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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노 칼럼] 윤석열 대통령은 ‘엑스포 참패’ 반성문 다시 써내라

성기노피처링대표 2023. 12. 2.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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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1월 29일 세계박람회 유치 실패와 관련,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기 위해 대통령실 브리핑룸 연단에 섰다. 윤 대통령은 '예측이 많이 빗나간 것 같다'며 직접 사과했다. (사진=대통령실사진기자단)



2030 부산 엑스포 유치전 참패 과정을 지켜본 국민들은 실망하고 속이 많이 상했다. 한국이 역대 국제대회 유치전에서 29표(전체 165표)밖에 얻지 못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라 많은 국민들이 화가 나고 어처구니가 없었을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29표는 받을 수 있을 건데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부처 장관들, 그 바쁘다는 재계 총수들까지 총출동해 1년여동안 200여개국을 훑으며 박박 긁어모은 표가 고작 29개라니...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한 지 6일 만인 지난해 5월 16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부산 엑스포 유치를 위해 총력을 기울여달라”며 대통령 주재 민관합동전략회의를 준비할 것을 지시했다. 취임 후 1년 7개월간 미국 영국 프랑스 폴란드 일본 인도 베트남 인도네시아 아랍에미리트(UAE) 등 12개국을 방문했고, 그동안 만난 정상급 인사만 96개국 110명, 각료 정치인 기업인 등을 합하면 462명에 달한다. 정부는 엑스포 유치를 위해 지난해 2516억원, 올해 3228억원의 ‘공식’ 예산을 편성해 사용해왔다. 

하지만 결과는 우리가 다 아는 것처럼 실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엑스포 개최지를 투표제로 결정하기 시작했던 지난 1990년 이후 3파전일 벌어진 표 대결에서 결선 투표 없이 1차에서 바로 탈락한 경우는 한국이 처음이었다. 그동안 들인 시간과 돈에 비하면 초래하다 못해 치욕스러운 결과다. 

이런 예상 밖의 결과는 국제박람회기구(BIE) 제173차 총회에 앞서 윤 대통령이 보고를 받아 왔던 것과 차이가 상당한 결과로 파악돼 유치 전략에 커다란 구멍이 있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총회 직전까지 윤 대통령의 참모라인에서는 1차 투표에서 약 70표를 획득해 이탈리아 로마를 제치고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와의 결선 투표를 치르는 것으로 보고가 이뤄졌던 것으로 알려진다. 한국이 1차 투표에서 떨어진다고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것을 보면 한심하다 못해 무능의 극치를 보여준다. 

사실 평창올림픽도 3번째 도전만에 성공한 것을 생각하면 부산의 이번 1차 도전 실패에 그리 연연해할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엑스포 유치전 참패로 수치심과 분노를 느끼는 국민들이 많다는 것은 순전히 ‘기분’ 탓일 것이다. 투표 전날까지 막판 뒤집기, 2차 투표 박빙 우세 등의 온갖 장밋빛 예상들이 분출했기 때문에 혹시나 하며 기대하던 국민들을 가지고 논 것이 아닌가 하는, 제대로 우롱당한 기분 말이다. 

 

2030 세계박람회 부산 유치 활동 지원을 위해 프랑스를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6월 20일 파리 이시레몰리노에서 열린 제172차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4차 경쟁 프레젠테이션(PT)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일부 보수언론에서는 “엑스포 유치 활동은 미래지향적 국가 발전을 위해 외교적 바탕을 다지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며 ‘정신승리’를 하고 있지만 이번 유치전 참패로 윤 대통령과 정부여당의 획기적인 국정운영의 전환점이 모색되어야 함은 부인할 수 없다. 

엑스포 유치전 참패로 드러난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은 엄정하고 객관적으로 다뤄져야 할 ‘정보 보고’가 대통령의 기분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이번에 확인되었다는 것이다. 참모들이 대통령 눈치를 지나치게 보다 보니 제대로 된 보고를 하지 않고 ‘심기 경호’가 가미된 내용 위주로만 보고를 하던 관행이 이번에 결국 대형사고를 친 근본적인 원인으로 꼽힌다. 

