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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고문에게 ‘재수’를 허하라”

성기노피처링대표 2022. 4. 5.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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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민주당 전 대선후보가 3월 10일 선대위 해단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대선에서 석패한 172석의 더불어민주당이 좀처럼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으레 나오기 마련인 대선 패배 책임론은 윤호중 비상대책위원장 체제로 어물쩍 넘어가 버렸고, 24만표 차이라는 숫자 때문에 이재명 당 상임고문의 ‘복귀’를 오매불망 기다리는 형국이 돼 가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6월 지방선거 대응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대선을 책임졌던 송영길 전 대표가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에 우상호 김민석 의원 등 또 다른 586들이 들고 일어나 당은 급속히 내홍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 내분에 휩싸인 민주당 권력투쟁의 본질은 단순히 후보 선출 차원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대선 직후부터 민주당에 슬그머니 자리 잡은 ‘이재명 재수론’과 맥이 닿아 있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0.7%포인트 차로 아깝게 진 민주당 입장에서는 이재명 상임고문만큼 든든한 ‘차기’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5년도 더 남은 다음 대선을 위해서 민주당이 이렇게까지 ‘안전모드’로 일찍 진입해야 하는지 의아스럽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172석이라는 압도적인 의회권력의 호조건 속에서도 ‘10년 주기 정권교체론’마저도 지키지 못한 민주당의 허약한 권력토대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쇄신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민주당은 대선 패배 직후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얼렁뚱땅 윤호중 비대위원장 체제를 출범시켰고 그 퇴행적 행보에 별다른 저항이 보이지 않자 급기야 송영길 서울시장 후보라는 최악의 반 쇄신적 행보를 버젓이 추진하기까지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역시 반작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누가 봐도 대선을 총지휘했던 당 대표가 최소한의 책임 있는 행보도 보이지 않고 지방선거의 하이라이트인 서울시장 후보에 나서는 것은 대선 패배로 쇄신을 주문하는 민심에 역행하는 처사입니다. 일각에서는 “민주당에 과연 정상적인 여론형성 시스템이 작동하기는 하는가”라는 비판도 제기됩니다. 

이런 점에서 민주당은 단순한 ‘수학 정치’에 지금 취해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합니다. ‘이번 대선에서 최대치를 득표했으니 다음 대선에서도 그 정도는 해줄 것이다’라는 단순 도식적인 1차 방정식 논리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사실 이재명 대선 후보는 지난 대선에서 역대 민주당 후보 가운데 가장 많은 득표를 했습니다(1614만 7738표). 민주당에서도 이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후보의 1639만 4815표에 불과 24만여 표 차이로 패배했습니다. 민주당은 이 득표의 원동력이 바로 이재명의 ‘개인기’였다고 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선거 기간 내내 이재명 후보는 민주당 로고가 새겨진 ‘당 유니폼’을 거의 입지 않고 자신의 이름만 부각시켰습니다. 역대 대선에서 민주당이 이처럼 ‘당 색깔’을 철저하게 숨기고 선거를 치렀던 적도 없었습니다. 

당의 인기가 떨어지다 보니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있었지만 집권여당의 자존심과 책임 있는 국정운영 자세를 생각한다면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선거전문가 사이에서는 이번 대선을 평가할 때 이재명 상임고문이 역대 민주당 후보 가운데 최다 득표를 한 것에 대한 해석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그 어떤 후보보다 현안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강력한 추진력을 동시에 겸비한 이재명 상임고문의 역대최고 경쟁력에 높은 점수를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능력보다 과대평가되었다’는 점과 함께 이 고문의 최다 득표는 보수와 진보 진영이 최대치로 결집한 결과라고 해석하는 전문가도 있습니다. 

