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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노의 정치 피처링
이해찬-김종인 32년만에 총선서 외나무다리 승부...1988년 관악을 이변의 추억 본문
두 사람은 물과 기름처럼 절대 섞일 수 없는 존재였다. 자라온 환경과 정치적 성향도 완전히 달랐다. 카리스마와 자기주장도 강해 두 개의 태양으로 존재할 수도 없었다.
이해찬과 김종인. 그런 두 사람이 21대 총선의 외나무다리에서 다시 만났다.
21대 총선을 지휘하는 여야의 총사령탑인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종인 미래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은 32년간의 ‘질긴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두 사람은 32년 전인 1988년 13대 총선에서 처음 정면 대결했다. 서울 관악을에서다.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 선생의 손자인 김 전 위원장은 당시 여당인 민정당 소속으로 출마했고, 야당인 평화민주당은 운동권 출신의 36세 이 대표를 내세웠다.
당시 재선이던 김 위원장은 경제민주화를 구호로 내세웠다. 정치 신인 이 대표는 자주외교와 평화통일을 공약으로 삼았다. 선거에선 31.1%를 득표한 이 대표가 27.1%에 그친 김 위원장을 꺾는 이변을 일으켰다. 13대 총선은 이후 두 사람에게 다른 기억으로 남았다. 김 위원장의 유일한 지역구 출마는 패배로 끝났지만, 이 대표는 관악을에서 내리 5선을 달성하며 거물급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이 관악을 선거는 요즘 말로 하면 금수저와 흙수저의 대결로 관심을 모았었다. 김종인은 당시 집권세력 주류의 3선 도전 의원이었고 서강대 교수 출신에 제11, 12대 전국구(비례대표) 국회의원, 노태우 대통령 취임 준비위원 등 이력도 화려했다.
당시 김 위원장은 선거 공보물에서 "경제민주화 완결을 위해, 관악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 헌신할 인물"이라고 밝혔다. 당시에도 '사회보장과 재분배 확장에 관여', '서민을 대변해 경제민주화 완결' 등을 강조하기도 했다.
같은 지역구에서 야당인 평화민주당 후보로 나선 사람이 이해찬 민주당 대표다. 당시 36살의 '청년 정치인'이던 이 대표는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 서울대 복학생협의회장,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상임위 부위원장 등 민주화 운동 관련 경력을 대표 경력으로 기재했다.
권력형 부정부패 척결과 관련자 처벌, 서민생계 보장, 자주외교와 평화통일, 여성지위 향상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싸워온 사람, 지극히 겸손한 사람, 정확한 판단력과 탁월한 이론으로 민주화 운동의 중추적 역할을 감당한 사람"이라고 소개도 했다.
이 선거 이후 두 사람의 정치역정은 사뭇 달라진다. 이해찬 대표가 관악을에서만 내리 5선을 하고 국무총리까지 지내며 승승장구했지만 김 위원장은 그에 비해서는 다소 부침이 있었다. 김 위원장은 선거 패배 뒤 1989년 1월 국민은행 이사장으로 잠시 숨고르기를 한 뒤 1989년 7월에 노태우 대통령에 의해 보건사회부 장관으로 발탁돼 다시 중앙무대로 복귀했다. 1990년 3월에는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을 지냈고 1992년 14대 국회의원을 거쳤다. 이후 김 위원장은 국민경제자문회의 원로경제분과 자문위원 등을 거치며 침체기를 보냈다. 2004년 17대 국회의원을 잠시 하기도 했지만 노태우 정권 때 사람이라는 평가 때문에 정치적으로 계속 변방에 머물렀다.
그 뒤 2012년 9월 박근혜 대표에 의해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으로 복귀하며 다시 중앙무대로 진입했다. 그리고 2016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거쳤고 4년 뒤 이번에는 미래통합당 총괄선대위원장으로 '마지막 복귀'를 하게된 것이다.
