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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당선인이 ‘용산’에 꽂힌 까닭

성기노피처링대표 2022. 3. 22.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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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회견장에서 대통령실 용산 이전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연합뉴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3월 10일 대선 승리를 확정짓고 대통령 당선인으로 활동한 지 이제 열흘 남짓 흘렀습니다. 그 사이에 경천동지, 천지개벽이 국민들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윤 당선인은 대선 공약 중 하나였던 청와대 이전 문제를 가장 먼저, 가장 힘차게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광화문으로의 이전은 ‘국민에게 재앙’이라며 갑자기 용산의 국방부에 ‘방 비우라’고 통보하고 청와대 이전을 확정했습니다. 불과 열흘 만에 70년 역사의 청와대가 창졸간에 사라져버리게 생겼습니다. 청와대 용산 이전은 인수위 활동마저 순식간에 빨아들이는 거대한 ‘블랙홀’로 떠올랐습니다. 이 논란의 본질에 한발 더 다가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청와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일까요. 대통령이 사는 물리적 공간이지만 크고 긴 철제 담장이 상징하는 것은 단순한 거주지의 의미를 넘어섭니다. 일반인의 접근을 철저하게 통제하는 청와대는 몇 해 전만해도 접근 차량에 일일이 검문검색을 실시하기도 했습니다. 왠지 위압적이고 오만한 냄새가 물씬 풍깁니다. 이렇듯 청와대는 국민들에게 친근함으로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복종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청와대는 국민들에게 영내 개방을 무슨 특혜 베풀 듯 ‘예약제’로 운영했습니다. 누구나 편한 시간에 관람하는 국민이 주체가 아닌 경호실이 관리하기 편한 청와대가 주체였던 것입니다.

시골에서 올라오는 촌부들은 ‘임금님’의 ‘궁궐’을 몇 분간 보여주는 것에 감읍해하며 동네 자랑하기 바빴습니다. ‘청와대 시계’는 권력과 얼마나 가까운 사람인지를 상징하는 척도가 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청와대는 이렇게 국민들의 삶과는 동떨어진 채 그들만의 성을 굳건하게 쌓아왔고 정작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 1조는 청와대 앞에서 무기력하기만 했습니다. 청와대 근처를 지나는 국민들은 경호원들의 미심쩍은 눈초리에 눈치를 봐야 했고, 그런 묘한 기분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철벽 같은 성에서 군림하는 단 한 사람으로부터 나온다’는 복종의 DNA가 우리 몸속에 은연 중 자리 잡았던 것입니다.

지금의 청와대는 철저하게 대통령 1인을 위한 건물입니다. 미국 백악관의 3배에 달합니다. 미국 영토는 한국의 100배입니다. 그들이 땅이 없어서 청와대보다 작게 백악관을 지었겠습니까. 청와대는 북한의 기습공격에 대한 방비의 성격이 더해지면서 점차 ‘벙커화’돼 갔습니다. 대통령을 북한의 위해·위협으로부터 보호한다는 구실로 참모들마저도 철저하게 격리되는 구조로 만들어졌습니다. 대통령 집무실은 비서동과는 500m 떨어져 있고 걸어서 10분이나 걸립니다(탁현민 의전비서관은 뛰어서 30초라고 합니다). 대통령 한 명을 지키기 위해 청와대 주변을 무려 3000여 명의 군인과 경찰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물론 북한과 ‘휴전’ 상태인 특수한 상황이긴 하지만 경호를 위한 경호에 집착한 측면이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 후 집무실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로 옮기는 계획을 확정하면서 그에 따른 집무실과 주변 공간 구성 방안에 관심이 쏠린다. 사진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회견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공개한 용산 대통령 집무실·시민공원 조감도. (사진=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대변인실 제공)

 

참모가 결재를 위해 세종시 출장 가는 마음으로 대통령 집무실로 향하는 그 물리적 거리는 대통령과의 수평적 만남을 가로막는 장벽이었습니다. 어렵게 발걸음을 떼서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쉽게 말문이 트일 것 같지도 않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역대 정권에서는 집무실 이전을 검토하다가 번번이 포기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런 청와대의 부정적인 기능 때문에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고 했다가 결국 포기했습니다. 이 말은 현재 민주당이 결사반대를 하고는 있지만 ‘청와대 이전’이라는 이슈 자체에 대해서는 거부할 명분이 약합니다.


