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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가 필요한 윤석열 내각

성기노피처링대표 2022. 4. 26.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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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오른쪽)이 14일 서울 통의동 제20 대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고용노동부와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자를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자,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 (사진=연합뉴스)


최근 공개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두고 국민의힘 일각에서도 우려스러운 반응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갤럽이 지난 19∼21일 전국 18세 이상 1천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윤 당선인의 현재 직무 수행 평가와 관련, 응답자 42%가 ‘잘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는 한국갤럽 전주 여론조사에서의 긍정 평가보다 8%포인트 급락한 수치입니다. ‘잘못하고 있다’는 전주보다 3%포인트 상승한 45%로 나타났습니다. 아직 취임도 하지 않은 대통령 당선인에 대한 긍정평가가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보다도 2%포인트 낮게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민심’이 이렇게까지 흐트러지자 신여권 내부에서도 위기의식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윤석열 당선인은 지난 3월 10일 대선승리 이후 ‘수권’ 준비로 2달여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윤 당선인이 5년 동안 국가를 통치할 뚜렷한 국정운영 철학마저 제시하지 못한 채 현안에만 끌려다니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 정권의 색채를 결정할 ‘비전’은 한낱 구호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하면서 야심차게 ‘747 공약’(연평균 7% 고성장·국민소득 4만 달러·국력 세계 7위)을 내세웠지만 말 그대로 구두선에 그쳤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라는 애매모호한 말로 국민들을 현혹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적폐청산이라는 뚜렷한 국정철학을 시종일관 추진했지만 정권재창출 실패로 국민의 심판을 받은 꼴이 돼버렸습니다. 

그럼에도 역대 정권은 자신들의 국정운영 기조를 한 단어로 정의하며 의욕적인 행보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윤석열 정부’를 떠올리면 그들이 과연 어떤 국가비전을 제시하는지 언뜻 떠오르는 것이 없습니다. ‘국민’과 ‘공정’은 윤석열 당선인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외친 주요 가치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곧 국가의 비전이나 아젠다가 될 수는 없습니다. 윤석열 당선인이 제시할 법한 아젠다를 굳이 꼽자면 ‘국가의 정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재인 정권 5년 동안 진영 간 편 가르기로 인한 정치의 실종, 이념적 편향성에 얽매인 결과로 인한 외교의 실종, 성장 없이 분배에만 올인해 파탄이 난 경제의 실종 등을 주장할 법합니다. 하지만 이 또한 보는 시각에 따라 일방적인 진영의 잣대로 재단한 정치적 공세일 수 있습니다. 

윤석열 정권의 비전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그들의 태생적인 한계일 수 있습니다. 윤석열 당선인과 국민의힘 주축들은 특정 이념이나 가치에 의해 형성된 권력집단이 아닙니다. 오로지 ‘반 문재인’ 정서를 등에 업고 급조된 일종의 정치적 이익집단입니다. 윤석열 정권의 이런 태생적인 한계는 인사에서 그 난맥상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권이 정치적 가치와 뚜렷한 지향점을 중심으로 형성된 ‘수권세력’이 아니다 보니 인사에서도 그런 기준이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윤 당선인이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를 비롯한 19명의 장관 후보자를 지명하자 정치권에서는 ‘서오남’(서울대·50대 이상·남자) 인사라는 비판이 잇따랐습니다. 윤석열 정권이 지향하는 뚜렷한 비전이나 국가운영 철학이 있었다면 19명의 총리, 장관들도 그 기준에 적합한 인사들이 다양하게 분포되었을 것입니다.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20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에 마련된 사무실로 출근하며 아들의 아빠 찬스 의혹 제기에 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정치에 빚이 없다’며 윤석열 정권의 비전 부재를 애써 부정하는 윤 당선인은 19개의 국가 운영 주요인사들 자리를 ‘내가 아는 사람’으로만 채웠습니다. 검찰 재직 시 지인들, 학교 몇 년 지기 친구들, 대형 로펌 출신 기득권 인사들, 자리욕심 많고 자기관리 철저한 예스맨 관료 등의 ‘아는 사람’들이 들어섰습니다. 그마저도 서울대 출신의 50대 이상 남자가 대다수이고 고작 3명의 구색맞추기 용 여성 장관 후보자가 있습니다. 윤 당선인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단일화를 하면서 ‘공동정부’ 수준의 협치를 할 것이라고 공언했습니다. 하지만 장관 후보자 가운데 단 한 명도 안철수 대표 추천 인사를 기용하지 않았습니다. 윤 당선인은 “인사 원칙에 부합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라며 단칼에 협치와 협력의 싹을 잘라버렸습니다. 