김 위원장은 1988년 관악을 패배의 뒤끝이 남아있었던지 지난 20대 총선에서 당선이 유력해보였던 이해찬 전 총리를 컷오프시켜 버려 최악의 인연을 만들고 말았다. 당시 문재인 당대표는 20대 총선 승리를 위해 김 위원장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로 영입했다. 김 위원장은 전권을 쥐고 공천을 진행하며 물갈이에 나섰다. 김 위원장은 “당내 패권주의를 청산하겠다”며 당내 주류 세력이던 ‘친노그룹 좌장’ 이 대표를 컷오프(공천 배제)했다.
이 대표는 “김종인 비대위는 정무적 판단이라고 어물쩍 넘어가려 한다”면서 “공당의 결정은 명분이 있어야 한다”며 무소속 출마를 강행했다. 당선된 이 대표는 선거 6일 만에 복당 신청을 했다. 이후 김 위원장은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며 “개혁입법 처리 과정에서 경제민주화 의지에 실망을 느꼈다”며 민주당 입성 13개월 만에 탈당했다. 돌아온 이 대표는 2018년 8월 당대표에 선출됐다.
그리고 21대 총선에서 세 번째로 맞붙은 두 사람은 여야의 선거 지휘 사령탑으로 ‘고공전’을 펼치고 있다. 이 대표와 김 위원장은 정치권에서 내로라하는 ‘선거 전략가’다. 1992년 지방선거 당시 조순 서울시장 후보 캠프에서 선거 전략을 담당했던 이 대표는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 당선에 관여하며 ‘킹메이커’ 별명도 얻었다.
김 위원장 역시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끌던 한나라당에 합류해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18대 대선에서 김 위원장의 경제민주화 공약 도입은 박근혜 전 대통령 당선에도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민주당의 20대 총선 승리에도 큰 역할을 했다.
이 대표와 김 위원장은 상대방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는 중이다. 피로 누적으로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는 이 대표는 30일 “빨리 복귀해 막바지 사력을 다해야 하는데 내가 병원에 있을 마음의 여유가 없다”며 “내 정치 인생의 마지막 선거이고 이번 총선이 문재인정부 성공에 아주 중요하다”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 대표는 김 위원장에 대해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서울 강남갑 태구민(태영호) 후보를 만나고 송파·강동구를 방문하는 등 유세 지원에 나섰다. 김 위원장 측근은 “지난 공천에서의 일이 있으니 이 대표를 따로 언급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했다.
관운으로만 본다면 이해찬 대표가 김종인 위원장을 앞서는 것 같다. 김 위원장은 1990년대 잘 나갔지만 그 뒤 정치의 주류로 서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반면 이 대표는 친노 좌장으로 활약하며 실세 총리자리에까지 올랐다.
두 사람 모두 이번 선거가 마지막 대결이다. 이슈의 핵심을 간파하는 능력과 그것을 메시지로 연결짓는 능력, 선거판세를 읽는 감각 등은 두 사람이 타고 났다.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선거전략에 있어서는 가히 양대산맥으로 불릴 만하다. 김종인 위원장은 뒤늦게 선거전에 뛰어들었고 통합당의 지지율도 정체에 빠져있어 모든 상황이 열악하다. 반면 이해찬 대표는 대표직을 2년 여 수행하며 현장감각이 앞서고 당 지지율도 여유있게 앞서고 있어 현재 상황으로는 이 대표의 승리가 예상된다.
1988년은 이 대표가 김 위원장에게 도전하는 입장이었지만 지금은 그 반대가 되었다. 당시 절박함에서는 이 대표가 훨씬 앞섰고 정치신인이 거물을 꺾는 이변을 일으켰다. 지금은 대부분 이해찬 대표의 승리를 예상한다. 이번에는 김 위원장의 절박함이 이 대표를 능가한다. 32년이 지난 지금, 과연 김 위원장은 1988년의 패배를 되갚아줄까.
누가 이길지도 관심이지만, 30여년 이상 이전투구의 정글에서 살아남은 두 사람의 생존력이 새삼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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