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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노무현의 '동북아균형자론' 실패 되새길 때

성기노피처링대표 2023. 8. 29.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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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8월 23일 한미연합사 전시지휘소를 방문해 23년 을지 자유의 방패(UFS:Ulchi Freedom Shield) 연습상황을 점검하며 훈련에 참가한 장병들에게 격려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연합뉴스)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8월 28일로 6일 차를 맞았습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일본에 의해 강제적으로 사상 초유의 방사능 오염수 방류 실험에 나서게 됐습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보이지 않습니다. 현세대뿐 아니라 미래세대의 생존과 안전에도 엄청난 영향을 줄 수 있는 국민의 ‘건강 안보권’에 대해 대통령은 최소한의 설명도 하지 않고 뒤에 숨어 있습니다. 

무엇이 두려운 것일까요. 윤 대통령의 이런 ‘선택적 기만행위’는 한두 번이 아닙니다. ‘대통령이 괜히 나서서 정쟁의 한복판에 설 필요가 없다’는 정무적 판단은 이럴 때 기가 막히게 빨리 작동합니다. ‘국민의 80% 이상이 반대하니 소나기는 일단 피하고 보자’는 전략입니다. 

일본 오염수 방류에 대한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박구연 국무조정실 1차장이 지난 8월 22일 “정부는 일본의 방류 계획에 과학적 기술적 문제는 없는 것으로 판단했지만 이는 방류 찬성 또는 지지가 아니다”라고 밝힌 브리핑이 유일합니다. 오염수 방류를 용인하다 못해 일본보다도 더 선제적으로 지지해 놓고 ‘찬성한 것은 아니다’며 향후 법적으로 빠져나갈 구멍도 만들어 놓았습니다. 

일본 오염수 방류는 향후 윤석열 대통령의 최대 아킬레스건이 될 것입니다. 한국 미국 일본 3각 안보동맹을 묶어 두기 위해 일본 오염수 방류를 수수방관 내지 방조하며 국민의 생존과 건강권을 바다에 던져버린 ‘후과’를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이 30년 동안 계속 오염수 방류를 하는 상황이라면 윤 대통령 임기 후에 본격적으로 그 정치적 책임론이 불거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정치적 부담을 무릅쓰고 윤 대통령이 일본 오염수 방류 문제를 일방적으로 끌고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외교안보 이슈를 통해 꽉 막힌 국내 정치를 풀어나가려는 정략적 접근이라는 해석이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끊임없이 더불어민주당을 자극하며 난전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이전보다 더욱 ‘극우적 성향’을 드러내면서 ‘민주당 옥쇄작전’에 나서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8월 25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열린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규탄대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 대통령은 야당이 정책대결로 덤비지 않고 장외투쟁에 올인 할 만한 이슈만 계속 던지고 있습니다. 일본 오염수 방류 문제도 민주당에게는 사실상 ‘외통수 강경 투쟁’ 외 마땅한 대안이 없습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 광복절 기념식에서 야권 전체를 ‘공산 전체주의’ 세력으로 몰았습니다. ‘윤석열 비토정서’를 극대화해 정치 혐오증을 더욱 부추기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쳐 놓은 ‘난타전의 덫’에 걸려든 것 같습니다. 검찰로부터 5번째 소환을 앞둔 이재명 대표는 취임 1년을 맞아 바짝 독이 올랐습니다. 그는 윤석열 정권을 향해 “치졸하고 비겁하고 졸렬하다”는 독설을 날렸습니다. 민주당도 정청래 의원이 이 대표 체포동의안이 또다시 부결될 것이라며 강경 투쟁 바람을 잡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단 한 번도 야당을 국정의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끊임없이 여야의 대결 국면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민주당이 윤 대통령에게 극렬하게 반발하면 할수록 보수층은 더욱 결집하게 됩니다. 반면 중도층에게는 정치 혐오를 더 부추기는 기제가 됩니다. 이런 윤 대통령의 ‘민주당 옥쇄작전’은 여권의 내년 총선 전략을 미리 보여주는 예고편이자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던지는 지상과제로 읽힙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30% 후반대에서 정체 유지되고 있는 점이나 국민의힘 지지율이 민주당을 간발의 차로 앞선다는 것은 국민들이 윤 대통령 실정에 대한 책임론보다 민주당의 대여 투쟁 방식을 더 부정적으로 본다는 시그널입니다. 야당의 경직된 강경일변도 투쟁방식을 뻔히 예상하는 윤 대통령은 정국을 이판사판 난장판으로 조장 방치하는 게 협치로 야당을 관리하는 것보다 훨씬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것 같습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5월 10일 취임한 이후 야당 지도자와 단 한 번도 정치 테이블에 마주 앉지 않았습니다. 다분히 의도적이고 계산된 정치 행위입니다.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구실로 내세워 정치 파트너로 아예 인정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8월 28일 인천에서 열린 2023 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 만찬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전 정부가 나라 살림을 거덜 낼 뻔했다" "이번에 후쿠시마 거기에 대해서 (비판이) 나오는 것을 보라. 1 더하기 1을 100이라고 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세력들하고 우리가 싸울 수 밖에 없다"는 등 야당과 언론을 향해 작심하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야당 무시, 난전 유도 전략은 곧 그 한계에 직면할 것입니다. 역대 대통령들의 역사가 이를 말해줍니다. 역대 대통령들은 권좌에 오르면서부터 야당 대표를 무시하고 ‘겸상’을 하지 않으려는 오만한 행태를 보여 왔지만 결국은 야당을 국정의 파트너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난 정권에서 야당 대표와 ‘단독 영수 회담’을 하지 않았던 유일한 권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만큼 야당과의 협치를 무시하고 독단적 정치 행위를 일삼았던 박 전 대통령은 그의 탄핵 때 야당과 정치적 타협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조차도 확보하지 못하는 절대 고립의 상황으로 내몰리며 몰락했습니다. 야당을 무시하고 세게 나가다가 처참하게 부러져 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역대 대통령들은 야당과 최소한의 협치 전통은 유지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무려 8차례나 야당 대표와 단독 영수 회담을 해 최다 기록을 세웠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5년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첫 영수 회담을 했습니다. 