윤 당선인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효율적인 정부, 능력 있는 정부를 만들고 싶다’며 인사에서도 최고의 능력을 갖춘 사람만을 기용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람 욕심이 많다’는 긍정적인 반응도 있지만 이런 ‘능력 제일주의’는 최대의 영업이익을 가져다주는 기업의 인사에는 효율적일지 몰라도 정치의 영역에서는 마이너스 효과를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정치는 다양한 사회갈등 요소를 지혜롭게 조정하고 중재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획일성보다 균형과 조화를 통한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를 정치가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독단과 획일성의 폐해가 우리 사회에 남긴 상처는 너무도 큽니다. 

최근의 기업 트렌드 또한 ESG경영(Environment Social Governance의 머리글자를 딴 단어로 기업 활동에 친환경, 사회적 책임 경영, 지배구조 개선 등 투명 경영을 고려해야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할 수 있다는 철학을 담고 있다)과 함께 인사에 있어서도 능력 일변도보다 균형과 다양성을 우선시하는 것이 기업실적에 더 도움을 준다는 각종 연구보고도 많습니다. 어릴 적 오징어게임을 하면서 다소 약한 친구를 ‘깍두기’로 끼워 넣어 함께 어울리는 놀이 문화도 ‘동행’의 실천적 의미입니다. 이런 점에서 최근 윤석열 당선인이 보여준 19개 총리 장관 자리 인사는 시대정신에도 역행하는 퇴행적인 리더십입니다. 

능력만 우선시하는 인사 원칙을 강조하다 보니(그 능력마저도 다분히 자의적인 기준으로 검증된 것일 수 있다), 현재 드러나고 있는 장관 후보자들의 흠결은 그냥 ‘실수’나 ‘자기관리 미흡’ 정도로 봐주고 넘어갈 만한 사안을 넘어서는 것 같습니다. 특히 후보자 대부분이 연루된 의혹이 ‘아빠 찬스’라는 점에서 국민들에게 더 큰 상대적 박탈감을 주고 있습니다. “‘금수저’ 집안 자식이면 특별한 기회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는 불문율이 이번 윤석열 정부 초기 내각 인사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김인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1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김 후보자는 딸에 이어 아들도 아빠 찬스로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은 사실이 밝혀졌다. (사진=연합뉴스)



정호영 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자녀들은 아버지가 경북대병원장 재임 시절을 전후해 의대에 편입이 됐고 현역복무 판정을 받은 아들은 아버지가 재직 중인 경북대병원 발급 진단서를 통해 사회복무요원으로 재판정을 받았습니다. 김인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한국풀브라이트동문회 회장 재임을 전후해 본인과 딸에 이어 아들과 배우자까지 가족 모두가 재단 장학금을 수령한 사실이 드러나 큰 비판이 일고 있습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후보자는 본인이 사외이사로 있는 회사의 계열사에 취업한 아들로 논란이 됐습니다. 이 후보자의 딸은 이 후보자가 재직하던 법무법인 율촌에서 ‘체험활동’을 했습니다.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의 배우자는 본인이 설립한 회사에 아들을 감사로 등재해 논란이 됐습니다. 

이 모든 의혹이 그야말로 우연에 의해 벌어진 일이었을까요. 우리 사회 지도층 인사들은 자신의 지위와 특권을 자녀에게까지 대물림하는 것을 당연한 상식으로 생각합니다. ‘아빠 찬스’ 사례들로 초기 내각 인사가 도배가 되는 것이 그 상징적 사례들입니다. 국민들이 생각하는 공정과 정의는 기회로부터의 공정에서부터 출발합니다. 병원장 아들이 같은 대학병원에 편입생으로 들어가고 아버지가 회장으로 있는 동문회의 장학금을 딸이 수령하는 그 과정에 불법이 없었다고 할지라도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누리는 특권의식과 특혜가 ‘우리끼리는 상식’으로 포장돼 버젓이 통용되는 게 공정과 상식의 민낯입니다. 

