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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노의 정치 피처링
“각하, 이재명을 어찌하오리까” 본문
검찰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6일 소환조사를 받으라고 통보하면서 대통령선거 이후 잠잠하던 여야에 다시 전운이 몰려오고 있다. 사진은 5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생각에 잠겨 있는 이재명 대표. /국회사진기자단=연합뉴스
3월 9일 대통령선거 이후 잠잠하던 여야에 다시 전운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검찰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6일 소환조사를 받으라고 통보했습니다. 야당 그것도 169석의 압도적인 의석수를 가진 정당의 대표를 사법처리하기 위한 전 단계에 들어간 것입니다. 사실 야당 대표의 지위는 다분히 ‘정치적’입니다. 1979년 10월 4일 박정희 정권은 김영삼 신민당 총재의 뉴욕타임스지 기자회견 내용을 꼬투리로 잡아 김 총재의 금배지를 강제로 떼버렸습니다. 이 ‘강제전역’ 조치는 박정희 정권의 몰락을 가져온 트리거가 됐습니다. 그만큼 야당 총재의 존재는 법적인 영역보다 정치적인 관점에서 예민한 문제입니다.
이제 윤석열 정권은 제1야당 대표 이재명 의원을 ‘잡으려고’ 서초동 진흙탕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결과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재명 대표를 사법처리해 아예 정치생명을 끊어놓을 수도 있지만, 거대야당에게 ‘되치기’를 당해 윤석열 정권 몰락의 단초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번 판은 누구도 물러설 수 없는 외나무다리 단판 승부입니다. 둘 중 하나는 치명상을 입고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양측은 모든 정치적·사법적 역량을 총동원할 것입니다.
일단 민주당의 ‘예상 진로’를 보겠습니다. 민주당은 다수 의석을 가져 배짱이 두둑한 상태인 데다 ‘이재명’이라는 가장 확실한 대장을 중심으로 당을 ‘친명’ 색깔로 완전히 갈아엎었기 때문에 지금 전투력은 ‘만렙’에 가깝습니다. 민주당은 과거 선배들이 박정희 독재 치하에서 개발한 끈질긴 권력 투쟁 노하우와 이명박 ‘촛불’-박근혜 ‘탄핵’으로 다진 탄탄하고 다양한 전투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다 문재인 정권 5년 동안 그 ‘야성’을 써먹지도 못했기 때문에 지금 민주당은 굶주린 우리 안의 사자와도 같습니다.
다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은 ‘묻지마 난타전’을 준비하며 초반 기선잡기에 들어갔습니다. 민주당은 ‘너희가 이재명 기소하면 우리는 김건희 잡으러 간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습니다. 당 지도부는 투 트랙으로 나설 전망입니다. 6일 이재명 대표의 검찰소환 거부를 밀어붙이면서 민생 경제에 집중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우려 합니다. 이런 원내 대응 전략과 함께 ‘김건희 특검법’을 추진하며 대 국민 여론전과 장외투쟁도 저울질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윤석열 정권 ‘타도’에 굶주렸던 민주당은 언제든지 ‘우리’ 안에서 튀어나올 준비를 하고 있지만 바깥의 상황은 예전 같지 않습니다. 이재명 대표는 대선 패배 이후 국회의원-당대표를 모두 거머쥐었는데 이것이 여권의 사법처리 총격을 피하기 위한 ‘방탄조끼’라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선거 패배의 반성 없이 초단기 정치복귀로 여론도 그리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 소환을 거부하게 되면 공당의 대표가 법을 무시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이 대표가 기소되더라도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되면 ‘이재명 방탄 국회’라는 프레임에 갇혀 헤맬 수도 있습니다.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이 ‘김건희 특검법’으로 이재명 대표의 사법처리 덫을 ‘정치적’으로 탈출하겠다”는 전략을 양날의 칼로 받아들입니다. 특검법을 추진하면 장외 선전전은 피할 수 없습니다. 특검법과 민생이라는 떡을 양손에 쥐고 갈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지금 민주당의 분위기는 ‘윤석열 정권의 검찰 칼날이 이재명 대표 죽이기에 올인하고 있다’는 쪽에 더 무게가 실리고 있습니다. “‘법을 무시하고 민생을 외면한다’는 안팎의 비판이 있지만 대선 승리를 위한 곁가지에 불과하다”는 기류가 강합니다. ‘우리’에서 곧 뛰쳐나올 민주당에 대해 국민들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가 관건입니다.
