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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빼야 힘이 생기는 윤석열

성기노피처링대표 2022. 4. 19.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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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해 6월 29일 대권도전을 선언한 뒤 이제 10개월 차에 접어든 정치신인입니다. 이 짧은 시기에 윤 당선인 본인은 물론 한국 정치도 롤러코스트를 타고 아찔한 대선 주행을 한 뒤 겨우 출발지점에 다시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운전하는 사람이 바뀌었습니다. 승객으로 대선열차에 탑승했던 윤 당선인은 이제 기관사가 되어 5년동안 대한민국을 운전해가야 합니다. 그런데 윤 당선인이 운전대도 잡기 전에 멀미와 어지러움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야당에서는 “초짜 기관사가 무리하게 운전하다 열차를 탈선시킬 것”이라는 걱정과 불만이 벌써부터 폭주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어떤 ‘사람’일까요? 검사로서의 윤 당선인은 강직하고 권력에 저항하는 유능한 특수통으로 인식됩니다. 강자에 굴하지 않는 기개와 정의감이 인정을 받아 대통령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권력의 부정한 청탁을 단호히 거부하고 오로지 ‘법’으로만 승부하는 ‘윤 검사’에 대해 윗분들은 한편으로는 믿음직했겠지만 한편으로는 ‘통제불능’의 골칫덩어리로 인식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가 온갖 견제와 핍박을 뚫고 검찰총장직에까지 오른 배경에 출중한 능력과 리더십이 있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치인으로서의 윤석열은 어떤 유형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지난해 6월 이후 지금까지 그가 ‘정치인’으로서 보여준 퍼포먼스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타고난’ 정치적 감각입니다. 그는 민심의 주파수를 비교적 정확하게 꿰뚫는, 예민하고 영민한 정치적 촉수를 지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 때나 대선 과정에서 그는 결정적인 순간에 위기를 봉합하고 화합의 중재자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이준석 대표와의 갈등,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의 단일화도 여론의 핵심을 정확히 포착하고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내는 정치적 ‘센스’를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참모들의 조언만 듣고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평소에 정국 전체를 관통하는 맥을 정확히 꿰뚫고 그 흐름을 읽고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여러 가지 채널을 통해 백가쟁명식의 보고와 조언이 쏟아지겠지만 정치 리더는 결국 본인 스스로 한 가지를 ‘고독하게’ 선택해야 합니다. 특히 정치인에게는 ‘혼자만의 결단’이 매우 중요합니다. 최선과 차악을 ‘스스로’ 구별해내는 타고난 정치 감각과 민심의 흐름을 정확히 포착해내는 지혜로운 더듬이가 있어야 합니다. 윤 당선인 주변에 아무리 날고 기는 참모들과 엘리트집단이 많다고 해도 결국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내는 능력은 리더 본인에게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윤석열 당선인은 정치 재능을 어느 정도 타고난 것 같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윤 당선인의 리더십 스타일이 소통형이 아니라 ‘지시형’이라는 것입니다. 아랫사람들의 역량과 의욕을 믿고 그들이 일을 완수해내도록 돕는 스타일이 아니라 아랫사람들이 결정을 내릴 능력이 없다고 생각해 혼자 독단적으로 지시하는 스타일이라는 것입니다. 전자가 토론을 좋아하고 참모들의 의견을 경청하며 리더의 선택을 조정해나가려고 애썼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리더십이었다면 윤석열 당선인은 본인이 최종결정한 것을 참모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그것을 확인해나가는 스타일입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사진=연합뉴스)

 

청와대 이전 이슈가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인수위 내부의 그 어떤 공식적인 토론이나 협의, 공감대 형성 없이 윤 당선인과 극히 소수의 핵심 멤버들만이 정보를 공유해 일방적으로 플랜을 공개한 경우에 해당합니다. 그렇기에 인수위 멤버들도 청와대 이전 이슈에 대해 가타부타 언급할 정보도 없고 또 ‘감히’ 당선인의 지시를 거스르는 직언을 하지도 못했습니다. 윤 당선인이 이렇게 ‘지시형’ 리더십을 점차 굳히게 된 결정적 계기는 아마도 정치입문 8개월만의 대권 쟁취일 것입니다. 

