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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노 칼럼] ‘윤석열-한동훈 권력 대 충돌’ 약속대련일까, 실전일까

성기노피처링대표 2024. 1. 23.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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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4년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사진기자단 제공)

 


총선을 80여 일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습니다. 한 비대위원장이 취임한 지 한 달째 되는 날인 지난 1월 21일 대통령실은 한 위원장에게 사퇴하라는 요구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에 한 위원장은 당 공식 입장문에서 “국민 보고 나선 길, 할 일 하겠다”고 사퇴 요구를 일축했습니다.

아무리 총선이 중차대한 정치 이벤트이지만 이렇게 대놓고 대통령 권력과 집권당 권력이 정면충돌 양상을 보이는 것은 역대 정권 그 어느 곳에서도 노정되지 않았던, 일종의 ‘대사변’입니다. 먼저 이관섭 비서실장이 서울 모처에서 한 위원장에게 사퇴하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입장을 전했다는 이야기가 여권 고위 관계자의 입에서 흘러나왔습니다. 

또한 ‘친윤계’ 의원들 몇몇도 이관섭 비서실장과 함께 한 위원장에게 비대위원장직에서 사퇴하라고 요구를 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이 자리에서 여당 주류 인사들은 김경율 비상대책위원 ‘자객 공천’을 한 위원장 개인 정치용 ‘사천’이라며 사퇴를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대통령실 비서실장과 친윤계 의원들이 우르르 몰려가 한동훈 비대위원장을 앉혀 놓고 ‘사퇴 조리돌림’을 했다는 게 이번 권력 충돌의 골자인데 그 과정과 내용이 상당히 파격적이라 기괴하고 충격적으로 다가옵니다. 

일단 정치권에서는 대통령실과 한 위원장의 충돌 이유를 김건희 여사 명품 백 수수 의혹 대응과 한 위원장의 김경율 비대위원 ‘사천’ 논란이 중첩되면서 ‘용산의 꼭지가 돌아버린’ 것이라는 견해가 많습니다. 먼저 명품 백 수수 의혹 문제를 짚어보겠습니다. 한동훈 위원장은 이 문제에 대해 처음에는 ‘함정 몰카’ ‘정치 공작’이 본질이라며 김 여사를 두둔하는 모양새를 취했다가 최근 며칠 사이 “분명히 아쉬운 점이 있고 국민이 걱정하실 만한 부분이 있었다” “국민 눈높이에서 생각할 문제”라며 그간의 강경 입장에서 민심 쪽으로 살짝 각도를 틀었습니다. 한 위원장이 갑자기 ‘형님 부부’에게 공격적인 자세를 취했던 것입니다. 

대통령실은 한 위원장의 ‘태세 전환’에 분기탱천했습니다. 대통령실은 그동안 ‘명품 백 의혹’에 대해 ‘뭉개기’로 일관하다가 사건이 불거진 지 두 달 만인 1월 19일 처음으로 구체적인 해명을 내놓았습니다. 이날 대통령실은 “재미 교포 목사가 김 여사 선친과의 인연을 앞세워 의도적으로 접근했다. 치밀한 기획 아래 영부인을 불법 촬영하는 초유의 사태”라고 공박했습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월 17일 오전 서울 마포구 케이터틀에서 열린 서울시당 신년인사회에서 김경율 비상대책위원과 포옹하며 주먹을 쥐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이는 한 위원장이 강조한 ‘국민 눈높이’와 전혀 부합하지 않는 ‘동문서답’이었습니다. 국민들은 김 여사가 몰카의 희생자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윤 대통령 취임 직후 관저에서 버젓이 명품 백을 수수할 정도로 대담하고 노골적으로 ‘국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에 대해 대통령실이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해명을 하라고 요구합니다. 그럼에도 대통령실은 김 여사 명품 백 수수 의혹의 본질은 피해 가면서 그가 몰카의 희생자라고만 강조하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대응을 했습니다. 

대통령실이 갓 취임한 한 위원장에게 힘을 실어주려면 ‘사과 표명’을 암시할 만한, 이전보다 전향적인 태도를 보일 수도 있었겠지만 대통령실은 한 위원장 ‘멘트’와 정반대 이야기를 내지르며 한 위원장에게 기분 나쁜 티를 의도적으로 표출했습니다. 이때부터 용산 대통령실과 한 위원장 사이에 불편한 기류가 형성됐다는 분석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대통령실과 한 위원장이 ‘동행’ 한 달 만에 이렇게 난데없이 ‘끝장내자’는 쪽으로 과격하게 방향타를 틀어버린 이유가 왠지 석연치 않습니다. 일단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먼저 대통령실이 이번에 들고 일어난 원인이 한동훈 위원장의 총선 관련 ‘사천’ 논란이었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비대위원장에 취임하고 몇 주가 흘러도 ‘윤석열 아바타’ 프레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던 한 위원장은 ‘집권’ 한 달여가 돼 가던 지난 1월 17일 묘한 장면 하나를 연출하며 어깨에 잔뜩 힘을 주었습니다. 

