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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노의 정치 피처링
[성기노 칼럼] 수해를 이권 카르텔로 물막이하는 윤석열 대통령 본문
어떤 대통령도 수해 등의 자연재해를 피해가지는 못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비가 오지 않아도, 비가 너무 많이 내려도 다 내 책임인 것 같았다. 대통령은 그런 자리였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하물며 조선시대 때도 수해나 가뭄 등의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임금은 그 책임을 스스로 ‘부덕의 소치’로 돌렸다.
조선시대 왕들은 자연재해로 실의에 찬 민심을 다독이기 위해 무척 애를 썼다. 왕의 개인 재산인 내탕금을 내주어 수해 복구를 위한 지원금을 보내주거나 수해 입은 백성들에게는 조세 부담을 줄여줬다. 심지어 수해로 사망한 이들을 위한 나라에서 제사를 지내주는 경우도 있었다. 백성들의 아픔을 함께하고자 하는 것이 임금의 도리라고 봤기 때문이다.
특히 홍수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관리들을 엄중히 문책했고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라는 명령도 내리며 ‘정부의 책임’을 다하려 애썼다. 심지어 현종은 수해 때 백성들의 고난을 함께 하고자 스스로 수라상의 음식 가짓수를 줄이며 근신했고 신하들에게도 특별히 조심을 하고 적극 협력할 것을 명했다.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 리더의 제1덕목은 국민들과 함께 울고 웃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때 영국 총리 처칠이 보여준 희생과 불굴의 ‘전시 리더십’은 6.25 때 이승만이 혼자 도망치며 국민을 속인 것과 너무도 대비된다. 대통령이 비를 멈추게 할 수도, 터진 제방이나 산사태도 막을 수 없다. 하지만 수해로 무너진 국민들의 억장만은 따뜻한 말 한 마디로 막을 수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극한 호우로 많은 인명이 희생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리투아니아 나토 정상회담 참석 전에 사상 초유의 극한 호우에 대비하라는 ‘엄명’을 내리고 떠났다. 하지만 그가 잠시 나라를 비운 사이 호우로 인해 50명 가까운 이들이 실종되거나 사망하며 12년 만에 가장 큰 피해를 낳았다.
윤 대통령이 ‘쓸데없이’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수해 대응이 미진했다는 식의 비판은 정치 공세적 성격이 짙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전용기에 내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로부터 무슨 종이쪼가리를 받으며 심각한 표정을 짓는 순간, 뭔가 일이 잘못돼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기현 대표가 대통령실과 사전 상의 없이 공항 마중 자리에서 갑자기 대통령에게 문서를 건네는 ‘돌방상황’을 직접 연출했다면 대통령 입장에서 다소 ‘무례한 행동’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아니면 대통령실이 수해로 국내 상황이 엄중한 것을 인식해 김기현 대표에게 ‘문서’를 건네주며 뭔가 상의하는 모습을 연출하라고 했을 수도 있겠다.
진실은 알 수 없지만 대통령 귀국 마중 자리에 여당 대표가 즉석에서 보고서를 건네는 장면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연출’된 적이 없는 ‘기이한’ 장면임은 분명했다. 한편으로는 수해로 수많은 인명피해가 났는데 김건희 여사의 명품 쇼핑 의혹으로 더욱 곤혹스러워진 윤 대통령이 뭔가 비상한 각오를 보일 필요가 있었다는 점에서 이해가 되는 대목이기도 했다.
경위야 어찌됐든 국가 재난이 닥칠 때마다 그 책임 소재를 대통령에게 지우려는 야당의 공세와 어떻게 해서든 대통령으로 책임이 번지는 사태만은 막아야 되겠다는 권력의 자기방어가 극명하게 충돌하는 것만은 사실이다. 굳이 비공개로 전달해도 될 그 ‘보고서’(내용이 뭔지 공개되지도 않았다)를 전달받으며 심각한 표정을 짓는 대통령의 모습에는 어떻게 해서든 자신에게 쏠리는 ‘독박 책임론’을 벗어나고픈 곤궁한 심정도 읽혔다.
무슨 일만 나면 대통령부터 찾는 묵은 습성은 버려야겠지만 조선시대 왕들부터 수해 때마다 근신하며 민심을 살폈던 그 오래된 ‘관습’이 지금도 국민들에게는 ‘나랏님부터 찾는 DNA’로 남아 있다. ‘내가 이 나라로부터 보호받고 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드는 데 대통령이 곁에서 든든하게 지켜준다는 그런 믿음 말고 무엇이 더 필요할까. 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국민을 지켜주고 있다는 그 단단한 신뢰 하나로 국민들은 대통령에게 국가의 운명을 통째로 맡기고 있는 것 아닌가.
