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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노의 정치언박싱] 박수칠 때 떠난 사람들

성기노피처링대표 2021. 4. 20.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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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 찬성, 환영을 나타내거나 장단을 맞추려고 두 손뼉을 마주치는 것'이 박수입니다. 이 박수의 의미는 시간과 공간에 따라 의미의 차이가 발생합니다. 노래방 박수는 ‘공감’입니다.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에게는 굳이 박수로 ‘가수’의 박자를 어지럽힐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고음불가’에게는 더 많은 박수를 보내 안쓰러움과 어색함을 누그러뜨리려 합니다. 시상식 박수는 경외입니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무려 8분 동안 기립박수를 받은 봉준호 감독은 참다못해 ‘배고프니 집에 가자’고 농을 던졌습니다. 독재자들에게 찍히지 않기 위해 온 몸을 흔들어 치는 ‘생존’ 박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뭐 열거 해보면 끝이 없겠네요.

이 박수의 의미를 정치에 한번 대입해 보겠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정치인 중에 박수를 받을 만한 사람이 언뜻 떠오르지가 않습니다. 떠나는 정치인의 뒷모습을 보며 아카데미 시상식 수준의 기립박수를 보냈던 장면은 더더욱 잘 떠오르지가 않군요. 그나마 최근의 정치인 박수는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전 의원과 표창원 전 의원이 2020년 4·15 국회의원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을 때였던 것 같습니다. 초선 국회의원이, 그것도 대중적으로 인기를 누리던 정치인이 차기 총선에 불출마 하겠다고 한 것은 무척 신선했습니다. 당시 두 사람은 적어도 정치부 기자들에게는 많은 박수를 받았을 것입니다. 정치 취재를 하면서 감동을 받고 존경을 표할만한 일을 거의 경험해보지 못한 기자들에게 두 사람의 ‘탈욕(脫欲) 정치’는 그 자체로 두 손을 모으고 손뼉을 치게 만드는 ‘사변’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박수’보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한창 잘나갈 때 홀연히 정계 은퇴 선언을 한 김용갑 전 의원(국민의힘 상임고문)이 떠오릅니다. 그는 전두환 정권 때 국가안전기획부 기획조정실장,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을 역임한 정통 우파 출신입니다. 그의 이념과 정치성향 등에 동의할 수 없지만 그가 행했던 또 다른 ‘탈욕의 정치’는 한번쯤 되새겨볼만합니다. 그는 전두환에게 대통령 직선제 수용을 내려줄 것 등을 직언했고, 17대 국회 시절에는 민주노동당 조승수 의원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 당하자 ‘조승수 지키기 탄원서’에 서명하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이후 그는 1996년 15대 총선에서 경남 밀양에 출마해 당선된 뒤 17대까지 내리 3선을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2008년 1월 “지난날 정부에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박수 칠 때 떠나라’는 말이 그렇게 아름답게 가슴에 와 닿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박수 칠 때 떠나려고 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정치무대 뒤로 사라졌습니다. 사람들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인 정치인이 끝없는 그 궤도를 벗어나 일상으로 되돌아가는 용기를 보며 뜨거운 박수를 보냈습니다. 김용갑의 박수가 여전히 회자되는 건 그가 그 뒤 일체의 정치행위를 하지 않고 무욕의 삶으로 되돌아갔기 때문입니다. 

안타까운 건 앞서 언급한 이철희 전 의원의 박수는 그 여운이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 전 의원은 정치판을 떠나면서 “국회의원을 한 번 더 한다고 해서 우리 정치를 바꿔놓을 자신이 없습니다. 멀쩡한 정신을 유지하기조차 버거운 게 솔직한 고백입니다. 처음 품었던 열정도 이미 소진됐습니다. 더 젊고 새로운 사람들이 새롭게 나서서 하는 게 옳은 길이라 판단합니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권력과 탐욕의 정글지대인 정치판에서 빠져나오기란 너무도 어렵습니다. 그 ‘욕망의 중독’을 끊어내면서, 걱정하던 김영춘 전 의원에게 ‘밖에서 역할을 하면 되지 뭐’라고 가볍게 응수한 이 전 의원의 뒷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진심어린 박수를 보냈습니다. 박수칠 때 홀연히 떠난 이철희의 뒷모습은 그렇게 아름다웠습니다. 이후 그는 정치평론 방송 활동을 하며 문재인 정권의 실정과 전략부재를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이 전 의원은 최근 청와대의 러브콜을 받고 정무수석으로 다시 정치판으로 되돌아올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의 ‘컴백’에 대해 말들이 많습니다. 위선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가 2019년 10월 ‘아사리 정치판’을 떠나며 받았던 박수의 의미가 퇴색된 것이 안타깝습니다. 그때 ‘자연으로 돌아가는’ 한 정치인에게 보내주었던 사람들의 순수한 응원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는 다시 권력쟁투의 불덩어리 속으로 들어가 숨겨놓았던 출세의 욕망을 꺼내놓으려 합니다. 

국민의힘은 재보궐선거 압승 뒤 김종인 전 위원장에게 승리 공신으로 인정하며 ‘감사패’와 함께 뜨거운 기립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주호영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는 국회 본청 건물 바깥까지 나와 떠나는 김 전 위원장을 배웅했습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장면은 바로 다음날 ‘대안 부재’로 신음하는 야당이 수건 던질 때까지 기다리다가 먹잇감을 낚아채려는 김 전 위원장의 끝없는 노욕과 주인 없는 집에 머슴으로 들어와 그나마 살림을 일으켜 세워준 은인에게 다시는 집에 얼씬거리지 말라며 깽판을 부리는 국민의힘 간의 눈꼴 사나운 권력쟁탈전으로 누더기가 돼 버렸습니다. 

박수칠 때 떠난 사람들을 보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세상입니다. 

 

(4월 16일 여성경제신문 '정치언박싱'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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