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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노 칼럼] ‘선거제 개편’ 원칙과 상황에서 외줄 타는 이재명

성기노피처링대표 2023. 12. 5.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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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대선 공약이었던 선거제 개편 정치개혁 약속 이행을 두고 장고에 빠져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치는 원칙과 상황의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외줄 타기와 같습니다. 정치인들은 자나 깨나 ‘정의와 자유, 공정, 평등’ 같은 민주주의 ‘원칙’을 외치고 다니지만 그런 절대 선의 가치는 상황과 이념과 진영의 ‘스리쿠션’을 맞으면서 본래의 뜻이 왜곡되고 변주돼 같은 편의 이익과 편의에 맞게 자의적으로 재해석되곤 합니다. 

정치인들은 항상 원칙을 입에 달고 살지만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이 발생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돌변하여 그 원칙을 깔아뭉개고 말을 바꿉니다. ‘내가 있고 원칙이 있는 것이지 나도 없는데 무슨 얼어 죽을 원칙 따위를 지키란 말이냐’는 여의도의 경험칙은 지금도 정치인들이 말 바꾸기를 식은 죽 먹기로 하는 자기 합리화의 근거가 되곤 합니다.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합니다. 지난 11월 2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유튜브 라이브를 통해 “선거는 승부인데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이 있겠나”라고 말했습니다. 내년 총선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이기는 전법을 택해야지 멋있게 진다고 해서 누가 알아주느냐는 뜻입니다. 

이를 두고 당내에서는 “이 대표가 말을 바꿔 공약을 파기했다”는 지적이 즉각 나왔습니다. 이 대표는 지난해 대선과 전당대회 전후로 21대 총선에서 새로 실시된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위성정당 방지를 수차례 약속한 바 있습니다. 특히 민주당은 대선을 열흘 앞두고는 ‘연동형 및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포함된 국민통합 정치개혁안을 당론으로 전격 채택했습니다. 당시 이 대표는 “말이 아닌 실천으로 보여드리겠다”며 ‘정치개혁’ 대선공약을 결정적 승부수로 띄웠습니다.

하지만 22대 총선이 다가오면서 이 대표가 절체절명의 화급한 상황에 빠지고 있습니다. 지난 대선 때 약속했던 공약을 지키기 위해서는 위성정당을 만들 수 없고 이럴 경우 수십 개의 의석이 날아가 국민의힘에 제1당의 지위를 넘겨줄 가능성이 훨씬 커집니다. 그렇다고 지난 대선 때 전 국민의 관심을 끌었던 정치개혁안을 ‘폐기’하자니 정치개혁을 선거용 ‘떴다방’으로 생각했던 것이냐며 말 바꾸기 논란에 휩싸일 수 있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8일 이동하는 차량 안에서 생중계한 유튜브 방송에서 위성정당 창당이 가능한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변경과 관련해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이냐며 병립형 회귀를 시사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이재명 유튜브 영상 캡처)


이 대표로선 참으로 난감할 것입니다. 대선 때 내세웠던 정치개혁 공약을 지키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겠지만 ‘공약 실천’으로 폼 한번 잡은 값치고는 수십 개의 국회의원 배지 ‘현찰’이 날아갈 판이니 ‘정치적 가성비’가 최악인 상황입니다. 민주당은 지난 11월 30일 의원총회에서 선거제 개편 문제를 논의했지만 지금까지 아무런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시 의총에서도 이 대표의 ‘총선 현찰론’에 대해 반감을 표출한 의원이 상당수였던 것으로 알려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재의 선거제를 유지할 경우 민주당만 대선 공약에 따라 위성정당을 만들지 못하고 제2당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국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재 흘러가는 상황만 놓고 보면 이재명 대표가 어영부영 시간만 끌다가 결국 21대 이전의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회귀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해 보입니다. 일단 당내의 이견이 모두 분출될 때까지 더 기다리다가 선거제 개편 마감이 임박해질 때를 노려 ‘시간 촉박’과 ‘대안 부재’를 명분으로 전격 돌파 작전을 펼 수도 있습니다. 

이 예견의 근거는 이재명 대표가 지금까지 보여준 정치적 성향이 ‘원칙’보다 ‘상황’을 더 중시하는 대표적인 ‘실용주의자’이기 때문입니다. 어찌 보면 이재명 대표의 정치 스타일은 ‘바보’ 노무현보다 ‘상황론자’ 김종필 쪽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정치인 중에서 말 바꾸기를 일종의 ‘상황의 미학’으로까지 끌어올린, 그 분야의 1인자를 꼽는다면 단연 김종필일 것입니다. 그에겐 언제나 ‘상황론자’라는 별칭이 따라다녔습니다. 그는 평소 “10월에는 10월의 논리가 있고 11월엔 11월의 논리가 있다”며 자신의 조변석개 입장 변화를 합리화하곤 했습니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2018년 6월 23일 오전 8시 15분 사망했다. 향년 92세. 사진은 1990년 1월 5일 서울 세종홀에서 열린 대한상의 주최 신년하례회에서 당시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민주당 총재, 김대중 평민당 총재, 김종필 공화당 총재가 환담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김종필이 당대의 상황론자로 치부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박정희 때는 국무총리 2인자로, 김영삼과의 3당 합당 때도 2인자로, 김대중과의 DJP 연합 때도 2인자로 살아온 그의 ‘정치적 상황’과 무관치 않을 것입니다. 김종필에게 있어 원칙은 집권(권력)이었겠지만 상황은 언제나 생존부터 강요하는 악순환의 연속이었습니다. 그에게 상황은 원칙을 뒤집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필수 서바이벌 키트(kit) 같은 것이었습니다. 