권력형 수사만 전담하면서 쌓은 정치적 감각과 국회 청문회에서 질의를 하는 여야 의원들에게 ‘대드는’ 정도의 정무적 감각은 ‘일개’ 검사라면 어느 정도 갖고 있고 또 타고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윤 당선인의 10개월 대권쟁취 성공신화는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자신만의 ‘황금열쇠’입니다. 윤 당선인에게는 자신만의 대선성공 노하우가 머릿속에 강하게 각인돼 있습니다. 그 성공의 비결은 그가 집권하게 되면 중요한 통치 ‘기술’로 원용될 것입니다. 참모들과의 토론과 협력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오로지 본인의 정치적 감각과 한정된 정보만으로 국정을 운영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윤 당선인의 리더십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의 법무부 장관 후보자 지명입니다. 이 소식을 처음 접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와 야권과의 ‘악연’을 들어 “민주당 엿 먹이기”라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장관 인사에 대해 전혀 사전에 통보받지 못했다며 사석에서 상당히 불쾌해하며 화를 낸 것으로 알려집니다. 그밖에 다른 참모진들도 윤 당선인에게 법무부 장관 후보자 리스트를 올리면서도 한 후보자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며 충격을 받은 모습입니다. 

윤 당선인은 한동훈 후보자 지명 등 자신이 직접 챙겨야 한다고 판단한 사안에 대해서는 주변에 일체 알리지 않고 단독으로 처리하는 것으로 알려집니다. 청와대 이전 이슈와 한동훈 후보자 지명은 비슷한 경우입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국민의힘과 기자들 주변에서는 “도대체 윤 당선인이 중차대한 이슈에 대해 누구의 의견을 최종적으로 듣느냐”는 질문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장제원 비서실장과 국정과 인사전반에 대해 협의하겠지만 장관 인사의 경우 주로 윤 당선인의 의중과 주변 추천을 통해 리스트를 압축한 뒤 검찰출신 인사검증팀에 통보만 하는 식이라 구체적으로 누구의 의중이 작용해 최종 장관 후보자에 지명되었는지 쉽게 드러나지가 않습니다.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사진=연합뉴스)


정치권에서는 윤 당선인의 정치적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그룹으로 ‘법조계 원로들, 윤 당선인의 오랜 지인들, 진보진영을 망라한 정치권 중진인사들’을 꼽고 있지만, 누구 하나 ‘윤 당선인을 움직이는 실세’라는 데 방점이 찍히지 않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일각에서는 청와대 이전 때처럼 ‘정치조언을 하는 점술가그룹이 따로 활동하고 있다’는 근거 없는 소문까지 무성합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이에 대해 “최근 윤 당선인 주변 가족들과 친인척들을 통해 인사 청탁이 들어가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가운데 일부에서는 ‘청탁을 받을 때 그 사람의 띠를 반드시 물어 본다’는 구체적 설까지 나오고 있다고 한다. 최근 윤 당선인의 장관 인사 후보자 일부의 파격적인 인선에 대해서는 윤 당선인만이 아는 라인이 극비의 보안 속에 움직인 것이라고 본다. 앞으로 공식 채널이 아닌 비선을 통해 또 다시 충격적인 인사나 정치적 결단이 나온다면 그 자체로 윤 당선인에게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윤 당선인의 ‘동생’으로 일컬어지기까지 하는 한동훈 후보자의 지명은 그 자체로 문제가 많습니다. 172석 민주당과의 협치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하지만 싸움도 하기 전에 링 밖에서 상대를 조롱하는 행위로 도발을 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0.73%포인트 차이로 정권을 뺏기고 ‘검수완박’으로 반전을 시도하려는 민주당에 좋은 먹잇감을 던져준 꼴이 됐습니다. 당장 국회가 공전하고 민생대책도 겉돌게 되면 국민들만 피해를 입게 됩니다. ‘검수완박’ 강행으로 민심과 이반의 기미를 보이던 민주당은 ‘한동훈 지명’으로 반대의 명분을 확실히 찾았습니다. 

