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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노의 정치 피처링
[성기노 칼럼] ‘이균용 임명안 부결’은 민주당과 사법부의 합작품? 본문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6일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됐다. 1988년 정기승 대법원장 후보자 낙마 이후 두 번째 사례로, 35년 만에 대법원장 공백 사태를 맞게 됐다. 일각에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구속영장 기각으로 정국 주도권을 잡은 야당이 대법원장에 대해 ‘정치적 비토’를 했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이 후보자의 흠결이 워낙 많아 사법부의 전반적인 정서가 상당히 부정적이었고 그런 법조계 기류를 야당이 임명동의안 표결에 적극 반영한, 양측의 ‘합작품’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번 부결로 이균용 후보자는 그동안 쌓은 법조계 경력도 한순간에 무너지며 완전히 스타일을 구기고 말았다.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이번 부결이 이균용 후보자의 자업자득이라는 평가가 대세를 이룬다. 이 후보자가 법관으로서 더 엄중한 자기관리가 요구되는데 그것에 대해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며 허술한 삶을 살다가 대법원장이라는 요행까지 바라게 된 탐욕의 결과라는 것이다. 특히 ‘윤석열 친구’라는 대통령 ‘빽’만 믿고 온갖 의혹에 대해 오만하고 불성실하게 대응하다가 막판에 부정적 기류를 읽고 주식 처분의 강수를 던지는 이 후보자의 기회주의적 행보도 곱게 보일 리 없었다.
법조계에서는 이균용 후보자가 대법원장으로 지명됐을 때부터 이 같은 ‘낙마’ 사태를 어느 정도 예견하는 분위기였다. 무엇보다 ‘이균용’이라는 인물 자체가 너무도 결함이 많고 자격미달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이 후보자가 특히 법원장 근무 시절 법원 내 구성원들이 참여한 다면평가에서 최하위권 점수를 받는 등 사법부 ‘동료’들로부터 강한 불신을 받았던 점이 부결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 후보자는 서울남부지법원장(2017년 2월~2019년 2월)과 대전고등법원장(2021년 2월~2023년 2월)으로 재임한 4년간 이뤄진 8차례의 ‘법원장 이상 다면평가’ 결과에서 모두 최하위권 점수를 받았다. 이 평가는 3300명 이상의 법원 공무원들이 참여하는 것으로, 전체 다면평가 대상자는 35~40명 안팎이었다.
특히 이 후보자는 지난해 상반기 전국 법원장 다면평가에서 평점 0.653점을 받아 법원장 40명 중 39등이었다. 지난해 하반기 같은 평가에서도 평점 0.552점을 기록해 39명 가운데 38등을 했다. 다면평가 항목에는 △관리자 적합성 여부 △재판권 간섭 여부 △대법관 적합성 여부 등이 포함된다.
이 후보자는 재판에 참여하는 변호사들이 매년 선정하는 ‘지방변호사회의 법관평가'에서도 우수 법관으로 뽑힌 적이 한 차례도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이 후보자가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로 근무한 9년 동안 약 6만 건의 변호사 평가를 모아 모두 97명(중복 선정 포함)의 우수 법관을 뽑았는데 이 후보자는 여기에 한 번도 들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다면평가가 동료들의 ‘인기투표’는 아니지만 그가 법원장으로서 능력을 발휘하며 소신 있게 행동했다면 그런 평가마저도 상위권에 드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동료들로부터 ‘관리자 적합성 여부’ 등의 평가에서 거의 낙제점을 받은 것은 이미 그가 대법원장으로서 심각한 결격사유를 가지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문제는 윤석열 대통령이 사법부의 전반적 기류마저 깡그리 무시하고 자신과 친분이 깊다는 의혹을 받는 이균용 후보자 임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는 데 있다. 윤 대통령은 국정운영 최고책임자로서 무한권력을 가지고 있지만 3권 분립과 야당 협치라는 민주주의 대의를 완전히 무시하며 제 멋대로 ‘정치’를 하다가 대법원장 공석이라는 사상초유의 사태를 초래한 장본인이다.
