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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노의 정치 피처링
‘이명박 시즌2’로 가는 윤석열 대통령 본문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주요 인사에서 이명박 정권 때 일한 인물들을 재기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 문체부 장관을 지낸 유인촌 씨를 문화체육 특별보좌관으로 임명했고 ‘친이계 좌장’으로 불렸던 이재오 국민의힘 상임고문을 행정안전부 산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에 임명했습니다. 이동관 대통령실 대외협력특별보좌관은 방송통신위원장에 임명하려고 합니다.
정권 출범 초기에야 사람이 없어 급히 찾다 보니 이명박 정부 사람들을 많이 기용했다 하더라도 집권 2년 차를 넘기고 있는 현시점에서 굳이 또 MB(이명박)의 ‘문제적 남자’들을 쓰는 것을 두고 말들이 많습니다.
유인촌 특보는 자신이 문화체육부 장관에 있을 때 문화를 융성시키기는커녕 블랙리스트로 문화계를 완전히 ‘두 동강’ 낸 장본인으로 기억됩니다. 이동관 특보 또한 한국의 언론자유 순위를 몇 단계는 뒤로 물렸다는 비판을 받을 만큼 ‘언론계의 폭군’으로 군림했습니다. 이들이 최고 권력자의 입맛에 맞는 일을 착착 진행했을지는 모르지만 그 빗나간 충성심으로 억울한 사람들이 피해를 보거나 민주주의가 퇴보하는 엄청난 부작용을 야기했습니다.
정치권에서는 ‘윤 대통령이 왜 하필 유인촌이나 이동관 특보 같은 과거 구설이 많았던 인물을 다시 곁에 앉히려 하는지 모르겠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민주당 정부에서도 김대중 노무현 정부 출신이 많지 않았냐”며 대수롭지 않은 반응입니다.
대통령의 인사는 국가원수가 행사할 수 있는 최고의 권력 카드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누구를 임명하느냐에 따라 대통령의 국정철학 의중과 그 방향을 알 수 있습니다. 윤 대통령이 야권의 반발이 뻔히 예상되는 유인촌, 이동관 특보를 보란 듯이 자신의 곁에 앉힌 것은 이를 통해 정치권에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려는 뜻으로 읽힙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시국 인식’을 보면 조금은 우려스러운 측면이 있습니다. 그는 ‘이권 카르텔 척결’의 전도사가 됐습니다. 이전 정권에서 비정상화된 국가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연일 던지면서 대통령도 자기최면을 강하게 거는 것 같습니다. 윤 대통령은 공개석상에서 문재인 정권 때문에 나라가 엉망이 됐다는 인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비판을 합니다.
윤 대통령이 국민에게도 비호감 지수가 높은 인물들을 ‘굳이’ 새롭게 들이려는 것은 그만큼 이전 정권에서 쌓인 적폐가 많았기 때문에 과감하게 수술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일 것입니다. 이는 대통령이라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정치적 유혹입니다. 집권하자마자 ‘내가 5년 동안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것보다 ‘지난 정권 5년 동안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부터 보게 됩니다.
모든 것이 엉망진창 엉터리로 보일 법도 합니다.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공명심과 자신감으로 ‘적폐 두드려잡기’에 올인합니다. 특히 윤 대통령은 문재인 정권에서 검찰총장까지 지낸 ‘문재인의 남자’이지만 그들을 반국가 세력으로 규정하고 더욱 철저하게 이전 정권을 부정합니다.
윤 대통령의 최근 인사를 보면 ‘이렇게 엉망이 된 국가를 정상화하려면 정상적인 인사로는 안 된다’는 자기 주술을 거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윤 대통령에게 진영과 계파를 초월하는 통합의 인사로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과거 정권에서 ‘권력의 충견’이 돼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했던 퇴행적인 인물들을 다시 쓸 정도로까지 이 나라가 엉망이 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사실 평생을 ‘나쁜 놈’ 때려잡는 일만 했으니 세상 모든 일이 ‘삐딱하게’ 보이는 26년 검사 출신의 시각 자체를 뭐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윤 대통령 인식대로라면 지금쯤 나라가 망해도 몇 번은 망했을 법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몇몇 경제 및 사회 지표는 문재인 정권 때 더 안정적이었고 성장을 거듭했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윤 대통령이 아마 ‘꽂힌’ 것은 일부 386 세력들이 문재인 전 대통령을 앞세워 호가호위하면서 권력을 사유화하고 전 분야에 걸쳐 이권 카르텔을 구축하고 대일 대미 관계도 엉망으로 만들었다는 신성한 자기 확신에서 기인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권력 실세’들의 부정부패는 있었고 유독 문재인 정권 때 그것이 심각했다는 그 어떤 ‘법적인 결과물’도 없습니다.