최근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 (사진=연합뉴스)



민주당이 ‘이재명’을 신줏단지 모시듯 벌써부터 ‘차기’를 내다보고 그를 재 옹립할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은 다음 대선에서도 그가 이번 선거만큼의 득표를 올려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다음 대선이 또 다시 보수와 진보의 진영 대결 극대치로 나타날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시대정신이 대선을 관통할지 그 누구도 예단할 수 없습니다. 물론 기본적으로 지닌 득표의 잠재력과 경쟁력이 지금으로서는 민주당 내에서 이재명 후보를 필적할 만한 인물이 보이진 않습니다. ‘무한질주’하는 윤석열 당선인을 견제할 유일한 구심점으로서의 이재명 상임고문 존재감을 높이 보는 지지층도 많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대선에서 패배한 장본인을 그 어떤 검증과 반성, 쇄신과 당심의 재형성 없이 무의식적으로 ‘차기 도전’ 분위기를 강제로 조성한다는 것은 또 다른 ‘무난한’ 대선 패배를 자초할 수 있습니다. 민주당은 이재명 상임고문을 둘러싸고 지난 대선 과정에서 제기됐던 다수의 ‘약점’들을 재점검해야 합니다. 개인 인성과 도덕성, 대장동 등의 심리적 ‘방벽’들이 다음 대선에서는 완전히 걷혀질 수 있을까요.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아들의 병역비리로 첫 번째 대선에서 무너졌고 ‘재수’ 도전에서도 아들의 병역비리라는 득표의 심리적 장애물을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실패했습니다. 대선주자에게 한번 형성된 강고한 심리적 주홍글씨는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강력하게 확대 재생산 될 때가 많습니다. ‘비운의 대권주자’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최근 민주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방선거 후보 선출을 둘러싼 내분은 심상치 않습니다. 한번 실패한 ‘이재명’이라는 상수를 아무런 반성이나 쇄신 없이 여전히 교조적으로 신봉하고 떠받드는 전체주의적 분위기가 아른거린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서울시장 후보로 급부상하고 있는 송영길 전 대표나 경기도지사 출마를 선언한 김동연 새로운물결 대표는 모두 이재명의 ‘사람’들입니다. 송 전 대표는 대선 과정에서 당내 연착륙이 필요했던 이재명 후보의 든든한 착근 도우미가 되어 주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재명-송영길 연대론’도 나왔습니다. 이번 서울시장 출마도 그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김동연 새로운물결 대표 또한 이재명 후보와의 단일화를 조건으로 당내 입지 확보를 약속받았다는 게 정설입니다. 이번에 김 대표가 국회에서 경기도지사 출마 선언을 할 때 이재명 상임고문의 최측근인 정성호 의원이 ‘병풍’ 역할을 하며 바로 곁에 서 있었습니다. ‘이재명의 오더’임을 노골적으로 당 내외에 선포한 것입니다. 다음 대선을 위해 마땅한 대안이 없는 당 주류가 ‘이재명 재수 플랜’을 패배 직후부터 가동하기 시작한 것이 ‘송영길-김동연 수도권 바람 일으키기’로 나타난 것입니다. 두 사람이 꺼졌던 ‘이풍’(이재명 바람)을 지방선거에서 되살려 차기 주자의 교두보를 확실하게 쌓아놓겠다는 의도입니다. 

 

김동연 새로운물결 대표. (사진=연합뉴스)