국민의힘이 “사법에 정치가 개입한 것으로 사법부의 독립을 침해한 흑역사로 기록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지만 현재와 같은 ‘정치 실종’ 사태를 초래한 윤 대통령의 최종책임이 더 무겁다는 게 일반적 인식이다. 일각에서는 거대야당의 ‘의회폭거’라는 지적도 있지만 야당 대표를 인식구속 시키려고 하는 윤석열 검찰정권에 맞서서 민주당이 할 수 있는 당연한 ‘저항’이라는 해석도 만만치 않다.
특히 민주당이 이번에 거대야당의 윤석열 정권 발목잡기라는 비판을 ‘가볍게’ 무시하고 부결에 ‘올인’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재명 대표의 구속영장 기각이 상당한 역할을 한 게 사실이다. 구속영장 기각이 윤석열 검찰정권의 야당대표 정치탄압이라는 국민들의 의구심이 증폭되는 계기가 되면서 민주당도 눈치 보지 않고 야당 본연의 투쟁과 저항을 더 거세게 할 명분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런데 야당도 야당이지만 이번에 사법부도 윤 대통령의 ‘일방적 친구 임명’에 대해 집단적 저항을 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유창훈 영장전담 판사가 이재명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도 윤 대통령이 사법부의 전반적 기류를 무시하고 자신의 ‘친구’를 대법원장에 임명한 ‘일방독주’에 반감을 드러내, 대통령에게 한번 본때를 보인 것이라는 얘기다.
물론 구속영장 기각이 유창훈 판사 ‘개인’의 결정이긴 하지만 유 판사가 사법부의 전반적인 ‘반 윤석열 정서’를 대변했다는 것이다. 또한 윤 대통령이 검찰을 앞세워 강력한 사정정국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사법부를 일종의 ‘영장 거수기’로 인식하며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 점도 충분히 사법부의 반감을 불러올 수 있는 대목이다.
이제 여당과 야당 모두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셈이 됐다. 윤 대통령이 집권 이후 줄기차게 이재명 대표를 잡아넣으려고 일방독주 정치를 해온 것에 대해 야당도 정면으로 치받게 됨으로써 양측 사이에 이제 절충과 타협의 중간지대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민주당도 사상 초유의 사법부 수장 공백상태를 초래한 엄청난 정치적 부담을 무릎 쓴 만큼 내년 총선 때까지 초강경 투쟁국면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임명동의안 부결에 따라 윤 대통령이 새로운 대법원장 후보자를 발표하고 인사청문 절차를 거치는데 최소 1개월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새로운 후보자 역시 국회에서 적격 판단을 받지 못할 경우 연내에 대법원장 자리를 채우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이는 그렇지 않아도 재판지연으로 갖가지 물적, 정신적 피해를 겪는 국민들에게 엄청난 민폐를 끼치는 것이다.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야당의 부결에 따른 사법부 공백 사태에 대해 겉으로는 태연한 척 하고 있지만 ‘정치 실종’을 초래한 윤 대통령의 일방독주 리더십에 점점 부담을 느끼는 처지가 돼 가고 있다. 이는 그동안 야당과의 협치 없이 윤석열 대통령 ‘마음대로’ 국정을 운영해온 것에 대한 집권세력의 당연한 ‘업보’다.
지금이라도 윤 대통령은 돌아올 수 없는 다리의 출발선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만신창이가 된 정치를 복원하는 첫 번째 발걸음은 윤석열 대통령만이 뗄 수 있다. 대통령이 움직이지 않으면 국민들은 날마다 정치파행의 신기록 경신을 넋 놓고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이균용 부결 사태는 윤 대통령이 정치실종의 종지부를 찍을 때가 왔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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