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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망과 서거 사이

성기노피처링대표 2021. 10. 28.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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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전 대통령이 10월 26일 ‘사망’했습니다. 그의 ‘죽음’을 두고 우리 사회는 다시 한 번 두 갈래로 나뉘었습니다. 12.12와 5.18의 원흉인 노 전 대통령을 전직국가원수로 인정하면 안 된다는 여론과 재임 중의 치적과 형 선고 이후 추징금 납부 노력 등을 감안해 전직 대통령 예우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습니다. 정부는 일종의 절충안을 내놓았습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례를 국가장으로 치르지만 국립묘지 안장은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애도' 메시지를 발표했으나 직접 조문은 가지 않기로 하는 등 지지층을 의식하는 행보를 보였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사망’은 한국 정치에서 대통령의 자리를 다시 한 번 조명해보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죽음이 속보로 전파되자 KBS를 비롯한 대부분의 언론은 ‘노태우 사망’(死亡)이라고 표기했습니다. 하지만 일부 매체는 별세(別世)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인사가 사망했을 때 예우를 갖춘 말로 쓰입니다. 27일 김부겸 국무총리는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서거’로 공식 사용했습니다. 전직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표현이 이렇게 엇갈리는 것은 그가 후세에 남겨놓은 아픈 유증과 정치적 치적에 대한 평가가 여전히 엇갈리기 때문입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후세에 어떤 대통령으로 남고 싶어 했을까요? 그는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그럼에도 부족한 점 및 저의 과오들에 대해 깊은 용서를 바란다”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가 말하는 ‘최선의 노력’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노태우 전 대통령은 ‘우리가 남이가’로 통하던 정치의 사적 인연을 끊으려고 시도했던 정치인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전두환-노태우의 반백년 ‘우정’이 있습니다. 