윤 대통령이 ‘예스맨’만 옆에 두려고 하니 용산에는 최고권력자 입맛에 맞는 이야기만 하는 ‘간신’들이 넘쳐난다는 설이 관가에서는 상식처럼 통한다. 예스맨들은 웬만해선 대통령이 기분 나빠할 만한 정보는 보고하지 않고 아예 뭉개버린다. 이번 엑스포 사태 때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내각 개편에서 유임이 유력했던 박진 외교부 장관이 교체 쪽으로 틀어진 것에는 엑스포 유치전에서 실제 판세와는 괴리가 상당한 보고가 반복해 이뤄져 왔던 점이 작용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박 장관이 재외공관 등으로부터 받은 정밀한 정보를 대통령의 ‘진노’를 의식해 일부 누락했거나, 아니면 가감없이 직보를 했음에도 대통령이 외교부의 ‘비관적’ 정보에 제대로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엑스포 유치를 총괄했던 장성민 대통령실 미래전략기획관에 대해서도 경질 이야기가 흘러 나온다. 박 전략기획관은 지금까지 1차에서 탈락할 것이라는 식의 보고서를 올린 적이 한 번도 없었을 만큼 윤 대통령에게 끊임없이 ‘희망회로’를 돌린 장본인 중의 한명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6월 19일 파리 오를리 공항에 공군 1호기편으로 도착해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정상회담, 국제박람회기구 총회 참석 등의 일정을 소화했다. (사진=연합뉴스)

 


윤 대통령이 워낙 집권 직후부터 ‘엑스포, 엑스포’만 외치고 다니니 아래 참모들이나 장관들도 그것에 주파수 동조를 맞출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대통령실이 직접 나서 유치전을 이끌다 보니 부정적인 보고나 의견을 냈다가 ‘치도곤’을 당할 걱정으로 ‘정직한 보고서’는 아예 낼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는 12월 1일 엑스포 유치 실패와 관련해 “부산엑스포도 정말 올바른 정보를 본인이 거부하셨다. 여러 경로로 이번에 어렵습니다, 이런 정보 갈 때마다 화를 내서 내쫓으시니까 아무도 제대로 된 보고를 하지 않으려고 그랬다”고 지적했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도 “외교부 일선에서는 (엑스포 유치가) 힘들다고 (보고)했는데 워낙 (대통령실 등) 위에서 ‘그룹 싱크’(집단사고 확증편향)가 있지 않았나 반추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사실 윤 대통령의 만기친람 리더십으로 참모들의 독자적이고 자율적인 의견이 묵살되는 경향이 강하다는 지적은 정권 출범 때부터 제기돼 왔다. 대통령의 독선과 아집에 참모들의 정보 왜곡과 편중이 심해지는 것은 이번 엑스포 유치전 실패로만 그치지 않는다. 

북한과의 극단적인 대결 구도로 남북 대치국면을 이끌고 있는 윤 대통령에게 대북 정보전은 국가 생존이 걸린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이번 엑스포 정보 왜곡 때처럼 밑에서부터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정보를 ‘자기검열’해 올린다면 심각한 안보 위협이 발생할 수 있다. 참모들이 소신껏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고 대통령 기분에 맞출 필요가 없이 ‘정직한’ 보고서를 내도록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윤석열 대통령뿐이다. 

이번 엑스포 유치전과 같은 대형 국가 과제에 대통령의 ‘레드팀’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레드팀은 조직 내에서 쓴소리를 하는 역할을 한다. 레드팀은 외부나 상대의 관점에서 자기집단의 약점을 찾아내 지적하기 때문에 불확실성에 대비한 객관적 예측과 판단에 도움을 준다. 

