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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노의 정치 피처링
[성기노 칼럼] ‘정치개혁’ ‘정권심판’ 다 놓치고 헤매는 민주당 본문
더불어민주당이 4.10 총선 70여 일을 앞두고도 여전히 야당으로서의 존재감을 확실히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정치 국면은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운영 지지율이 30%대 초중반에 머물러 있고 정권심판론이 지원론을 앞서고 있어 야당에 유리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런 정치적 호재의 과실을 제대로 받아먹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그동안 민주당이 그동안 누렸던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에 대한 ‘동반 실정(失政)’의 반사이익이 줄어들 기미를 보이고 있습니다. 국민의힘은 출범 한 달을 맞은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체제로 지지율 반등에 성공하며 컨벤션 효과를 누리고 있습니다.
서울경제신문이 여론조사기관인 한국갤럽에 의뢰해 1월 25~26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11명을 대상으로 정당 지지율을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은 한 달 전보다 4%포인트 오른 38%로 집계됐습니다. 반면 민주당은 전월 조사와 동일한 40%에 머물러 있습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로써 국민의힘은 지지율 격차를 오차범위 내로 좁히며 민주당을 턱밑까지 바짝 추격하고 있습니다. 총선을 두 달 남짓 앞두고 여야가 정당 지지도 조사에서 오차범위 내 초접전을 벌이고 있다는 것은 민주당에 암울한 전조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정권심판론이 지속적으로 높게 나타나는 민심 이반 상황이라면 그 반사이익으로 야당의 지지율이 여당을 훨씬 앞질러야 함에도 민주당은 그 효과를 제대로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한동훈 효과’가 예상보다 만만치 않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한 위원장이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 요구를 일축하며 미래 권력으로서의 존재감을 ‘잠시’ 드러낸 것이 그동안 ‘윤석열 독주’에만 온통 쏠렸던 여론의 관심이 ‘한동훈 미래’에 대한 지지로 옮아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한 위원장이 정가의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면서 그동안 밋밋하게 흐르던 ‘윤석열 대 이재명’의 총선 구도가 ‘한동훈 대 이재명’ 프레임으로 급격하게 치환될 조짐도 보입니다. 이런 현상은 정권심판론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사그라드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앞서의 갤럽 여론조사에서 정부·여당의 실정을 심판해야 한다는 응답은 지난달 63%에서 이달 58%로 낮아진 반면 민주당의 의회 독주를 심판해야 한다는 응답은 한 달 새 51%에서 54%로 높아졌습니다.
이는 과반 의석을 앞세운 민주당의 ‘의회 독주’에 대한 국민 피로도가 높아진 측면도 있습니다. 이와 함께 윤 대통령이 한 위원장과의 권력 갈등 노정을 통해 자신의 독보적 위상에 일정 부분 생채기가 생기긴 했지만 여권의 쇄신 이슈를 ‘한동훈 미래 권력’에 대한 기대 쪽으로 옮겨놓는 효과를 본 측면도 있습니다. 총선 판에서 윤 대통령이 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으로 부정적 이슈를 빨아들이는 사이 한 위원장이 정치개혁과 의원 특권 폐지 등의 긍정적 이슈로 ‘윤석열 정권 실정’에 대한 물타기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런 점에서 “그동안 민주당이 이렇다 할 쇄신이나 자정 노력 없이도 ‘윤석열 독주’의 반사이익만을 따먹고 있다가 이제 그런 호시절도 끝나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여권이 ‘한동훈’이라는 미래 권력을 내세워 총선 프레임을 ‘이재명-한동훈’으로 바꾸려는 전략을 일정 부분 성공시키고 있다고 본다면 이에 대해 민주당도 한 위원장과 비견되는 새롭고 참신한 ‘뉴 리더’로 총선전쟁에 맞불을 놓아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민주당이 누리던 ‘윤석열 정권 실정’에 대한 반사이익이 서서히 소멸해 가고 있다면 야당은 자체 동력을 써서라도 지지율 ‘공중 부양’을 해야만 합니다. 민주당은 전면적인 쇄신이나 선제적인 개혁 정책 공약 제시 등으로 자체 부양을 시도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직면해 있음에도 그럴 의지나 능력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민주당은 지금 개혁과 반동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비례대표제 개정을 두고 그동안 미적거리다 결국 총선 70여 일을 앞두고 막다른 골목까지 몰려 있습니다. 