한 위원장은 국민의힘 서울시당 신년 인사회에서 김경율 비대위원이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지역구인 마포을에 출마한다고 소개하며 장내를 후끈 달아오르게 했습니다. 김 위원의 손을 한껏 추켜세우는 한 위원장의 얼굴은 달떠 있었고 모처럼 ‘윤석열 인형극’에서 벗어난 듯 흥분돼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 장면은 대통령실의 강한 반발을 불렀습니다. “한동훈이 용산을 제치고 공천을 좌지우지한다”는 사천 논란이 당 내부에서 폭발했고, 집권 2년 만에 ‘뒷방 늙은이’로 전락하게 생긴 윤석열 대통령으로서는 참을 수 없는 수치심을 느꼈을 수 있습니다. 평생을 ‘내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인생철학으로 일관해 온 윤 대통령 입장에서는 ‘어린 동생’에게 한 달 만에 탈탈 털려 밀려난 뒤 ‘꿔다 놓은 보릿자루’로 전락할 처지에 자존심이 팍팍 상했을 것입니다. 

 

 

제78차 유엔 총회 참석과 세계 각국 정상들과의 양자회담 일정을 소화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9월 23일 성남 서울공항을 통해 귀국, 공군 1호기에서 내린 뒤 김건희 여사와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전 칼럼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한동훈 위원장을 당 ‘대표’로 밀어주면서 한 가지 변수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윤 대통령이 이번 총선 공천을 완전히 장악해 현재 권력의 안정화에 방점을 찍느냐, 아니면 한 위원장에게 대폭적인 공천 재량권을 줘 미래 권력 준비기로 할 것이냐 하는 점입니다. 

총선에서 자기 사람을 많이 심은 쪽이 대통령 후보 선정에도 결정적인 선취권을 가지는 만큼 한 위원장으로서는 이번 총선 공천이 ‘대권가도 선점’ 면에서 피할 수 없는 유혹이었을 것입니다. 반면 윤 대통령으로서는 이번 공천이 ‘김건희 여사 보호’와 후반기 권력 안정화를 위해 절대 내놓을 수 없는 기득권입니다. 이렇게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정면으로 대 충돌하면서 양측의 권력 갈등이 ‘김경율 자객 공천’ 문제로 조기 촉발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다 김경율 비대위원이 지난 17일 프랑스 혁명과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치 등을 언급하며 김건희 여사의 사과를 요구한 것도 대통령실을 상당히 자극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김경율 비대위원같이 개혁 성향이 강하고 소신이 뚜렷한 인사가 총선 승리를 위해 윤 대통령에게까지 ‘반성’을 요구할 경우 대통령실로 쇄신의 화마가 옮겨붙을 수 있기에 그 불길을 조기에 진화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짜고 치는 고스톱’ 한판을 돌리고 있다는 해석입니다. 어차피 이번 총선은 ‘한동훈의 난장 한판’입니다. 지지율이 극히 저조한 윤석열 대통령이 총선 판에 나서겠다고 하면 국민의힘으로서는 난감합니다. 한 위원장에게 힘을 실어주려면 윤 대통령을 밟고 올라가는 모양새가 가장 극적이고 임팩트도 확실합니다. 

 

 

2020년 1월 10일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왼쪽부터)과 강남일 차장검사, 한동훈 반부패강력부장, 이원석 기획조정부장 등이 점심식사를 위해 서울 대검찰청에서 별관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 대통령이 총선 때까지 한시적으로 한동훈 위원장에게 현재 권력을 잠시 양보하고 뒤로 빠져 있는 것이 선거판에서 유리하다고 판단했다면, 대통령실과 한 위원장이 사전에 ‘합’을 맞춰 권력 충돌을 연출한 뒤 한 위원장이 뚝심으로 버텨나가는 ‘시나리오’를 썼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이미 지난 2022년 1월 대선 후보 시절에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와 지금처럼 공개적으로 힘겨루기를 하다가 극적으로 화해하는 장면을 연출하며 승부사 기질과 포용력을 동시에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습니다. 

 

이번에도 윤 대통령이 한 위원장에게 사퇴를 강요하며 거세게 치받은 뒤 한 위원장의 적당한 사과 표명을 받아들이는 모양새로 통 큰 지도자의 면모를 연출하려는 의도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이럴 경우 양측의 권력 갈등이 더 파격적이고 돌발적으로 보이게 해야 그 효과도 극대화됩니다. 

또한 윤 대통령은 한 위원장 사퇴 요구가 알려진 다음 날인 1월 22일 열린 민생토론회 개최 30분 전에 감기를 이유로 갑자기 불참했습니다. 방송 생중계까지 예정된 상황이라 이 또한 대통령 의전 프로토콜에서 상당히 이례적인 ‘사건’입니다. 윤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펑크’가 한 위원장 간의 권력 충돌 여파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는 해석이 나오면서 양측 갈등의 극적 효과가 배가된 것만은 사실입니다.


 

현재로선 윤 대통령이 한 위원장의 김건희 여사 명품 백 수수 의혹 대응 전환과 김경율 비대위원 사천 ‘월권’에 극 대노를 한 것인지, 아니면 총선 때까지 ‘1인자 코스프레’ 묵인으로 ‘약속 대련’을 하는 것인지 가늠하기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이번 사퇴 요구 사건이 사실이라면 윤 대통령은 이준석, 김기현에 이어 세 번째로 집권당 당 대표를 내쫓는 ‘폭군’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역대 정권에서 이처럼 비상식적이고 돌발적인 정치 대사변이 여러 차례 비슷한 모양새로 발생한 전례가 없습니다. 윤석열 정권에서는 정상적인 정무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외부의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돌발변수에 정치가 속절없이 붕괴하고 있습니다. 최근 며칠 새 벌어진 대통령과 집권당 ‘대표’ 간의 권력 대 충돌이 ‘실전’이었다면 다시 읽고 싶지 않은 ‘삼류 무협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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