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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의 대권 ‘희망오름’

성기노피처링대표 2021. 7. 9.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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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제주도지사가 대권 출정에 나섰습니다.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원 지사는 7일 자신을 지지하는 국회의원 정책포럼 ‘희망포럼’ 창립식을 열고 본격적인 대권 경쟁에 뛰어들었습니다. 이날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원 지사에 대해 “대통령 후보로서의 자질을 다 갖춘 사람”이라며 과할 정도의 덕담을 건네 눈길을 끌었습니다. 사실 원 지사의 ‘스펙’은 정치경험 행정능력 도덕성 등을 두루 따져볼 때 당장 대통령이 되어도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로 차고 넘칩니다. 하지만 ‘2%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원희룡 지사는 과연 대권을 거머쥘 수 있을까요?

원희룡 지사는 본인 성(元)의 뜻과 맞게 으뜸의 인생을 살아온 정치인입니다. 1964년생인 원 지사는 제주 출신으로 1982년 대입 학력고사 전국 수석을 차지하며 일찍부터 이름을 알렸습니다. 1992년 제34회 사법고시에서도 수석으로 합격해 검사를 지냈습니다. 검사 변호사로만 인생을 마치기에는 그 재주가 너무도 차고 넘쳤던지, 그는 2000년 16대 한나라당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정계로 나아갔습니다. 16~18대 국회의원 당선에 이어 37~38대 제주지사도 지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한 번도 선거에서 져본 적이 없는 연전연승의 정치인입니다. 원 지사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저는 2000년에 지금의 이준석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이도 36살이다. 국회의원이면 국회의원, 도지사면 도지사, 5번 선거를 치렀는데 5전 무패”라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물론 중간에 몇 번 좌절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는 2010년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하고 당내 경선에 나섰으나 고배를 마셨습니다. 서울 양천구갑에서 내리 3선을 했지만 이후 이렇다 할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고 결국 19대 총선에 불출마하며 처음으로 정치 휴지기를 갖습니다. 이때 주변에서는 ‘원희룡 정치인생도 끝났다’는 말들이 오갔고 그도 깊은 침체의 늪으로 빠졌습니다. 잘 나가던 정치인이 총선에서 떨어지면 다시 재기하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경쟁자들도 치고 올라오지만 무엇보다 주변의 평가가 부정적으로 변하면서 그것을 극복해내기가 쉽지 않고 이렇다 할 재기의 동력을 만들기도 무척 어렵습니다. 그는 그 아픔을 딛고 2014년 지방선거에서 고향인 제주에 출마, 제주지사에 당선되는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제주는 전통적으로 지역색이 강한 곳으로 토박이 일꾼론이 지배하는 독특한 정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원 지사는 서울 양천구갑에서만 3선을 했기 때문에 아무리 제주 출신이지만 도지사직에 도전하는 명분은 약했습니다. 하지만 대권주자의 잠재력을 제주도민들이 인정해줬고 재선을 거친 뒤 이제 대권도전의 대장정에 들어섰습니다. 3선 뒤 벼랑 끝 정치인생에서 제주지사직에 도전해 재선을 했다는 것은 결단력과 함께 단단한 정치근육을 가졌음을 의미합니다. 대선후보 감별사로서 인물평가에 까다롭기로 유명한 김종인 전 위원장이 ‘대통령 후보로서의 자질을 다 갖춘 사람’이라고 극찬한 이유도 원 지사의 뚝심과 내공을 인정해줬다는 의미도 됩니다. 

만약 원 지사가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선출돼 대권에까지 이르게 되면 그 ‘사변’이야말로 보수정당의 진정한 세대교체로 기록될 수 있습니다. 원 지사는 ‘민정계’의 뿌리 깊은 보수우익 정서와 계파 기득권이 남아 있던 한나라당에 처음으로 ‘개혁’이라는 선명한 정치노선을 던졌습니다. 그는 2000년 미래를 위한 청년연대(미래연대)를 발족해 먼 미래를 보고 당의 쇄신을 이끌었습니다. 이때 ‘남원정’(남경필 원희룡 정병국)이라는 개혁의 아이콘도 생겨났습니다. 이 ‘남원정’은 영남 지역주의와 계파의 강고한 기득권이 지배하는 척박한 보수정당에서 자생적으로 특정계파를 형성한 최초의 전사들이었습니다.


