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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노의 정치 피처링
새만금 잼버리 대회가 ‘망한’ 까닭은 본문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World Scout Jamboree) 대회가 폭염과 준비 소홀 등으로 파행을 거듭하다 실패로 막을 내릴 전망입니다. 사실 한국은 동·하계 올림픽과 월드컵 등 세계적인 행사를 ‘성공적으로’ 개최해 본 경험이 있습니다. 이전 세계적 행사의 성공담 때문인지 대다수 국민들은 이번 잼버리 대회가 초반부터 ‘난장판’(shambles:영국 가디언)이라는 평가를 받자 상당히 안타까워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지난 6년간 10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된 이번 잼버리 대회에서 터져 나온 문제는 거대한 이슈가 아니었습니다. 그냥 의식주 문제였습니다. 폭염과 해충, 샤워실 부족과 화장실 청결 상태 등으로 대회가 중단될 위기까지 갔다는 게 어이가 없을 정도입니다. 충분히 예견됐던 문제임에도 6년 동안 1000억원을 쓰면서 도대체 무엇을 한 것인지 국민도 의아해합니다.
벌써부터 여야는 눈꼴사나운 책임 공방을 벌이고 있습니다.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잼버리는 문재인 정부에서 5년간 준비한 행사”라며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의 책임을 지적합니다. 하지만 윤석열 정권이 출범한 지 1년 3개월이나 지났는데도 ‘문재인 탓’을 하는 건 현 정부의 행정 무능을 정쟁으로 빠져나가려는 얄팍한 수이자 비겁한 변명입니다.
특히 이번 잼버리 대회 파행에서 가장 뼈아픈 점은 윤석열 정부의 행정 시스템 부재와 무능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 전형적인 군대식 전시행정이 이번 정권에서 판을 치고 있습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잼버리 대회 전 행사 최종 점검을 위해 현장을 찾았습니다. 언론에도 공개된 이 자리에서 폭염으로 달궈진 수돗물을 보고 “온수인가요, 냉수인가요?”라고 물어보는 장면은 한 편의 코미디였습니다.
이 장관은 수돗물이 뜨겁게 달궈질 정도의 더위라면 당연히 폭염에 대한 대비책 정도는 의례적으로라도 물어봐야 함에도 김관영 전북 도지사의 얼버무림에 ‘남 일’처럼 얼렁뚱땅 넘어갑니다. 화장실을 둘러본 이 장관은 에어컨이 작동되지 않았지만 모른 척 쓱 지나칩니다. 그냥 보여주기식으로 이만큼 챙기고 있다는 장면을 연출하기 급급합니다. 장관이 이 모양인데 실무진들이 꼼꼼히 챙길 이유가 있었을까요.
하지만 윤석열 정권은 대통령의 의전만은 ‘진심’입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는 잼버리 개영식에 참석해 스카우트들로부터 ‘장문례’라는 최고의 예우를 받으며 입장하는 장면을 선보였습니다.
그런데 ‘VIP 참석’ 행사로 당시 경호는 상당히 엄했고 일부 참가자들은 대통령 입장 전까지 장시간 기다리다 온열질환으로 쓰러지는 일까지 발생해 부모들로부터 대통령실이 항의를 받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잼버리의 주인공인 스카우트들을 들러리로 만들었다’는 지적을 받았던 대통령의 개영식 의전이 잼버리에 닥칠 암울한 미래를 미리 보여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행정 시스템도 엉망입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준비 부족 사태가 연이어 발생하자 주무 부처인 여성가족부 김현숙 장관에게 “현장을 지키라”고 명령했다가 그것도 못 미더웠던지 김 장관을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뒤에 세워두고 본인이 직접 기자회견을 이끌었습니다.
한 총리의 ‘노파심’도 이해가 됩니다. 김현숙 장관은 이번 행사 전부터 업무 장악력 부족과 무능 리더십으로 ‘여가부 무용론’에 오히려 힘을 실어준 장본인입니다. 그는 기자회견 때마다 쏟아지는 기자들의 현안 질문에 대해 “구체적으로 아는 바가 없다” “협의 중이다”라며 하나 마나 한 말만 되뇌다 도망치듯 회견장을 빠져나가 잼버리 후 ‘정리 1순위’로 분류됩니다.
