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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노의 정치 피처링
[성기노 칼럼] ‘이재명 구속 기로’ 민주당, 분당만 남았다? 본문
9월 26일은 사상 최초로 야당 대표의 구속 여부를 가를 법원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 심사)이 진행되는 날입니다. 지금 친명계(친이재명)의 ‘막가는’ 분위기로 봐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구속되더라도 당 지도부가 결재 서류를 들고 자주 구치소를 찾아가는 장면이 연출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이 대표가 체포동의안 가결 이후 사실상 당으로부터 ‘불신임’을 받은 데다 구속까지 된 마당에 공천권을 사수하려는 ‘벼랑 끝 작전’을 펼친다면 민주당의 혁신 의지는 또다시 훼손되고 여론도 악화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친명계는 이제 이 대표와 함께 총선을 치르는 것을 기정사실화 하며 자기들끼리 똘똘 뭉치고 있습니다.
친명계는 분당마저도 불사할 태세입니다. 여론이 부정적임에도 체포동의안 가결 의원 색출 작업에 들어가는 등 민주당을 완전히 ‘이재명 당’으로 재장악하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할 것입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체포동의안으로 이재명의 대세론도 한풀 꺾였다’며 향후 그의 정치적 장래를 어둡게 보지만 이견도 있습니다. 체포동의안 가결이 ‘죽어가던’ 이재명을 오히려 살릴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지난 9월 21일 체포동의안 표결 때 민주당 의원 29명이 찬성표(149표)를 찍은 것으로 추산됐습니다. 여기에다 기권과 무효표 10명까지 합하면 민주당 내 ‘반이재명’ 이탈표는 39명에 이릅니다. 비명계뿐 아니라 비주류 의원 일부도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2월 첫 체포동의안 표결에는 가결 표가 139표, 무효와 기권은 20표였습니다.
도식적으로 계산하면 1차 때 무효나 기권을 던졌던 의원 중 10여명이 이번엔 가결에 투표한 것으로 추론해 볼 수도 있습니다. 이재명 불체포특권과 불안한 리더십에 대한 민주당 의원들의 부정적 인식이 ‘중립’에서 좀 더 뚜렷한 ‘반대’로 이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 안팎에서는 표결로 자신들의 ‘반명’ 의지를 분명하게 나타내는 의원이 40여명, 이들에 동조는 하고 있지만 투표 등의 직접적인 의사 표명은 하지 않고 있는 ‘중립 성향’ 의원을 40여명 정도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민주당 의원(168명)의 절반 정도가 반명 성향으로 분류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중립 성향 의원들은 분당 등의 당 분열 사태가 오면 탈당 결행 등의 적극적인 행보를 할 가능성이 높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따지면 친명계는 여전히 이재명 대표의 구속 여부와 상관없이 당을 장악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친명계는 이 대표의 ‘옥중 당무’를 당연시하며 총선 때까지 오로지 직진할 태세입니다. 친명계가 이렇게 강경 일변도로만 나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 요인이 있지만 여기에는 ‘민주당 충성 지지층이 여전히 이재명을 버리지 않았고 윤석열 검찰 독재 정권에 맞설 야권의 실질적인 리더로 이 대표를 인정하고 있다’는 강한 믿음과 기대가 깔려 있습니다. 친명계에서는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가결되고 구속까지 되더라도 별로 손해 볼 게 없다’는 계산을 하고 있습니다.
당 일각에서는 친명계가 이 대표에 대한 비명계의 체포동의안 찬성을 유도해 확실하게 ‘적군’에게 페인트를 칠한 뒤 내년 총선 때 민주당 지지층들이 ‘피아식별’을 잘할 수 있도록 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체포동의안 표결 전 이 대표가 비명계의 퇴진과 공천권 보장의 ‘빅딜’을 거부한 것도 ‘가결되어서 구속돼도 좋다’는 플랜B에 따른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이 대표가 이처럼 확실하게 비명계와 선을 그을 수 있었던 ‘맷집’은 과연 어디에서 나올까요. 친명계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반란자 색출 작업까지 하며 ‘친문계 탈색작업’에 들어간 것도 어딘가 믿는 구석이 있어서입니다.
여기에는 민주당 지지층 주류의 지원을 견인하고 있는 야권 스피커들의 입김과 영향력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야권의 대표적인 스피커인 김어준은 지난 9월 15일 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다스뵈이다’에서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습니다.
