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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년 의원은 누구? '민주당 새 원내대표', 문재인 대통령과 가까운 경희대 후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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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년 의원은 누구? '민주당 새 원내대표', 문재인 대통령과 가까운 경희대 후배

성기노피처링대표 2020. 5. 7.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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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의원이 7일 원내대표 경선에서 163표 중 82표로 과반을 얻으며 결선투표 없이 당선됐다. 이에 따라 김 의원이 21대 국회 177석 거대여당을 이끌게 된다.

민주당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실시한 원내대표 1차 투표에서 김태년 의원 82표, 전해철 의원 72표, 정성호 의원 9표를 각각 득표했다고 밝혔다. 전체 투표 수는 163표였다.

 

김태년 신임 원내대표는 무엇보다 확고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열린우리당 시절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선 당내 리더십과 협치 능력이 요구된다.

열린우리당은 17대 총선에서 과반 의석(152석)을 얻었지만 개혁입법 추진 과정에서 극심한 내홍을 겪었다. 당시 108명의 초선이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108번뇌'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이에 따라 새 원내대표에게는 '민주당 원팀'을 이뤄내기 위한 안정적인 통합의 리더십 발휘가 중요해졌다.

특히 민주당은 21대 총선을 통해 전례 없는 거대 여당이 된 상태다. 비례정당인 더불어시민당과 합당이 완료되면 지역구 163석에 비례대표 14석을 합해 177석을 갖게 된다.

21대 입법과제 우선순위 선정과 원내지도부 구성, 당내 상임위 배분 문제 등이 리더십 1차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태년 의원은 4선이지만 비교적 젊다. 1964년생으로 56세. 전라남도 순천시에서 태어났다. 

순천고등학교, 경희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하였고, 경희대 재학 시절에는 경희대 총학생회장을 역임하며 1987년 6월 항쟁에 앞장섰다. 한국청년연합회(KYC)를 비롯한 청년운동에서 부터 통일운동, 소외계층 봉사활동, 지역현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회참여운동을 펼쳐왔다.

 

1995년 성남시에서 시민 운동을 하던 도중, 이른바 '부여간첩사건'과 연관된 남파간첩 김동식과 만난 혐의로 구속되었지만, 정작 대한민국 검찰청에서 이를 입증하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해 해당 부분이 아닌 집시법 위반과 이적 도서 소지 후 소각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 받은 바 있다. 

 

성남의 운동가를 발탁한 건 2000년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 당시 유행하던 '젊은피 수혈론'이 그에게 행운을 가져다 주었다. 

2002년 개혁국민정당 성남추진위원회 실행위원장을 시작으로 개혁당 전국운영위원장을 거쳐 치열한 경선 끝에 열린우리당(현 더불어민주당) 성남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로 선정됐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성남지역 최초의 국민경선 후보였던 김 원내대표는 김을동 당시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후보를 13.7%포인트 앞서며 대승을 거두고 배지를 거머쥐었다. 당시 최연소(40세) 당선자로도 이름을 알렸다.

 


 

친노 직계로 분류된 2007년 끝까지 열린우리당을 지킨 몇 안되는 국회의원이었다. 이후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통합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다가 한나라당 신영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때 그는 18대 선거 최저 표차 낙선자였다. 한나라당 신영수 후보가 29962표를 획득했는데 표 차이는 고작 129표였다. 물론 국회의원 선거에는 3표 차(문학진 후보)이라는 역대 최고 레전드도 있지만, 김태년 의원의 129표차도 당시 큰 화제를 모았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통합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설욕하였다. 그리고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돼 3선 고지에 올랐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저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김태년 의원을 짤막하게 언급하는데, "초선 시절 임기 4년 동안 지역구에 있는 모든 중소기업을 다 방문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작은 공장들을 방문했다"고 한다. 둘은 처음 개혁국민정당 창당 때부터 함께한 사이였고 제17대 대통령 선거 당시 김태년 의원이 유시민 캠프에 참여할 정도로 정치적으로도 가까운 사이였다.

