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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노의 정치 피처링
김종인 "황교안, 사퇴 전 '당 추슬러 달라'고 했다"...'여의도 차르'의 비대위원장 '셀프 추천'? 본문
미래통합당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이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직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는 선거가 끝난 뒤인 16일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가겠다'며 미래통합당 수습 작업에 관여하지 않을 것임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황교안 전 대표의 '부탁'을 언론에 흘리면서 여론을 떠보고 있다.
연합뉴스는 17일 황교안 전 대표가 4·15 총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사퇴 기자회견을 하기 전 "당을 추슬러 달라"는 취지의 말을 김종인 위원장에게 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맡아달라는 뜻이냐'는 질문에 김 위원장이 "황 전 대표가 그렇게 구체적으로 얘기하지는 않았다. 일단은 좀 쉬면서 생각할 여유를 갖겠다"고 답했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김 위원장은 "(통합당이) 지금 멍하니 있으면 안 된다. 지난 3년을 그런 식으로 지나와서 이번에 이런 꼴이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오는 19일까지는 휴식을 취하면서 향후 통합당 혁신 및 개혁을 이끌어갈지 여부에 대해 숙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19일까지 통합당에서 자신에게 전권을 주는 합의를 해와서 모셔갈 때까지 기다릴 것이란 얘기다.
사실 16일만 해도 김 위원장은 떠날 듯보였다. 제 1당은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던 자신감도 처참하게 무너졌다. 선거는 103석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가져다주었다. 김 위원장의 자존심이라면 벌써 떠나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2017년 대선 뒤 다시 절치부심하던 그가 정치로 복귀할 때는 고작 선거운동 며칠에 목을 멜 정도의 기세는 아니었을 것이다.
정치 9단이라면 그 후를 봤을 것이다. 황교안 전 대표와의 당권-대권 밀약 접점이 생길 수 있는 공간이다. 황 전 대표는 군말 없이 떠났지만 정계은퇴를 선언하지 않고 '성찰하겠다'며 여지를 남겼다. 김종인 위원장도 일상으로 돌아가겠다고 했지만 바로 다음날 자신의 말이 가장 효율적으로 전파될 수 있는 통신사 연합뉴스에 황 전 대표와의 교감 소식을 전해주었다.
계산된 수순으로 보인다. 제 1당을 자신하던 것은 차치하고, 미래통합당의 패배도 당이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남 탓을 했고, 본인의 귀책사유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의도 차르'에게 실수는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 김부겸 의원이 패배한 뒤 '농부는 자신의 밭을 탓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자신의 밭이 자갈밭 투성이라 수확이 엉망이었다고 변명했다. 그리고 다음날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뒤집고 황교안 전 대표와의 교감설을 슬쩍 흘렸다. 전형적인 정치공작 프로세스이자 여론 떠보기다.
일단 당내에서도 김종인 비대위원장직에 대한 반응이 호의적으로 나온다. 사전교감이 이뤄졌을 수도 있다. 연합뉴스는 "통합당 안팎에선 당선인들을 중심으로 '김종인 비대위'를 꾸려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고 단정적으로 썼다. 두 사람의 대선주자 말을 인용하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5선에 성공한 정진석(충남 공주·부여·청양) 의원은 "지금은 김종인 위원장이 비대위원장을 맡아 당을 혁신해야 할 시기"라며 "다음 주 초께 당선된 중진 등 여러 의원과 접촉해 중의를 모아보겠다. 김 위원장을 모셔오기 위해 삼고초려 해야 한다"고 연합뉴스에 말했다.
대구 수성을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통합당 전신) 대표는 "지금은 전당대회를 할 타이밍이 아니다. 우선 김종인 위원장이 당을 추스르고 난 뒤 오는 9월께 지도부를 구성하는 전대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연합뉴스에 밝혔다. 연합뉴스가 김종인 비대위원장직을 몰아가고 있는 듯하다.
반면 반대 목소리도 나온다. 불출마를 선언했던 정병국 의원은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비대위를 꾸리는 게 능사가 아니다. 내부에서, 언론에서 논의되는 비대위원장 선을 가지고는 (어려움을) 뛰어넘지 못한다. 혁신적으로 진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사실 김 위원장의 비대위원장 자리는 명분이 없다. 패배한 장수다. 그것도 자신이 일군 밭을 먼저 탓하는 패장이다. 김 위원장은 주인없이 무주공산이 된 미래통합당을 선거운동 며칠 해주고 통째로 손에 넣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주인과 그 식솔들이 모두 떠난 곳을 잠시 머물던 덩치 큰 머슴이 와서 집 전체를 차지하려고 한다. 물론 능력이 있다면, 쓰러진 집안을 다시 세울 수 있다면 주인으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다.
