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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노의 정치 피처링
[성기노 칼럼] 이재명의 단식과 노무현의 꿈 본문
언제부터인가 정치에 감동이 사라졌습니다. 국민이 고개를 주억거릴 만한 정치의 감동 스토리를 아무리 생각해 봐도 떠오르는 게 없습니다. 기억회로를 저 먼 1987년으로까지 되돌려서야 6.10 항쟁으로 전두환의 6.29 ‘항복 선언’을 이끌어냈을 때의 그 벅찬 감동이 떠오릅니다.
가까이는 지난 2017년 3월 10일 오전 이정미 헌법재판소 소장 권한대행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을 인용하던 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2016년 말부터 2017년 초까지 전국에서 1600만명(주최 측 누적 연인원)이 촛불을 들고 ‘최순실’의 국정농단에 분노했고 부패한 권력을 권좌에서 끌어내렸습니다.
6.10이나 촛불 항쟁 등 정치의 주요 변곡점에서 감동의 서사시를 직접 쓴 주인공은 민초들이었습니다. 국민의 희생과 단결은 척박하고 비정한 정치에 감동의 순간을 전해줍니다. 하지만 정치인들이 국민에게 ‘정치적 퍼포먼스’로 감동을 주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좌절과 분노만을 자아냅니다.
이런 점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민에게 감동을 줄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정치인’이었습니다. 그가 정치에 준 감동의 원천은 자기희생이었습니다. 노무현은 서울에서 편안하게 당선되는 것을 마다하고 지역주의를 깨기 위해 2000년 4월 16대 총선 부산 북강서을의 ‘사지’로 뛰어들었습니다.
결과는 패배였습니다. 실망과 울분에 찬 선거운동원들은 해단식에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뻔한 패배를 알면서도 만류하던 참모들을 때로는 꾸짖기까지 하며 뚜벅뚜벅 그 죽음의 선거장으로 걸어갔던 ‘바보’ 노무현도 패배가 던져주는 아픔과 자신의 고집에 따른 민망함을 감출 수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사는세상노무현재단’ 유튜브 채널에 <노무현 대통령 2000년 총선 미공개 영상 다큐 ‘새로운 날들’이라는 영상이 있습니다. 부산 투표 전날인 2000년 4월 12일부터 14일 선거사무실 해단식까지 노무현의 모습을 담담하게 담았습니다. 노무현은 실의에 찬 선거운동원들에게 ‘마지막 연설’을 했습니다.
“오늘 이런 결과를 낳은 데 대해서 민심을 원망하고 또 잘못된 선택이라는 데 대해서 분개하고 그렇게 마음 상해하지 마십시오. 저도 여기 어려운 도전을 할 땐 물론 각오도 했지만, 제가 제일 해 보고 싶었던 것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우리 인간의 역사가 수천 년 내려오는 동안에 사람에 대한 적대감과 불신과 증오를 증폭시켜서 좋은 결과가 난 일이 없습니다. 저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후회하지 않고 크게 실망하지도 않고 오늘 이 판단에 대해서 누구에게나 원망이나 어떤 증오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민주주의라는 것이 생긴 이래로 어떻든 한번 한번 한번, 판단은 잘못되는 경우는 많아도 오십 년 백 년 이렇게 하면 대중의 판단이 크게 잘못된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승리만이 모든 것은 아닙니다. 한순간의 승리가 모든 것은 아닙니다. 결코, 결코 헛일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감사합니다.”
이날 노무현의 표정은 침울해 보였지만 패배자의 책임 회피나 비굴함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2년 뒤의 극적인 대선 승리를 잉태하는 바위 같은 당당함과 결연함이 문득문득 비쳤습니다. 1988년 5공 청문회에서 일약 초선 스타로 떠오른 뒤 산전수전 다 겪은 노무현은 이때 과연 ‘내 정치 인생은 끝장났다’고 생각했을까요.
노무현이 금배지 하나 더 달 욕심에, 정치생명을 연장하려는 비굴함이 있었다면 이날 그는 부산의 강고한 지역 구도를 비판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이날의 패배를 ‘노무현 개인의 좌절’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노무현은 부산에서 깨졌지만 ‘지역주의를 타파하는 것이 한국 정치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분명한 자기 확신과 소신, 그리고 정의감은 깨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단단해졌던 것입니다.
노무현의 해단식 연설은 2년 뒤 대선 승리에 더 큰 감동을 준 결정적인 장면이 됐습니다. 그리고 혹자에게는 ‘노무현은 끝났다’며 조롱과 조소의 대상이 될 법한 그 장면이 그의 사후에도 정치인의 감동 스토리로 조용히 회자되고 있습니다.
