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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노 칼럼] 태도에 포획된 정치

성기노피처링대표 2026. 7. 3.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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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숙 국민의힘 의원이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 프로젝트 국민 보고회’에서 촬영된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사진을 SNS에 올리며 “표정은 거짓말을 못한다”고 주장했다. (사진=이진숙 의원 페이스북 캡처)

 

이재명 대통령이 호남권 대규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계획을 발표한 뒤 정치권의 후폭풍이 거세다. 국민의힘 영남권 의원들은 지역 차별과 기업 압박을 주장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야당이 정부 정책을 견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국가 산업의 백년대계를 지역주의 프레임으로만 재단하는 모습은 아쉬움을 남긴다.

최근 국민의힘 이진숙 의원은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 프로젝트 국민 보고회’에서 촬영된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사진을 SNS에 올리며 “표정은 거짓말을 못한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최 회장을 ‘국가영웅’이라고 치켜세우는 장면을 두고도 “진정성 있는 찬사였다면 감격의 표정이 나타났을 것”이라며 정부가 기업의 ‘팔을 비틀어’ 투자에 나선 것 아니냐는 취지의 의혹을 제기했다.

이 의원이 무엇을 말하려는지는 이해한다. 그러나 국가 백년대계 반도체 전략을 둘러싼 야당의 논평이 투자 구조나 산업 전략이 아니라 기업인의 표정과 속내를 추측하는 수준에 머문 것은 상당히 아쉽다.

사진 한 장으로 사람의 마음을 읽겠다는 것은 비판이라기보다 궁예의 관심법에 가깝다. 기업 회장의 찰나 표정으로 ‘정경유착’의 거대한 뿌리를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논지인지.

하지만 이것은 이진숙 의원만의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그의 발언은 한국 정치가 오래전부터 빠져 있는 한 가지 관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정책보다 태도를 먼저 보는 경향이 있다.

대통령이 웃었는지, 왜 웃지 않았는지. 고개를 숙였는지, 얼마나 숙였는지. 사과가 진심처럼 보였는지. 기자 질문을 어떤 표정으로 받았는지. 기업인을 만나 허리를 몇 도 굽혔는지 등등.

정책은 어렵지만 태도는 쉽다. 산업 전략은 복잡하지만 표정은 단순하다. 국가 비전은 공부해야 하지만 사진 한 장은 누구나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새 정책보다 태도를, 성과보다 몸짓을 먼저 소비하는 정치에 익숙해졌다.

정치심리학은 이를 인간의 자연스러운 인지 방식으로 설명한다. 유권자는 모든 정책과 공약을 일일이 검토하기 어렵다. 그래서 말투와 표정, 몸짓, 악수 같은 비언어적 신호를 판단의 단서로 활용한다. 정치학에서는 이런 인지의 지름길을 ‘휴리스틱(Heuristic)’이라고 부른다.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방식이다.

문제는 그 지름길이 목적지가 되는 순간이다. 태도는 본질을 드러내는 하나의 단서일 뿐 본질 자체는 아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비단 정치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사회 거의 모든 분야에서 태도와 이미지를 통해서만 간편하게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려는 편의적 발상에 쉽게 노출돼 있는 것 같다. 미디어와 SNS를 손에 쥔 우리는 매일 누군가의 표정과 말투, 사진과 영상 몇 초를 확대해 놓고 그 사람의 내면을 단정한다.

홍명보가 남아공에 진 뒤 기자회견을 마치고 나갈 때 주머니에 손을 넣지 않고 90도 인사를 했다면 그의 ‘죄’가 좀 가벼워졌을까(홍명보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바짝 엎드리면 축구협회의 쇄신도 더 잘 될까). 이 대통령이 이재용 최태원 회장에게 가볍게 목례만 했다면 수백조원 투자에 대한 감사함의 표현이 덜 했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한국 정치에서 태도는 늘 문제의 본질을 앞서가는 측면이 있다. 문제는 태도가 중요하지 않다는 데 있지 않다. 리더의 태도는 공동체를 대하는 책임감의 신호이기도 하다. 그러나 태도가 정책을 압도하고 표정 하나가 정치적 선악의 판정 기준이 되는 순간 민주주의는 누가 붙였는지도 알 수 없는 감정의 불길에 휩싸인다.

태도와 이미지에 포획된 정치는 미래를 설계할 수 없다. 정치인이 읽어야 할 것은 사람의 표정이 아니라 예산안이고, 계약서이며, 산업 전략이다. 마음을 읽겠다는 오만보다 숫자와 데이터가 훨씬 정직하다. 

 

민주주의는 태도를 심판하는 제도가 아니라 정책과 결과를 검증하는 제도다. 정부의 ‘팔 비틀기’가 의심된다면 따져볼 것은 표정이 아니라 구조다. 구체적인 시기와 투자 재원의 조달 방식, 세제와 보조금의 조건, 기업 이사회의 의결 절차 등 검증 가능한 지점은 얼마든지 있다. 야당이 그 숫자와 문서를 파고들 때 견제는 비로소 힘을 갖는다.

일본 근대문학의 거장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마음’은 ‘한 인간의 내면을 과연 타인이 끝까지 이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등장인물들은 서로의 행동과 표정, 침묵을 통해 상대를 이해했다고 믿지만 그 확신은 오해와 죄책감, 비극으로 이어진다.

소세키가 보여준 것은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일이 어렵다는 사실을 넘어 이해했다고 믿는 순간 비극이 시작된다는 불편한 진실이었다. 사진 한 장을 보고 기업인의 속내를 단정하고 표정 하나로 진정성을 재단하며 허리를 몇 도 숙였는지로 국가 전략의 진심을 판단하는 순간 한국 정치의 비극도 시작된다. 

*이 글은 2026년 7월 3일자 투데이신문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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