태는 그의 대권 도전 대장정에 중요한 ‘약점노트’가 되기를 바란다.
이런 정치적인 면에서는 유 후보의 대처가 조금 아쉬웠지만 유승민 개인의 측면에서 본다면 이번 대선은 그에게 희망을 던져준 것으로 평가하고 싶다. 유승민 후보가 선거운동 기간 중 보여준 보수의 기품과 해박한 지식은 향후 보수정당의 새로운 가치를 재생산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는 문재인 당선자에게 직접 전화로 당선을 축하했고, 국회에서 열린 취임 행사에 다른 후보들 가운데 유일하게 참석해 문 당선자와 아이컨택을 하며 진심어린 축하를 해주었다. 우리나라처럼 승자에 대한 축하가 인색한 나라도 없다. 승자가 가장 먼저 챙겨야 하는 것도 패자의 등을 다독이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이 확정되고 곧바로 패배한 정당을 찾아간 것은 좋았지만 후보들을 일일이 직접 만나지 않았던 것은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유 후보가 TV토론회에서 보여준 국정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논리적인 언변은 그나마 내용 없는 말잔치에서 영양가 있는 밑반찬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특히 그가 국민들에게 보여준 승자에 대한 진심어린 축하는 그 자체로 그의 패배를 아름답게 만들어주었다. 마무리를 잘 해서 그나마 내용이 있는 패배를 조금은 이룬 셈이다. 국민들이 유승민의 이런 아름다운 정치 DNA를 기억하고 반드시 그것을 보답해 줄 것으로 믿는다. 정치는 약속이고 희망이다. 지금 지더라도 그 패배의 진창에서 결국에는 꽃을 피워내는 게 정치의 과정이다. 유승민 후보는 이런 점에서 누구처럼 잘난 척 하지 않고 겸손과 배려, 책임의 보수 가치를 제대로 보여주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이번 대선에서 가장 아쉬운 사람이 바로 정의당 심상정 후보다. 그는 정책과 공약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또 그것을 국민들에게 알기 쉽게 전달하는 역량이 탁월하다. 여의도 정치인들 중에서 첫 손가락에 든다고 감히 평가할 수 있다. 독일의 총리 메르켈처럼 여성성을 강조하지도 않는다. 화장은 최소한으로 하고 복장도 언제나 편안한 차림이다. 가부장적인 한국 정치 분위기에 심상정이라는 존재는 그야말로 진흙속의 연꽃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TV토론회에서도 남성 후보들보다 논리적이었고 날카로웠다. 그는 이번 19대 대선에서 득표율 6.2%를 기록했다. 직선제 이후 치러진 대선에서 2002년 당시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가 가장 높은 3.9%를 기록했는데, 이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득표율 5%를 넘어 군소 후보라는 꼬리표도 뗐다.
심상정은 선대위 해단식에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정의당은 오직 품질 하나로 승부했다. 국민들이 십시일반으로 후원금을 보내주고 우리 당원들이 치열하게 연월차를 자발적으로 써가며 뛰어주셨다. 비전과 정책, 조직의 일대혁신을 통해 국민들이 믿고 맡길 수 있는 든든한 수권정당으로 도약해가겠다”고 밝혔다. 당초 10%의 득표율을 목표로 했지만 기득권 세력의 정치 틀을 극복하지 못했다. 방송사 출구조사가 시작된 5월 9일 오후 8시부터 자정까지 5000여명의 시민들이 2억원 이상의 후원금을 보내줘 심상정 후보도 놀랐다고 한다. 심 후보가 10% 밑으로 득표해 선관위의 선거비용 보전을 전혀 받지 못하자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후원금을 몰아준 것이다. 이런 국민들의 따뜻한 격려와 지지에 평소 강단있기로 소문난 심 후보도 뜨거운 눈물을 흘린 것이다. 정의당은 한국 정치에 품격과 당당함을 보여주고 있다. 거친 언사나 물거품 공약을 내걸지도 않았다. 지나칠 정도로 엄격했고 정의로웠다. 이런 새로운 정치에 대한 도전을 국민들은 기억할 것이다. 그것은 또한 지못미 후원금으로 곧바로 나타났다.
심상정은 이번 대선에서 ‘약자’(소수정당)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약한 것은 비굴한 것이 아니다. 주류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품격과 배려를 가질 수 있는 것을 심상정은 보여주었다. 심상정이 설파하는 가치는 비록 그것이 거대정당의 입김 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더라도,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 속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었다. 심 후보는 한 연설에서 ‘민주주의의 더 깊은 정착, 세대 간의 유연한 대화,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 통합과 변화’ 등을 주장한 바 있다. 그가 말하는 것이 당장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손짓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심상정의 정치는 누구나 꿈을 꿀 수 있게 하는 정치의 본령을 되새기게 한다. 그가 이번 대선에서 보여준 기품과 따뜻함은 냉혹하고 정글같은 여의도 정치에 그나마 온기가 돌게 만들어주었다. 우리 정치에도 미래가 있다는 것을 심상정은 당당하게 보여주었다. 그는 결코 약자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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