사실 민주당으로선 이재명 사법 리스크에 대한 대응전략이 많지 않습니다. 앉아서 당하느니 한번 붙어보자는 심정일 것입니다. 하지만 여권은 다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본심’과 국민의힘의 권력구도 변화, 그리고 새로운 체제를 갖춘 검찰의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이재명 사법처리는 산으로 갈 수도 있고, 땅으로 꺼져버릴 수도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일 것입니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검찰 출석 통보와 관련해 “지금 대통령으로서 경제와 민생이 우선이다. 형사 사건에 대해선 저도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언론 보도를 통해 보는데 기사를 꼼꼼하게 읽을 시간도 없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의 이런 ‘워딩’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비판이 많습니다. 윤 대통령은 경제와 민생을 가장 우선시한다고 밝혔습니다. 그 경제와 민생은 바로 ‘정치’와 직결돼 있습니다. 공무원들이 아무리 경제 민생을 외쳐봤자 국회에서 의원들이 상임위를 통해 현안갈등을 정리하고 법안이나 해결책을 즉각적으로 내놓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거대야당의 적극적인 협력이 있으면 윤 대통령이 눈만 뜨면 외치는 민생과 경제는 더 효율적으로 잘 풀립니다.
그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야당 대표의 지위와 관련한 질문에 윤 대통령은 기자들과 같은 수준의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대답한 것이 과연 상식적으로 합당한 것일까요. 이는 ‘이재명’과 자신을 ‘동급’으로 놓지 않겠다는 윤 대통령의 노골적인 무시 전략입니다. 윤 대통령은 8월 17일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가 자신을 공격하는 데 대해서도 “대통령으로서 민생 안정과 국민 안전에 매진하다 보니 다른 정치인들이 어떠한 정치적 발언을 했는지 제대로 챙길 기회가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언론은 이를 ‘직접 대응을 자제했다’며 점잖게 표현했지만 무책임하고 위선적인 대답이었습니다.
윤 대통령이 지난 대선과정에서 보여준 정치적인 최대 장점은 소탈함과 솔직함이었습니다. 수십 년 정치나 행정을 해온 후보들의 능구렁이 같은 태도보다 조금 어설프지만 솔직하고 겸손한 자세가 국민들의 호의적인 반응을 얻은 측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되고난 순간부터 윤 대통령의 그런 장점들은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오히려 권력자의 오만과 아집만이 도드라집니다. 윤 대통령은 이준석 이재명 등의 피하고 싶은 ‘적’들에 대해서는 무시와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정치 최고지도자로서 책임 있는 대응을 해야 하는데 민감한 사안이 나오면 상대를 무시하며 회피합니다. 윤 대통령은 사실 그런 골치 아픈 문제에 대해 일일이 코멘트하고 말려들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의 그 솔직하고 소탈한 모습으로 진지하게 갈등을 해소하려는, 그런 ‘겸손한 자세’를 보여주었다면 어땠을까요.
현재 여권은 이재명 대표 사법처리를 두고 크게 의견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죄가 있으니 무조건 구속시켜야 한다’는 강경파와 ‘구속 페인트 모션만 취하고 방탄 꽃놀이패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습니다. 대통령실 기류는 대체로 전자로, 국민의힘 일부와 전문가들 의견은 대체로 후자 쪽으로 쏠리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재명’과 ‘김건희’는 동전의 앞뒤와 같습니다. 이재명 사법처리는 김건희 수사와 같이 맞물려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여권에서는 이재명 대표와 김건희 여사의 죄 ‘무게’가 다르다며 양쪽의 등가성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은 권력자의 부정부패를 더 큰 허물로 보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죄가 다르다고 하지만 국민들은 이미 도덕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똑같이 ‘유죄’ 상태로 보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표를 수사한 만큼 김건희 여사의 죄도 똑같이 엄정하게 수사하고 단죄하라는 것이 국민들의 언명입니다. 두 사람의 죄의 무게는 정확하게 똑같다는 게 민심입니다. 단 1g이라도 공정함의 무게가 달라진다면 국민들의 반발과 저항에 직면할 것입니다. 이런 ‘등가성’의 여론 때문에 여권은 이재명 대표의 사법처리 범위를 어디까지로 할지 매우 고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2006년 개봉한 느와르영화 ‘해바라기’에서 비운의 조폭 김래원은 절규합니다.
“사람이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 게 세상 이치라더라.”
(여성경제신문 9월 6일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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