윤 대통령에게 레드팀이 존재했다면 대통령이 투표 며칠 전이라도 분위기를 ‘쿨다운’ 시킬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1차 투표에서 대패할 수도 있다는 레드팀의 경고 시스템이 작동했다면 윤 대통령이 ‘끝까지 최선을 다 한다’는 수준의 톤만 유지해 마치 개최할 것 같은 과열 분위기를 진정시킬 수도 있었던 것이다. 

 

지난 11월 29일 한덕수 국무총리와 주요 그룹 총수 등이 2030 엑스포 개최지 결과 발표를 지켜보고 있다. (사진출처=국무총리실)



윤석열 대통령이 영국과 프랑스 엑스포 유치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당일인 11월 26일 김규현 국가정보원장과 권춘택 1차장, 김수연 2차장을 모조리 경질시킨 것도 엑스포 정보전 실패와 결코 무관치 않다. 국정원은 전통적으로 대통령의 최후 레드팀으로서 항상 기능해왔다. 전 세계 정보기관과의 협조체계가 가장 잘 구축돼 있고 자체 정보망도 풍부한 국정원의 정보는 정부기관 내에서도 가장 신뢰성이 높은 것으로 꼽힌다. 

이번 엑스포 유치전에서도 외교부가 ‘희망 보고서’를 올렸다고 해도 국정원이 레드팀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면 윤 대통령이 막판 ‘물’을 먹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난해 정권 출범 직후부터 국정원은 ‘본업’은 제쳐두고 신.구 정권 인맥들간의 권력다툼에만 빠져 있다가 결국 이번에 대형사고를 치는 데 일조를 한 셈이 됐다. 

윤 대통령이 아무리 투표 결과에 희망적이었다고 해도 적어도 1차투표 대패에 대비한 ‘출구전략’ 정도는 마련해놓는 게 상식이었는데 대통령실이 그런 위기대응 플랜마저도 전혀 준비하지 않았다는 점도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이번 엑스포 유치전같은 ‘대통령 1급 관심사항’의 경우 특히 제2, 제3의 컨틴전시 플랜 수립이 반드시 요구된다. 그럼에도 얼토당토 않은 정보만 주구장창 올리다가 결국에는 윤 대통령 혼자 발가벗겨진 채 무대 위로 내팽겨쳐진 셈이니 대통령실 참모들은 더욱 할 말이 없게 됐다.


 

엑스포 유치전은 윤 대통령이 취임 직후부터 지금까지 열과 성을 함께 한, 오롯이 ‘윤석열의 작품’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지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도 윤석열 대통령의 ‘작품’이었다. 윤 대통령이 사면한 후보를 보궐선거에 다시 투입하는 바람에 ‘정권 심판 전국 선거’로 판을 키워버린 장본인이 바로 윤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혼자’ 힘으로 최고 권력자에 오른 대한민국의 유일무이한 경험자라 그런지 뭐든지 혼자 마음대로 하는 것을 즐기는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윤 대통령이 혼자 춤추고 노래하던 무대에서 내려올 때가 됐다. 대통령이 할 일은 유능하고 강직한 인재를 전국에서 뽑아 무대에서 마음껏 춤추게 하는 것이지, 본인이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할 때가 아니라는 걸 국민들은 지난 2년 동안의 ‘윤석열 치하’에서 충분히 경험했기 때문이다. 

아마 이번 ‘엑스포 참사’로 가장 얼굴이 화끈거릴 사람은 바로 윤석열 대통령 자신일 것이다. 윤 대통령이 국정의 ‘과오’에 대해 지난 11월 29일 담화문처럼 신속하고 깍듯하게 사과를 한 적은 없었다. 사과문 발표 10분전 긴급공지를 한 것만 봐도 그 다급함과 당혹감이 묻어나지만 정작 왜 자신이 ‘오판’을 했는지 그 이유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물론 기자들 ‘불편한’ 질문도 받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지난 2년 동안의 국정운영을 냉정하게 되돌아보고 그에 대한 진지한 ‘반성문’을 다시 써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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