보수층에서는 바로 이런 점들 때문에 윤석열 당선인의 청와대 이전 추진에 대해서는 호의적입니다. 여기에다 문 대통령이 ‘공약’했다가 물러난 이전 문제를 윤 당선인이 ‘반드시 약속을 지키겠다’며 실천하는 의지를 보인 것도 긍정적이라고 평가합니다. 무엇보다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역대 정권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윤 당선인이 그것의 ‘본산’인 청와대를 해체하려는 의지 또한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호의적 해석만으로 청와대 이전 문제를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 윤 당선인이 차기 권력으로 확정된 지 불과 열흘이 지났습니다. 이 사이에 국가백년대계라고 할 만한 청와대 ‘재편’이 전격적으로 확정됐습니다. 야당에서는 졸속이라는 단어도 부족하다며 결사투쟁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청와대라는 권부가 용산으로 옮기게 되면서 야기될 사회문제와 변화는 한둘이 아닐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을 검토할 수는 없지만 국가안보와 민생이 직결된 사안은 세심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윤 당선인은 수많은 비판과 문제제기에 완전히 귀를 닫고 독단적으로 밀어붙이는 ‘불통’의 행보를 보였습니다. 그 ‘불통’ 논란은 단독 브리핑 45분이라는 이례적인 서비스로 ‘퉁’ 쳐버렸습니다. 긴가민가하던 청와대 이전 분위기는 윤 당선인이 확정 발표를 하자 부지불식간에 현실이 돼 버렸습니다. 불과 며칠 사이의 검토와 협의로 청와대 이전 문제를 초스피드로 확정한 이유에 대해 윤 당선인은 “한번 청와대에 들어가면 결정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까지 집무실을 야반도주하듯 급하게 옮기려는 배경에 “국민들과의 소통 강화”라는 대외발표용보다 말 못할 속사정이 있을 것이라는 의혹도 나오고 있습니다.

‘건진법사’와 ‘손바닥 왕(王)자’ 논란으로 무속정치 논란에 휩싸였던 윤 당선인을 향해 점술가나 부인 김건희 씨의 풍수지리 조언에 ‘묻지마 이전’을 하려는 것 아니냐는 반응도 난무합니다(이 문제는 필자의 2월 1일자 칼럼 “도사님, 청와대는 어디로 옮길까요?”에 자세하게 소개한 바 있습니다). ‘배산임수’라는 천혜의 지리적 요건을 두루 갖춘 용산은 재벌가들의 자택이 모여 있는 길지이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일각에서는 ‘윤 당선인이 청와대 이전을 검토할 때부터 광화문이 아니라 용산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0일 대통령실의 용산 이전을 공식화하면서 70년 넘게 권력의 정점 바로 옆에서 그 명멸을 지켜봐 온 청와대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사진은 20일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될 용산 국방부 청사(윗 사진) 모습과 청와대 자료 사진. (사진=연합뉴스)



사실 윤석열 당선인이 ‘청와대 용산 이전’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 진의를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정치적 시각에서 보면 윤 당선인은 자신만이 청와대 이전을 추진할 수 있다는 일종의 소명의식이나 특권의식이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비정치적 인물입니다. 전통적 정치공식으로 대통령에 오르지 않은 유일한 사람입니다. 여의도 문법의 상징인 청와대도 자신만이 해체할 수 있다고 믿었을 것입니다. 형식과 명분에 집착해 밤새워 싸우는 비생산적인 정치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청와대 해체라는 초강수가 필요했을 법도 합니다.

