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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노의 정치 피처링
민주당 180석 압승, 미래통합당 참패...4.15 총선에 담긴 시대정신 관전평 본문
세상이 참 많이 변했습니다.
4년마다 찾아오는 총선이지만 어찌보면 이번 선거만큼 결과를 예측하기 쉬웠던 선거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코로나19라는 뚜렷한 이슈를 가지고 국민들은 누가 이 사태를 잘 극복해낼 것인가에 대해 묻고 답했던 선거라고 봅니다. 코로나19만큼 유권자들에게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이슈는 없었을 것입니다. '경제회복' '정권심판'같은 뜬구름 잡는 이슈들이 늘 총선을 관통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민생과 직결되는, 국민의 생명과도 직결되는 이슈였기에 투표율도 높았고, 무엇보다 정권 3년차에 치러진 선거에서 집권여당이 의석의 5분의 3을 차지하는 대 이변까지 낳았다고 봅니다.
코로나 선거였습니다. 이번 총선은 정부의 대응능력과 정책에 대해 처음으로 의미있는 평가를 한 선거로 기록될 것입니다. 총선은 주로 국민적 심판 성격을 가집니다. 지난 2004년 치러진 17대 총선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주도한 세력에 대한 국민적 심판이자 응징이었습니다. 특별한 이슈 하나에 대해 민중의 분노가 폭발한 것입니다. 그 뒤 선거에서 이렇게 분노 폭발적 선거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21대 총선은 17대 총선 때처럼 국민적 분노가 폭발한 것이 아니라 정부 대응에 대한 신뢰와 지지를 표현하는 긍정적 열망이 분출한 것입니다. 폭발하는 감염자 수를 진정시켰고 희생자들을 헌신적으로 막아내고 있는 정부여당의 실적에 대한 인정과 찬사일 것입니다.
코로나19 방역 모범사례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정이 시민들을 투표장으로 이끌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세계시민으로서의 깨어있는 연대정신을 보여주었다고 봅니다. 높아진 국격에 어울리는 것이었습니다.
국민들은 선거에서 자신들이 행사한 한표 한표가 얼마나 큰 행위인가를 이번에 보여주었습니다. ‘박근혜 정부 때 코로나19같은 대규모 감염병 확산이 있었다면 나라가 망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습니다. 얼떨결에 투표장에 가서 ‘나는 보수니까 누구, 나는 진보니까 누구’ 이런 기계적 행위로 한표를 찍었던 순간이 아찔하게 다가왔을 것입니다. 우리가 투표를 잘 해서 능력있고 실력있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뽑으면 내 생명도 보호해줄 수 있다는 신념이 이번 선거를 통해 처음으로 생겨났고 또한 그 결과로 확인됐습니다.
이번 총선은 ‘선거가 더 이상 민주주의의 거추장스러운 형식적 절차가 아니라, 어찌보면 나라의 운명과 국민의 생명마저도 지켜줄 수 있는 마지막 안전판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국민들이 각인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집권세력의 능력과 실력에 따라서 우리의 귀중한 생명도 풍전등화에 놓일 수도 있다는 인식이 퍼졌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아마 코로나19 사태를 처음 접하면서 등에서 식은땀이 났을 것입니다. 세월호 메르스 사태를 거치며 우리 정부는 위기상황에 대한 전반적인 관리 능력을 업그레이드 했고 무엇보다 위기에 대한 경각심과 정신무장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코로나19는 국제사회를 하나의 기준점으로 정렬시켜 주었습니다. 희생자 수와 지리멸렬한 정부의 대응이 선진국 곳곳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지금 당장 이탈리아에서 미국에서 스페인에서 선거를 하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요? 재집권하는 수장이 절대 없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이번 선거를 통해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위기상황을 ‘비교적’ 잘 돌파해내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일각에서는 대통령이 잘 한 것이 뭐가 있느냐고 하지만)과 관계 장관, 공무원, 방역 공무원, 의료진 등에게 작은 격려의 꽃다발 하나를 안겨준 것입니다.
이번 선거의 또 다른 화두는 소통이었습니다.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세력은 이제 설 땅이 없습니다. 권위주의적이고 독단적인 행태를 보이는 세력에 대한 심판이었습니다. 패스트 트랙 사태 등을 거치며 동물국회가 되었을 때 국민적 분노는 극에 달했습니다. 여당의 협상 요구에 불응하며 문을 걸어잠그고 태업과 저항을 했던 미래통합당의 정치행태에 신물이 났고, 그것이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제 야당은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하는 정치인들은 대거 잘려버렸습니다. 국민들은 묵묵히 일하는, 능력있는 정치인들을 원합니다. 국민들의 말을 잘 들어주는 정치인을 원합니다. 질문하면 상세하고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는 정치인을 원합니다. 소통은 이제 정치인 최고의 덕목이 되었습니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 떠오릅니다. 원칙과 열정을 가지고 사심없이 묵묵하게 일을 처리해 나가는 정치인을 원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막말과 억지가 마치 야당 투사의 전형인 것처럼 인식되던 시절은 벌써 지나갔습니다.