체포동의안 표결을 일주일여 앞두고 그는 “‘이재명 대표가 불체포특권 포기했으니까 영장 실질심사한테 다투고 그때 기각되면 더 좋은 거 아니야?’ 이렇게 말하는 분들은 이름 적어놔야 되겠어요. (출연한 박범계 의원에게) 그거 누군지 이름 적어주세요. 이런 거 안 하는 스타일인데 이름 이번에 적어놔야 되겠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민주당 지지층에게 ‘반란자 처단’이라는 강력한 지침을 내린 것과도 같습니다. 민주당이 특정 강성 지지층에 휘둘리는 ‘팬덤 정치’ 폐해로 비판을 받고 있지만 야권 스피커의 초반 ‘교통 정리’는 이재명에게 한줄기 구원의 빛이었을 것입니다. 이후 체포동의안 결과가 발표되자마자 친명계는 일제히 ‘찬성자 색출’ 등의 강경한 발언을 쏟아내며 ‘김어준 이름 적기’와 동조 주파수를 발신했습니다.
그 후 야권의 또 다른 스피커인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체포동의안 가결 뒤인 9월 24일 “(이재명에게) 당 대표직 내려놓지 말고 ‘옥중 출마’ ‘옥중 결재’하라”며 ‘김어준 후속 지침’을 내렸습니다. 유 전 이사장은 또한 “이건 (여당과의) 기 싸움이다. 기 싸움에서 밀리면 진영이 무너지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발언은 김어준이 지난 9월 15일 ‘이름 적기’ 발언 말미에 “총선을 이재명 구속시켜놓고 시작하려고 하는 거에요. 이거는 ‘이재명이 싫다, 좋다’의 문제가 아니라 진보 진영의 미래를 없애버리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재명에게 힘을 실어줘야 돼”라고 말한 점과 맥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이재명을 단순한 ‘개인’이 아니라 진보 진영의 대표주자로 인식하고 공동대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재명 사수’를 위해서는 그 어떤 희생도 감수해야 한다는 선언과도 같습니다.
이재명 대표는 영장실질심사를 준비하는 바쁜 와중에도 유시민 전 이사장의 ‘옥중 출마와 결재’ 영상에 ‘좋아요’를 누르며 공감을 표했다가 취소하는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습니다. 이 대표가 한때 공감을 표현한 것은 야당 대표가 야권의 스피커들에게 ‘예속’돼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대목으로 읽힙니다. 이런 상황이니 일국의 국회의원이 무기명 투표를 해놓고 ‘나는 반대했어요’라고 강경지지층에게 인증까지 하는 사태는 그나마 애교로 비쳐집니다.
2차 체포동의안 표결을 전후해 이 대표의 단식이 그리 호응을 얻지 못하고 리더십 자체가 흔들리고 있을 때 김어준이 그를 백업하는 서브를 날렸고, 유시민이 그것을 받아 ‘옥중 출마와 결재’를 기정사실화 하는 토스를 해주었다면, 이제 이재명은 자신의 구속 여부와 상관없이 당권과 공천권 사수, 반란자 색출과 나아가 분당까지도 감행하는 강스파이크를 날릴 것입니다.
앞서 살펴본 대로 김어준과 유시민은 ‘이 전쟁은 이재명 혼자의 싸움이 아니라 민주 진영 전체의 생존이 걸린 문제’라고 체포동의안 정국을 정리하며 이 대표에게 ‘전사의 날개’를 달아주었습니다. 친명계는 이제 야권의 스피커들로부터 “민주 진영의 승리를 위해 당의 분당쯤은 아무런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는 절대 반지를 얻게 됐습니다.
하지만 민주당 의원 168명은 실존하는 헌법기관으로 소신과 정치력을 보여줘야 합니다. 민주당 의원들은 정당정치의 주체로서 협상과 타협을 통해 계파 간 갈등을 조정해 나가고 생산적인 결론을 도출해 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막연히 장외 스피커들과 개딸 등 강성 지지층의 입만 바라보고 그 ‘처분’을 기다리는 ‘묻어가기 정치’를 해서는 안 됩니다.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정국은 반란자 색출과 반대자 혐오가 분출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노정하며 팬덤 정치에 정당정치가 완전히 유린당하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민주당 의원들은 경광등을 요란하게 울리며 거침없이 질주해 나가는 강경파들의 ‘패트롤 카’만 졸졸 따라갈 뿐 주도적으로 정국을 운전해 나갈 만한 역량과 의지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야권 스피커들이 장외에서 나팔을 불어주지 않으면 일보도 전진할 수 없는 민주당은 정당이 아니라 ‘팬덤’의 대표단체에 불과합니다. 분당도 불사하면서까지 지켜야 하는 가치를 ‘이재명’에게만 두지 말고 70년 정통 진보정당의 민주적인 역량과 자율성을 기대해 봅니다. 제발 민주당 의원들이 ‘밥값’ 좀 했으면 좋겠습니다.
(여성경제신문 9월 26일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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