이러는 사이 민주당의 비례대표제 개정 여부가 야당 쇄신의 바로미터가 돼 버렸습니다. 하지만 이재명 대표가 비례대표제 개정에 대해 “멋있게 지는 게 무슨 소용이냐. 이상과 현실 중 현실의 비중이 높아진 상황”이라며 병립형 회귀를 시사하는 ‘1차 가이드’ 라인을 제시한 이후 민주당은 그 레드라인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대표의 말대로 지금 민주당은 눈앞의 높아진 ‘현실의 벽’에 지나치게 집착하며 한순간에 사라질 수도 있는 ‘기득권’에 도취해 있습니다. 민주당은 21대 총선을 앞두고 소수 정당의 원내 진입을 돕겠다는 취지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어렵게 도입했지만 당시 거대 양당의 ‘꼼수 위성정당’ 출현이라는 부작용만 초래하면서 국민들의 거센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꼼수 정당’ 출현을 피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 장치를 마련해야 함에도 아예 또다시 거대 양당 구도로 돌아가는 종전의 병립형으로 원상 복구를 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민주당이 거대 야당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공직선거법 상 발생한 제도적 단점을 보완 개정하는 정치력을 발휘하기는커녕 오직 총선 승리만을 위해 편안하게 비례대표를 주워 먹는 이전의 병립형으로 되돌아가자고 주장하는 것은 개혁에 대한 반동이자 책임 야당의 ‘직무 유기’입니다.
더 큰 문제는 비례대표제 개정을 거대정당 기득권 깨기와 다당제 정치를 위한 정치 개혁 관점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친명이냐 비명이냐’는 정략적인 줄 세우기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재명 대표가 당내 분란을 최대한 억제하기 위해 비례대표제 개정에 대한 결정을 차일피일 미루며 의도적인 지연작전을 펼치자 민주당에서는 당 지도부의 미진한 ‘개혁 의지’에 분노가 분출하고 있습니다.
민주당 의원 80명은 1월 26일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거제와 관련해 “병립형으로의 퇴행은 윤석열 심판 민심을 분열시키는 악수 중의 악수”라며 연동형 유지와 비례연합정당 논의를 촉구했습니다. 민주당 지도부가 현행 준연동형에서 권역별 병립형으로 기운 것으로 알려지자 당 소속 의원 164명 가운데 절반이 집단행동에 나선 것입니다.
하지만 정청래 최고위원을 중심으로 한 ‘친명계’는 당내 온갖 비판과 저항을 무릅쓰고라도 병립형을 반드시 관철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특히 정 최고위원 등의 ‘친명계’ 강경론자들은 “총선은 최대 의석 확보를 위한 총력전이다. 자선사업이 아니다”라며 병립형 회귀에 따른 당내 반발을 잠재울 명분 마련에 고심하고 있습니다. 한때 당 원로들의 반대와 예상보다 많은 의원들의 반발로 연동형 유지 분위기가 일었으나 선거 패배만은 막아야 한다는 현실론이 점차 세를 얻고 있습니다.
더욱이 일부 친명계들은 80명의 의원이 연동형 유지를 주장하는 배경에 대해 ‘이재명 체제 흔들기’를 위한 ‘기획 공작’이라며 정략적인 대응을 하고 있습니다. 80명 의원이 정치 개혁 명분을 가지고 연동형 대국민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이재명 대표를 총선 전에 낙마시키기 위해 의도적인 흔들기를 시도하고 있다고 의심합니다.
이렇게 민주당은 비례대표제 개정이라는 정치 개혁 이슈마저도 당내의 건전한 토론과 협치를 통해 스스로 풀어내지도 못할 만큼 무능과 무책임에 빠져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재명 대표는 비례대표제 개정이 민주당의 쇄신 바로미터가 돼 가고 있음에도 야당 수장으로서의 리더십이나 추진력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몸만 사리고 있습니다.
현재 민주당은 164석의 의석 프리미엄을 가지고도 윤석열 정권에 대한 비판과 견제 능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고 심지어 정권심판론 우세의 반사이익마저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해 지지율마저 여당과 박빙으로 가고 있습니다. 더구나 비례대표제 개정으로 대변되는 야당의 쇄신과 개혁 능력도 화끈하게 보여주지 못한 채 점점 민심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까먹는 건 지지율이요, 민심’인 민주당이 과연 무슨 배짱으로 총선 승리를 낙관하며 ‘세월아 네월아’ 하고만 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습니다. 이재명 대표만이 책임 있고 당당한 정치력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이 덤덤한 난국을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여성경제신문 1월 30일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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