문재인 대통령과 가까운 관계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언론에서도 김태년 의원을 친문재인계 정치인으로 분류하곤 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에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은 적 있다. 

 

 

김 의원은 이해찬계 당권파 친문으로 분류된다. 2018년 원내대표 선거 때 출마하려고 했지만 ‘핵심 친문'으로 분류되는 홍영표 전 원내대표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2019년 5월 원내대표 선거에서는 친문 지지를 받으며 선거를 뛰었지만, '비주류'인 이인영 원내대표에게 패했다. 당 대표(이해찬), 사무총장(윤호중)에 이어 원내대표까지 친문 일색이 되는 것에 대한 민주당 의원들의 견제 심리가 작동했다.

김태년 의원은 추미애 대표 체제에 이어 이해찬 대표 체제에서 정책위의장을 연임할 정도로 당 지도부의 신임을 받고 있었다. 당 지도부의 지원을 받으며 차기 원내대표 경쟁구도에서 유리한 입지를 점유하고 있다고 평가되었으며 선거는 김태년-노웅래-이인영 3파전으로 치러졌다.

 

5월 8일 민주당 원내대표 선거에서, 1차 투표에서 37표를 획득해 54표를 획득한 이인영 의원과 결선 투표를 치렀으나, 결선 투표에서 48표를 획득해 74표의 이인영 의원에게 밀려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1차 투표에서 자신과 비슷한 수준인 34표를 기록한 노웅래 의원의 지지표를 제대로 흡수하지 못했다. 대외적으로 친문계로 여겨져 이쪽의 지원을 받으리라 여겨졌으나, 전해철을 위시로 한 친문계는 이인영을 지지했었다.

 

 

이번 원내대표 선거에서 친문 주자가 당선됨으로써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도 크게 높아지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워낙 높아 총선 압승의 자양분이 되었는데 이번 원내대표 선거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분위기가 김태년 의원의 당선으로 연결되었다. 문 대통령의 입김까지는 아니지만 대통령의 학교관계와 '후광'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대선을 2년 앞두고 180석 거대여당의 원내 사령탑이 대권주자 관리에도 관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김태년 의원의 인적 네트워크도 관심이다. 그는 이해찬 대표의 신임이 두텁고 유시민 이사장과도 이념적 동지로 통한다. 범이해찬계로도 분류된다. 유시민 이사장이 비록 장외에 있지만 동지적 관계에 있는 김태년 의원이 대선주자 다각화를 통해 경쟁력 제고에 힘을 실어줄 경우, 유 이사장의 여권 내 입지는 더욱 높아질 수 있다. 

 

전해철 의원은 비록 친문의 대표주자이긴 하지만 계파색이 짙어 줄세우기를 경계하는 분위기에 석패한 것으로 보인다. 41%의 초선들이 대세론 전해철 의원보다 통합을 강조한 김태년 의원을 선택했다. 또한 야당과의 관계 설정에서도 강성으로 분류되는 전 의원보다 김 의원이 선택됨으로써 여당이 총선에서 비록 압승을 했지만 대야 관계는 협상과 타협을 하라는 당내 주문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김 의원은 학생운동 시민운동 등을 거치며 바닥에서부터 정치경력을 다져온 인물이다. 통합형으로 분류되지만 원칙에 있어서는 절대 물러서지 않는 강단도 있다. 열린우리당을 끝까지 지킨 사수파로 의리도 있다. 개혁국민정당에서 처음 정치를 시작해 이념적으로는 진보성향이 강하다. 점점 보수화돼 가는 민주당의 흐름에서 그가 어느 정도의 균형감각을 보여줄지 관심을 모은다. 

 

문 대통령으로서는 자신의 든든한 후배가 국회 포스트에 자리잡고 있어 청와대의 직할통치가 더욱 용이해질 수 있다. 국정 장악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문재인 대통령이지만, 그 하중도 고스란히 대통령의 몫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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