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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노의 정치 피처링
[성기노 칼럼] 생사의 기로에 선 이재명, 살아남을 수 있을까 본문
돌이켜보면 김대중 전 대통령은 현명했다. 그는 지난 1992년 대선에서 패배한 직후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으로 떠났다. 승자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으로부터 받을 정치보복이 두려웠을 것이다. 독재시대의 ‘잔설’이 남아있던 당시만 해도 대선에서 패배한 사람이 권력자의 정치보복에 대해 가지는 공포심은 목숨이 걸린 문제 그 이상이었다. 김대중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5년 뒤 대통령으로 보상받는 탁월한 ‘엑시트’(Exit)가 됐다.
하지만 한국 정치사에서는 권력에 맞섰던 경쟁자들의 말로가 불행했던 경우가 훨씬 많았다. 92년 대선 후 김대중이 순발력 있게 영국행을 결행한 것과 달리 당시 대선에서 3위(1위 민주자유당 김영삼 997만 7332표(41.96%), 2위 민주당 김대중 804만 1284표(33.82%), 3위 통일국민당 정주영 388만 67표(16.31%))를 했던 정주영 현대 회장은 그룹 전체가 무너진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엄청난 정치적 탄압을 받았다.
대통령 김영삼은 검찰을 앞세워 정주영 회장을 대통령선거법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고, 현대그룹은 검찰수사 및 세무조사를 받으면서 큰 타격을 받게 된다. 김영삼 정권은 2년간 현대그룹의 자금줄마저 묶어놓았다. 현대그룹은 오직 미국계 은행인 씨티은행만이 대출을 내줘 겨우 연명할 수 있었다. 또 현대그룹에 대한 강력한 세무조사로 당시 돈으로 1361억원이라는 거액을 추징당했다.
그래도 정주영은 김영삼의 정치탄압을 정면으로 맞서며 삼성그룹을 제치고 현대그룹을 국내 재계 1위까지 끌어올리는 뚝심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런 쟁투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권력의 집요한 견제와 탄압을 버티지 못하고 정주영은 1993년 2월 전국구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자신이 창당했던 통일국민당을 1994년 7월에 해체하고, 당사마저 폐쇄하는 등 김영삼에게 ‘다시는 정치판에 얼씬거리지 않겠다’는 시그널을 확실히 보여주고서야 겨우 정치보복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나마 정주영은 권력에 정면으로 맞서면서도 그룹은 살린 운 좋은 케이스였다.
이런 점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권력의 정치탄압은 최악의 결말로 끝난 불행한 역사다. 노 전 대통령은 퇴임식 직후 김해 봉하마을로 내려갈 때 “야, 기분 좋다”며 시원한 환호를 내뱉었다. 그가 퇴임 뒤 노골적인 정치 행위는 하지 않았지만 이명박 정권이 볼 때는 노무현이 사저에서 나와 방문객들을 상대로 ‘대 국민 연설’을 하는 등 공개행보를 한 것에 대해 탐탁지 않게 생각했을 것이다. 보이지 않았지만 노무현의 ‘봉하마을 정치’는 실존했다.
국민들은 집권 초반부터 촛불정국과 ‘명박산성’으로 ‘독재자’ 이미지가 굳어진 이명박과 노무현을 자연스럽게 비교하게 됐다. 그렇게 노무현은 서서히 진보의 상징적인 구심점으로 빛나기 시작했고 이명박 정권도 노무현의 봉하마을 존재를 눈엣가시처럼 생각했다.
이명박 정권이 노무현을 청와대기록물 반출 혐의로 ‘꼬투리’를 잡아 정치탄압을 시작한 것은 서막에 불과했고 결국 검찰은 노무현을 뇌물 등의 혐의로 검찰청 앞에까지 세웠다. ‘승부사’ 노무현은 권력의 정치탄압에 ‘죽음’으로 항거했다.
그 후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청산을 걸고 이명박에 대한 정치보복을 감행했다. 이명박이 감옥에 간 것을 생각하면 정치판에는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는 것 같다. 그렇게 한국정치는 권력자의 탄압과 경쟁자의 복수, 그 무한궤도에 빠져 있다. 윤석열 정권 또한 권력의 탄압 법칙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고 있다.
