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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노의 정치 피처링
황교안 "총선 결과 책임지고 모든 당직 내려놓겠다"...정계은퇴 선언은 안해 본문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가 밤 11시 30분경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다고 전격 선언했다. 출구조사 참패 예상이 나오고 약 5시간 만에 황 대표는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며 전격 사퇴를 선언했다. 무거운 얼굴로 입장한 황 대표는 당 지도부와 간단한 손인사를 나눈 뒤 곧바로 준비한 기자회견 성명서를 읽어나갔다.
황교안 대표는 "일선에서 물러나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고, 국민과 국가를 위해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성찰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말은 향후 재기 가능성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정계은퇴는 선언하지 않았다. 황 대표는 수행참모들마저 물리치고 홀로 국회도서관에 들어선 뒤 사퇴서를 읽고 기자들 질의응답 없이 바로 기자회견장을 떠났다.
황 대표의 사퇴는 어느정도 예상이 됐다. 15일 지상파 3사의 21대 국회의원 선거 출구 조사 결과 1당 확보가 어려운 것으로 예측되었을 때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국회도서관 대강당에 마련된 개표상황실에는 오후 5시 50분께부터 핑크색 당 점퍼를 입은 통합당과 미래한국당 당직자와 후보들이 속속 모여들어 긴장 속에 출구조사 결과를 기다렸다.
통합당 황교안 대표와 심재철 원내대표, 미래한국당 원유철 원내대표 등 양당 지도부는 6시를 조금 넘겨 상황실을 찾아 TV 화면을 주시했다.
김종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은 출구조사 발표 때 함께하지 않았다.
당시 황교안 대표는 굳은 표정으로 오른손을 들어 이마를 한번 쓰다듬었고, 원 대표는 긴장한 듯 연신 양손을 만지작거렸다.
수도권을 필두로 저조한 출구조사 결과 발표가 시작되고 나서도 상황실에는 한동안 무거운 침묵만 가득했다.
종로에 출마한 황 대표가 지는 것으로 예측된다는 보도 때에는 그야말로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 '초긴장' 상태가 계속됐다. 조용히 TV화면을 응시하던 황 대표가 잠시 고개를 돌려 옆자리 원 대표에게 귀엣말을 한 정도였다.
서울 최대 승부처로 꼽힌 광진을과 동작을 결과가 보도되고 나서야 곳곳에서 반응이 감지됐다.
오세훈 후보와 민주당 고민정 후보 간 '경합'의 결과에 탄성이 터져 나왔고, 나경원 후보가 민주당 이수진 후보에 한참 뒤지는 예측에는 "아아"하는 탄식이 이어졌다.
'강남 벨트'의 태구민(강남갑)·박진(강남을) 후보가 승기를 잡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출구조사에 처음으로 박수와 환호성이 나왔다.
그러나 이후 수도권을 중심으로 열세와 경합의 결과가 계속되면서 상황실은 다시 한숨과 탄식만이 반복됐다.
급기야 출구조사 결과 발표가 시작한 지 30분이 지나 경남에서 당선권에 포함되는 후보들 결과 발표가 이어져도 상황실은 기나긴 침묵만이 계속됐다. '우세' 결과 발표에도 박수치는 지도부는 단 한명도 없었다.
상황실 방문 직후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여유로운 태도를 보였던 미래한국당 원유철 대표와 통합당 심재철 원내대표조차 침통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황교안 대표는 출구조사 결과에 대해 "경합 지역이 여전히 많고 국민들께서 현명한 선택을 하셨으리라 생각한다"면서 "개표를 끝까지 지켜봐야 결과를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황 대표와 심 원내대표는 6시 40분께 당직자들과 인사를 나눈 뒤 퇴장했고, 잠시 뒤 원유철 대표를 포함한 미래한국당 지도부도 떠나면서 상황실 몇몇 실무진과 취재진만을 남기고 텅 비었다.
한편, 통합당 선대위를 진두지휘한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은 이날 출구조사 결과 발표가 끝날 때까지 상황실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16일 오전 국회에서 별도 대국민 회견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향후 자신의 진로와 당의 수습방향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있을 전망이다.
