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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노의 정치 피처링
예수 부처가 와도 인사청문회 통과 못한다? 본문
정치부 기자의 기억으로 여의도 시계는 한 번도 똑 바로 간 적이 없는 것 같다.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어떻게 그렇게 똑같은 장면이 반복되는지 모르겠다. 여야가 번갈아가며 정권을 잡다 보니 이쪽이 잡으면 저쪽이 배가 아파 딴죽 걸고 또 저쪽이 잡으면 이쪽이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다. 그래서 여의도 시계는 한 번도 바로 간 적이 없는 것 같다. 진보가 잡으면 보수가 거꾸로 가고, 보수가 잡으면 진보가 역주를 하는 게 여의도 판이다. 세상과 거꾸로 가는 시계가 있는 곳이 여의도다. 대통령 선거에서 민의로 뽑힌 새 대통령이 의욕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주는 게 정치권이 해야 할 최소한의 예의인데 어찌된 일인지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단 한 번도 인사청문회가 조용하게 넘어간 적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전에 덜컥 5대 부적격자를 발표하는 바람에 이번 인사청문회가 더욱 꼬인 감이 없진 않지만, 우리의 인사청문회는 한번쯤 되돌아봐야만 할 때가 온 것 같다. 소위 말하는 직무 적합성과 동떨어진 도덕성 검증(이라 말하고 부처님 예수님같은 사람을 찾는다라고 쓴다)이 언론의 입맛에 맞는 센세이셔널한 아이템이 되다 보니 위장전입, 결혼 등 사생활과 관련된 추문이 온 나라를 들쑤시고 다닌다. 듣기에도 민망한 후보자의 여성관이나 신변잡담 등이 후보자의 리더십 검증을 덮어버리기 일쑤다. 도대체 인사청문회란 게 무엇이기에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온 국민들이 날마다 충격적인 개인의 ‘신상털기 식’ 뉴스와 함께 찝찝한 아침을 시작해야만 하는가. 인사청문회의 연원부터 잠깐 살펴보고 지나가자.
먼저 인사청문회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선 핵심공약 사항이었다. 그전까지는 권위적인 대통령이 입맛에 맞는 사람을 그냥 장관직에 앉히면 그만이었지만 공직자에 대한 국민의 감시와 견제기능을 명분으로 인사청문회법을 제정할 것을 공약했던 것이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이 당선된 뒤 인사청문회법 도입이 지지부진했다. 당시 자민련의 김종필 총재를 총리로 임명해야 하는데 자민련 측에서 인사청문회에 서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인사청문회법은 2000년 6월 제 16대 국회에서 도입되기에 이른다. 이 제도는 국회의 입장에서 대통령의 인사권을 통제하는 역할을 하고, 인사권자인 정부의 입장에서는 인사권 행사를 신중하게 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었다. 인사청문회에서는 공직에 지명된 사람이 자신이 맡을 공직을 수행해 나가는데 적합한 업무능력이나 인간적 자질이 있는지 없는지를 검증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취지에도 불구하고 인사청문회는 검증의 자리가 된 것이 아니라 여야의 지극히 감정적인 싸움터로 변질되고 말았다. 공직자의 자질 검증은 뒷전이고 청문회를 정략적인 도구로 사용한 것이다. 최초의 선례는 한나라당(자유한국당 전신)이 먼저 만들었다. 가장 먼저 인사청문회를 받은 김대중 정부 당시 이한동 국무총리의 경우 제도가 만들어지기도 전에 여소야대 국면에서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인사청문회를 밀어붙였다. 그리고 후임으로 내정된 장상, 장대환 후보는 인사청문회를 실시했지만 국회에서 부결됐다. 장상 매경회장의 경우 지금도 사석에서 당시의 억울했던 심정을 토로한다고 한다. 자신보다 흠결이 훨씬 더 많은 사람도 총리 청문회를 통과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한나라당은 수십년 동안 ‘여당’ 프리미엄으로 지내다가 졸지에 김대중 정권 들어 야당이 되자 사사건건 정권의 발목을 잡으며 ‘야당 코스프레’를 보여주었다. 그때까지의 야당은 그래도 ‘민주화 투쟁’을 통한 선명야당의 색깔을 띠었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경우 오랫동안 기득권층의 단물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풍찬노숙의 야당 생활 적응이 쉽지 않았다. 그런 과정에서 ‘인사청문회’라는 호재가 나타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정권 흔들기 ‘꺼리’가 없어서 고민하던 차에 인사청문회는 그들에게 수많은 ‘소스’를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다. 공직자의 정책능력 검증은 뒷전이고 아들문제, 병역문제 등 민감한 신상털기가 국민들의 ‘공분’을 일으키기에 최적의 소재임을 간파하면서 오로지 그런 분야만 집요하게 파들어가는 행태를 보였다.