한동훈 후보자에 대한 지명은 여론전에서도 실패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18일 TBS와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지난 15~16일 공동조사한 결과를 보면 한 검사장을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한 데 대해 ‘적절하다’는 43.2%, ‘부적절하다’가 44.7%로 집계됐습니다.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12.1%였습니다. 오차범위 내이긴 하지만 반대여론이 더 높습니다. 정권 출범 초기의 우호적인 여론과 기대감 등을 감안해 볼 때 한동훈 후보자 인선은 사실상 반대 의견으로 받아들여집니다.


 

‘40년지기’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지명도 윤 당선인에게는 큰 악재입니다. 민주당의 내로남불로 대통령직에까지 오른 윤 당선인은 ‘보수의 조국 사태’를 자초하면서 정 후보자를 공개적으로 두둔했습니다. 윤 당선인이 ‘부정의 팩트가 확실히 있어야 하지 않나’라는 의중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알려지자 야권에서는 “조국은 팩트가 드러나서 가족들이 70여 차례 압수수색을 당했느냐”며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정 후보자 문제는 민심의 아킬레스건인 ‘병역’과 ‘입시’문제를 정면으로 관통하고 있습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케이스와 비교할 것도 없이 정 후보자는 정치적으로 이미 사망 선고를 받은 상황입니다. 굳이 친구 입장 때문에 그를 지키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윤석열 당선인의 또 다른 내로남불입니다. 이는 민심의 격한 분노와 저항만 부를 뿐입니다. 

윤석열 당선인은 아직 10개월 차 정치신인입니다. 하지만 그는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완전히 달라진 프로의 냄새를 풍기려고 노력하는 것 같습니다. 방대한 양의 고급정보와 경호팀의 의전을 받다보면 이전의 ‘초짜’ 기억은 자연스럽게 잊힐 것입니다. 그것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윤 당선인이 정치신인의 허점을 숨기기 위해 의도적으로 강하고 세련된 프로의 색채를 나타내려 할 때입니다. 그가 지금 주변에 조언을 구하고 토론과 협치의 과정을 마치 초짜의 어설픈 행위로 인식하는 것은 아닌지, 혼자 몰래 비선의 의견만으로 전격 결정하고 단독으로 ‘통치’하는 것이 프로페셔널 한 정치로 오해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합니다. 윤 당선인이 10개월 차 신인임에도 노회하고 범접하기 쉽지 않은 ‘대통령’으로 변신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배경에는 그의 타고난 ‘정치적 달란트’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청와대 이전과 장관 인선에서 보여준 그의 리더십은 일방통행식의 지시형 스타일이었습니다. 협치와 공감이 대세인 시대정신과는 맞지 않습니다. 

골프나 악기를 배울 때 선생님들이 가장 먼저 가르치는 것이 힘 빼기입니다. 몸이 경직돼 있으면 스윙도 연주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초보에게 힘 빼기란 여간 어려운 주문이 아닙니다. 한 곳에만 집중하다 보면 온 몸의 힘을 그곳으로만 쓰게 됩니다. 힘을 적절히 안배할 여유가 없습니다. 정치입문 10개월의 윤 당선인에게도 힘 빼기가 필요합니다. 유연한 정국운영을 위해서도 자신의 힘부터 빼야 하고, 그 앞에서 감히 아무런 직언도 하지 못하는 아랫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왕’의 힘부터 빼는 겸손과 솔선수범의 자세를 보여야 합니다. 골프와 선거는 고개를 쳐드는 순간 집니다.

 

(여성경제신문 4월 19일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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