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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노 칼럼] 이재명 ‘헬기 이송’ 논란이 정치인들에게 남긴 숙제

성기노피처링대표 2024. 1. 9.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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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방문 일정 중 흉기에 피습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 1월 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흉기 피습을 받고 병상에 누워 있습니다. 그런데 이 대표에 대한 테러의 여파가 계속 엉뚱한 방향으로 논란이 확대돼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 대표는 흉기 피습 직후 부산대 권역외상센터에서 간단한 응급 처치를 받은 후 가족들과 민주당 지도부의 요청에 따라 소방 헬기를 타고 서울대병원으로 긴급 전원이 됐습니다.   

이 대표가 헬기를 타고 부산에서 멀리 서울까지 이송되는 장면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졌습니다. 맨 처음 일선 의료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의사들의 ‘반발’이 터져 나왔습니다. 부산시의사회는 성명에서 “지역의료계를 무시하고 의료전달체계를 짓밟아 버린 더불어민주당을 규탄한다”고 밝혔습니다. 부산에서 흉기 습격당한 이재명 대표를 서울대병원으로 이송한 것은 ‘특혜’라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부산시의사회에서 비판 성명을 낼 때만 해도 해당 지역 의사들로서 당연한 반응일 수 있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민주당도 처음에는 “보수정당 지지 성향이 강한 지역 특성상 부산시의사회가 다소 과한 ‘정치적 공세’를 펴는 것 같다”며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재명 대표의 헬기 이송과 관련한 규탄의 목소리가 전북 서울 등 지역을 가리지 않고 전국으로 확산하는 양상을 보이면서 이 문제가 정치 쟁점화될 조짐까지 보입니다. 

급기야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소청과의사회)는 8일 오전 서울중앙지검에 이 대표와 같은 당 정청래 의원, 천준호 의원을 부산대병원과 서울대병원에 대한 업무방해와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응급의료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는 불미스러운 사건까지 발생했습니다. 소청과의사회는 “야당 대표가 국회의원을 동원해 이송을 요청한 건 의료진에 대한 갑질이고 특혜 요구”라며 “진료와 수술 순서를 권력으로 부당하게 앞지른 새치기”라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사실 이 논란은 의료현장에서 응급환자들을 날마다 접하고 있는 일선 의사들로서는 당연히 제기할 수 있는 문제이긴 합니다. 부산대병원은 외상 외과·응급의학과 등 12개 과에 의사만 42명, 간호사만 157명이 근무하고 있는 국내 최고 수준의 권역외상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의사들 입장에서 볼 때, 민주당 발표대로 이 대표가 위중했다면 서울대병원 이송이 아니라 부산대병원에서 수술받아야 했던 것이 ‘상식적인 대응’이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일반인’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소방 헬기까지 동원해 서울대병원으로 이송한 것은 누가 봐도 ‘특혜’라는 주장입니다.  

 

부산 방문 도중 목 부위를 습격당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수술을 집도한 민승기 이식혈관외과 교수가 1월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연구혁신센터에서 수술 경과와 회복 과정을 브리핑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목 부위 피습은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당히 위급한 상황입니다. 사건을 처음 당한 이재명 대표의 가족들과 민주당 지도부로서는 촉박한 시간에 생명이 걸린 문제를 다급하게 결정해야 했을 것입니다. 특히 가족들이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대표 간호를 위해서 서울대병원 이송을 원한 것은 ‘보호자’로서 어찌 보면 당연한 바람입니다.

그럼에도 지역 의사회를 중심으로 지속적인 ‘특혜’ 주장이 제기되면서 이 대표의 헬기 이송 논란은 급기야 ‘정치적인 이슈’로 번지고 있습니다. 무방비 상태에서 테러당한 이 대표로서는 상처가 회복되더라도 당분간은 엄청난 ‘피습 트라우마’에 시달릴 것입니다. 이번 사건으로 정치인이기 이전에 한 개인의 삶이 송두리째 빼앗기고 평생을 테러의 공포 속에서 살아가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치인이라는 존재는 아픈 것도 ‘정치적’으로 아파야 할 숙명에 놓인 사람들입니다. 정치인은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대신 행사하는 대표적인 ‘공인’에 해당합니다. 공인은 “공적인 사람 또는 공중(公衆)의 사람으로 곧 개인 일이 아닌 대중과 사회를 위한 공(公)적인 목적을 수행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공인은 국민들이 위임한 권력을 ‘개인적으로’ 행사할 수 없고 공적인 목적으로만 사용해야 합니다. 그래서 공인에게는 더 엄정한 자기관리와 ‘특권’에 대한 강한 경계심도 요구됩니다. 그들의 재산이 낱낱이 공개되는 것도 공적인 일을 ‘투명하게’ 수행하라는 국민들의 명령이기도 합니다. 

이번 이재명 대표 헬기 이송 논란은 우리 사회에 잠재돼 있는 정치인들의 ‘특권의식’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과 불신이 그대로 드러난 대표적인 예입니다. 사실 정치인을 비롯한 우리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은 국민들이 그들에게 부여한 권력이나 ‘특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오히려 그것을 과시하는 것에 너무도 익숙해져 있습니다. 

