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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 소탈왕’ 윤석열 대통령

성기노피처링대표 2022. 5. 17.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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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의 소탈 행보가 화제다. 윤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주말인 14일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을 방문하고 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부인 김건희 여사와 함께 광장시장을 찾아 빈대떡과 떡볶이 등을 포장 구매했다고 밝혔다. (사진=독자 제공/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지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정치 초년생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대통령이라서 그런지 ‘윤석열’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전임자들보다 더 높은 것 같습니다. 윤 대통령이 주말을 이용해 광장시장에서 떡볶이를 사고 백화점에서 구두를 사는 ‘일상’이 공개되자 보수층에서는 ‘소탈하다’고 하지만 진보층에서는 ‘쇼 하지 말라’고 합니다. ‘대한민국 대통령’도 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극한직업’ 같습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의 ‘소탈한 행보’를 한 꺼풀 벗겨보면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사실 한국 정치에는 왕조시대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600년 조선 왕조가 끝장나고 일제강점기를 거쳐 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섰지만 우리는 여전히 왕조시대에서 민주공화정 체제로 넘어가는 이행기에 머물러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정치에서 왕조의 잔재는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윤석열 정권 출범과 함께 사라진 청와대는 ‘임금’이 거처하는 ‘구중궁궐’로 자주 묘사되고 ‘가신’ ‘만기친람’ 등과 같은 왕조시대 단어들이 지금도 정치용어로 흔히 쓰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전현직 정치인들은 ‘임금’으로 우상화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팬덤이 제작한 다큐 영화 ‘미스 프레지던트’는 한국 정치에서 대통령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을 ‘왕족’(로열 패밀리)으로 신성시하면서 부모에 대한 효도가 곧 국가에 대한 충성이라는 인식을 드러냅니다. 진보층에서도 ‘왕족’ 논란이 있었습니다.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20년 총선 승리 직후 한 동영상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어떻게 보면 태종 같은 것이다. 기존의 질서를 해체하고 새롭게 과제를 만드는 태종이었다면, 세종의 시대가 올 때가 왔다”고 말했습니다.

청와대 대변인 출신인 고민정 민주당 의원도 지난해 12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설치법이 통과된 뒤 페이스북에 “과거 기득권 세력이던 노론은 개혁 군주 정조의 모든 개혁 법안에 대해 끊임없이 저항했다. 하지만 정조는 백성들을 위한 개혁을 멈추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모신 ‘가신’들이 그들의 ‘주군’에 대해 보인 인식은 여전히 100년 전 왕조시대에 머물러 있는 듯합니다. 진보진영 인사들의 이런 ‘왕조’에 대한 향수와 그 인식은 급기야 “청와대와 민주당이 문재인 대통령을 왕처럼 떠받든다”는 야권의 비판을 불렀습니다. 지난해 2월 코로나19 사태 때 문 전 대통령이 위로금 지급을 검토하겠다고 하면서 붉어진 ‘임금’ 논란이었습니다. 

김건희 여사가 14일 서울 서초구 반포 한 백화점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신발 구매에 함께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취임 후 첫 주말인 이날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을 방문한 뒤 자택 인근 백화점을 찾아 구두 한켤레를 구매했다. (사진=독자 제공/연합뉴스)



이에 대해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는 지난해 1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내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싫어했던 이유는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고 봤기 때문이다. 왕이 지배하는 나라로 만들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그 정도가 더 심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대통령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 정부를 조선왕조 모시듯 한다. 문 대통령은 그것을 너무 당연하게 여긴다. 민망하지 않나”라고 일갈했습니다. 진영논리에 따른 정치적 공세 성격도 있지만 대통령을 주종관계에서 바라보는 참모들의 맹목적 ‘복종’ 인식을 비판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600년의 긴 왕조시대를 끝내고 우리는 미국의 대통령제를 채택해 지금까지 정치체제로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대통령’은 태평양을 건너 한국으로 오면서 ‘귤화위지’(橘化爲枳: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뜻으로 본래의 좋은 성질이 바뀐 환경 때문에 나빠진 경우를 묘사할 때 자주 인용됨)가 돼 버렸습니다. 영국의 왕정 폭정에 신물이 나 미국으로 건너간 프로테스탄트들은 신대륙의 정치체제를 만들 때 1인(왕)이 만인지상으로 군림하지 않는, 그래서 견제와 균형의 원칙에 의해 선출되는 ‘대통령’이라는 말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집행자라는 의미가 큰 ‘Governor’라는 단어 대신에 회의의 주재자이자 중재자라는 의미가 강한 ‘President’를 대통령 명칭으로 채택하면서 권력 분산에 강한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이 ‘프레지던트’가 한국으로 건너오면서 이승만 전 대통령에 의해 ‘왕’과 동급의 ‘절대자’가 돼 버렸습니다. 뒤를 이은 ‘프레지던트 박’도 군사독재와 권위주의 통치방식으로 자신을 절대 권력자로 신격화했습니다. 그 잔재는 ‘땡전 뉴스’(전두환 정권 시절 9시 뉴스 시작과 함께 첫 번째 나오는 뉴스는 반드시 전두환 대통령 소식이라는 뜻)로 계승됐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취임 후 첫 주말인 지난 14일 서울 중구 퇴계로 남산골한옥마을을 방문, 주변을 산책하고 있다. (사진=독자 제공/연합뉴스)