1인자들이라면 위에 더 이상 눈치 볼 사람이 없으니 제멋대로 할 수 있지만 2인자는 언제나 1인자인 권력의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에 낮에 하는 이야기를 밤에까지 ‘소신껏’ 끌고 갈 수 없는 경우가 다반사였습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권력의 풍향계에 주파수를 맞추기 위해 김종필의 상황 인식은 시시각각 바뀔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박정희가 유신체제로 무한독재를 추진했을 때 김종필은 민주주의 정신 수호란 원칙보다 조국 근대화의 유일 지도자라는 상황인식으로 주군을 옆에서 도왔습니다. 김종필은 김대중을 ‘빨갱이’라고 여겼던 극우 보수의 원칙을 져버리고 그의 품에 안겨 내각제를 꿈꾸기도 했습니다. 

김종필에게 상황 논리는 객관적 사실이나 원칙에 의거하지 않고 현실적 불가피성을 내세워 자신의 입장을 자의적으로 합리화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일제 강점기 때 태어났다면 ‘친일파들이 당시의 정세에서는 일본과 합병하고 협력하는 길만이 민족의 살길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친일을 했다’고 항변했을 것입니다. 

상황 논리만 내세웠던 그가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 협상 때 ‘김종필-오히라 메모’로 정략적 야합을 한 것은 지금도 우리가 일본에게 강제징용 피해배상을 당당하게 요구할 수 없는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김종필의 상황 논리가 빚어낸 역사의 뒤틀림은 지금도 한일관계가 겉돌며 갈등과 분열을 노정하는 잔불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0년 총선에서 부산 북.강서을에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35.69%를 득표했지만 낙선했다. (사진=노무현재단유튜브 캡처)


지금 김종필을 기억하는 건 원칙을 지키며 정도를 ‘걸으려 했던’ 정치인이라기보다 온갖 상황론을 갖다 붙이며 야합과 권모술수를 행했던 ‘모사꾼’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김종필이 43년 동안 정치를 했지만 그가 국민의 편에 서서 공익을 위해 사익을 인내한 정치인으로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듯합니다. 오히려 자신의 입신양명과 정치적 사익을 향해 내달린 시대의 풍운아이자 권력의 화신이 더 적당할 듯합니다.

김종필에게 원칙이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언제든지 떼버릴 준비가 돼 있는 거추장스러운 액세서리 같은 존재였다면, 노무현에게 원칙은 지역주의 타파와 특권 없는 세상을 향한 정치개혁의 실행 도구이자 국민과의 약속 징표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는 지난 2000년 총선 때 종로를 버리고 부산으로 내려가면서 “이러한 상황에서 지역 바람을 차단하고 승리를 보장할 비책으로 ‘탈당’ 유혹을 받았다. 그러나 나는 원칙을 지켰다. 나의 자존심도 탈당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무엇보다도 나를 지지한 많은 분들에게 실망을 드릴 수는 없었다. 뿐만 아니라, 당락에 연연하여 비겁하게 지역대결 구도와의 정면승부를 회피할 수는 없었다”라고 원칙을 지키려 했습니다. 상황은 너무도 뻔히 패배가 예상됐지만 노무현은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고 뚜벅뚜벅 ‘사지’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요즘같이 여야가 분노와 저주의 정치를 퍼붓는 세상에서 정치인의 원칙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낯설고 생경합니다. 어느새 ‘승자 독식의 법칙’이 정치판의 굳건한 원칙이 돼 버렸습니다. 무조건 이기고 봐야 하는 선거판에서 원칙은 그저 배부른 자의 한가한 반찬 투정으로 들릴 뿐입니다. 이렇게 정치판은 변했고 국민들도 어느새 변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20여 년 전에는 바보 같은 선택을 했던 노무현의 등을 두드려 주고 동정심을 느꼈던 국민들이 더 많았겠지만, 지금 이재명 대표가 뻔히 지는 길을 택한다고 하면 강성지지층들과 그의 주변을 맴돌며 4년 로또 대박을 잡으려는 친명계 정치꾼들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집니다. 

한번 버린 원칙은 자꾸 버리고 싶은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원칙을 목숨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정치인은 끝까지 그것을 붙잡으려고 ‘적어도’ 노력은 합니다. 이 두 가지의 ‘사소한’ 선택이 처음에는 비슷한 선에서 출발하지만 종국에는 엄청나게 서로 다른 귀결점을 만들어 냅니다. 

언제나 상황 논리에 기대 평생 권력의 안온함을 누렸던 정치인과, 미숙하지만 원칙을 끝까지 지키려 했던 ‘바보’ 가운데 결국은 누가 승자였을까요. 부질없고 허망한 올인의 승부보다 그 과정에서 보여준 자기희생이 더 아름답다는 걸 증명해 보이는 게 정치 지도자의 역할 아닐까요.

 

(여성경제신문 12월 5일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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