또한 비정치인의 눈에 비친 청와대는 형식과 권위, 위계질서만이 난무하는 가장 비효율적인 공간이라고 처음부터 생각하고 있었지 않았을까요. 몇 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자장면 시켜먹으며 밤새워 수사하는 것이 몸에 밴 검사 출신의 눈에 비친 청와대는 너무나도 이질적인 공간이었을 것입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바로 옆에 있는 수사관을 통해 확인을 할 수 있는 사무공간에 익숙한 그에게 ‘뛰어서 30초’도 억겁 같이 긴 시간으로 인식되었을 수 있습니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과의 일종의 라이벌 의식도 작용하지 않았나 유추해봅니다. 그는 비록 문 대통령에 의해 검찰총장에 낙점됐지만 '한 번도 사람에 충성해본 적이 없다'고 일갈할 만큼 자존심이 센 인물입니다. 정치에서도 문 대통령에 꿀릴 게 없고 문 대통령이 해내지 못한 청와대 이전을 ‘나는 할 수 있다’며 밀어붙였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정치적인 분석보다 ‘무속적’인 시각이 시중에는 더 많이 퍼져 있습니다. 한 정치 관계자는 이에 대해 “윤석열 당선인이 점술인들의 조언과 ‘지시’ 덕분에 대통령 권좌에까지 올랐다. 그들의 예언이 모두 적중한 것을 몸으로 경험한 윤 당선인 입장에서 ‘청와대 터가 좋지 않다. 용산으로 옮겨라’는 조언을 안 들을 이유가 없다. 앞으로도 무속정치에 대한 의혹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국민들은 윤 당선인이 추진하는 청와대 용산 이전에 대해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리얼미터는 청와대 이전 문제로 논란이 일던 기간인 14∼18일까지의 민심을 조사해 발표했는데(전국 18세 이상 2521명 조사) 응답자의 49.2%가 윤 당선인이 국정 수행을 ‘잘할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이는 3월 2주차(10일∼11일) 조사 당시(52.7%)에서 3.5% 포인트 하락한 수치입니다. 급격하게 기대감이 하락한 것은 아니지만 청와대 이전 논란이 민심에도 부정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윤석열 당선인은 청와대 이전에 정치적 명운을 건 모습입니다. 취임도 하기 전에 이 문제에 올인을 했습니다. 퇴로마저 기자회견으로 불살라 버리고 밀어붙이기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천문학적 예산 문제, 국방 공백 사태, 용산·강남권 민생 침해 가능성 같은 굵직한 문제점들이 매일 쏟아져 나옴에도 끄떡도 하지 않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인수위 내부에서도 단 하나의 이견도 표출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서울 도심 생활권과 국가 수도 기능 재편이라는 백년대계를 불과 열흘 만에 결정짓고 외눈질주를 하고 있습니다. 이전 후 파생되는 문제의 대비책 수립은 뒷전이고 일단 옮겨놓고 보자는 논리는 위험천만한 발상입니다.

세간에서는 ‘무속정치에 경도되지 않고서야 어떻게 백주대낮에 이런 큰 계획이 그냥 확정되는 것이냐’는 말들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습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까지 ‘일단 청와대를 리모델링해서 사용하고 민관정합동위원회 같은 협의체를 통해 충분히 국론을 수렴해서 결정해도 늦지 않다’는 신중론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여권에서는 “의욕이 충만한 대통령 당선인을 한번 밀어주자”는 분위기도 있지만 대체로 ‘반대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반응도 많습니다.

하지만 윤 당선인은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말에 꽂혀 있는 듯 보입니다. 아닙니다. ‘공감’이 의식을 지배해야 합니다. 국민통합보다 더 좋은 개혁이 있을까요. 반대 세력과의 소통을 통해 합일점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바로 정치입니다. 윤 당선인은 바로 그 지난한 과정의 초입에 서 있습니다. 청와대 이전은 이제 윤석열 정권의 소통 바로미터가 돼 버렸습니다. 섣불리 일방독주 했다가는 이명박 정권의 촛불정국을 재현하는 트리거가 될 것입니다. 윤 당선인은 ‘청와대가 단 한 사람만의 권력자를 위해 존재했기 때문에 해체하려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선의가 뒤바뀌어 이제는 단 한 사람을 위한 결정으로 5천만 국민이 불편해질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최고의 개혁은 통합이지 독주가 아닙니다.

 

(여성경제신문 3월 22일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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