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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노 칼럼] 누가 민주당의 코어인가

성기노피처링대표 2026. 6. 26.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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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준씨가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에서 진행을 하고 있다. (사진=김어준 뉴스공장 유튜브 화면 캡처)

 

최근 정치권에서 ‘코어 지지층’ 논란이 일고 있다. 친문 스피커 김어준은 지난 25일 자신의 유튜브 방송에서 이재명 대통령 지지율과 관련해 “통상적인 지지율 하락은 충성도가 낮은 외곽 지지층부터 빠지는 법인데 지금은 특별한 사건이 없음에도 코어 지지층이 흔들리는 생소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과연 그럴까.

이 명쾌해 보이는 김어준의 진단은 주어와 목적어가 전도된 인과관계의 혼동을 담고 있다. 과연 그가 말하는 ‘코어 지지층’이라는 실체가 한국 정치에 존재하긴 하는 것일까.

우리는 흔히 코어 지지층이라고 하면 정권 출범 전부터 임기 말까지 아무런 조건 없이 맹목적으로 ‘권력자’를 추종하는 단단한 암반 같은 집단을 상상한다. 하지만 실제 여론조사 데이터를 뜯어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노무현 정부 시절을 떠올려보자.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20.6%까지 떨어지며 출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고 열린우리당 지지율도 16.3%로 창당 이후 최저치였다. 흔히 사람들은 이때 마지막까지 남은 이들을 두고 ‘역대급 코어 지지층’이라고 말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 임기 말의 20%는 ‘노무현’이라는 개인을 신앙처럼 받드는 유일무이한 코어라기보다 호남이라는 지역적 기반, 개혁 정당이라는 열린우리당의 정체성, 그리고 당시 한나라당의 재집권을 절대 용납할 수 없었던 진보·개혁 세력의 이념적 하한선이 결합한 잔여 지지층이었다.

이 코어 20%는 노무현 정권 출범 때와 임기 말까지 그 ‘구성원’이 같은 것이 아니다. 초기에 지지했던 20·30대 대졸층이 부동산이나 이라크 파병 등으로 이탈하면 정당 일체감이 강한 전통적 지지층이 그 자리를 채우는 식이다. 즉, 현상적으로는 늘 20%가 남아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고정된 하나의 집단(코어)이 아니라 여러 지지 층위가 겹치고 깎여 나가며 유지되는 여론의 퇴적층에 더 가깝다.

그런데 김어준이 언급한 ‘코어’라는 말은 이런 정의와는 차이가 있다. 김어준과 그를 추종하는 세력은 스스로를 민주당의 역사적 가치를 지켜온 주역이라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외형적으로는 특정 스피커의 상업적, 정치적 영향력을 지탱하는 팬덤에 가깝다. 이들이 민주당의 코어를 자임할 수는 있을지언정 그것이 민주당 전체의 코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딴지일보 여론을 보면 김민석 총리는 정치를 아예 하지 말아야 할 사람으로 매도되고 이재명 대통령 정치력도 ‘제로’ 상태까지 내려왔다며 강하게 배척하고 비판한다(일부에서는 대통령 탄핵까지 거론한다). 이 대통령이 집권 1년을 넘어서면서 그들의 기대에 못 미치거나 비위에 거슬리는 행보를 보이자 ‘김어준 세력’은 집단적으로 지지를 철회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스스로를 코어라고 자임했던 집단조차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언제든 지지를 철회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반면 진짜 코어는 특정 커뮤니티나 팬덤으로 환원될 수 있는 고정된 집단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 말기에도 끝까지 남은 20%는 출범 당시의 20%와 같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일부는 떠나고 일부는 새롭게 유입되면서 정당에 대한 일체감과 정치적 가치가 겹겹이 축적돼 지지를 유지했다. 겉으로는 늘 비슷한 규모처럼 보이지만 실체는 끊임없이 교체되고 재구성되는 정치적 신뢰의 층위였다.

따라서 진짜 코어는 누구도 독점할 수 없다. 특정 유튜브 채널도, 특정 팬덤도, 특정 정치인도 자신들이 민주당의 코어를 대표한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코어는 특정 세력의 소유물이 아니라 정당의 역사와 가치에 공감하는 수많은 시민들이 오랜 시간 함께 만들어온 정치적 축적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김어준식 코어 수사학의 본질은 자기를 따르는 팬덤을 민주당 전체의 코어 지지층과 동일시하는 착각(혹은 의도적 왜곡)에 있다. ‘내 심기를 거스르면 이 코어가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은 결국 코어라는 이름을 빌려 이재명 대통령과 친명계를 향해 부리는 미디어 권력의 사적 남용이자 협박에 가깝다.

이 지점에서 최근 김어준의 발언은 흥미롭다. 그는 자신의 유튜브 방송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을 언급하며 “코어 지지층의 특징은 자기 정체성을 부정하는 사람을 바로 버린다. 가치연대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보수인사 등을 영입하며 통합을 지향하는 이 대통령에게는 일종의 ‘협박’으로도 들릴 수 있는 대목이다.

과거 조선시대 붕당 정치 시절 조정 밖에서 여론을 주도하던 사림이나 권력의 핵심을 장악한 척신(戚臣)들이 자기가 곧 당의 정통성이자 백성의 뜻이라 참칭하던 시절이 있었다. 사림의 공론이 변질되어 패거리 정치가 되고 자기들과 뜻이 다르면 역적이나 사문난적으로 몰아세우던 이분법적 행태는 오늘날 특정세력을 수박이나 B로 몰아 배제하려는 팬덤의 행태와 닮아 있다.

이탈리아 정치사상가 안토니오 네그리가 말한 다중(Multitude, 多衆)은 개별성을 유지하면서도 자율적으로 연대하는 역동적인 주체를 말한다. 하지만 현재 특정 플랫폼의 다중은 자율성을 상실한 채 단일한 스피커의 해석에 종속된 대중(Mass)으로 변질되고 때로는 감정과 편견에 휩쓸리는 군중(Mob)의 모습까지 보인다.

김어준은 영향력 있는 스피커이지만 대중의 분노, 증오, 쾌락이라는 감정적 에너지를 통제하고 포섭하여 자신의 정치적 자본으로 삼는 일종의 미디어 권력이다. 김어준 팬덤은 자신들이 민주당을 지킨다는 효능감을 소비하지만 실상은 특정 스피커의 권력을 끊임없이 활활 타오르게 만드는 땔감으로 소모될 뿐인지도 모른다.

한국 민주주의의 과제는 허구의 ‘코어’를 찾는 일이 아니다. 누구도 다중의 삶과 정치관에 대한 해석 독점권을 가질 수 없다. 여론(민주당)은 특정 스피커가 대표하거나 독점할 수 있는 전유물이 아니라 시민 각자의 경험과 토론, 비판이 축적되며 형성되는 집단지성의 결과다. 결국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진짜 코어는 특정 정치인도, 특정 유튜버도 아닌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시민들이다. 그렇다면 민주당의 코어는 누구인가.

 

*이 글은 2026년 6월 26일자 투데이신문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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