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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인 전성시대’ 최재형 감사원장도 대권도전?

성기노피처링대표 2021. 6. 24.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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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3월 9일 치러지는 제 20대 대통령선거는 여러모로 특이한 선거로 기록될 전망입니다. 야권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대권주자들이 모두 법조인 출신에 정치경력이 전무하다는 것입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함께 최재형 감사원장의 대선 출마설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0선 전성시대’라는 긍정적 수사보다 정치가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일어난 부정적 반작용 측면이 더 강한 것 같습니다. 이는 김영삼-이회창-이명박-박근혜로 이어져온 보수세력이 차세대 주자를 올바로 키우지 못해 일어난 기현상일 뿐입니다. 

정치 문외한이었던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정치참여를 선언했을 때 국민들의 눈은 휘둥그레졌습니다. 그때만 해도 정치는 ‘여의도’의 영역이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육사 출신에서 ‘문민’으로 권력 지형도가 바뀌면서 정치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출신영역도 다분화 되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정주영 회장의 대선 출마입니다. 그래도 정 회장은 지금의 ‘윤석열 최재형 현상’에 비하면 ‘양심’은 있었습니다. 정 회장은 1992년 12월 대통령 선거를 1년여 앞둔 그해 2월에 통일국민당을 창당하고 총선과 대선에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정 회장은 14대 총선에서 31석을, 그해 말 대선에서 16.3%의 득표로 3위를 기록하는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정 회장의 야무진 도전은 여의도 기득권 정치에 맞선 용기 있는 ‘바위치기’였다는 평가와 ‘경제권력으로 정치권력을 사려 한다’는 비판이 맞섰습니다. 그 뒤 이렇다 할 ‘장외인사’들의 정치도전은 없었습니다. 이회창 한나라당 대표 정도가 감사원장과 총리직에서 대통령 도전으로 점프한 정도입니다. 현재 야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법조인 출마 전성시대의 원조가 바로 이회창 전 대표쯤 되겠습니다. 하지만 이 전 대표는 호랑이굴에 들어가 온갖 역경을 헤치고 보수세력의 대선후보가 된 케이스입니다. 


그런데 현재의 윤석열 전 총장은 그 뿌리가 다소 다릅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전체 3위이자, 야권 1위로 올라선 때는 지난해 7월 경부터였습니다. 윤 전 총장은 이후 무려 1년여 동안 그 어떤 정치 퍼포먼스도 보여주지 않은 채 여기까지 왔습니다. 한국의 정치 성숙도와 그 인적 토대가 너무도 허약하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습니다. 예측가능하고 책임 있는 정치를 구현한다는 의미에서 이런 ‘스텔스 비행’은 그 자체로 정치를 희화화하고 정치공학 가십에 국민들을 중독 들게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최재형 감사원장입니다. 감사원은 정치적 중립과 독립을 지켜야 하는 국가 감사 기관입니다. 그럼에도 최 원장은 감사원장 사퇴 직후 대권에 도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을 위반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최 원장은 지난 18일 대선 출마 여부 질문에 대해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생각을 조만간 정리해서 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감사원장이 정치참여 가능성에 대해 부인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상의 출마 선언으로 봐야합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최재형의 장점’을 나열하기도 합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미담 제조기’론입니다. 최 원장의 죽마고우인 강명훈 변호사는 최 원장과 경기고, 서울대 법대, 사법시험 동기로, 고교 시절 소아마비로 거동을 못하는 자신을 최 원장이 업어서 등하교시킨 일화의 주인공입니다. 최 원장 지지자들이 꼽는 그의 첫 번째 강점이 바로 ‘미담’이라고 합니다. “‘미담 제조기’로 불리는 그에겐 네거티브 공격을 받을 만한 약점이 없다”는 게 그 이유입니다. 아름다운 미담을 폄훼할 의도는 전혀 없지만, 일국의 대통령 후보를 미담이 아름다워서 밀어 올린다는 상황은 아무리 봐도 그 개연성이 빈약해보입니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최 원장에게서는 굉장한 진정성이 느껴진다는 평가가 많다”고 말했습니다. 또 “인격적으로 훌륭하고, 자기 욕심보다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강하기 때문에” 최 원장을 지지하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일각에서는 “최 원장의 진정성과 인격, 절제력이라는 장점 정도면 대통령감으로는 손색이 없다”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법조인들이 유독 대권도전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그들이 모든 사안에 대해 ‘판단’을 내릴 줄 안다는 자만심과 섣부른 우월의식은 아닐지 의구심이 듭니다. 법조인들이 정치영역을 볼 때 비효율적이고 불공정과 비리가 판을 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정치는 그 나름대로의 자정능력이 있습니다. 정치는 진실을 추구하거나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제리 스토커), 설득과 타협을 통해 ‘더 나은 해법’을 찾아내는 창조입니다(이철희). 

매사를 옳고 그름의 이분법적 잣대로만 인식해온 법조인들의 ‘정치력’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준석 대표는 ‘공정한 경쟁’(2019년)이라는 자신의 책에서 “우리나라 정치에는 율사가 너무 많다. 그들은 항상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사람들인데, 그것만으로는 그 다음단계가 뭔지 말할 수가 없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사회갈등 현안에 대해 ‘공정한 판단’만 내릴 뿐 그 구체적 솔루션을 제시하는 데까지 정치적으로 진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또한 이 대표는 “한국의 정치는 율사들의 카르텔이 정치 발전을 막고 있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정치판은 다양성을 상실한 집단”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이 대표의 ‘소신’은 대권경쟁이라는 현실정치 앞에서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야권 대권주자 풀을 최대한 넓혀야 하는 이 대표는 ‘율사 출신’ 최 원장의 존재와 대권도전을 긍정적으로 보긴 합니다. 이 대표는 “최 원장은 본인 삶의 궤적이 공감을 많이 산다고 하면 그걸 바탕으로 ‘도덕적으로 깨끗한 사람이 정치하는 세상을 원한다’고 간단한 메시지를 내면 된다”라며 훈수를 두기도 했습니다. ‘율사 정치’의 폐해를 지적했던 이 대표가 야당의 수장이 된 뒤 유력한 대권주자 2명 모두를 법조인 출신으로 영입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 아이러니컬합니다. 

야권의 유력주자 2명이 모두 법조인 출신인 것에 대해 한번쯤 의문을 가져봐야 합니다. 아무리 두 사람의 장점이 공정과 도덕성이라고 해도 대한민국 5년을 이들에게 넙죽 넘겨줄 정도로 국민들이 그 ‘리스크’를 감수해야 할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상식을 가진 시민이면 누구나 참여해서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정치를 개혁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청년들이 쉽게 정치에 진입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고, 그들이 현장에서 제대로 정치를 학습하면서 미래의 ‘지도자’로 성장해나가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준석 대표는 그런 시스템 없이 스스로 정치인의 길을 ‘운 좋게’ 개척한 경우입니다. 

정치의 문턱을 낮춰야 진정한 의미의 ‘고졸 대통령’도 나올 수 있습니다. 최재형 감사원장의 대권도전은 엘리트의 정치참여 획일화를 부추기고 있다는 점에서 퇴행적입니다. 물론 그런 최 원장을 국민이 대통령으로 뽑아준다면 그것으로 또 다른 기적이 되겠지만요.  

 

(6월 24일 팩트경제신문 '정치언박싱'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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