 

당시 한나라당은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지는 진보정권 아래에서 혹독한 야당생활을 견디고 있었습니다. 진보진영의 장기집권을 어떻게 해서든 끊어내기 위해 동토의 왕국같았던 한나라당은 개혁 소장파라는 새로운 대안세력의 틈입을 허용했습니다. 지금 탄핵과 21대 총선 대참패로 와신상담의 겨울을 보내고 있는 국민의힘이 36세 ‘이준석’을 당 대표로 일사불란하게 선택하는 상황과 비슷한 것이었습니다. 한국정치의 태생적 기득권이었던, 그래서 무한권력을 누릴 것으로만 생각했던 보수정당이 2000년에는 소장파를 잉태시켰고 2021년에는 이준석을 낳았다는 사실은, 그간 보수우익이 누려온 권력의 중독현상이 얼마나 끊어내기 어려운 것인가를 말해주는 대목입니다. 

이제 원 지사는 대권도전이라는 새로운 시험지를 받아들었습니다. 아무리 ‘시험천재’라고 해도 이번 시험은 만만치 않습니다. 원 지사가 가장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은 ‘수권의 능력’을 입증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공식 선거에서 패한 적이 없고, 시험에서도 으뜸의 인생을 살아온 원 지사이지만 대통령직은 그 차원이 다른 이야기입니다. 국민들이 아무리 원 지사를 스펙 좋은, 무결점의 ‘1급수’ 정치인으로 생각한다고 해도 그가 과연 국가를 통치할 능력이 있는가라는 물음 앞에서는 주저하는 게 현실입니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원 지사는 야권 ‘9룡’ 가운데 8위를 차지했습니다. 지지율도 마의 2%대를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여전히 원 지사를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 여론조사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지지율을 의미 있는 수치로 끌어올리는 것이 원 지사의 가장 시급한 ‘과업’이 될 것입니다. 최근 원 지사는 한 보수논객 유튜브 방송에 나와 ‘국가 지도자로서 비전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부국강병”이라고 답한 적이 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집권 비전이 너무 거시적이고 모호하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국민들의 삶 속을 파고드는 구체적이고 명확한 메시지를 앞으로 많이 만들어내야 합니다. 여의도 문법에 익숙한 언어로는 36세 당 대표의 트렌드를 제대로 따라갈 수 없습니다. 카트라이드와 ‘롤’(LOL) 게임을 좋아하고 가상화폐 시장에도 밝은 디지털 대권주자의 면모를 원희룡만의 언어로 표현하고 풀어내야 합니다. 

정치권에서는 또 다른 주문도 나옵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라는 독단적이고 오만한 자세와 거리를 두라”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원희룡 지사는 보수정당 2.0이라는 새로운 버전의 정치세력을 만들어나가는 ‘개발자’일 수 있습니다. 지금의 원희룡을 이끈 ‘개혁’이라는 단어는 집권의 교두보로 쓰일 때 유용한 것일 뿐, 그 자체가 권력이 되는 순간 순수함도 빛을 잃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직접 ‘회사’의 오너가 될 수도 있지만 그 조직을 더 튼튼하게 만드는 엔지니어의 역할로서도 충분할 수 있습니다. 보수 대통합의 플랫폼 개발자로 출발해 근사한 집권모델을 만든 뒤 그것을 운용할 적임자를 찾지 못하면 자신이 직접 그 플랫폼에 올라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인 ‘국민들이 불러줄 때’를 담담하게 기다리며 헌신의 리더십을 보여준다면 원희룡 지사에게도 분명히 기회는 있을 것입니다. 그의 대권 ‘희망오름’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대권경쟁의 진흙탕속으로 들어가더라도 개혁의 진주만은 원희룡의 품속에서 영원히 빛났으면 합니다. 

 

(7월 8일 팩트경제신문 '정치언박싱'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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