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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이닥치기 입당’ 윤석열의 딜레마

성기노피처링대표 2021. 8. 3.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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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국민의힘 입당 후유증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달 30일 지도부와 상의도 없이 당사로 ‘난입한’ 윤 전 총장의 행보는 파격을 넘은 돌발행동이었습니다. 윤 전 총장이 이 대표와의 조율 하에 ‘내락’된 시간에 나타나 인사를 했다면 윤 전 총장이 한 수 접고 국민의힘으로 들어가는 것이 됩니다. 하지만 윤 전 총장이 당 지도부와 상의도 없이 ‘주인’도 없는 집에 들어가 ‘오늘부터 세 들어 살겠다’고 일방적으로 계약서를 들이민 것은 ‘일단 들어와 살기는 하지만 집에서는 내 마음대로 다니겠다’는 선언적 의미로 해석됩니다. 

당 안팎에서는 ‘윤 전 총장이 이 대표를 패싱하고 입당했다’는 말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주변 압박과 지지율 하락 등의 요인으로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해야만 하니 그 거부감의 속내가 이준석 대표를 무시하고 ‘들이닥치기 입당’으로 표출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입당이 마무리되면서, 이제 남은 문제는 윤 전 총장에게 국민의힘 옷을 입히느냐, 아니면 국민의힘에게 윤 전 총장의 옷을 입히느냐는 것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윤 전 총장이 빠른 시일 내에 대세론을 밀어붙여 당을 윤석열의 옷으로 갈아입히면 경선은 해볼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윤 전 총장이 11명의 잠룡들에 의해 무장해제 당해버리면 윤석열이라는 ‘개성’도 사라지게 됩니다. 윤 전 총장으로서는 입당을 해도 ‘윤석열’이라는 중도층 맞춤형 옷을 계속 입고 있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에 입당함에 따라 그동안 남아있던 제3세력 시나리오는 사라지고 야권의 분열 가능성과 불확실성은 많이 줄어든 셈입니다. 하지만 야권 후보 단일화를 통한 역동적인 구도 만들기라는 가능성도 함께 소멸됐습니다. 이제 장외에는 안철수 김동연 등의 잠룡만 남아있을 뿐 국민의힘이 빅텐트의 주체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2022년 대선은 2002년과 2012년의 재판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두 선거 모두 보수와 진보의 대표주자가 맞붙어 상당히 근소한 차이로 승패가 결정 났습니다. 2002년 대선은 정몽준과 막판 단일화를 이룬 노무현 후보가 48.91%, 오랫동안 대세론을 유지하다 단 며칠 사이에 무너져버린 이회창 후보가 46.59%를 득표해 불과 2.3%p 차이였습니다. 2012년 대선은 경제민주화론으로 중도층의 지지를 받은 박근혜 후보가 51.55%, 안철수와 어렵게 단일화를 이뤘지만 진영대결에서 무너진 문재인 후보가 48.02%를 얻어 3.53%p의 근소한 차이로 우열이 갈렸습니다. 

2022년 대선도 이 두 선거 모델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권은 이재명 지사가 대선주자로 유력하고 야권은 윤석열 전 총장이 현재로서는 ‘원톱’으로 유리한 국면에 있습니다. 윤 전 총장은 당연히 ‘2012 박근혜 승리 모델’을 따르려고 할 것입니다. 박 전 대통령은 ‘박정희’라는 확실한 집토끼를 확보한 상태에서 김종인을 내세워 경제민주화론으로 산토끼마저 잡아 집권에 성공한 케이스입니다. 윤 전 총장도 박근혜의 경제민주화같은 산토끼 포획 장치가 필요합니다. 일부 정치평론가들은 ‘윤 전 총장이 11월까지 외곽에서 산토끼 잡는 것만 하면 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지지율 하락으로 윤 전 총장은 평정심을 유지하기 어려워했고 국민의힘 품으로 미련 없이 뛰어들었습니다. 이로 인해 윤 전 총장은 박근혜의 경제민주화같은 강력한 중도확장 카드를 만들 수 없게 됐습니다.


