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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노의 정치 피처링
야당의 반대는 백해무익한 정치공세일 뿐일까 본문
일본 오염수 방류가 현실화하는 모양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7월 12일 이국만리 리투아니아에서 일본 총리 기시다를 만난 김에 오염수 방류에 흔쾌히 합의해 줬다고 합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자신의 ‘마이웨이’에 대한 후폭풍을 감내해야만 합니다.
한국갤럽이 14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직무수행 긍정 평가는 직전 주보다 급락한 32%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38%였던 지난주에 견줘 6%포인트 떨어진 것으로 올해 주간 낙폭으로는 가장 큰 것입니다. 지지율 급락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였습니다.
장기적인 한일관계 발전을 위해 윤 대통령이 고뇌에 찬 결단을 했다고 믿고 싶습니다. 하지만 현세대뿐 아니라 다음 세대의 건강권까지도 직결되는 일본 오염수 ‘30년’ 방류 문제에 대해 80% 넘는 국민이 반대하고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장외투쟁을 포함해 한때 중진의원이 단식까지 하며 저항하고 있지만 윤 대통령은 들은 척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집권 세력은 야당의 반대를 ‘괴담’으로 받아 되치기하고 있습니다. 국민의힘은 과학자들의 ‘합리적 주장’으로 샅바를 세게 잡은 뒤 야당을 가짜뉴스 발원지로 흔들어 젖히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진지한 토론이나 생산적 문제해결 방식은 없습니다.
여당은 오염수 방류 문제를 오로지 과학과 괴담의 치킨게임으로 몰아가며 국민에게 흑백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오염수 방류를 해도 아무런 ‘과학적 문제’가 없는데 반대하는 건 무조건 ‘괴담’에 현혹된 바보이거나 ‘가짜뉴스’로 윤석열 정권을 마구잡이 흔들어 놓으려는 불순한 정치공세로 몰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 이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할 단 하나의 해결 시스템은 정치뿐입니다. 역대 어떤 정권에서도 야당은 존재했고 또 무수히 많은, 권력의 발목을 잡는 반대들이 난무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야당의 터무니없는 정치공세도 있었고 권력이 붕괴해 버리는 상황도 있었습니다.
박정희 정권 시절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반대했던 당시 야당에 대해 지금도 보수층에서는 이명박 정권의 청계천 공사와 함께 예로 들며 야당을 철없이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는 ‘무쓸모 정당’이라고 몰아세웁니다.
과연 그럴까요. 예나 지금이나 야당이 권력을 감시하고 특정 아젠다에 반대하는 것은 정치라는 사회적 합의 시스템의 한 과정일 뿐입니다. 야당이 반대하는 것은 사안 자체에 ‘땡깡’을 부리며 무조건 반대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내세운 원안보다 좀 더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지도 있는지 찾아보자는, 우리 사회의 ‘숙려’ 시스템이기도 합니다.
물론 여당 입장에서는 ‘나라가 망하든 말든 대통령만 흔들어대면 된다’는 야당의 ‘도둑 심보’를 괘씸해 하겠지만 그들도 불과 2년 전에는 똑같은 행태를 보였습니다. 정치에 ‘올 오어 낫싱’은 없습니다. 권력이 보기에 당장 대한민국이 망할 것처럼 보여 ‘무조건 내가 맞다’며 밀어붙여도 나라는 망하지 않았고, 야당이 길거리에 드러누워 ‘무조건 반대’만 외쳐도 지금 우리는 세계 경제 10대 대국 반열에 올라 서 있습니다.
여야가 지금까지 ‘내일은 없다’며 죽기 살기 싸워왔지만 그 포화 속에서도 정치는 작동했고, 그런 성숙한 민주주의 절차와 규범 속에서 경제도 그만큼 성장한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사실 야당이 반대해도 권력이 밀어붙여 버리면 그만입니다. 그럼에도 집권 세력이 야당의 주장을 때려잡을 괴담이나 가짜뉴스로 치부하지 않고 들어주고 합의해 주고 협의하는 건 그것이 정치의 근간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여야가 그 극단의 진영대결 간극을 어떻게 슬기롭게, 합리적으로, 이성적으로, 품위 있게 좁혀나가느냐 하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반복된 적폐 청산의 후유증으로 여야가 불구대천 원수지간처럼 지내며 악감정이 쌓일 대로 쌓였겠지만 그런 분노를 뒤로 밀어내고 협상 테이블 앞으로 오도록 하는 사회적 합의 시스템은 정치밖에 없습니다.
