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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동대문을 민병두 공천 탈락… '조국백서' 김남국 전략공천하나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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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동대문을 민병두 공천 탈락… '조국백서' 김남국 전략공천하나

성기노피처링대표 2020. 3. 5.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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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이 5일 '미투' 논란으로 정밀심사 대상에 오른 3선 민병두<사진> 의원을 공천 배제하기로 했다. 민 의원 지역구인 서울 동대문을은 전략공천 지역으로 지정했다. 

민주당 공천관리위원회는 이날 오전 회의를 열고 동대문을을 포함해 서울 강남병, 경기 안산 단원을, 군포갑·을, 전남 순천 등을 전략선거구로 지정했다. 공천위는 "동대문구와 강남병, 경기 안산단원을 지역은 청년 우선 전략선거구로 지정하기로 의결했다"고 했다.


민 의원 지역구에는 금태섭 의원 지역구인 서울 강서갑에 공천 신청을 해 논란을 빚었던 김남국 변호사 공천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김 변호사는 '조국 수호 집회'에 앞장서온 친문 인사다. '조국 백서' 저자인 김 변호사는 당초 금 의원과 경선을 주장했으나 작년 9월 조국 전 법무부장관 사태 때 조 전 장관을 비판한 금 의원에 대한 '자객 경선' 논란이 일면서 민주당 지도부는 김 변호사를 전략 공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민 의원은 지난 2018년 3월 한 여성이 10년 전 자신을 성추행했다고 폭로하자 의원직 사퇴를 선언했다가 번복하고 그해 5월 사퇴 의사를 철회했다. 이후 국회 정무위원장을 맡았다. 하지만 미투 논란이 총선 때 다시 불거질 수 있다고 보고 민주당이 공천 배제를 결정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민 의원은 즉각 입장문을 내고 "지난 1월 당 최고위에서 적격 판정을 내렸고, 의정활동평가·적합도조사·경쟁력조사에서 어떤 하자도 없는데 공천에서 배제시키는 것은 당헌·당규에 부합하지 않는다"면서 "(공천 배제) 결정이 부당하다고 보고 재심을 신청할 것"이라고 했다. 

 

국회 정무위원장인 민 의원은 이로써 경기 의왕·과천 신창현 의원, 경기 고양을 정재호 의원, 충북 청주 서원 오제세 의원, 경남 김해을 김정호 의원에 이어 현역 의원 중 다섯 번째로 컷오프됐다. 미투의 후유증이 3선의 중진의원을 공천배제 시킨 셈이 됐다. 

 

민병두 의원은 성균관대학교 무역학과를 졸업한 뒤 두 차례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전국조직을 결성하여 민주화 운동의 선두에 서서 헤쳐 나가다 치안본부 대공분실ᆞ안전기획부 등에 끌려가서 고초를 겪고 두번 투옥되면서 4년 가까이 복역했다. 경기고등학교 재학 시절 ‘주간경기’라는 타블로이드 신문을 만들면서 글쓰기에 재미를 붙였으며, 이는 향후 기자생활의 원동력이 되었다. 대학 졸업 후 월간 잡지사에서 발굴기사 등을 다루는 것으로 기자생활의 첫 발을 내디뎠다. 우리나라 최초의 만화대중지인 '만화광장' 창간멤버이다.(그래서 만화계 출신 최초의 국회의원으로도 불린다) 이 후 일간지 ‘문화일보’에서 정치부ᆞ과학부ᆞ국제부에서 기자로서 취재활동을 했고 워싱턴 특파원, 정치부장, 야당반장, 국회반장을 역임하였다.

이러한 전략적 능력을 인정받아 2004년 열린우리당 창당시 영입되었고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총선기획단 단장으로 활약하면서 총선을 성공적으로 이끈 후 제17대 국회에 초선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등원하면서 정치인으로서의 첫 발을 내디뎠다. 17대 국회에서 본회의 100프로 출석등 성실한 의정활동과 함께 아시아문화중심도시지원법 문화예술교육지원법 평생교육법 제정을 통해 국민의 문화향유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등의 입법활동을 활발히 하였다. 특히 운동권 출신임에도 선거기획전략에 뛰어나 한때 당내 최고의 전략전문가로 이름을 날렸다. 학생 운동권 때의 기획력이 이때 발휘된 셈이다. 


그는 초선의원으로는 보기 드물게 전략기획본부장, 홍보기획본부장, 열린정책연구원 수석부원장,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 등 당내 핵심 요직을 거치며 정책통, 전략가, 논객이라는 별칭을 얻었고 지금도 이 수식어를 달고 다닌다.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당시 야권의 불모지였던 동대문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나 당시 현역인 홍준표 의원에게 지면서 낙선했다. 잘 나가던 그는 강적이었던 홍준표 의원에 패한 뒤 절치부심했다. 여의도에 다시 등원하기 전까지 절대 강남으로 가는 다리를 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지역구 관리에 올인을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4년 동안 맨발로 지역구 구석구석을 누비며 재선의 꿈을 키웠다.