 

윤 전 총장에게 정권교체 기대감을 표시하던 중도층 일부의 ‘실망 표심’도 나오고 있습니다. 세계일보와 미래한국연구소 의뢰로 PNR리서치가 지난달 31일 실시, 1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지난달 30일 이뤄진 윤 전 총장의 국민의힘 입당에 대해 응답자의 52.9%가 ‘잘한 일’이라고 답했습니다. 주로 보수성향이 강한 곳에서 긍정적 답변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지지정당이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아닌 ‘기타’라고 답한 응답자 중 48.7%가 윤 전 총장 입당에 대해 잘못한 일이라고 답했고, 내년 대선에서 거대 양당이 아닌 기타 정당이 집권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 응답자 중에서도 49.2%가 윤 전 총장의 입당을 ‘잘못한 일’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중도진보 성향의 40대에서는 입당이 잘한 일이라는 응답이 40.9%, 잘못한 일이라는 응답은 43.6%로 집계됐습니다. 윤 전 총장의 입당이 보수층의 결집에는 도움이 됐지만 중도층으로의 확장에는 실패했다는 시그널로 받아들여집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문제는 윤 전 총장에게 이 ‘중도’라는 옷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먼저 윤 전 총장 개인의 문제로 한번 보겠습니다. 윤 전 총장은 6월 29일 대선출마 선언문에서 23번이나 자유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그의 출마선언문은 보수우파의 ‘자유민주주의’ 이데올로기가 근간입니다. 유승민 전 의원은 “자유라는 말을 여러 번 하는 것을 듣고 윤석열 이분이 이렇게 보수적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최근의 이한열 열사 그림을 부마항쟁으로 오인한 것이나 부정식품 발언 등도 윤 전 총장의 정치적 정체성을 의심케 하는 대목입니다. 윤 전 총장 자신이 보수우익이라는 비판을 듣는 판에 어떻게 중도층 공략을 이끌어갈지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윤 전 총장이 입당한 뒤 자신의 중도확장 전략을 당에 이식하겠다고 한 것도 딜레마입니다. 윤 전 총장은 다음 주부터 본격 개시할 정책 행보에 대해 확장성 강조를 주 콘셉트로 잡고 있습니다. 윤석열 캠프측은 “김종인 체제에서 국민의힘 정강·정책이 획기적으로 바뀌었다. 아주 진보적인 정책을 내놔도 특별히 당 기조에 걸리지 않을 것 같다”고 미리 방어막을 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윤 전 총장의 정책이 당론을 위배하거나 당의 기류와는 정반대로 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당의 분열을 불러오기도 하지만, 경쟁주자들의 좋은 먹잇감이 될 전망입니다. 박근혜 모델은 ‘박정희’라는 집토끼를 지키는 확실한 울타리가 있었기에 경제민주화가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윤 전 총장에게는 ‘박정희’와 같은 집토끼를 지킬 만한 강력한 울타리가 없습니다. 윤 전 총장이 집토끼들을 먼저 가둬두어야 한다는 점에서 어설픈 외연확장론은 당내 주자들의 집중 포격을 부를 것입니다. 

윤석열 전 총장은 최근 ‘쏘주와 쩍벌’로 형님 포스를 마음껏 뽐내고 있습니다. 사법고시 9수생답게 ‘고시원 큰형님’ 스타일로 소탈한 행보도 보이고 있습니다. 똑똑한 서울대 출신 검찰총장이지만 서민과 약자의 대변자로 자신을 포지셔닝 하고 있습니다. 말끝마다 ‘많이 배우겠습니다’라며 겸손한 태도도 보여줍니다. 이런 ‘국민 대통령’ 퍼포먼스는 검사 재직 시 여의도를 기웃거리며 익힌 정치인의 내적 체화 과정의 산물로 보입니다. 정치신인이 이미지 메이킹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콘텐츠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합니다. 윤 전 총장의 우익편향적 사고방식은 중도확장을 위한 ‘내재적 한계’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몸은 보수우익인데 마음은 중도이고픈 윤석열의 딜레마가 대선판을 더 짙은 안갯속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8월 3일 팩트경제신문 '정치언박싱'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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