윤 대통령이 수해현장을 방문해 민심에 공감되지 않는 발언(해외에서 산사태 소식을 듣고 그냥 주택 뒤에 있는 그런 산들이 무너져 갖고 민가를 덮친 모양이라고 생각했지, 몇백톤 바위가 산에서 굴러내려 올 정도로 이런 것은 저도 지금까지 살면서 처음 봐 가지고)을 했다는 것은 개인적 인식의 차이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다음날 윤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격앙된 목소리로 “이권 카르텔에 대한 보조금을 전부 폐지하고, 그 재원을 수해 복구와 피해 보전에 투입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역대 정권 최악의 재난 대응책 가운데 하나로 기억될 만하다. 윤 대통령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이권 카르텔’을 무슨 일이든 해결해주는 ‘요술봉’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
윤 대통령은 자신이 여러 차례 이권 카르텔로 지목해온 민간단체에 대한 국고 지원을 이번 수해를 계기로 모두 없애겠다고 전격 선언했다. 하지만 수해와 정부의 지원방식은 전혀 다른 프레임이다. 국민들은 ‘대통령 지시-관료 불이행-재난사고-격노 질책’으로 이어지는 윤 대통령의 무능한 리더십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수해와 10월 이태원 참사 그리고 7월 대형수해 등이 반복해서 발생하고 있는데 왜 이런 재난이 계속되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남의 다리 긁는 발언으로 12년만의 대형 수해 책임론의 바깥으로 겉 돌며 아웃복싱을 하고 있다. 이권 카르텔 보조금 폐지로 수해복구를 지원하든, 다른 용도에 쓰든 정부가 고민을 해야 하는 것이지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엄포를 놓으며 해야 할 말은 아니다.
윤 대통령이 귀국하자마자 수해에 대응한 두 가지는 이권 카르텔 보조금 폐지와 함께 관련 공무원들을 크게 질타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18일 비공개 국무회의에서 “환경 보호도 중요하지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더 중요하다. (물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할 것 같으면 국토부로 다시 넘겨라”며 환화진 환경부 장관을 질타했다.
또한 24명의 사상자를 낸 충북 청주시 오송 지하차도 참사 당시 궁평2지하차도 지역 관할 경찰서에 교통 대응 관련 순찰차가 5대 정도밖에 없었다는 경찰청 보고를 언급하면서 “말이 되는 소리냐”고 질타했다고 한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단 한 번도 ‘국정운영을 총괄하는 대통령에게도 책임이 있다’라고 말한 적이 없다. 물론 야당의 정치적 공세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있겠지만 국가에 대형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그것에 대한 겸허한 반성과 책임의식보다는 아랫사람에 대한 질타의 이야기가 제일 먼저 나온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후 ‘겸손한 태도와 무거운 책임감’을 강조했다. 이렇게 윤 대통령은 항상 옳은 말을 하지만 정작 그 ‘명언’을 자신부터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윤 대통령은 수시로 보수의 최대 덕목인 책임과 겸손을 언급하지만 이번 대형 수해의 대응에서 그런 노력보다는 이권 카르텔 언급으로 책임론을 ‘물타기’ 하려거나 ‘아랫사람 조지기’가 먼저 보여 안타깝다.
‘오로지 대통령부터 막고 보겠다’는 무능한 참모들 때문에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이권 카르텔 보조금 폐지같은 맥락 없는 발언까지 하며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이준석 전 대표가 대통령 발언이 알려진 직후 즉각 “이런 메시지를 낼 것을 조언한 참모는 당장 잘라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그런 해괴한 아이디어로 수해 난국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무능한 정무참모들을 질타한 것이다.
민심은 다분히 감정적이다. 버스타고 가다가 지하차도에서 물이 넘쳐 사람이 죽어나가는 세상에 사는 국민들은 더욱 감정적이 될 수밖에 없다. 힘 꽤나 쓰는 사람들의 ‘공감능력 제로’ 말 한 마디,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행동하는 오만함에 서운해 하고 상처받는다.
112에 신고해서 차를 막으라고 다급하게 알려주어도, 이태원 골목에 사람이 많아 통제를 해야 한다며 아무리 경찰을 찾아도 그들은 없었다. 국민들이 백주대낮에 이런 국가 상실 사태를 목도하면 도대체 누구에게 하소연을 해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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