미래통합당의 선거 패배는 벌써 예견된 것이었다. 강력한 대권주자를 보유하지 못한 미래통합당은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허무하게 밀려났다. 사실 이번 총선이 문재인 정권 3년차에 실시되는 중간평가라는점에서 야당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다. 정권의 중간에 실시되는 선거라 실정이 부각될 수밖에 없고 그 책임을 묻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기회를 발로 차버린 장본인이 바로 황교안 대표다. 그리고 그는 전격 사퇴를 선언했다. 정계은퇴까지 선언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대권도전까지는 일말의 가능성이 남아있지만, 이번의 큰 타격으로 그마저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통합당에선 출구조사 참패 소식이 전해진 뒤부터 지도부 책임론이 바로 확산됐다. 황교안 대표 체제가 1년여 지난 시점이지만, 이번 선거를 통해 황 대표에 대한 검증은 끝났다고 보는 시각도 많았다.
황 대표는 지난해부터 꾸준히 제기된 리더십 논란을 삭발·단식, 장외투쟁, 보수통합 제안 등의 카드로 돌파해왔다. 그러나 당이 가장 정치적 비중이 큰 총선에서 참패를 했기 때문에 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었다.
더구나 황 대표는 서울 종로에서 치러진 자신의 선거에서도 민주당 이낙연 후보에 패배했다. 이번 총선의 가장 상징적인 지역구에서 '적장'에게 승기를 내줬다. 사퇴 요구에 직면했고, 곧바로 퇴진을 선언했다.
황 대표는 출구조사 발표 직후 소감으로 "더 정진하고 혁신하겠다", "더 낮은 자세로 국민만 바라보고 가겠다"고 말하는 등 자신이 계속 당의 쇄신을 주도하겠다는 언급을 해 당권을 계속 유지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본인의 기대에 불과했다.
통합당은 엄청난 패배 후유증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황 대표의 퇴진으로 곧바로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이 논의될 것이다. 하지만 오세훈 나경원 등의 서울 대권주자들이 모두 밀려나버려 차기 지도부 구성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유승민 대안론도 떠오르지만 원외에다 당내 기반도 거의 없어 가능성은 희박하다. 외부 인사 영입이 일단 유력하다.
총선 참패의 가장 큰 책임은 황교안 대표였고 그는 결국 물러났다. 그에게는 3가지가 없었다.
첫째 진정성이 없었다. 총리 시절 때부터 황제 의전 논란이 있었고, 선거 내내 큰절만 할 뿐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다는 말은 말 그대로 위선적인 미사여구에 불과했다. 권위적인 의식이 몸에 배 있었다. 검사시절 때부터 밴 엘리트의식이 툭툭 불거져 나왔다.
종로의 한 지역구에 가서 연설을 할 때 '부암동'을 '부림동'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지역 현안에 대한 고민이 없다는 점이 그대로 노출됐다. 국민을 진정으로 위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했다. 위선적으로 보였고, 오로지 권력쟁취에만 집착하는 꼰대 정치인으로 비쳐졌다. 물론 정치인은 권력을 잡아야 한다. 황교안에게는 오로지 그게 1순위였다. 국민의 마음을 먼저 잡아야 권력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그는 몰랐다. '시험만 잘 본 헛똑똑이'라는 비판이 나올 법했다.
둘째 리더십이 없었다. 리더십은 정치인의 기본이자 생명이다. 리더의 기본 자질은 자기희생에서 나온다. 종로 출마 논란이 있었을 때 그는 몸을 사렸다. 등 떠밀려 나왔지만 여론의 분위기도 싸늘했다. 편한 길만 가려는 리더를 국민들뿐 아니라 당원들도 원망한다. 영국의 장교가 전 세계적으로 우수하다고 평가를 받는 것은, 영국 지도자들이 대중의 신망을 받는 것은, 그들이 전선의 최고 선두에 서서 가장 먼저 희생되기 때문이다. 자리만 지키고 대우만 받으려 하는 리더를 국민은 원하지 않는다.
당이 공천 파동과 막말로 흔들릴 때 그는 그 중심에 없었다. 뒤늦게 나타나 하나마나한 말로 뒷북을 쳤다. 선거 기간 내내 수많은 이슈가 터져나올 때마다 전국에서 후보들이 '도대체 이 당에 대표가 어디 있느냐'는 말들이 쏟아져나왔다. 미래통합당은 작은 당이 아니다. 수많은 선거를 치른 한국의 정통 보수야당이다. 그 큰 함대를 지휘하기에 황교안이라는 함장은 너무 무능력했다.