미래통합당은 지금부터는 생각을 잘 해야 한다. 역사상 최악의 대패를 당했다. 정통 보수정당을 자처하던 세력이 103석으로 쪼그라들어 무장해제됐다. 당 해체설까지 나오고 있다. 완전히 망가졌다. 그 무너진 집에서 며칠 더 생활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다. 서둘러 비대위원장으로, 명망만 보고 대충 뽑을 일이 아니다.
김종인 위원장은 판세를 잘 읽는 노련한 책사다. 선거용으로 충분하다. 며칠 선거 아르바이트 해준 것일 뿐 크게 의미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그가 선거 전문가라면, 최소한의 실적은 남겼어야 했다. 103석이라는 성적은 김종인이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인, 멸망의 의석수다. 왜 그런 그를 굳이 잡으려고 하는 것일까.
지금은 왜 미래통합당이 대패했는지, 그 집안에 오랫동안 있었던 사람들이 모여 앉아 처절한 반성부터 해야 한다. 집안이 무너졌다고 서둘러 서까래 몇 개 다시 얹는다고 해서 그 집이 새집이 되는 것이 아니다. 대충 반성하고, 대충 면접 봐서, 대충 비대위원장을 뽑으면, 또 국민들의 외면을 받는다. 그렇게 당했으면 이제는 정신을 차려야 한다. 현재 김종인 추대론은 당내에 아무런 반대의견 표출이나 이견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듯한 느낌이다. 그냥 이렇게 대충 묻어두고 빨리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자는 것 같다.
김종인이라는 정치인이 효율적으로 빠른 시간내에 당을 정상화시켜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지금의 무너진 보수의 정체성과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인물인지는 따져봐야 한다. 무엇보다 선거 기간 동안 김종인이라는 인물도 검증이 된 것이다. 103석이 김종인의 진짜 실력이다.
지금은 패배를 당한 당사자들의 반성이 필요한 때다. 비대위원장도 그 반성을 잘 이끌어낼 사람이 필요하다. 객관적 위치에서 보수의 본 모습을 꺼집어낼 줄 리더가 필요하다. 보수의 새단장, 보수의 외연을 넓혀줄 만한 인물이 돼야 한다. 가능하다면 외부에서 데려와 객관적인 '기업 진단'을 받아봐야 한다. 중도나 진보층 인사라도 두려울 게 없다. 이제 민주당이 새로운 보수의 정당으로 가게 될 것이다. 국정운영의 무한책임을 떠맡은 당의 입장에서 과거처럼 모험적이고 개혁적인 정책들을 내놓을 수 없다. 책임을 지는 집권여당은 보수로 흐르는 게 필연이다. 과거 새누리당이 과반을 차지하며 했던 역할과 비슷할 것이다.
미래통합당은 이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병국 의원 지적처럼 패러다임의 전환까지도 생각해야 한다. 혁신적이고 개혁적인 정당이 돼야 한다. 그 길은 멀고 험하다. 당장의 비대위원장을 적당히 뽑는다면 그 길은 또 갈 수 없다. 처절한 반성과 그 뒤의 새로운 개혁보수의 비전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은 서까래를 얹을 일꾼이 필요한 게 아니라 집을 다시 지을 지혜롭고 덕망있는 설계사가 필요하다.
미래통합당은 이제 더 이상 잃을 게 없다. 바닥부터 다시 다져야 한다. 텃밭을 탓하며 보수-진보 진영을 제집 넘나들 듯 왔다 갔다 한 정치꾼에게 의지해서는 안 된다. 없으면 자당에서 찾아서 키워야 한다. 아니면 외부의 명망가를 삼고초려해서 모셔와야 한다. 그게 부도난 집이 근본적으로 재기하는 길이다.
미래통합당의 길은 개혁보수에 있다. 스펙만 대충 있으면, 능력이 없어도 거들먹거리는 보수가 아니라 실력 있고 열정이 있고 깨어있는 개혁보수 인물들을 길러내야 한다. 성급하게 허물어진 집을 다시 지으려다 보면 또 무너진다. 지난 3년 동안 뼈아픈 경험을 했다. 남탓하는 패장에게 다시 살림을 맡기는 비겁한 보수정당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정통 보수정당의 마지막 남은 저력을 발휘해야 할 때다.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키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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