야당이 일본의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그들의 권리이자 존재 방식입니다. 문제는 권력에 있습니다. 대통령에게는 야당의 반대와 ‘지적질’을 받아들이고 그 난제를 해결해 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이기 때문입니다. 야당이 ‘손톱 밑의 가시’처럼 아프고 성가시게 반대를 하지만 대통령은 그들과 더불어 뒹굴고 부딪치며 이 국가적 난제를 밤새워 해결해내야 할 헌법상의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경부고속도로나 청계천이 야당의 일체 반대 없이 권력자의 ‘불도저 추진력’ 하나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그리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통령이 야당의 ‘지적질’을 그나마 심사숙고해 도로를 더 신중하게 뚫거나 하천의 돌 하나도 더 뒤탈 없이 놓으려고 했다면, 바로 그 권력의 ‘헤아림’이 정치의 과정입니다.
집권 세력이 야당의 반대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정치의 본령입니다. 반대 세력과 눈도 마주치지 않고 오히려 사사건건 그들의 주장을 괴담이나 가짜뉴스로만 몰아붙이면 우리가 합의한 사회적 해결 시스템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셈입니다.
다수의 국민들은 일본 오염수를 무조건 방류하지 말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인류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방사능 오염수’를 앞으로 30년 동안 하루에 130t씩 바다에 흘려보냈을 때를 상정한 그 어떤 과학적 데이터가 없는 상태에서 일본이 ‘버린다’ 하니까 우리가 바로 ‘예’ 해야 하는 게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이끌어 온 정치 시스템일까요.
적어도 지금 당장은 문제가 안 될 수 있어도 30년 이상 지속적으로 방류했을 때 그 누구도 가본 적 없는 미지의 후유증에 대한 가능성쯤은 더 짚어보고 버리든 말든 해도 늦지 않다고 일본에 주장하는 것이 괴담이고 가짜뉴스일까요. 일본의 방류 스케줄에 우리가 찍소리 한번 하지 못하고 딱딱 맞춰야 할 이유를 집권 세력 ‘나으리’들은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습니다. 그저 고장 난 녹음기처럼 괴담과 가짜뉴스만 주야장천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야당의 ‘억지 주장’에 무조건 굴복해 협치부터 하라고 대통령을 달달 볶는 것도 문제입니다. 하지만 야당의 존재 가치가 국가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라고 할 때 지금 민주당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그들의 ‘본업’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물론 야당의 투쟁방식에 모두 동의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대통령이나 집권당은 과연 그들의 책임에 맞는 ‘일’을 하고 있을까요.
야당의 반대는 국가 정책 결정의 중요한 컨센선스 과정의 하나입니다. 집권 세력은 야당의 ‘패악질’로 인해 정책이 누더기가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들의 반대와 그 주장의 수용이야말로 국민통합이라는 최선의 정치를 실현하는 밑바탕이 됩니다.
야당의 반대가 나라를 망하게 하기는커녕 국민통합과 권력 견제의 마중물이 됐고 그 덕분에 한국 정치도 여기까지 온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이 야당 이야기를 들어주고 실행하지 않으면 그만이니, 부디 그 주장을 ‘무논리의 괴담’으로만 걷어차지 말기를 바랍니다.
대통령의 ‘정치의 방기’는 우리 사회에 단 하나 남은 갈등의 조정과 문제의 해결 수단을 스스로 포기하는, 진짜로 망하는 길입니다. 영리한 윤석열 대통령이 이제부터라도 정치의 테이블 앞으로 바짝 다가앉았으면 합니다. 대통령은 폼 나는 일만 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여성경제신문 7월 18일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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