사실 그는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운’이 좋은 ‘후계자’였습니다. ‘친구’ 전두환 전 대통령은 주변의 반대를 뿌리치고 ‘노태우’를 자신의 후계자로 최종 결정했습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낙점’된 것은 오래 전부터 전 전 대통령이 그를 초대 체육부장관, 내무부장관, 서울올림픽조직위 위원장, 대한체육회장, 민정당 대표위원, 제12대 국회의원(전국구) 등을 거치게 하며 후계자 수업을 받게 했던 측면도 있었지만 당시의 시대적 상황도 한 몫 했습니다. 1987년 5공 말기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등으로 민심이 불안정했고 김영삼 김대중 씨가 정국의 주도권을 쥐게 되면서 전 전 대통령은 계속 궁지로 몰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혼란한 상황 속에서 전 전 대통령은 자신이 물러나더라도 당시 강력한 실세그룹이었던 ‘군부’가 정치에 영향력을 계속 발휘해야 사회가 안정될 것이라고 보고 있었습니다. 전 전 대통령은 당시 권정달 전 보안사 정보처장을 따로 불러 “너희들은 노 대표의 후배이니 다음에 해도 되지 않겠나? 앞으로 군대를 잘 통솔해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이해를 하라”고 당부하며 노태우를 차기 대통령에 낙점한 사실을 먼저 알렸다고 합니다. 또한 권 전 정보처장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뒤에 나온 얘기지만 한때 전 대통령은 후계자로 노신영 국무총리를 생각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노(태우) 대표로 결정하게 된 배경에는 군을 잘 통솔해야 국정운영이 힘들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라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지금이야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가 자연스러운 과정이지만 1987년 ‘전두환’은 마음만 먹으면 폭압으로 정치연장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6.10 민주항쟁의 거센 물결을 보고 정권이양을 완전히 결심했지만 그 후에도 전두환은 여전히 정국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후계자도 ‘친구’를 심어 퇴임 후 안전판을 확보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노태우는 후계자로 완전히 자리를 잡기 전까지 철저하게 흉중의 본심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권좌에 오르자 그는 자신에게 권력을 물려준 친구 전두환과 완전히 결별하는 정치적 ‘배신’을 감행했습니다. 여기에는 전두환 밑에서 정치지도자 수업을 받으며 익힌 노태우 전 대통령 나름대로의 정치적 생존방식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한 후에 “나는 전 대통령이 한 것과 모든 것을 반대로만 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말을 하면서 5공 정권과 차별화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집권 정당성을 인정받으려 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직선제로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자부심이 있었고, 5공화국과의 차별화로 ‘보통 사람’의 시대를 열고자 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이 주변 참모들의 주도면밀한 전 정권 차별화 전략을 전폭적으로 받아들인 결과였습니다. 당시의 권력지향적인 군부엘리트 성향을 볼 때 자신에게 대통령 자리를 ‘공짜로’ 넘겨준 전두환에 대한 은혜를 냉철하게 걷어차 버린 노 전 대통령의 ‘변심’은 이후 3당 합당과 김영삼 문민정부 시대를 여는 정치적인 토대가 되었다는 것이 역사의 아이러니인 것 같습니다. 후일 전두환은 “노씨 및 부인 김옥숙 씨가 대통령과 영부인이 된 뒤 사람이 확 달라져 버린 것을 보고 친구나 동기에게 후임 자리를 물려주는 것은 피해야 한다는 것을 절감했다”고 말했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노 전 대통령의 ‘사망’은 1노3김 정치가 완전히 막을 내린 것을 의미합니다. 전두환의 정치적 유증을 완전히 제거한 노 전 대통령은 군부의 입김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고 그것이 1990년 1월 3당 합당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3당 합당이 전대미문의 야합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그 정치적 이벤트 하나로 한국 정치는 군부의 시대가 종식되고 진정한 민주화의 시대로 가는 길이 열렸던 것입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군부의 실세로서 권좌에 올랐지만 정치의 ‘문민화’ 길을 최초로 터놓은 정치인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최근 정부가 일부 진보진영의 반대를 무릅쓰고 노태우 전 대통령 사망에 대해 국가장으로 결정을 내린 것에는 그가 남긴 북방정책, 남북기본합의서, 토지공개념과 신도시 건설 등의 긍정적 치적을 외면할 수 없었고 무엇보다 직선제 대통령이라는 정당성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국립묘지 안장까지 갈 수 없었던 것은 결국 12.12 쿠데타와 5.18 광주민주화운동 학살 책임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유언에서 ‘깊은 용서를 바라는’ 부분도 바로 이 두 가지 역사를 거스르는 사건 때문일 것입니다. 노 전 대통령은 12.12 쿠데타로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5.18 민주화운동 당시 민간인을 학살한 책임에서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강제 진압과 민간인 학살에 대해 결국 직접 사과하지 못한 채 26일 생을 마감했습니다. 다만 장남 재헌 씨가 거듭 사과의 뜻을 공개적으로 밝혔습니다. 1980년 당시 신군부의 최고책임자인데도 반성과 사죄 없는 모습을 보이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는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노재헌 씨는 지난 4월 광주와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머리를 숙이고 사죄의 뜻을 전했습니다. 지난 2019년 8월과 지난해 5월에 이어 세 번째 5·18민주묘지 참배입니다. 재헌 씨는 한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일어나지 말아야 될 5·18과 관련해 항상 마음의 큰 짐을 가지고 계셨다”고 밝혔습니다. 

노 전 대통령이 ‘깊은 용서’를 구한다고 해서 수천명의 민간인들이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역사적 진실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무고한 생명을 앗아가고도 고개를 빳빳이 들고 시대상황론 운운하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는 다른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용서’를 구하는 유언과 그의 아들 재헌 씨의 사죄 행보는 한국 정치에 통합과 ‘화해’라는 작은 희망 하나를 주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정치에서 ‘정상적인’ 전직 대통령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포함해 모두 감옥에 갔거나 현재 수형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전직 대통령은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 모든 전직 대통령의 불행은 곧 한국 정치의 불행이기도 합니다. 선악과 진영논리로 전직 대통령의 과오를 재단하고 치적을 폄하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노태우의 ‘사망’을 보면서 이제부터라도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하지만 현재의 여야 유력 대권주자들을 보면 그 작은 소망마저도 깨져버릴 위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진정으로 관대하고 강한 사람만이 용서와 사랑을 보여줄 수 있다. 항상 인내하고 우리가 우리의 적을 용서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도록 항상 기도하자. 그래서 사랑하는 승자가 될 수 있도록 하자.” (사형선고 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10월 28일 팩트경제신문 '정치언박싱'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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