지금 노무현의 ‘후예’를 자처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단식을 하고 있습니다. “건국 이래 이런 정치가 있을까” 되묻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런 윤석열 정권의 독주 정치에 브레이크를 걸기 위해 168석 거대 야당의 대표가 곡기를 끊고 질주하는 권력을 잠시 멈춰 세우려 합니다.
이 대표는 단식이라는 가장 극단적인 방법을 저항의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영민하고 꼼꼼한 이 대표는 아마도 ‘단식’이라는 카드를 오랫동안 품에 넣어두었을 것입니다. 야당 대표의 단식이 가지는 상징성과 그 정치적 파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과 맞짱을 뜨기 위한 마지막 회심의 카드로 단식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야당 대표가 권력 폭주 항거를 위해 단식을 하다 쓰러져 앰뷸런스로 실려 가는 장면이 생중계된다면 국민들의 동정과 연민을 자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폭주에도 민주당의 지지율은 오히려 떨어지는 ‘추락’을 일거에 만회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총선 전 아껴두었던 단식 카드 한 방으로 단박에 정국의 반전도 노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단식의 뚜껑을 열고 보니 이 대표와 바람과는 정반대로 상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 대표 단식 이후 당 지지율(27%)은 지난주보다 오히려 5%포인트 떨어졌습니다(한국 갤럽). 윤석열 정권 출범 이후 가장 낮은 수치입니다. 이 대표의 단식이 당 지지율 하락의 직접적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 없지만 올라도 시원찮을 판에 떨어졌다는 것은 이 대표에게 민망함을 넘어 좌절감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본 칼럼에서 몇 번 지적했지만 한국 정치에서 야당의 최대 무기는 국민의 감동과 공감입니다. 국민의 응원과 지지가 없는 야당은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윤석열 정권이 권력과 위력으로 정국을 강제로 이끌어가는 물리력이 있다면 야당에는 국민들의 감정선을 움직여 공감하고 감동해 주는 그 ‘심력’만이 유일한 무기입니다.
하지만 한국 정치에서 단식으로 국민들에게 감동을 준 사례는 많지 않습니다. 그만큼 곡기를 끊는 정치적 저항은 그 평가가 극단적으로 엇갈립니다. 1983년 전두환 정권 시절 김영삼의 23일 단식은 군사독재에 질식해 가던 국민들에게 한 줄기 빛과 희망을 주었습니다. 1990년 김대중 평민당 총재의 13일 단식은 한국 정치에 지방자치제 전면 실시를 가능케 했습니다.
하지만 그 후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등의 단식은 ‘웰빙 단식’이라는 비아냥과 조롱의 대상이 됐습니다. 폭주하는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야당 대표들이 단식을 했지만 국민들은 그들의 뒤에 숨겨놓은 ‘정치적 떡고물’을 더 냉정하게 간파했던 것입니다. 정치인들의 단식은 더 이상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는 자기희생의 ‘소신공양’이 아니라 ‘며칠 굶어서 권력을 뺏어올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하겠다’는 탐욕과 위선으로 비치고 있는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이재명 대표의 단식도 ‘김영삼 김대중 버전’이 아니라 ‘이정현 황교안 버전 2’로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대표로서는 안타까운 상황 전개이겠지만 곰곰이 자신을 한번 되짚어봐야 합니다. 이재명의 단식에는 국민들의 감동이 없습니다. 오히려 ‘이재명이 단식으로 민주당을 살리려는 게 아니라 간당간당하는 내년 총선 공천권을 더 확실히 쥐기 위한 것’으로 보는 위선과 정략의 시선이 더 크게 느껴진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지금 노무현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정치를, 권력을 잡는 야합의 무대로만 활용하려 했다면 노무현은 대통령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지역주의 타파’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정치를 했기 때문에 대통령이라는 권력도 쟁취할 수 있었습니다. 기득권들이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온갖 협잡으로 노무현의 꿈을 짓밟았지만 적어도 지역주의 타파의 징검다리에 돌 하나는 놓았습니다.
노무현의 정치에는 꿈이 있었습니다. 그 꿈이 이뤄질 때 국민들은 감동하고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빽도 없고 힘도 없는 비주류 정치인이 자신을 끝없이 희생해 가며 꿈을 이뤄낸다면 더 큰 감동을 불러옵니다. 시선을 이재명 대표에게로 돌려 보겠습니다. 이재명의 정치에는 꿈이 있을까요. 기왕 단식하는 김에 명징한 마음으로 자신의 정치에 과연 ‘바보 같은 꿈’이 있는지, 스스로 질문을 하는 시간도 가졌으면 합니다.
(여성경제신문 9월 5일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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