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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노의 정치 피처링
[성기노 칼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윤석열 정권의 ‘정치 실종’ 본문
이스라엘에 전면전의 기운이 감돌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침략’을 보면서 먼 나라 이야기라 우리에게는 그리 심각하게 다가오지 않는 측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50년 만에 최악의 기습 침공을 받은 그 배경을 보면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이번 전쟁 발발 직후 현지에서는 ‘이스라엘 네타냐후 정권의 분열 야기와 정치 실종이 하마스의 도발을 불렀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다윗’ 하마스가 ‘골리앗’ 이스라엘을 대범하게 침공한 배경에는 양측 간의 해묵은 갈등과 하마스의 헤게모니 장악도 그 이유이지만 국내 정치의 분열에 따른 ‘자멸적인 요인’도 작용했다는 것입니다.
지난해 12월 29일에 출범한 제 37대 네타냐후 이스라엘 정부는 유대 민족주의와 유대교 근본주의 색채가 강한 세력과 연정을 통해 탄생한, 그 어느 정권보다 극우 성향이 강한 강경파들입니다. 극단적인 ‘선명’ 노선을 요구하는 극우세력들의 압력으로 네타냐후 정부는 야당과의 타협과 협치보다 일방독주를 견지했고 이는 정권 출범과 동시에 심각한 ‘정치의 실종’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네타냐후 총리가 올해 1월 사법부 권한을 대폭 약화하는 개혁안을 공표한 것입니다. 네타냐후 총리가 강력하게 밀어붙인 ‘사법부에 관한 기본법 개정안’의 핵심은 대법원의 권한을 축소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정부를 견제하는 유일하고 합법적인 기구였던 대법원에 대해 장관 임명 등 행정부의 주요 결정을 뒤집을 수 있는 권한을 빼앗아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네타냐후 총리는 ‘사법 정비’를 빌미로 ‘합법적인 독재’를 명문화해버렸습니다.
네타냐후 총리가 민주주의를 압살하며 일방독주를 하자 미국 등 서방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고, 이스라엘은 올해 여름부터 격렬한 시위가 발생하는 등 대혼란에 휩싸였습니다. 특히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저항의 수단으로 수천 명의 예비군이 독재로 향하는 정부 하에서 복무를 거부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군의 준비 태세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우려로 이어졌습니다. 국민을 통합하지 못하고 분열과 갈등을 야기하는 정치 때문에 안보에도 구멍이 나는 순간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민주주의연구소의 요하난 플레스너 소장은 ‘사법 정비’ 법안 통과의 후폭풍을 우려하면서 “즉각적인 결과는 사회 내부 분열을 확대하고 안보를 약화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플레스너 소장의 경고는 불행하게도 몇 달 가지 않아 끔찍한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정치 분열상이 그동안 이스라엘에게 철저하게 짓밟혀온 ‘다윗’ 하마스의 저항 의식을 일깨우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습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철권통치와 차별의 압제 속에서 호시탐탐 복수의 칼을 갈았고, 이스라엘 정치가 가장 혼란스럽고 분열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결정적인 기습을 감행한 것입니다.
‘정치 안정이 곧 굳건한 안보’라는 등식을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정치 현실은 어떤가요. 이스라엘의 분열과 정치의 실종에 따른 전쟁 발발이 남 이야기같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우리도 북한이라는 세계 최악의 ‘핵 위협’ 적대세력과 마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윤석열 정권 들어 우리 ‘정치’는 날마다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여야 합의 불발로 경과보고서가 채택되지 못한 신원식 국방장관을 ‘임의로’ 임명했습니다. 임기 2년도 안 돼 벌써 18번째입니다. 이 ‘국회 역진’의 수치는 역대 정권 사상 유례없는 압도적인 1위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 중에 도망을 간 것은 윤석열 정권 아래에서 ‘정치 실종’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한심한 사례로 꼽힙니다. 공직 후보자가 청문회 도중 퇴장한 사례는 2000년 제도 도입 이후 김 후보자가 최초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아수라장입니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김행 후보자 임명을 강행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사실 김 후보자가 ‘믿는 구석’이 있지 않고서야 저렇게 대담하게, 국회 절차를 깡그리 무시하는 대범한 행각을 할 수 있었는지 의구심이 듭니다. 정치권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누가 뭐래도 임명해줄 것을 알기 때문에 요식행위에 불과한 청문회를 무시하고 그냥 중간에 나가버린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옵니다.
