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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노 칼럼] 이재명의 ‘비명계 고사 작전’은 성공할까

성기노피처링대표 2024. 2. 22.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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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홍익표 원내대표가 2월 21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총선 공천을 놓고 극심한 내홍으로 빠져들고 있다. 공천 정국 초반만 해도 이재명 대표가 섣불리 ‘비명계’를 ‘학살’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다. ‘설마 이 대표가 그렇게 노골적으로 비명계를 쳐내겠느냐’는 반신반의의 분위기도 엿보였다. 하지만 막상 공천 뚜껑이 열리자 이 대표와 ‘친명계’는 기다렸다는 듯 ‘비명계 고사 작전’을 거침없이 해나가고 있다. 

그동안 이 대표와 친명계 주류에게 사사건건 발목을 잡으며 눈엣가시같은 존재로 여겨졌던 박용진 의원에 대한 ‘현역 평가 하위 10%’ 처분은 충격적이다. 비주류 박용진 의원에 대한 공천 여부는 이 대표의 ‘공평한 공천’ 상징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에 노골적으로 박 의원을 쳐내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지만 이 대표는 가차 없이 잘라버렸다. 

‘예상대로’ 비명계 핵심 윤영찬 의원도 하위 10%로 분류돼 컷오프 가능성이 커졌다. 국회가 국회의원에게 주는 유일한 상인 의정대상을 3회 모두 수상한 경력이 있는 송갑석 의원이 ‘의정 활동 평가 하위 20%’에 분류돼 컷오프가 예상되는, ‘개그콘서트’보다 웃긴 코미디도 펼쳐지고 있다. ‘현역 평가 하위 20%’는 총 31명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당은 구체적으로 누가 명단에 속했는지를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있다. 

그런데 서울 금천구, 광주 광산갑 등 야당 지지세가 강한 텃밭에서는 친명계 인사 중심의 공천 대상자가 속속 확정되고 있다. 특히 조정식 사무총장을 비롯해 정청래 정성호 의원 등의 친명계 핵심 의원들은 단 한 명도 불출마를 선언하며 희생하는 모습도 보여주지 않고 있다. 친명계는 공천 과정에 터져 나오는 잡음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예 대놓고 친명계 이름만 공천자 명단에 버젓이 적어 올리고 있다. 

이 대표와 친명계의 비명계 공천 학살 방식은 상당히 투박하고 대범하다. 경기 광주을 출마를 준비하다가 이 대표로부터 불출마를 종용받았다고 주장한 문학진 전 의원은 공천 결과를 조작하고 장난을 치는 장본인으로 “(비선에) 이 대표 최측근 정씨 성 가진 분이 있다”라고 주장했다. 정진상 전 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을 비선 조직의 핵심으로 지목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임혁백 공천관리위원장이 2월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에서 공천심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또한 비명계 학살의 주요 근거가 됐던 당 여론조사도 이 대표와 ‘친분’ 의혹이 있는 기관에 맡겨 ‘대놓고 장난을 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지난 2월 17일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여심위)에 등록되지 않은 여론조사 업체가 진행한 ‘지역구 후보 적합도 조사’에서 지역구 현역 의원 대신 친명계 인사만 대상으로 진행됐다고 한다.

이 조사에선 이인영(서울 구로갑) 의원 대신 ‘23호 인재’로 영입된 이용우 변호사, 홍영표(인천 부평을) 의원 대신 친명계 이동주 의원(비례)과 ‘4호 인재’ 박선원 전 국정원 1차장, 송갑석(광주 서갑) 의원 대신 정은경 전남대 의대 교수에 대해서만 경쟁력을 물었다. 해당 여론조사 업체는 한국인텔리서치'(여심위 등록 업체인 ‘리서치디앤에이’의 옛 사명)로, 이재명 대표가 성남시장 재선 도전을 앞둔 2013년 ‘성남시 시민만족도 조사’ 용역을 받아 수행한 바 있다. 