한국 사회처럼 도덕과 공정, 정의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하는 국가도 없을 것입니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공전의 대히트를 기록하면서 베스트셀러에 올랐을 만큼 우리 사회에 공정과 정의는 넘쳐납니다. 하지만 정작 그것은 사전의 ‘빛 좋은 개살구' 단어에 불과할 뿐 실제로 사회 시스템 속에서 공정하게 작동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강자들에 의해 공정과 상식은 유린당합니다. 그것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 윤석열 정부 초기 내각의 인사 문제점이었습니다. 보수층에서조차 윤석열 당선인의 ’능력 제일주의‘ 인사의 편향성에 대한 따가운 지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장관 후보자들의 도덕성보다 오로지 능력에만 초점을 맞춘 윤석열 당선인의 인사 스타일에 대해 민심도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앞서의 갤럽 조사에서 윤 당선인이 직무를 잘못 수행하고 있다고 한 응답자 중 가장 많은 26%가 ‘인사’를 그 이유로 꼽았습니다. 윤 당선인은 국민들의 ‘공정과 상식, 정의’에 대한 역린을 건드린 셈입니다. ’능력만 있으면 부도덕한 점은 눈 감아 줄 수 있다‘는 불공정의 메시지를 윤 당선인은 연일 발신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민심은 일주일 사이에 부정평가가 8%포인트 정도 떨어질 정도로 급격하게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여론조사 지지율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출발에서 지지율이 낮으면 오히려 나중에 더 반등 여지가 있어 부담이 없다’는 등의 한가한 반응이 인수위의 대체적인 기류입니다.


 

하지만 취임도 하지 않은 대통령 당선인의 지지율이 현직 대통령 지지율보다 낮은 채 출발하는 것은 분명 민심의 위험신호로 읽힙니다. 민심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정권은 국정운영 동력이 상실되고 정치도 일방적인 독주로 흐를 위험이 있습니다. 민주당도 민심의 지원을 등에 업고 사사건건 윤석열 당선인의 국정운영에 발목을 잡을 것입니다. 최근 윤석열 당선인의 행보를 보면 느슨하다 못해 차갑게 등을 돌리려는 민심에 대해 수수방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여론조사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지만 그 흐름을 정밀하게 따라잡고 그것에 조응하려는 주도면밀한 민심 관리 대책이 필요해 보입니다. 

아쉽게도 윤석열 정부에서 그런 역할을 할 컨트롤타워도 보이지 않습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실무형 내각관리 인사입니다. 김대기 비서실장 내정자도 경제관료 출신이라 정무적 보좌기능이 약합니다. 최근 ‘서오남 인사’ 논란이나 정호영 김인철 후보자 등의 ‘아빠 찬스’ 논란에 대해서도 적극 해명하거나 과감하게 ‘정리’하는 적극적인 민심 대책이 보이지 않습니다. ‘능력과 실적으로 보여주겠다’는 묘한 아집과 불통만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윤석열 당선인은 박정희 정권 때 일한 관료들까지 두루 접촉하며 국정운영 수업을 열심히 받고 있다고 합니다. 재계 첫 방문을 포스코로 하는 등 ‘박정희 시대’에 대한 향수를 은연 중 드러내고 있습니다. 탄탄한 관료들의 일관성 있는 정책 추진이 현재의 경제발전 밑거름이 되긴 했지만 그것이 갈수록 다분화돼 가는 정보기술 사회에서도 유효할지 의문입니다. 말 잘 듣는 관료출신들을 선호하게 되면 대통령의 지시사항만 충실히 이행하는 예스맨들로 넘쳐날 것입니다. 다소 경험이 부족하더라도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인물도 ‘깍두기’로 끼워 넣어 내각을 다양화해야 합니다. 손해를 무릅쓰고라도 통합과 협치를 해야 더 효율적인 사회 시스템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것이 정치의 본령입니다. 윤석열 당선인도 ‘정치’를 해야 합니다. 

 

(여성경제신문 4월 26일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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