여기에다 윤석열 대통령의 ‘만기친람 리더십’은 정부의 행정 시스템 자체를 무력화할 소지를 안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잼버리 대책을 총리에게만 맡겨두는 것도 미덥지 않았던지 거제 휴가지에서 ‘찬 생수와 냉장 냉동 탑차 무제한 공급’ ‘관광 프로그램 추가’ 등의 지시에 이어 참가자들의 식중독 예방까지 신경을 쓰며 노심초사했습니다.
이를 두고 대통령이 휴가지에서도 국정을 챙긴다고 생각하는 국민들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주무 부처 장관이 해야 할 기본적인 일을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가 아닌데도 휴가지에서 미주알고주알 지시하는 것은 윤석열 정부의 행정 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장관은 해당 분야의 최고 전문가이자 책임자입니다. 대통령은 장관에게 특정 분야의 행정을 일임하고 그 책임을 다하게 합니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 들어 가장 아쉬운 대목은 장관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상황에 따라 완전히 무력화되거나 유명무실해진다는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동안 특정 사안마다 자신의 ‘소신과 철학’을 직설적으로 설파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해당 장관들은 ‘오징어’가 되기 일쑤였습니다. 대통령의 ‘만기친람’은 장관들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부처 내 장악력을 현저하게 떨어뜨리는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소심한’ 장관들은 대통령의 ‘무리한 주장’마저도 이해할 수 없는 해괴한 논리와 아부로 감싸주는 ‘도우미’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권의 장관들은 시스템과 자율성에 의해 움직여야 할 국정이 대통령의 기분과 즉흥적 지시로 좌지우지되는 ‘초법적 사태’를 수수방관하고 있습니다.
이번 잼버리 대회 파행은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일이 돌아가는 잘못된 관행을 굳히게 했다는 점에서 붕괴한 국정운영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재점검해 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윤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최고의 전문성을 갖춘 사람을 장관으로 뽑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정작 장관의 자율성은 보장되지 않고 일만 터지면 대통령이 그들 앞에 서는 모습만 보입니다.
이렇게 되면 대통령의 지시 없이는 그 어떤 장관도 독자적으로 책임 있게 움직일 수 없게 됩니다. 윤 대통령은 늘 ‘법과 원칙’을 강조하지만 상황이 급변하거나 ‘사고’가 터지면 법과 원칙은 온데간데없고 대통령의 ‘말’과 ‘지시’가 곧 법이 되고 원칙이 됩니다.
대통령도 신이 아닌 이상 짧은 시간에 항상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참모들과의 숙의 없이 대통령이 참지 못하고 이런저런 지시를 독단적으로 내리게 되면 장관은 ‘무쓸모’입니다.
‘힘’이 없는 장관을 공무원들은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그것에 맞게 복지부동해 버립니다. 대통령의 눈치만 보고 아부하는 장관을 공무원들이 믿고 따를 수 있을까요. 상부의 지시 없이 괜히 나섰다가 실무자들이 징계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철저하게 상명하복으로만 움직입니다. 그런 조직에서는 대통령에게 국정운영의 모든 부하가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잼버리 초반 ‘참사’도 실무 공무원들이 충분히 예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무장관들이 대통령 눈치나 보고 야무지게 챙기지를 않으니 실무진들도 굳이 나서서 일을 만들 필요가 없었습니다. 괜히 나섰다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 책임을 혼자 독박으로 뒤집어써야 하니 누구도 그런 어리석을 짓을 하지 않겠죠.
윤석열 대통령은 7일 태풍 ‘카눈’이 한반도 방향으로 북상함에 따라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참가자들의 안전 확보를 위한 ‘컨틴전시 플랜’ (긴급 비상 계획) 점검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지자체가 주도하고 중앙정부와 민간이 백업 정도 해주는 행사를 대통령이 마치 전쟁 지휘하듯 전면에 나서야 할 만큼 국가 중대 사태인지, 그 정도로 대한민국 행정 시스템이 낙후돼 있는지 의구심이 듭니다.
우리는 올림픽과 월드컵 등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세계 최고의 행정력과 행사 진행 노하우를 갖춘 나라입니다. 하지만 이번 잼버리 대회의 ‘실패’를 보면 그런 훌륭한 자산이 순식간에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단지 대통령 한 사람 바뀐 것뿐인데 말입니다.
(여성경제신문 8월 8일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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