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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노 칼럼] ‘한동훈 에어쿼츠 정치’의 공허함과 빈약함

성기노피처링대표 2024. 1. 5.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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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12월 26일 취임 연설을 하면서 '에어 쿼츠' 동작을 하고 있다. 그는 이날 "운동권 특권정치 청산이 시대정신"이라며 586 운동권 중심인 더불어민주당과의 차별화를 선언했다. (사진=MBN News 동영상 캡처)

 

 

1월 5일이면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지명된 지 2주를 넘기는 날이다. 고작 2주를 두고 한동훈 비대위 체제를 ‘중간평가’한다는 것은 섣부른 것이긴 하지만 끊임없이 대중들에게 메시지를 발신하는 정치인의 하루는 일반인의 24시간과는 확연히 다른 측면이 있다. 특히 정치에 전혀 발을 들이지 않았던 신인이 데뷔무대에서 던지는 첫 번째 메시지는 고도로 정제되고 준비된 뒤 나오는 정치인의 철학과 비전의 총합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정치 데뷔’는 콘텐츠가 빈약하고 준비도 덜 된 채 허겁지겁 ‘무대’에 올랐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먼저 한 장관의 연설문은 “제가 직접 쓸 겁니다”라고 그가 공언했던 것처럼 자신이 직접 공들여 썼다고 한다. ‘연설문 직접 작성’은 “한동훈이 연설문도 직접 쓸 정도로 출중한 글 솜씨와 정밀한 정국분석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다재다능’을 뽐내고 싶은 한 정치신인의 열정이라고 이해하고 싶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런 ‘언론플레이’를 슬쩍슬쩍 흘리며 ‘한동훈 잘 났다’를 시전하는 것은 그가 정치를 한 개인의 엘리티즘(소수의 엘리트가 사회의 중심이 된다고 보는 견해)에 의해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무지하고 오만한 발상이라는 생각이 앞선다.

물론 똑똑하고 능력 있는 상관이 자신의 정치철학을 직접 쓰는 것이 효율적이고 대단한 일이긴 하지만 ‘정치의 영역’은 무리지어 사는 집단이 어떻게 하면 잘 어울려 살 수 있을지 고민하고 탐구하는, ‘공공선’을 찾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한동훈의 ‘개인기 자랑’은 협력과 협치를 이끌어내야 하는 당 대표 본연의 자세를 망각한 미성숙한 ‘설레발’에 가깝다.

공동체 의식은 아무리 사소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도 그의 영역과 인격을 존중해주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한동훈 위원장이 연설문을 훨씬 더 잘 쓸 수 있겠지만 당직자들의 고유영역과 존재를 인정해주고 그들의 결과물에 자신의 의견을 피력해주는 ‘소통’ 과정이야말로 현재 국민의힘에서 꼭 필요한 협업의 정치다.

윤석열 대통령이 1월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4년 신년 인사회에서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동훈의 ‘연설문 작성 언론플레이’는 앞으로 그가 집권여당을 자신의 명령과 지시에 의해 독단적으로 리드해나갈 것을 암시하는 불행한 전조다. 한동훈 위원장이 ‘엘리트가 권력을 독점하고 당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것이 당연하다’는 발상을 하는 이상 국민의힘은 그에게 대권으로 가는 한낱 ‘장식품’에 불과할 뿐이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라는 자리는 한 위원장이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생소한 중책이라는 점에서 당과의 소통과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한 위원장이 연설문에서 사용한 표현이나 문장도 시대착오적이고 진부하다. 또한 연설문의 일부 ‘문장’들도 그 인용이 적절치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위원장은 여의도 문법에서 사용되는 식상한 단어들과 클리셰(진부하고 상투적인 표현)를 피하기 위해 최대한 ‘한동훈의 언어’로 자신의 정치 첫 데뷔를 인상적인 무대로 만들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당 안팎의 여러 의견을 경청, 참고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연설문을 쓰는 과정에서 부적절한 인용이나 자신만의 독단적인 정치 철학을 어리숙하게 드러내 오히려 콘텐츠가 빈약하고 준비가 안 돼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의 연설문에서 처칠의 스피치를 연상시키는 “호남에서, 영남에서, 충청에서, 강원에서, 제주에서, 경기에서, 서울에서 싸울 것이다. 그리고 용기와 헌신으로 반드시 이길 것”이라는 대목은 더불어민주당을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주적’이었던 독일 나치에 빗댈 수도 있는 과도하고 부적절한 인용이었다.

민주당을 오로지 전국 각지에서 타도해야 할 적으로만 인식하려는 한 위원장의 적대적이고 맥락 없는 공격적 태도는 공존이 제1 덕목인 정치의 존재이유를 부정하는 오만한 태도다. 특히 한 위원장은 연설문에서 “상식적인 많은 국민을 대신해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과 그 뒤에 숨어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운동권 특권 세력과 싸울 것”이라며 민주당에 대한 적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정치파트너인 야당에 선전포고를 하기도 했다.

한 위원장이 정치에 데뷔하면서 던진 첫 일성은 ‘운동권 특권정치 청산론’이었다. 올해 4.10 총선의 책임을 오롯이 진 한 위원장으로서는 어떻게 해서든 선거판에서 ‘정권심판론’을 손바닥으로 가려보려는 전략상 판단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자신의 정치 데뷔 첫 메시지의 번지수를 잘못 짚은 ‘명백한 오점’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1월 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신년인사회에서 장동혁 사무총장의 건배제의에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등이 잔을 부딪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집권 2년도 안 돼 여당에 비상대책위원회를 3번째로 출범시키는, 누가 봐도 비정상적인 여당 운영을 해오고 있다. 한 위원장 또한 비상한 시기에 비상하게 출범한 비상대책위원장이라는 점에서 그 자신도 ‘비상한 대책’을 세워야 하고 그 전제는 왜 비상한 대책을 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왔는지, 그간의 잘못된 여당 행태와 윤석열 대통령 실정에 대한 냉정하고 객관적인 반성과 사과를 전제했어야 했다.