그리고 이런 왕조의 잔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은 ‘공주님’으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태종’이나 ‘정조’로 인식되며 여전히 한국 정치의 퇴행적 흐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청와대’ 이전은 역대 대통령에 대한 ‘왕조’ 논란을 끊어내기 위한 시도라는 점에서 평가받을 만합니다. 정치의 영역을 왕과 백성들의 주종관계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닌 ‘1급’ 공무원과 국민들의 수평적 계약 관계 속에서 접근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윤 대통령의 주말 광장시장과 백화점 방문도 왕의 민생 ‘시찰’이 아닌 ‘중년 부부의 일상’이라는 점에서 바라볼 필요도 있습니다. 

이 또한 청와대 정무라인이 ‘대통령의 탈권위주의 행보’ 메시지를 강조하려는 ‘스핀닥터링’이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도 대통령 부부의 ‘장보기’가 더 이상 ‘정치적 간보기’가 아닌 주말 쇼핑을 하는 평범한 중년 부부의 삶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메르켈 전 독일 총리가 일주일마다 단골 마트에서 시장을 보는 것이 독일에서는 뉴스가 안 되지만 한국에서는 ‘기행’으로 받아들여질 만큼 우리에게는 아직도 ‘임금님의 행차’에 대한 잔상들이 남아 있고 그것은 언론의 ‘클릭 장사’에 의해 확대 재생산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대통령을 더 이상 ‘왕’이 아닌 ‘공무원’으로 받아들일 때가 되었습니다. ‘탈 권위’는 대통령뿐 아니라 국회의원 ‘금배지’들에게도 해당됩니다. 각종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 과다한 의전 등 세금으로 받을 수 있는 온갖 혜택을 ‘일반인’ 수준으로 낮춰야 합니다. 그래서 국회의원이 권력을 누리는 자리가 아닌 국민들에게 봉사를 하는 ‘어려운’ 자리라는 것을 인식시켜야 합니다.


 

윤 대통령의 소탈한 행보는 당분간 뉴스의 중심에 설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앞으로도 주변 눈치 보지 않고 주말이나 시간이 될 때 ‘일반인’으로서 평범한 일상을 보낼 것이라고 합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탁현민 전 의전비서관의 잘 짜인 연출 시나리오의 주인공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면, 윤 대통령은 ‘각본 연출 주연’ 모두 자신이 내키는 대로 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주말마다 김건희 여사와 함께 떡볶이를 먹으러 가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찐 소탈’ 행보가 있습니다. 바로 ‘사람’을 보는 의식과 인식의 소탈 행보입니다. 

지금 공개된 내각 명단을 보면 항상 근엄한 자세로 학생들을 몰아세우는 ‘무서운 호랑이 선생님’이 먼저 그려집니다. 소통보다 지시를, 대화보다 복종을 요구하는 ‘꼰대’ 선생님들이 우선 떠오릅니다. 함께 잘하는 것보다 1등이 반 전체를 대표하는 ‘서울대’ 엘리트주의가 득세하지 않을까도 걱정됩니다. 더구나 검찰 출신 인사들도 대통령실 요직에 발탁되면서 모든 사안을 범죄시하고 상대를 적대시하며 강경일변도로 대응하는 ‘수사 중심’ 세계관이 지배하지 않을까도 노파심이 듭니다. ‘사람’(국민)을 계몽과 관리의 대상으로 보는 ‘임금님’이 아니라 권위주의의 색안경을 벗어던진 ‘찐 소탈왕’ 윤석열 대통령의 모습을 기대해 봅니다. 

 

(여성경제신문 5월17일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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