사실 ‘친 이재명’ 세력은 민주당의 주류가 아닙니다. 하지만 대선을 치르면서 민주당은 급속도로 ‘친이’ 세력으로 재편됐습니다. 이재명 당시 후보가 선대위를 해산하고 슬림화하며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당 색깔도 ‘이재명’으로 변해갔습니다. 민주당을 완전히 이 상임고문의 색깔로 재단장하는 것이 ‘이재명 재수론’의 1차 목표인 것입니다. 그 첫 번째 단추가 윤호중 비상대책위원장 체제라는 ‘미봉책’이었고 그 다음이 이 상임고문의 최측근 박홍근 의원의 원내대표 선출이었습니다. 그리고 3단계가 ‘송영길-김동연 동시출격’인 것입니다. 대선이 끝나고 불과 한 달 사이에 10년 정권교체 주기설도 지키지 못하고 패배한 민주당은 별다른 책임공방 없이 빠르게 그리고 무엇보다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이재명 체제’로 재편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졌잘싸’라는 망령 때문입니다. 지난 15대 대선에서 1.6%포인트 차로 석패한 이회창 후보나, 18대 대선에서 3.53%포인트 차로 패배한 문재인 후보 모두 별다른 저항 없이 재수에 성공한 경험칙이 이재명 상임고문에게도 무난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확률상으로나 수학적으로나 이재명만한 대안이 없다는 외통수의 분위기가 당에 팽배해 있습니다. 그 결과 민주당에서는 일체의 ‘이견’ 틈입도 허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민주당의 최대 난제입니다. 

진보진영 일각에서는 ‘자유주의적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도 나오고 있습니다. 다양성을 몰살하고 획일적이고 권위적으로 정권을 운영한 대표적인 경우가 ‘유신’이었습니다. 독재의 또 다른 의미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군사독재의 권위주의적 전체주의가 민주화운동 세력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 민주당에서 대선에 패배한 이후 지금까지 의미 있는 반성이나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 적이 없습니다. 각종 진보 커뮤니티에서도 대선 패배 책임론 제기는 당을 분열로 몰고 가는 해당행위라며 제지, 억제하는 분위기가 팽배합니다.


 

‘이번에는 아깝게 졌으니 우리가 잘못한 게 아니다’라는 의식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빨리 복수하자’는 말에 호응이 쏟아집니다. ‘패인을 냉철하게 분석해보자’거나 ‘차기 대선후보도 그라운드제로에서 다시 생각해보자’는 신중론은 발을 들일 틈이 없습니다. 내부 비판과 소수 의견이 묵살되고 일사불란한 ‘복수’의 획일성이 지금의 민주당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대선이라는 가장 큰 정치 이벤트에서 민심에 버림받은 민주당의 선택 치고는 너무도 안일하고 비 개혁적인 대응입니다. 

지방선거 준비를 구실로 당 색깔을 빠르게 ‘이재명’으로 재 도색하는 것은 단순히 이 상임고문의 차기 재도전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당에서 분출하는 대선 패배 책임론을 질서 있게 막아내는 훌륭한 출구전략입니다. 동시에 이재명 상임고문에 대적할 차기 주자의 부상도 억제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재명 상임고문 측의 부인에도 당 내에선 “이 고문이 ‘서울 송영길, 경기 김동연’ 카드를 직접 정리했다”는 등의 ‘막후 역할설’이 번지고 있습니다. ‘지방선거를 명분으로 친 이재명계가 당을 접수하려고 한다’는 저항도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질서 있는 패배 수습’ 분위기에 막혀 흐지부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대표적 ‘86세대 정치인’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은 대선이 끝나고 정계은퇴를 선언했습니다. 그는 정치판을 떠나면서 “이제 민주주의, 통일, 기득권 타파 등 거대담론의 시대가 아니라 생활정치의 시대가 되었다. 나는 거기에 적합한 정치인인가 자문자답을 해봤다”라고 소회를 밝혔습니다. 민주당이 목숨처럼 간직하며 끝없이 ‘표’를 소구했던 가장 핵심적인 ‘가치’에 대해 김 전 장관은 쓴 소리를 남겼습니다. 민주당의 ‘고질병’을 직시하고 용기 있게 ‘고해성사’를 하는 ‘내부자’가 많아져야 그들에게도 미래가 있습니다. ‘이재명의 재수’에 자락을 깔기 위해 그 어떤 이견도 허용하지 않는 교조적이고 전체주의적인 분위기가 지배하는 민주당에 미래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이재명의 재림’만으로는 또 다른 대선 패배가 기다릴지도 모릅니다. 

(여성경제신문 4월 5일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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