그리고 그 반성과 사과의 바탕 위에서 앞으로 집권여당이 어떤 ‘개과천선’한 국정운영 노력을 보여줄지 그 결기와 비전을 제시해야만 했다. 하지만 한 위원장이 가장 많은 단어를 할애하고 열을 올린 대목은 이재명과 민주당 ‘모두 까기’였다. 한 위원장은 자신의 취임 일성에 대한 여론이 부정적으로 돌아가자 그 후의 비대위에서 민주당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며 ‘격차 해소’ 등 민생 정책 메시지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한동훈의 정치’는 이미 윤석열 식 대결정치의 또 다른 버전이라는 쪽으로 결론이 나고 있다.

한동훈 정치의 초반 2주는 갑자기 정치에 뛰어든 한 위원장이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운영 실정에 새로운 비전과 가치를 부여할 준비가 전혀 안 돼 있고 대안을 제시할 만한 콘텐츠도 없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오로지 ‘운동권 타도’만을 외치는 선동으로 철 지난 편 가르기만 되풀이하는 ‘한동훈의 정치’는 그가 식상해한 여의도 문법의 또 다른 재생에 불과할 뿐이다.

한동훈 위원장은 검증되지 않은 정치력에도 용케 여론조사에서 ‘튀는’ 성적으로 집권여당 대표 ‘권좌’까지 꿰찬 운 좋은 정치인일 뿐이다. 아직 자신을 대표할 만한 국가 아젠다나 정치철학은 보여주지도 못하고 있고 실제로 존재하는지도 불투명하다. 그래서 이번 비대위원장 취임 연설문이 그에게는 ‘정치인 한동훈’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한 위원장은 자신 있게 내세울 만한 정책 콘텐츠나 비전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고, 그 ‘빈 칸’을 오로지 민주당과 운동원 특권정치를 비난하는 것으로만 채웠다. 한동훈만의 아젠다와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에 집중했다면 비록 그 표현은 무미건조했더라도 내용에서 그 단점을 충분히 ‘커버’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1월 4일 오전 광주송정역에 도착해 경찰의 경호를 받으며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집권여당의 대표는 대통령이 간과한 국정운영의 빈틈을 메우는 대안 권력으로서 유용하게 기능한다. 윤 대통령이 소홀히 하는 국민과의 소통도 여당 ‘대표’가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다. 대통령실의 독주와 폭주를 적절하게 제어하는 견제와 감시의 기능도 권력 눈치 보지 않고 수행해내야 한다.

하지만 한 위원장은 여당 ‘대표’의 이런 역할 중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수행할 실력이 없음이 취임 이후 2주의 과정에서 드러나고 있다. 오히려 하릴 없이 양손의 검지와 중지를 구부렸다 펴는 ‘에어 쿼츠’(air quotes:영미권에서 특정 문장이나 단어를 인용할 때 쓰는 제스처)만 공허하게 남발하며 콘텐츠의 빈약을 대충 얼버무리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1월1일 신년사에서 “자기들만의 이권과 이념에 기반을 둔 패거리 카르텔을 반드시 타파하겠다”고 말했다. ‘이념’에 대한 기준선도 모호할 뿐 아니라 패거리 카르텔에 대한 정의도 다분히 자의적이고 일방적이다. 야당에서 볼 때 지금 가장 문제가 되는 ‘패거리 카르텔’은 국민의 손에 의해 선출되지 않은 ‘김건희 여사 권력’이 남용되고 있고 그의 비리 의혹을 비호하고 감싸는 ‘어두운 권력’이다.




윤 대통령의 ‘패거리 카르텔’은 한동훈 위원장의 ‘운동권 특권정치 청산론’만큼이나 공허하고 실체도 없는 ‘꽃게발’의 언어버전일 뿐이다. 더구나 윤 대통령은 5일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김건희 특검법)·대장동 개발사업 50억 클럽 뇌물 의혹(대장동 50억클럽특검법) 등 이른바 쌍특검법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이는 민의에 의해 선출된 국회의 기본적인 대통령 감시 기능을 무력화하는 윤 대통령의 권력 ‘오용’이다. 동시에 행정부와 입법부 사이의 견제와 균형을 명시한 헌법에도 위배 소지가 있는 위험한 발상이다. 이에 민주당은 “역대 어느 대통령도 자신이나 가족과 관련된 특검, 검찰 수사를 거부한 적이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가족비리 방탄을 위해 거부권을 남용한 최초의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통령과 제1야당이 ‘김건희 특검법’으로 정면충돌하는 양상을 보이면서 정국은 또 다시 시계제로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이런 여야 정치 실종의 혼란한 상황에서 한동훈 위원장은 어떤 구체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까. 국민들은 또한 집권여당 ‘대표’인 그에게 어떤 역할을 기대하고 있을까. 사상 초유의 물가고와 서민경제의 피폐가 가져온 현재의 ‘난국’에 그는 또한 어떤 솔루션을 제시하려고 하는가. 그 대답은 그가 회견 때마다 남발하는 ‘꽃게발’만큼 공허하고 의미 없는 ‘폼’으로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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