 

부산 방문 일정 중 흉기에 피습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월 2일 서울 용산구 노들섬 헬기장에서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내로남불’이라는 단어가 해외에서 한국 정치를 대표하는 ‘고유명사’로까지 취급될 정도로 우리 정치는 지금 극단적인 약육강식과 천박한 권력 과시에 빠져 있습니다. 국민들은 평등과 공정이라는 사회적 약속이 힘깨나 쓰는 정치인들에게는 전혀 적용되지 않는 사례들을 무수히 접하면서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력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이재명 대표의 헬기 이송 논란은 정치인들의 공정과 평등에 대한 잣대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합니다. “일반인이었으면 그런 식의 대형 대접을 받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비판은 이 대표에게 목에 난 상처만큼이나 아리고 고통스러운 지적일 것입니다. “이 문제를 이렇게까지 ‘정치적으로 재확산’시켜 논란을 키울 필요가 있느냐”는 편의적인 자기방어에만 몰두해선 안 됩니다. 

사실 정치인들의 삶은 맑은 수조 속 금붕어들처럼 거의 모든 생활이 국민들로부터 관찰당하고 언론으로부터 감시를 받는 ‘공인의 숙명’에 놓여 있습니다. 이 대표와 민주당 지도부에게 쏟아지는 ‘특권의식’에 대한 비판과 불신도 결국은 이 대표가 정치인으로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입니다. 이번 논란으로 ‘지방에 산다는 것’ 자체로 피해의식이나 열등감을 느끼는 단 한 명의 부산 사람이라도 있다면, 이 대표가 보듬고 같이 아파해야 합니다. 

헬기 이송 논란에 대해 장경태 민주당 최고위원은 “오히려 이 대표가 (부산대병원에) 눌러앉아서 치료받았다면 정말 더 비상 응급을 받아야 하는 환자들을 방해할 수 있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 부산대가 좋으냐, 서울대가 좋으냐 이런 논쟁은 너무 좀 한가한 논쟁이라고 본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논리가 특혜 시비에 대한 민주당의 ‘정치적 대응’이기는 하지만 민심을 여당보다 더 세세히 헤아려야 하는 야당의 절박한 입장에서 볼 때 그리 사려 깊은 태도는 아니라고 봅니다. 

민주당은 그동안 누구보다도 지역의료 살리기에 앞장서 왔다고 자부할 것입니다. 지난해 10월 ‘공공·지역 의료 TF(태스크포스)’를 만든 데 이어 최근 지역의사제와 공공의대 신설 법안을 강행 처리하기도 하는 등 낙후돼 있다는 평가를 받는 지역의료의 ‘정상화’를 위해 노력해 온 정당입니다. 그럼에도 이번 이 대표 피습 때 서울대병원 이송 과정에서 그 수많은 참모 가운데 단 한 명이라도 ‘서울대 전원 반대’를 주장한 사실이 없다는 게 다소 의아스럽습니다. 

 

임현택(왼쪽)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과 변성윤 평택시의사회장이 1월 8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헬기 이송과 관련한 고발장을 든 채 청사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당시에는 민주당 지도부가 경황이 하나도 없었을 것이고 이 대표에게 최선의 의료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부산지역 의료까지 배려하는 ‘정무적 판단’까지 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정치인들이 입안한 정책을 그들이 직접 실천하려는 의지를 국민들에게 보여주려는 노력은 그 자체로 국민과 정치가 ‘한 몸’이라는 긍정적 가치를 실현한다는 점에서 민주당의 헬기 이송 전후의 대응은 아쉬운 점이 남습니다. 

현재 민주당에서는 헬기 이송 ‘특혜 논란’ 이슈가 점차 재확산하자 자칫 총선 때 ‘지방 민심’ 이탈로 번질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는 분위기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은 야당 대표 테러라는 비극적 사태를 정치 이득화하려는 그 어떤 악의적 시도나 공세도 판별할 만한 성숙한 시민의식을 가졌다고 봅니다. 

이재명 대표가 부산대 병원에서 완쾌돼 퇴원하면서 ‘부산시민 걱정 덕분에 잘 치료할 수 있었다’며 손을 흔드는 장면을 보여주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생명이 경각에 달린 위급한 상황에서도 정치인만은 민심을 헤아리며 아파해야 한다는 부질없는 기대일 수 있겠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 대표가 부산대 병원에서 치료받으며 그곳에서 첫 정치적 메시지도 남겼다면 이번 총선에서 따로 선거운동을 하지 않아도 부산 민심 하나는 확실히 챙겼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또한 이 대표의 생명을 선거판의 표심과 견주는 ‘과도한 정치 몰입’의 후유증에서 나온 생각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재명 대표의 헬기 이송 논란을 보면서 정치인들의 책임 의식에 대해 아쉬운 점이 남습니다. 우리는 어쩌다 권력을 가진 정치인들도 국민들과 똑같은 대우를 받고 있다는, 그 평범한 상식을 실천하는 것이 이렇게도 어려운 세상에서 살게 된 것일까요. 작금의 정치인들이 반드시 풀어내야 할 이 시대의 과제입니다. 

 

(여성경제신문 1월 9일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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