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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중재법과 친문 장기집권론

성기노피처링대표 2021. 8. 2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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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새벽 4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만 참석한 가운데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단독 처리했습니다. 민주당은 이어 본회의까지 열어 표결로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하다가 박병석 국회의장의 ‘중재’로 일단 한발 물러섰습니다. 그동안 잠잠하던 정치권에 ‘강행처리’와 ‘결사저지’의 두 단어가 다시 춤을 추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자영업자들이 자포자기 심정으로 연명해나가는 상황에서 당장 민생해결 법안도 아닌 언론중재법을 새벽에 여당의원들이 쑥덕쑥덕 처리를 해야만 했는지, 일단 이 부분에 대해 여당은 다시 한번 정국운영의 경색을 유도한 ‘공적’이 됐습니다. 그럼에도 왜 이토록 언론중재법에 민주당이 목숨을 거는 것일까요?

기실 한국 언론은 정파주의, 선정주의, 상업주의, 패거리문화 등 여의도 정치 뺨치는 수많은 폐해를 낳았고 그 후유증으로 지금 활동중인 기자들은 ‘기레기’를 넘어 ‘기더기’ 단계까지 가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은 밉보인 사람이나 특정단체를 마음대로 ‘조지는’ 기자들의 폭력적인 ‘선택기사’에 분노를 넘어 사회악 척결대상이라고까지 이야기합니다. 171석의 민주당이 이번에 작심하고 언론중재법을 밀어붙이는 것도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합니다. 지금까지 언론의 폐해가 언급될 때마다 기자들은 헌법에 명시된 언론의 자유를 방패 삼아 ‘우리의 자율적 정화기능을 믿어 달라’는 말을 되풀이했습니다. 하지만 민주당이 볼 때 전혀 개선된 흔적이 없기 때문에 이제 ‘국민의 이름으로’ 언론을 개혁하겠다는 것입니다. 언론인들 또한 변화되고 성숙된 사회의 여론형성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고 가르치려드는 권위적인 행태와 클릭만능의 선정주의를 보여 온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런 언론개혁의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법과 의회권력을 무기로 언론을 ‘무력진압’ 하려는 일방주의 접근법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역사가 그것을 말해줍니다. 가장 가까운 예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언론개혁을 다시 되돌아보겠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기자실 폐쇄’로 상징되는 언론개혁을 밀어붙입니다. 웬만한 대통령이면 퇴임을 불과 몇 달 앞두고 떨어지는 낙엽도 피해갈 만한데 역시 노무현은 노무현이었습니다. 그는 정부의 각 부처, 공공기관 및 공기업 등에 설치된 기자실을 폐쇄하고 서울 정부제1종합청사와 과천, 대전 청사 등 3곳에 통합브리핑실을 두어 정책홍보의 창구로 삼도록 했습니다. ‘기자실 대못질’ 사건입니다.

이해가 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비주류 정치인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주류 기자들과 정치인들의 ‘우리가 남이가’ 문화에 애초부터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조중동과 임기 내내 불편했던 것도 그와 친한 기자가 없었기 때문에 그랬다면 너무 나간 생각이겠지만, 정치를 하기 위해 조중동에 줄부터 대려는 기득권정치의 폐쇄성을 보며 노 전 대통령이 어떤 적개심을 느꼈을지는 미루어 짐작이 갑니다. 노 전 대통령의 기자실 폐쇄정책은 정치와 결탁해 불온한 권력질을 일삼는 언론인에 대한 뒤끝 작렬 공격이었습니다. 그는 기자실에 대해 “기자실에 죽치고 앉아 담합이나 하면서...”라는 말로 극도의 부정적 인식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정보 통제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기자실은 원위치 됐습니다. 결국 예산만 낭비한 셈이 됐고, 임기 말까지 국론 분열의 후유증만 남긴 것이 노 전 대통령의 언론개혁이었습니다.