특히 야당에서는 “김행 후보자가 김건희 여사와의 친분설이 나오자 상상을 초월하는 오버를 하며 그에게 충성심을 보여주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사실 윤석열 정권이 출범한 뒤 여야 사이에는 ‘김건희의 강’이 가로놓여 있습니다. 여당은 야당에 대해 “대선 과정에서부터 김건희 여사에 대한 주가 조작 의혹, 처가 친인척들의 비리 의혹, 여기에다 ‘전직’에 대한 의혹까지 들춰내며 모욕에 가까운 ‘린치’를 가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야당은 ‘윤석열 대통령이 권력을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김 여사가 정권의 실질적인 실세로 활동하고 있다’는 의혹을 기반으로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현미경 감시하고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여의도에 ‘김건희’라는 그림자만 어른거리면 여야는 이성을 잃고 덤벼듭니다.
이 모든 것이 국론 분열을 막고 국민을 통합해야 할 윤석열 대통령이 ‘정치’를 아예 포기한 결과에서 나옵니다. 대통령은 장관들을 향해 “공격에도 움츠러들지 말고 싸워라”고 ‘독전’을 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전사가 돼라’는 지침을 눈치챈 여당은 소수당임에도 거대야당을 무시하고 비아냥거리기만 합니다.
특히 윤 대통령의 최근 노골적인 극우 행보와 네타냐후 총리 ‘극우 연정’의 유사성을 인식하면 더욱 우려스럽습니다. 정치세력 간의 극단적인 대결이 ‘정치의 실종’을 더욱 부추기기 때문입니다. 윤 대통령의 일방독주와 극우적인 행보는 집권세력으로서 어떻게 해서든 갈등과 분열을 봉합해 나가려는 책임 있는 대응과는 먼 나라 이야기입니다.
또한 참모들은 대통령의 ‘불호령’이 무서운지 직언은커녕 야당과의 타협이나 최소한의 협치를 위한 정무적인 대응책도 꺼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야당은 그들 수장에 대한 2년 동안의 ‘검찰 압살’에 앙심을 품고 합리적인 대응보다는 ‘묻지마 반대’를 외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한국 정치는 이미 ‘심리적인 내전 상태’에 돌입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군의날인 10월 1일 최전방 부대를 찾아 안보태세를 점검하고 “안보 생각만 하면 이런저런 고민으로 잠이 안 올 때도 있었는데 여러분을 만나니 든든하다”며 장병들을 격려했습니다. 안보 걱정으로 밤잠을 못 이루는 대통령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싶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그의 정치에 대한 무책임한 인식을 보면 과연 대통령이 안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고개가 갸웃거려집니다.
총칼만 들고 지키는 게 안보라고 했으면 어떻게 세계 최고의 첨단 방어태세와 정보자산을 갖춘 이스라엘이 하루아침에 하마스의 기습 침공에 나라가 휘청할 정도로 큰 피해를 입었을까요. 네타냐후 총리가 초래한 국론분열이 정치의 실종으로 이어졌고 결국 하마스가 이스라엘의 ‘내전’ 혼란상을 파고든 것입니다. 이스라엘 안보는, 무기로는 세계 최고이지만 국론분열로 인한 심리전에서는 이미 하마스에게도 뻥뻥 뚫리는 최악의 약점을 노출한 셈입니다. 이스라엘의 국론이 분열되지 않고 정치가 탄탄하게 안정됐다면 하마스가 감히 그들을 대범하게 침공할 마음을 먹었을까요.
안보는 휴전선 250km를 지키는 장병들의 총에만 들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북 심리전’에는 전후방이 따로 없습니다. 대통령이 밤잠 못 이루며 걱정하는 안보를 지금 바로 코앞에 있는 야당과 상의해야지 왜 미국이나 일본부터 먼저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스라엘은 누구보다 미국과 맹방의 관계를 맺고 있지만 이번 하마스의 기습 침공 때 이스라엘의 엄청난 ‘빽’인 미국은 그 어떤 역할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0년 12월 20일 행정안전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북한이 우리를 넘보는 것은 국론이 분열됐을 때다. 우리가 국방력이 아무리 강하고 우월해도 국론이 분열되면 상대(북한)는 그걸 활용하려 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대통령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첫 번째로 국론을 분열시킬 수도, 국론을 한데 모을 수도 있는 ‘천하의 권력’을 가진 정치인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열심히 ‘벤치마킹’중인’ 윤석열 대통령에게 묻습니다. 지금 국론을 분열시키는 장본인은 과연 누구입니까.
(여성경제신문 10월 10일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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