 

그 결과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때 당시 여당 대표에서 물러난 직후의 홍준표 후보와의 리턴매치에서 승리해 최대 이변을 낳았다. 당시 여당 후보였던 홍준표 후보는 낙선이 확실시 된 후 자신의 트위터에 “30년 공직생활을 마감합니다”라는 글을 남기며 정계은퇴 선언을 할 정도였다.

 

19대 총선 당시 홍준표 대표와 민병두 의원. 

 

그는 소선거구제가 부활한 1988년 이후 동대문을에서 최초의 민주당계열 국회의원으로 원내에 진출하면서 여러 족적을 남겼다. 2012년 대선 직후에는 경제민주화ᆞ복지확대등 대선 당시 양당의 약속 중 공통 사항을 이행하자고 제안해 경제민주화의 입법적 물꼬를 텄다. 일감몰아주기 금지법, 편의점 및 프랜차이즈 불공정 해소법 등 경제민주화를 제도개선에 앞장섰으며, 상가권리금을 최초로 법제화한 바 있다. 차명거래를 금지하는 금융실명제법 개정안을 21년만에 통과시켰다. 

 

2014년에는 을을 위한 정당이라는 전략지도를 제시했고 이를 위한 특별위원회 명칭으로 을지로위원회를 제안해 오늘날 민주당의 대표 브랜드가 되게하는 데 일조했다. 민주정책연구원 원장으로 국내 최초로 정책엑스포를 주도하였으며, 유능한 경제정당ᆞ든든한 안보정당이라는 진로를 제시했다. 또 이때 펴낸 '새로운 진보정치' '수권정당의 길'을 통해 정체성에 기반한 확장주의와 집권 로드맵을 담아 당이 어려운 사정임에도 향후 당이 나아가야할 길을 제시했다는 호평을 받는다.




2016년 총선에서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선정한 경제민주화, 양극화해소 디딤돌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제 20대 총선에서도 빼어난 의정활동과 지역활동을 바탕으로 상대후보를 큰 차로 압승하여 야당출신으로 동대문을에서 최초로 3선 국회의원 고지에 올랐다. 국회 정무위에서 계속 활동하며 보훈업무지원ᆞ국민권익신장ᆞ공정거래ᆞ금융정의를 위한 노력을 하고있다.

 

하지만 그는 안희정, 정봉주 등 정치인의 미투 폭로가 나오던 2018년 3월 10일, 탐사보도언론 뉴스타파에 의해 미투 의혹이 폭로되면서 최대 위기를 맞는다. 

해당 보도가 나가고 약 1시간 30분 후, 의원직을 내려놓겠다고 선언하였다. 민 의원은 성추행은 사실이 아니지만 “정치를 하면서 한 인간으로서 제 자신에게 항상 엄격했다. 제가 모르는 자그마한 잘못이라도 있다면 항상 의원직을 내려놓을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퇴 선언 이후, 민병두의 아내 목혜정 역시 의원직 사퇴에 동의한다고 밝히면서 남편들 두둔했다. 이후 민 의원은 3월 12일부로 국회의장실에 사퇴서를 제출하였다.

 

의원직 사퇴를 철회한 민병두 민주당 의원이 2018년 5월 14일 국회 본회의에 참석하며 동료 의원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당시 민병두 의원은 국회 사무실 보좌관들이나, 지역구인 동대문구 의원실에서 근무하던 보좌관들을 모두 내보냈고, 지역구인 동대문에 위치한 한 성당에서 자숙 중이라는 근황이 전해지기도 했다. 그때 그가 진심으로 정계은퇴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미투 운동이 잠잠해 질 때까지 자숙하다가 나중에 다시 자신이 필요해질 때를 노리는 것이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결과론적으로 그의 의원직 사퇴서는 처리되지 않았고, 그는 2018년 5월 4일 의원직 사직서를 철회했다. 사퇴서제출-자숙의 정치적 수가 사직서 철회로 이어졌고 그는 끝까지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2019년 1월 19일 TV조선 강적들 프로그램에 출연해 '나 정치하기 싫다'라는 언급을 해 논란이 됐다. 3선 의원으로서 초선 때 보였던 긴장과 패기가 사라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현실 정치에 대해선 제가 관심이 좀 떨어졌다'는 언급으로 지역구 주민들에게 실망감을 안겼다. 미투의 후유증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지만 그는 정무위원장을 맡아 데이터 3법 처리 등 일정한 성과를 남겼지만 결국 미투의 벽을 넘지 못했다. 차라리 2018년 의원직 사퇴를 하고 정계를 깨끗이 은퇴했으면 자신의 결정에 책임을 지는 정치인으로 남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이번에 공천에 탈락한 뒤 곧바로 재심을 청구하며 미련을 보였다. 금배지의 유혹은 그 어떤 정치적 신념보다도 더 강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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