압도적인 표 차로 대선에서 승리했고 여대야소의 우월적 지위를 누렸던 이명박 전 대통령도 손학규, 정세균 민주당 대표와 영수 회담을 3차례 했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2018년 4월에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와 단독으로 영수 회담을 했습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지난 8월 18일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개최된 한미일 정상회의에 대해 야당에 그 어떤 설명도 하지 않았습니다. 윤 대통령이 “한미일 협력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며 자화자찬했을 정도로 국가적으로 중대한 외교 이벤트를 국정 파트너인 민주당 대표와 공유하지 않았다는 점은 대통령 스스로 자신의 치적을 반쪽짜리로 전락시키는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5년 3월 30일 청와대에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으로부터 새해 업무보고를 받기위해 대화를 나누며 회의실로 향하고 있다. 오른쪽은 정우성 외교보좌관. (사진=연합뉴스)


역대 대통령들은 중요한 외교안보 현안이 있을 때 야당 대표들을 초청해 사안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노력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집권하면서부터 그런 전통도 처음 깨져버렸습니다. 특히 한국 외교안보 전략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는 이번 한미일 정상회의를 윤 대통령이 통 크게 결단했다면 더욱 야당에 소상히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했습니다.

지난 2005년 노무현 전 대통령은 동북아균형자론이라는 새로운 외교안보 비전을 제시했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이 “현실성이 떨어지고 한미 동맹이 흔들릴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바람에 유야무야 된 바 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일방적인 외교안보 독주전략은 국력만 낭비하고 정치 분열만 초래했던 것입니다. 당시 미국도 부정적 입장을 밝힘으로써 동북아 균형자론은 사실상 실패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동북아 균형자론은 지금도 보수진영으로부터 한미동맹 이탈 및 중국 편중 외교, 현실성 부재 등의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동북아 균형자론을 내세워 조정자로서의 역할에 나섰지만 보수세력과의 끊임없는 갈등을 노정해 미완성의 정책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과정을 지켜본 문재인 전 대통령은  북핵 문제를 고리로 한반도 운전자론이란 대북 정책으로 균형자론을 보완하려고 했습니다. 그 결과 남북, 북미 정상회담과 남북미 정상 판문점 회동 등 여러 성과를 낳았지만 이후 북핵 문제가 '올스톱' 되는 등 균형자론도 유명무실해졌습니다.


 

특히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극악한 미사일 위협 등으로 남북관계는 최악의 경색 국면으로 접어들었고 이 과정에서 동북아 균형자론이 어떤 식으로든 외교적 효용가치를 발휘할 수 있도록 여야가 머리를 맞대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 여야의 정치가 완전히 실종된 상황에서 동북아 균형자론이든 윤석열 대통령의 한미일 삼각동맹이든 어느 것 하나 온전히 힘을 받는 외교정책이 될 수 없습니다. 

 

윤 대통령 또한 자신의 핵심 치적으로 내세울 만한 한미일 삼각동맹이 야당과의 협력 없이 온전히 추진될 수 없다는 점을 ‘노무현 전 대통령 실패 사례’를 통해 인식해야 합니다. 다음 대선에서 정권이 교체되면 윤 대통령의 ‘한미일 그랜드 삼각동맹’은 더욱 지속 가능성이 난망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일본 오염수 방류 문제와 같은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는 민심과 철저히 거리 두기를 하고 있고, 한미일 정상회의처럼 중요한 외교 안보 이슈에 대해서는 야당과도 거리 두기를 하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의 이러한 독단적인 내치와 외치 전략을 두고 “오늘만 사는 정권처럼 불안하고 미래가 없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민심과 멀어지고 야당과도 척지는 윤석열 대통령은 점점 ‘극우 보수의 섬’으로 혼자 걸어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전대미문의 권력 운용 실험 결과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요. 

 

(여성경제신문 8월 29일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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