4.15 총선은 사상 초유의 야당심판 선거로 기록될 것입니다. 사실 힘 없는 야당을 심판한다는 말처럼 역설적인 단어도 없습니다. 심판할 대상은 보통 권력자들입니다. 하지만 국정운영에 대한 전권도 없는 야당을 심판하자는 이슈가 선거 내내 이어졌습니다. 보수야당은 그동안 비단길만 걸었습니다. 학력 좀 있고, 말 좀 잘 하고, 인물도 좀 있으면, 거기다 재력까지 좀 갖추면 그냥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습니다. 국민의 목소리를 들을 줄 몰랐습나다. 국민보다 보스에게만 잘 보이면 공천이 보장됐습니다. 그러니 패스트 트랙 투쟁이랍시고 바닥에 드러눕고 난리를 피웠습니다. 그래야 공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다들 열심히 했습니다. 국민들은 그 싸움질에 신물이 났지만 야당은 완전히 민심과 따로 놀았습니다.
보수세력은 궤멸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주류는 교체되고 있습니다. 지난 18대 총선부터 지금까지 보수정당의 의석수는 153석, 152석, 122석, 그리고 이번에 103석으로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습니다. 산업화 시대의 엘리트주의자들은 이제 몰락하고 있습니다. 황교안이라는 인물이 가장 적확한 모델입니다. 광주민주화운동을 ‘1980년 그때 무슨 사태 있었죠’라고 인식하는 인물은 고시공부 해서 공안검사로 법무부 장관으로 국무총리로 요직을 달렸습니다. 국민들과 함께 한 것이 아니라 권력의 끝자락에 빌붙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제 괜찮은 스펙 가지고 권력욕망에 눈이 먼 엘리트주의자들의 시대는 가고 있습니다. 출신보다 능력이, 막말보다 경청이, 과시보다 겸손이 존중받는 세상이 됐습니다. 미래통합당만 그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철 지난 큰절 퍼포먼스로 국민들을 우롱했습니다. 야당은 지난 3년 동안 사사건건 반대만 일삼았습니다. 식물국회를 만든 장본인들입니다. 국민들은 그들을 내쫓았습니다.
야당은 이제 두 가지를 해야 합니다. 먼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질서 있는 정리작업을 해야 합니다. 탄핵 뒤 보수의 가치는 사멸됐습니다. 자기희생과 품격, 능력으로 평가받는 보수의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야 합니다. 금배지 달고 거들먹거리는 보수는 사라져야 합니다. 패스트 트랙 드잡이질을 주도한 나경원, 막말 투사 민경욱 등이 모두 잘려나갔습니다. 이제부터 야당이랍시고 무조건 드러누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강경파들의 설 자리를 없애버려야 합니다.
두 번째는 집권세력으로 인정받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현안정책을 열심히 연구하고 보수의 기준에서 가치와 비전, 대안을 제시하는 의원들이 주류로 나서야 합니다. 코로나19 사태를 지나면서 미래통합당은 중국인 입국금지 등 시종일관 정부정책에 대한 대안 없는 비난만 퍼부었습니다. 이제는 보수야당이 더 실력 있는 정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정부여당의 정책 허점을 파고들어 따지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오로지 실력으로 승부해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가 그 점에서 국제사회 인정을 받고 실적으로 승부한 것이 이번 총선입니다. 더 이상 보수성향 유권자들의 밑도 끝도 없는 지지는 없을 것입니다.
영국 노동당이 200년 동안 긴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영국 보수당은 변화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수십년 동안 선택을 받지 못하면 언제든 과감하게 변하려고 했습니다. 노동당이 추진하는 정책도 자신들에게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수용하고 모방했습니다.
보수당은 당의 외연도 과감하게 넓혔습니다. 지지층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 집권하는 길이라고 봤습니다. 자신들이 기득권층을 대변한다는 데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친 노동자정당보다 더 과감하게 사회개혁을 추진했던 적도 있습니다.
미래통합당은 지금부터라도 탄핵에 대한 정리, 국정운영의 대안 제시, 과감한 외연 확장 정책을 통해 보수궤멸 시대를 극복해야 합니다. 비상대책위원회나 차기 대표도 이런 관점에 부합하는 인물을 뽑아야 합니다. 말만 앞세우는, 여론과 완전히 따로노는, 강경노선 일변도의 반쪽짜리 인물로는 절대 다음 대선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사실 다음 대선도 난망합니다.
다음 대선을 기대하기보다 더 멀리 보고 지금부터라도 새로운 텃밭에 새로운 씨앗을 뿌리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100년 가는 권력은 없습니다. 그 순환의 궤에 언젠가는 미래통합당도 다시 들어설 것입니다. 그때를 위해서라도 지금은 열심히 밭을 갈아야 합니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야당이 허약하고 실력이 없으면 정치도 건강해지지 않습니다. 선한 권력은 없습니다. 브레이크 없는 바퀴는 부패라는 궤도속으로 자기도 모르게 빨려들어갑니다. 현재의 집권여당에 국민들이 압도적인 힘을 몰아줬지만 그 주머니속에는 모골이 송연해지는 책임의 돌덩어리가 들어있습니다. 야당이 실력과 능력을 갖추고 지금의 여당과 다시 한번 진검승부를 벌이는, 아름다운 경쟁을 다시 한번 봤으면 좋겠습니다. 과연 그런 날이 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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