공천 학살의 총 기획자에 이재명 대표의 최측근 이름이 어른거리고 있고 현역 의원을 의도적으로 뺀 불공정한 여론조사를 진행한 업체도 이 대표의 성남시장 재직 때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단순한 의혹 제기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친명계가 오랜 시간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비명계 고사 작전’을 진행한 ‘실체적 정황’으로 다가온다. 

공천 파동 등으로 민주당의 지지율은 갈수록 국민의힘에 뒤처지고 있다. 이런 사실마저도 친명계는 언론 보도 등에 책임을 돌리며 ‘감나무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국민의힘 지지율이 오차범위 밖에서 앞섰다고 신나서 기사들을 쏟아냈다. 조사 시점 전후가 국민의힘 총선 후보자 적합도 조사 시기 전후라 전화 응대 준비자가 많고, (응답자의 정치성향은) 보수 291명, 진보 205명으로 보수가 과대, 과표집됐다는 분석기사가 없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지금 총선이라는 큰 선거 이벤트를 앞두고 가장 가서는 안 되는 길만 골라서 가고 있다. 국민들은 집권세력이 낮은 자세로 선거에 임하지 않고 권력을 제멋대로 휘두르는 안하무인 행태에 가장 분노한다. 지난 2016년 20대 총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친박을 앞세워 공천 전횡을 주도하다가 김무성 대표의 ‘옥새 나르샤’ 참사를 노정하며 선거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지금의 친명계 공천 전횡은 박근혜 정권 당시 친박의 거만한 권력 놀음과 공천 학살을 연상시킨다.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이 2월 2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전체회의 산회 후 박용진 의원의 어깨를 두드리며 인사하고 있다. 민주당은 박 의원에게 의정활동 평가 하위 10% 포함을 통보했다. (사진=연합뉴스)

 


그렇다면 이 대표와 친명계는 공천 학살의 후유증과 국민의 반감을 뻔히 알면서도 왜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독주를 계속하는 것일까. 이 대표에게 이번 총선은 다음 대선으로 가는 하나의 중요한 징검다리일 뿐이다. 어떻게 보면 이 대표와 친명계에게 이번 총선의 성적표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닐 수도 있다. ‘근소한 차이로 져도 된다’는 ‘정신승리 심리’마저 엿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엄청난 부작용과 갈등이 예상되는 공천 학살을 버젓이 자행할 수는 없다. 

이재명 대표와 친명계의 정치시계는 2027년 3월 3일에 딱 맞춰져 있다. 총선에서는 그럭저럭 선방만 해도 된다. 조금 파열음이 생기더라도 친명계는 무조건 공천을 줘서 이 대표와 ‘대권의 끈’으로 다리를 묶어 끝까지 달리기 게임을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이 대표는 오로지 자신의 사법 리스크를 방어해줄 친명 친위대의 재구축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이 판에서 2선 후퇴를 하거나 비명계에 밀리게 되면 총선 전에 쫓겨날 수도 있다. 이 대표에게 총선 공천은 ‘죽느냐 사느냐’를 결정하는, 자신의 목숨이 걸린 권력투쟁이다. 지난해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포기 번복과 단식을 통해 인신 구속을 면한 이 대표에게 이번 총선 공천은 ‘생존권 사수 2차전’인 셈이다. 친명계에는 ‘이재명 결사옹위’가 이번 총선 공천의 가장 핵심적이고 중요한 전략이다. 