오히려 윤 대통령이 벤치마킹하려는 이명박 정권 때의 이상득 전 의원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등 일부 친이계 실세들이 ‘정적’을 부당하게 몰아내 권력을 사유화하고 부정부패를 일삼아 옥살이했던 것과 비교하면 문재인 정권의 권력 실세들은 상대적으로 더 깨끗하다고 평가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런 점에서 윤 대통령이 최근 이명박 정권 때의 ‘문제적 남자’들을 재소환하는 것에는 다른 속사정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윤석열 대통령과 그에 맞서는 또 다른 권력그룹이 인사를 두고 ‘권력다툼’을 하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합니다. 윤 대통령의 비호 아래 검찰 출신 권력그룹이 급성장하자 이들을 견제하기 위해 과거 이명박 정권 때 검찰을 쥐락펴락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MB맨들을 불러들여 검찰 라인을 견제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너무도 준비 없이 덜컥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뚜렷한 국정운영 철학과 5년 동안의 장기 로드맵이 없다는 비판이 많습니다. 윤 대통령이 정치를 조금이라도 했더라면 자신이 경험했던 인물들을 쓰면서 ‘윤석열 정권’의 색채를 낼 수 있었겠지만, 그런 과정이 쏙 빠지면서 이명박 정권 사람들에게 ‘윤석열 옷’을 입혀 다시 무대에 올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권력의 균점이나 통합의 추구까지는 신경 쓸 계제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런 ‘짜깁기 인사’에서는 윤석열 정권의 가치관과 국정철학이 보이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는 곧 ‘윤 대통령이 사람을 너무 막 쓴다’는 비판과도 연결됩니다. ‘어차피 내가 다 할 수 있고 내 지시만 잘 따르면 된다’는 생각 때문인지 장관이나 주요 직위는 누구를 데려다 앉혀 놓아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했을 법도 합니다.
특히 윤 대통령에게는 그나마 이명박 전 대통령이 가장 성공한 보수정권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이 됐기 때문에 그들로부터 성공경험담을 공유할 기회 자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명박 정권 사람이라면 그 어떤 검증이나 의구심 없이 ‘무작정’ 쓸 수밖에 없는 정치적 상황도 윤 대통령 인사의 한계와 맞물려 있습니다.
‘이명박 정권 정도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서였는지 윤 대통령은 MB맨들 기용에는 꽤 진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마치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실전 노하우’가 없어 프리고진 ‘용병 사령관’을 앞세워 우크라이나 전쟁 ‘대리전’을 하는 것처럼 윤 대통령도 어느 정도 검증이 됐다고 ‘믿는’ 이명박 사람들을 끌어와 ‘적폐 청산 대리전’을 하는 것처럼 비치기도 합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 6일 청년정책점검회의에서 “경험 없이 정치에 뛰어들어 10개월 만에 대권을 거머쥐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준비 없이 대통령이 된 것을 본인도 알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머릿속에 5년 동안 대한민국 발전 로드맵이 뚜렷하게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의 임명도 중구난방으로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입니다.
국가에 인재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진영과 계파를 초월해 인재를 쓸 최고 권력자의 의지가 없는 것입니다. 유인촌, 이동관 같은 ‘문제적 MB의 남자’들을 ‘재소환’하는 것은 설득과 인내의 통합 정치보다 지시와 제압의 독주 정치가 편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10개월 만의 벼락치기로 대통령을 선택했던 국민들의 손가락을 부끄럽게 만드는 일이기도 합니다.
(여성경제신문 7월 11일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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