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노의 정치 피처링

[성기노 칼럼] 폭염에도 차별이 있다 본문

정치

[성기노 칼럼] 폭염에도 차별이 있다

성기노피처링대표 2026. 7. 16. 16:59







728x90
반응형

(이미지=생성형 AI)

 

녹색평론은 1991년 창간돼 깊이 있는 생태주의 담론을 펼쳐왔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경제적 어려움으로 휴간과 복간을 반복한 끝에 지금은 연 2회 발행되고 있다. 녹색평론의 침체는 단순한 경영난이라기보다 ‘환경’이라는 담론이 우리 사회에서 점차 설 자리를 잃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녹색평론의 글을 읽다 보면 환경과 생태를 바라보는 눈높이가 현실보다 너무 높은 것은 아닌지 고민도 해본다. 그 뜻에 공감하면서도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커질수록 녹색평론의 경영 역시 더 어려워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기도 하다.

환경은 모두가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정작 인간의 현실적 생존 문제가 대두될 때 가장 먼저 포기하거나 양보해야만 하는 가치일 수 있다. 그럼에도 녹색평론은 인간의 생존을 위해 환경 정책과 생태 담론이 더욱 필요하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환경이란 과연 무엇일까.

최근 유럽을 휩쓴 40도를 넘는 폭염과 그에 따른 사망사고가 속출하는 현실을 보면 마음이 착잡해진다. 그런데 그 원인이 ‘환경 보호’를 위해 에어컨 설치를 자제하거나 ‘규제’했기 때문이라니, 숨이 턱 막힌다. 환경을 지키겠다는 정책이 오히려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이 역설적이고 아이러니컬한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 등지에서는 노인과 노숙인, 야외 노동자 등 취약계층의 폭염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에서만 1천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유럽 전역이 폭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프랑스는 에어컨 보유 가구 비중이 25% 수준에 불과하다.

이에 프랑스 정치권은 에어컨을 둘러싸고 선명하게 갈라졌다. 극우파인 마린 르펜 의원은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취약계층이 있는 병원 요양원 학교부터 대규모 냉방시설을 설치하겠다고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반면 좌파는 폭염으로 1천명 넘게 숨진 상황에서 “에어컨 설치가 정답이 아니다”라며 국민들에게 냉방기기 구입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해 논란이 됐다. 그들은 녹지 확대와 건물 단열 개선, 도시 구조 개편 같은 장기적 대안을 제시한다.

폭염 사태가 기상 현상을 넘어 정치와 이념의 전장이 된 것이다. 그런데 에어컨을 더 설치하자는 주장과 에어컨 없이 버티자는 주장이 서로를 “반인륜적”, “반환경적”이라고 비난하는 동안 정작 중요한 질문은 빠져 있다. 이 폭염 속에서 누구의 몸이 먼저 쓰러지고 있는가. 그리고 그들은 어떤 계층이며 어떤 주거와 노동 환경에 놓여 있는가.

환경이라는 이름으로 요구되는 인내는 과연 모두에게 공정한가. 인내를 강요받는 사람과 인내를 설계한 사람은 같은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이런 질문들을 외면한 채 유럽의 환경 논쟁은 폭염 한 번에 에어컨을 둘러싼 이념 전쟁으로 변해버렸다.

폭염은 모두에게 찾아오지만 그 피해는 모두에게 똑같이 돌아가지 않는다. 프랑스의 상류층이나 사회 지도층 인사가 폭염으로 사망할 가능성은 가난한 사람들에 비해 낮을 것이다. 환경정책이 이 계급적 차이를 외면하거나 방치하는 순간 환경은 인간을 보호하는 장치가 아니라 또 다른 불평등으로 작용할 수 있다.

환경을 단순히 ‘자연 보호’로만 이해하던 시대의 사고로는 이 사회적 모순과 불평등을 설명하기 어렵다. 환경의 본질은 ‘자연을 지키느냐, 편의를 추구하느냐’의 흑백논리가 아니라 어떤 인간이 어떤 조건에서 위험에 노출되는가를 끊임없이 묻는 데 있다.

유럽의 폭염 대란을 목도하면서 한국으로 시선을 돌려본다. 지난해 출범한 이재명 정부의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이름만 보면 환경의 위상이 높아진 것처럼 보이지만(기후라는 단어가 첫 번째 등장하기 때문에) 현실은 확연히 다른 것 같다.

‘기후부’의 지난 1년간의 행보를 들여다보면 이 부처가 무엇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지 금방 드러난다. 부처 브리핑과 정책 발표의 상당수는 전력수급, 원전 정책 등 에너지에 집중돼 있고 정작 물, 생태와 같은 전통적 환경 업무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고 한다.

‘친 환경주의자’이자 탈원전주의자였던 김성환 기후부 장관은 ‘감원전’을 넘어 ‘친원전주의자’로 변신하고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반도체 산단의 전력·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국익’이라면 그로 인해 감당해야 할 환경 부담과 생태적 리스크는 누구의 책임있는 언어로 설명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유럽의 폭염과 한국의 기후부 1년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 보이지만 결국 한 지점에서 만난다. 유럽에서는 환경의 이름으로 인간의 생존이 희생되고 한국에서는 산업과 에너지의 이름으로 환경이 주변부로 밀려난다. 그 어느 쪽도 환경이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는 답하지 못하고 있다.

환경 때문에 인간이 죽어 나가는 현실도, 산업 논리에 환경이 뒷전으로 밀려나는 현실도 모두 환경 정책의 실패다. 환경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가장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다.

환경은 자연만을 위한 가치도, 인간만을 위한 도구도 아니다. 인간과 자연이 함께 지속 가능한 삶의 질서를 만들어가는 일, 그것이 환경이다. 그리고 그 질서의 중심에는 계급적 불평등을 뛰어넘는 사회적 약자와 취약계층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지원이 녹아있어야 한다.

녹색평론을 창간했던 김종철 선생은 일찍이 근대문명 자체가 “희생의 시스템”이라며 “약자를 희생시키는 구조적인 악행”을 자행하는 사회구조와 생활양식의 근본적 변화를 주장했다. 환경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 글은 2026년 7월 16일자 투데이신문 칼럼입니다. 

728x90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