셋째 포용력도 없었다. 황교안은 현역 국회의원을 단 한번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당내에서 은근히 무시하는 경향이 많았다. 당원들이나 당직자들 분위기도 그랬다. 황 대표가 그런 사실을 알 것이다. 거대야당을 맡은 지 1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자신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걸친 사람처럼 조직에 녹아들지 못했다. 이런 불리한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자신의 우군을 많이 확보하는 것이다.
미래통합당에는 큰 선거를 치러본 백전노장 중진들이 많았다. 김무성이 호남 출마를 한다고 했을 때도 그는 단칼에 잘라 버렸다. 홍준표는 잠재적 대권 경쟁자라서 또 잘라버렸다. 이래 저래 영호남의 백전노장 중진들도 물갈이가 됐다. 물론 그들을 다 중용하라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약점을 커버해줄 인적 네트워크를 폭넓게 만들었어야 했다.
야당 대표에다 차기 대권주자라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그가 몸을 낮추고 정적들마저 포용했다면 선거 기간 내내 그리 심하게 흔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전국의 인재를 두루 기용할 통 큰 마음과 포용력이 그에게는 없었다. 적과도 동지가 되는 게 정치다. 그들을 적극적으로 내편 만드는 데 너무 소홀했고, 무능했다.
반면 욕심은 많았다. 포용력이 없다는 말과도 통한다. 혼자 다 해보려 하니 마이너스 정치를 하기 바빴다. 이런 저런 이유로 우군들을 잘라버리고 결국 무능력한 참모 몇몇이 그를 보좌했다. 페이스북에 엉뚱한 이야기를 올려 당 대표의 메시지 관리가 엉망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주변에 인재가 없고 그들의 조언을 자주 듣지 못했다.
자기애도 강했다. 오로지 자신의 출중한 능력과 호남형 이미지와 호감가는 목소리만 과신했다. 그는 사석에서 자신의 목소리가 좋아 앞으로 크게 될 것이라는 얘기도 했다고 한다. 공안검사 출신에 법무부 장관, 총리에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해온 것도 그의 호감가는(?) 이미지 때문이라는 생각도 했을 법하다. 자기애에 몰입하다 보니 대중과의 감정선이 맞지 않았고 소통을 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다. 왠지 그와 있는 자리는 불편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타자에 대한 사랑이 발현되는 것이 바로 정치다. 자기애는 연예인에게나 어울릴 법한 말이다.
엘리트의식도 넘쳤다. 청년층의 모임에 가서 뜬금없는 꼰대 발언으로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었다. 그를 두고 '감수성이 전혀 없는 엘리트 관료'라는 표현도 있다. 엘리트인지도 불확실하지만, 매사를 자기의 기준을 놓고 판단한다. 대중의 시각은 그리 신경쓰지 않는다. 홍준표는 지난해 관료 출신 정치인이 대권 도전에 실패하는 이유에 대해 "그들은 변화와 개혁을 싫어한다. 보고 받는 데만 익숙하고 국민에게 보고할 줄은 모른다. 또한 지나친 엘리트 의식으로 내가 국민들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국민들이 나를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황 대표는 '황제 의전' 논란에도 그는 당연한 듯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어딜 가나 대우받는 습성이 몸에 뱄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잘못을 되돌아보기보다 '적당히 하라'며 남들의 과도한 문제제기에 대해 불만을 드러내곤 했다. 투표 당일 날 기표소 가림막 지적은 그 엘리트의식의 하이라이트였다. 자신이 법무무장관 때 개정된 바로 그 신형 기표소를 그는 모르고 있었다. 기세등등하게 지적했다가 큰 망신을 당했다. 어딜 가도 대우받고 지적하는 데 익숙해있기 때문에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세상은 변했다. 황교안 대표는 그 변화를 너무도 모르고 정치에 뛰어들었다. 준비는커녕 진정성 리더십 포용력도 없는 상태였다. 욕심은 넘쳐 마이웨이였고 자기애는 강해 소통이 어려웠고 엘리트의식이 강해 어딜가도 개운치 않은 뒷말이 나왔다.
황교안 대표는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그를 믿고 따랐던 미래통합당의 수많은 총선 후보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그가 미래통합당에 준 한가지 선물은 '당 대표는 이렇게만 하지 않으면 된다'라는 뼈아프지만 살아 있는 교훈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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