두 번째도 역시 대권까지 내다보는 포석을 이번 공천에서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임종석 전 대통 비서실장이 자신의 옛 지역구인 서울 중.성동을에 출마하려고 하자 이 대표는 공천을 주지 않고 버티고 있다. 끝까지 내주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 대표가 다음 대선으로 가기 위한 두 개의 큰 축은 사법 리스크를 최대한 방어할 친명계 재구축과 강력한 대권 경쟁자의 출현 저지로 구성돼 있다. 사실 민주당 내 지지기반이 일천했던 이 대표가 친명계의 ‘호위’ 속에 여기까지 온 것에는 차기 대권주자 부재라는 큰 운이 따랐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임종석 전 비서실장이 이번 총선에서 국회로 입성하게 되면 친문계는 그를 중심으로 대권 경쟁의 강력한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다. 민주당 전체로 보면 만성적인 사법 리스크에 시달리는 이재명 대표를 여차 하면 버리고 임종석 전 실장으로 갈아탈 수 있는 대안이 생기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친명계의 공천 학살을 목도한 이철희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지난 2월 21일 한 인터뷰에서 “민주당 공천은 엉망이고 난장판이다”라고 직설적으로 비난한 것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2월 7일 오후 서울 성동구청에서 열린 서울특별시새마을회 제18~19대 회장 이임식 및 제20대 회장 취임식에 참석해 자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친문계로서는 임종석 전 비서실장을 이번 총선에서 꼭 국회에 들여놓아야 한다. 이재명 대표 ‘궐위’ 시 친문계도 차기 대선 ‘보험용’으로 임 전 비서실장을 준비시켜 놓아야만 하는 것이다. 이를 간파하고 있는 이 대표와 친명계는 임 전 실장을 패배 가능성이 높은 송파갑 출마를 공식 요청하며 끝까지 주저앉히려 하고 있다. 임종석의 국회 입성은 이재명의 강력한 대권 경쟁자 부상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친명계는 ‘옥쇄작전’으로 임 전 실장의 발을 꽁꽁 묶어놓으려고 한다. 

이재명 대표는 ‘비명계 고사 작전’을 친명계 뒤에 숨어서 진두지휘하고 있지만 그의 정무적 역량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 2016년 총선에서 문재인 당시 민주당 대표는 리더십이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자 김종인 비대위원장을 내세워 난국을 타개했다. 당시 문 전 대표는 김종인을 내세워 껄끄러운 공천 작업을 ‘차도지계’로 정리해 나갔고 자신은 공천 갈등의 직접적 책임을 피하며 빠져나갔다. 

이번 친명계의 공천 학살 논란도 이재명 대표가 충분히 ‘운영의 묘’를 살려나갈 수도 있었다. 자신의 ‘심복’ 몇 명을 불출마시켜 주저앉힌 뒤 그들에게 ‘비명계 정리’의 악역을 맡겼다면, 그리고 박용진 윤영찬 의원같은 상징적인 비명계 인사들은 공천을 주며 통합의 제스처를 취했다면 친문계도 조직적으로 반발할 명분이 약했다.

 


 

 

이런 점에서 이 대표는 친명계를 완전히 장악한 것이 아니라는 역설적 해석이 나온다. 이 대표의 ‘카리스마’로는 친명계 핵심의원 몇 명을 주저앉힐 만한 역량이나 파워가 없다는 뜻도 된다. 이 대표가 친명계 강경파들에게 둘러싸여 그들에게 전부 금배지를 보장해주면서도 자신의 뜻대로 당을 지휘하지 못하고 겉돌고 있지는 않는지 의구심이 든다. 

금배지 확보에 천재적인 후각을 가진 친명계 일부 ‘정치업자’들의 ‘농단’과 ‘장난’에 이 대표가 계속 놀아난다면 민주당의 공천 내홍은 총선 패배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는 그만큼 이 대표의 정치력이나 리더십이 무능하고 허약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당연하게’ 공천을 받아 당권을 틀어쥐고 있는 친명계들이 끝까지 버틴다면 민주당은 유야무야 대선까지 흘러갈 수도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민주당에게 ‘이재명 2선 후퇴’나 ‘비대위 출범’ 등을 바라는 건 연목구어(緣木求魚)일 뿐 아니라 너무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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