 
명분이 정의롭다고 해서 모든 개혁의 결과도 정의로운 것은 아닙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언론개혁 실패는 언론중재법을 밀어붙이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숙제 하나를 던져줍니다. 언론개혁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노 전 대통령의 퇴임 직전 언론개혁 시도는 기득권정치의 ‘정언유착’을 끊기 위한 순수한 정치개혁이었다고,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진행중인 언론중재법은 야권에서 ‘문재인 보호법’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권력의 언론 재갈물리기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언론중재법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 가운데 하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입니다. 언론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허위·조작 보도에 따라 재산상 손해를 입거나 인격권 침해, 정신적 고통을 당했을 경우 손해액의 5배까지 배상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기자가 특정인물이나 단체를 ‘조져’ 피해를 입힐 때, 지금까지는 사회적으로 비판을 받는 정도였지만 이제는 언론사까지 ‘패가망신’ 수준의 금전적 손해를 입히겠다는 것입니다. 

민주당은 언론의 악의적인 기사에 의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구제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웁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피해를 입은 ‘잘못된 보도’가 새벽 4시에 법안을 단독 처리할 만큼 많아야 할 것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민주당 관점에서 볼 때 잘못된 보도라는 것도 진영논리에 따라 보수진영에서는 ‘당연한 보도’라고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현재 밀어붙이는 민주당의 언론중재법은 여당의 시각에서 볼 때 지극히 잘못된 보도일 뿐입니다. 민주당은 진보진영의 이익에 어긋나거나 문재인 대통령의 통치에 걸림돌이 되는, 정파적 이해관계가 걸린 것들을 ‘잘못된 보도’로 규정합니다. 조국 전 장관 관련 언론보도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자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도 언론중재법이 존재했다면 아예 보도조차 되지 않았거나 지금쯤 특정언론사가 거액의 손해배상으로 탈탈 털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바로 여기에 언론중재법의 정치적 의도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은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언론중재법은 문재인 대통령의 퇴임 후 안전장치로밖에 해석이 안 된다. 문 대통령도 퇴임하고 나면 즉시 언론재갈법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 보낸 문재인 대통령으로서는 퇴임 이후 안전한 삶에 대한 희구가 그 어느 때보다 클 것입니다. 전직 대통령의 권력형 비리나 정책추진 실패 등에 관한 보도는 권력을 감시하는 언론의 주요기능입니다. 언론중재법이 통과되면 전·현직 대통령에 대한 언론의 감시기능은 크게 위축될 것입니다. 

지난해 총선에서 180석을 선물 받은 민주당은 친문 지지세력으로부터 검찰과 언론개혁을 ‘명’ 받았습니다. 검찰개혁은 윤석열 전 총장을 대선주자로 키워주는 엉뚱한 전리품만 거둔 채 용두사미가 됐습니다. 이제 언론개혁만이 남았습니다. 현재 친문진영의 유명 유튜버들은 장외에서 언론개혁의 정당성을 널리 설파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20년 장기집권을 위해서는 아직도 사회 곳곳에 기울어진 운동장이 널려 있다고 봅니다. 특히 언론은 상당히 많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봅니다. 조국 사태 등을 거치면서 조중동의 편파적인 보도를 더 이상 좌시할 수 없으며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한 민주당 초선 의원은 “1인 매체와 유튜브 개인 방송이 넘쳐나는데, 내년 대선에서도 논두렁시계 같은 가짜뉴스에 당할 수는 없지 않느냐”며 언론중재법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민주당이 언론중재법을 이번에 강하게 밀어붙이는 것도 친문진영의 20년 집권 시나리오에 주파수를 맞추기 때문입니다. 송영길 대표가 지지층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1가구 1주택자의 종합부동산세 과세기준을 완화하고, 이른바 ‘조국 사태’에 대해서도 사과하는 등 중도층 확장 전략을 폈지만 언론개혁만큼은 그 이해득실을 따지지 말고 이번에 반드시 관철시켜야 20년 집권의 희망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법은 특정 사안으로 사회적 피해가 지속적으로 발생할 때 그것을 방지하려는 최소한의 보호장치입니다. 일반인들이 언론중재법의 핵심인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해당될 만큼의 뚜렷한 피해를 입을 기회가 그렇게 많이 있을까요? 그렇지 않다면 이 법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한다는 명분 하에 특정권력을 비호하기 위한 또 다른 방패막이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언론자유를 외치던 문재인 대통령의 선택적 침묵은, 그 자신도 이 법의 혜택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감청고소원의 희망사항이 아니기를 바라봅니다. 

 

(8월 25일 팩트경제신문 '정치언박싱'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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