우리같은 강력한 ‘제왕적 대통령제’ 아래에서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단순한 국가 최고 통치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입법부는 물론 사법부마저 온갖 편법과 무력으로 좌지우지 할 수 있다. 조금이라도 권력자의 코털을 건드린다 싶으면 가차 없는 탄압과 진압이 시작된다.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이 존재할 수 없듯이 권력자는 오로지 자신만 크게 빛나야 한다고 믿는다. 이는 대통령제 권력이 가진 태생적인 속성이다. 집권하는 순간 권력자도 마음대로 제어하지 못할 정도로 집권세력은 오롯이 대통령만의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된다. 조금이라도 그 ‘태양’을 가리려는 시도가 있다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대통령 권력 보위’에 매달리게 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체포동의안 가결을 보면서 새삼 김대중 전 대통령의 ‘혜안’과 정치적 감각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군사독재의 잔재가 강하게 남아있던 당시로서는 김대중이 서슬 퍼런 권력 앞에 택할 수 있었던 선택지가 별로 없었을 것이다.
만약 그때 김대중이 ‘이제 최대 라이벌 김영삼이 없어졌으니 다음 차례는 무조건 나다’라는 생각을 했다면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김대중이 92년 대선 패배 후에도 ‘차기’에 대한 탐욕과 미련이 강하게 남았더라면 그는 아마 곧바로 야당 전사 모드로 들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미련하지 않았고 물러설 때와 나아갈 때를 알았다.
사실 아무런 정치적 미래도 보장받지 못한 상태에서 백지상태로 후일을 도모하는 게 쉬운 선택은 아니다. 정치인들은 하루라도 여의도 바닥에서 멀어졌다고 생각하면 일종의 금단 증세를 보인다. ‘잊혀진 정치인’만큼 처참하고 무기력한 존재도 없다. 부고 빼고 뭐든지 기사에 실려야 살아있음을 느낀다.
이재명 대표의 대선 패배 후 그의 정치적 선택에 대해 복기를 해 본들 별 의미는 없을 것 같다. 분명한 것은 이재명이 선거에서 패배한 뒤 그 어떤 ‘정적’들보다 빠르고 과감하게 권력자의 멱살을 되잡으려고 한 인물이라는 점이다. 그는 대선 패배 뒤 곧바로 재보궐선거에 출마해 여의도에 입성하고 그 후 당대표직에도 올랐다. 0.73% 차 패배가 주는 차기 집권에 대한 ‘착시’와 ‘정치초짜’ 윤석열 대통령을 만만하게 보는 오만함이 순간의 판단력을 흐리게 했음 직하다.
그런 이재명의 ‘발 빠른’ 대응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곱게 보일 리 없었다는 건 그 후 2년 동안 끈질기게 이어진 검찰수사가 잘 말해 준다. 윤 대통령 또한 ‘이재명이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다시 권력과 맞짱을 뜨려 한다면 걸어오는 싸움을 마다하지 않겠다’는 투쟁심이 더 고취됐을 것이다. 윤석열과 이재명의 치킨게임은 한국 정치에 커다란 오점을 남기고 있고 국무총리 탄핵 등 ‘사상 최초 신기록’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는 과연 누구의 잘못인가. 이재명이 당 대표가 되지 않고 조용히 2선으로 물러났거나 해외로 갔다고 해서 대장동이나 대북송금 혐의가 하늘로 사라지는 게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법대로’로 똘똘 뭉친 검사집단이 윤석열 정권 이후 더욱 서슬 퍼렇게 살아있으니 윤 대통령이 ‘명령’하지 않아도 열혈검사들이 이재명을 가만 두었을 리가 없다.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마찬가지이니 이재명으로서도 선택지가 많지 않았을 것임을 백번 이해한다고 해도 이재명의 ‘성마른’ 선택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재명의 대표직 선택이 윤석열의 더 큰 정치탄압을 불렀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권력의 속성은 김영삼 시대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다. 모든 정적을 대통령 발밑에 두려는 건 권력자의 생래적인 본능이다. 독재권력일수록 더 악랄하게 탄압하고 제압하려 한다. 자신의 행위가 정당하지 못하다는 걸 알고 경쟁자들을 경계하고 탄압한다. 그래서 독재권력은 늘 불안하다.
이재명은 권력의 정치탄압과 보복의 잔혹함을 간과했고, 이제 생사의 기로에 섰다. 자당 의원들에게 배신당한 이재명은 더욱 사생결단으로 덤빌 것이다. 대권의 지름길로 가려다 절벽을 만난 셈이니 이 또한 자신이 짊어져야 할 후과다. 윤석열 대통령도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을 용납지 않을 것이고 정적을 더 철저하게 짓밟을 것이다.
권력을 이긴 ‘장사’는 없었다. 그렇다고 권력이 영원한 것도 아니다. 죽이려는 권력과 살아남으려 발버둥 치는 경쟁자의 활극만이 지배하는 정치는, 점점 그 존재 이유를 상실하고 있다. 그들만의 아귀다툼에 죽어나는 건 국민이요 불쌍한 것도 국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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