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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노의 정치언박싱] “신났네, 신났어”

성기노피처링대표 2021. 4. 23.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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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소속 김상희 국회부의장이 대정부질문 과정에서 마이크가 꺼진 줄 알고 국민의힘 의원들을 향해 “아주 신났네. 신났어”라고 발언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이날 사달이 난 것은 국회에서 행해지는 일종의 ‘관습법’ 때문입니다. 국회는 의원들, 특히 초선들이 대정부 질문을 한 뒤 그것을 응원하는 차원에서 ‘자~알 했어’ ‘옳소’ 등의 추임새를 넣습니다. 일종의 격려 차원입니다. 하지만 이 ‘잘했어’ 추임새가 품위 있는 것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어왔습니다. 지난 2013년 4월, 19대 국회 때 여야 의원들의 모임 중 하나인 ‘일치를 위한 정치포럼’(대표 길정우 새누리당·김성곤 민주통합당 의원)은 “국회의 품격을 위해 박수를 치는 사례를 넓히자는 제안을 국회의장단과 여·야 대표에게 제안했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당시 김성곤 의원은 “국회에 박수가 없는 연유는 ‘엄숙한 국회 분위기를 위해서’ 혹은 ‘편을 갈라서 응원하는 행태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관습법으로 알고 있다. 그러다 보니 생긴 부산물이 ‘잘했어’라는 추임새인데 결코 품위 있는 추임새는 아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김 의원은 이어 “국회에는 여·야간 박수보다 지나친 공격적 언어가 난무했던 것이 사실이다. 여·야가 서로의 발언을 인정하게 될 때 우리 국회는 박수가 자연스러운 곳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잘했어’라는 추임새가 자당 의원의 격려라는 본래의 의미보다 상대를 자극하는 말을 해놓고 그 화를 더욱 돋우는 ‘고춧가루’가 되는 악순환을 지양하자는 취지였습니다. 

김상희 부의장이 ‘신났네, 신났어’라고 내뱉은 것도 야당의 자극적인 추임새에 잠시 흥분해 빈정거렸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였지만, 이 말은 야당의 본회의 집단 퇴장을 부른 ‘벤치 클리어링’으로 이어졌습니다. 부의장이 비록 여당 소속이긴 하지만 의장석에 있을 때는 잠시 당적을 내려놓고 최대한 공정하고 중립적으로 국회를 이끌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김상희 부의장의 조롱은 상당히 부적절했습니다. 단순한 말실수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김 부의장의 ‘속내’는 국회의원들이 우리 정치를 대하는 태도를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지금 국회는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대응방안과 백신 도입 등의 중차대한 문제가 논의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민생 대책이 하루빨리 수립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여당소속 부의장의 말실수 하나 때문에 국회는 또 다시 겉돌고 있습니다. 국민들은 백신도입 늑장 대처로 초조해 하는데, 서민경제는 코로나로 초토화되고 있는데, 국회가 보여주는 행태는 ‘나 몰라라’ 식입니다. 그저 ‘상대를 어떻게 하면 약을 올릴까’ 그런 생각뿐인 것 같습니다. 김 부의장이 대정부 질문을 국민의 절반 이상의 목소리로 인식하고 경청하려 했다면 ‘신났네’라는 발언이 ‘갑툭튀’ 될 수 있었을까요.


 

 

 


말은 평소 생각이 소리로 발현되는 것입니다. 김 부의장이 평소 야당을 대하는 태도, 국회에서 국가 중요 정책을 대하는 태도는, 그 현안에 집중하며 대책을 세우려는 자세가 아니라 야당의 지적을 어린애들의 장난질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해 10월 산업통상자원부 국정감사 때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자신의 휴대전화로 모바일 게임을 하다가 들통이 난 적이 있습니다. 지금 21대 국회의원들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도대체 정치인들의 머릿속에 국정에 대한 진지한 태도가 있기나 한지 의구심이 듭니다. 쓸데없는 말로 야당을 자극해 1분 1초도 아까운 국정 논의의 장은 시간만 허비하는, 세비를 축내도 그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는, 그들만의 놀이터로 변질되었습니다. 

국회의 잘못된 관습인 추임새 때문에 결국 일이 이렇게 커져버렸습니다. 하지만 지난 2005년 2월 노무현 대통령 취임 2주년 국회 연설에서는 이 추임새 때문에 여야가 오랜만에 함께 웃는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습니다. 2월 2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 2주년 국정연설에서 한나라당은 박수를 치지 않는 등 냉랭한 태도로 일관했습니다. 하지만 이날 주성영 의원이 노 대통령의 연설 중간(“정부의 경쟁력을 높이겠습니다”라는 대목) “잘했어”라는 격려성 추임새를 넣자 한나라당 의원석에서 웃음이 터졌고, 여당 의원들에게서도 박수가 터져 모처럼 정부여당과 야당이 화기애애한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이에 노 대통령도 웃으며 “고맙습니다”라고 화답했고, 여당 의원석에서도 “잘했어”라고 응수하며 박수를 보냈습니다. 서로 물고 뜯고 싸우다가 잠시 훈훈한 장면을 연출했던 여야의 당시 ‘추억’을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습니다. 증오를 퍼붓고 조롱으로 대응합니다. 야당 행태도 더 나을 것이 없습니다. 상임위원장 분배 등을 두고 철저하게 냉대를 받아온 터라 여당을 열 받게 하는 악다구니 전략만 쏟아 붓고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일찍이 “적을 업신여기면 반드시 패한다”(輕敵必敗之理)라고 말했습니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현재의 민주당이 야당일 때 이 말을 인용하며 “이 말 이상 민주당과 진보에 좋은 말이 없다. ‘싸가지 없는 진보’는 상대편을 업신여기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과 보수를 숭배하거나 존경할 필요는 없지만, 그들을 존중해야 한다. 그런 마음과 자세의 터전 위에 서야만 민심을 제대로 읽는 눈이 트여 집권이 가능해질 뿐만 아니라 집권 후에도 성공할 수 있다”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여당에게만 이런 존중을 강요할 순 없습니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납니다. 야당도 여당의 정책을 신뢰하면서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이제 대선이 다가옵니다. 코로나19 민생 대책도 시급합니다. 정치인들에게 존중까지는 바라지도 않겠습니다. 오로지 악다구니와 조롱만 남았습니다. 이제라도 그 증오의 질주를 잠시 멈추고 한번쯤 국민들을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국민들이 신나는 세상이 되도록 말입니다. 

 

(4월 21일 여성경제신문 '정치언박싱'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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