물론 국민 법 감정상 공직자들의 부도덕한 행태가 면죄부를 받으면 안 되지만, 인사청문회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권력의 금단현상’을 보였던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의 무조건 발목잡기 식 ‘악습’이 지금까지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고 본다. 이렇듯 인사청문회는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여소야대 국면에서 만든, 여당을 공격하기 위한 정략적인 창이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야당인 한나라당은 인사청문회에서 ‘현미경 검증’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샅샅이 뒤져 정권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핵심공약이었던 인사청문회 제도가 야당에 의해서 철저하게 이용당한 셈이다. 돌이켜 보면, 뼛속까지 야당 체질이 몸에 배지 않았던 당시 한나라당은 사사건건 반대만 하면 야당인 줄 착각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민주화 투쟁의 연속이었던 야당의 체질이 한나라당으로 넘어오면서 그 정체성이 모호하게 변질됐고, 전략의 부재 속에서 대안 없는 반대만이 야당의 살길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인사청문회라는 무대에서 정신없는 춤을 추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장관(국무위원) 인사청문회의 경우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만든 것이나 마찬가지다. 노 전 대통령은 2005년 1월 이기준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 취임 사흘만에 도덕성 시비로 사퇴하자 청와대 인사시스템을 바꾸라고 지시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는데, 그해 1월 노무현 대통령이 이기준 교육부총리 낙마 직후 국무위원도 청문회를 거치는 방법을 연구하도록 지시하자 “대통령께서 생각을 잘 하신 것 같다”며 “만일 그렇게 된다면 인사문제는 체계가 잘 잡히고 이번과 같은 혼선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환영 의사를 표시하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의 청문시스템 개정 지시 뒤인 2005년 3월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부동산 투기 논란으로 낙마한 뒤 “모든 국무위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필요하다. 국회 상임위별로 인사청문회를 거치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했다. 인사청문회 대상을 국무총리·감사원장·헌법재판소 재판관·대법관 등에서 장관 등 모든 국무위원으로 확대하자는 안을 제시한 것이다. ‘무엇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 결과 청문회법이 개정됐고 현행과 같이 국무위원 전원이 인사청문회를 받도록 법률 개정이 이뤄졌다. 2005년 7월 이후 모든 국무위원과 헌법재판소 재판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도 인사청문회 대상이 됐다. 장관들의 인사청문회 제도는 노 전 대통령이 제안하고 박 전 대통령이 화답해서 만든, 일종의 여야 합의안인 셈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도로 야당이 된 당시 대통합민주신당(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의 차례였다. 정동영 후보가 대선에서 참패한 뒤 이렇다 할(현재의 자유한국당같은 처절한 신세였다) 돌파구가 보이지 않았던 민주신당은 이명박 정부의 인사청문회에 올인하는 자세를 보였다. 결국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못한 채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하는 경우가 속출했다. 한 통계를 보면 지난 2000년 인사청문회가 도입된 이후 지금까지 야당의 반대로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후보자들은 모두 34명이다. 이중 역대 대통령들은 31명(91.2%)에 대해 반발을 감수하고 후보자를 임명해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 등 3명에 대해 국회의 의견을 무시하고 임명을 강행했었다.
이명박 정부에선 17차례였다. 이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08년 김성이 보건복지부 전 장관,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김성호 전 국가정보원장, 안병만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장태평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전재희 전 보건복지가족부 장관 등을 임명했다. 2009년에는 이귀남 전 법무부 장관, 백희영 전 여성부 장관, 임태희 전 노동부장관 등 3명이, 2011년엔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 서규용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권재진 전 법무부 장관, 한상대 전 검찰총장 등 4명이 같은 절차를 거쳤다. 임기 마지막해인 2012년에도 고흥길 전 특임장관, 이계철 전 방송통신위원장, 현병철 전 국가인권위원장, 이종우 전 중앙선거관리위원이 청문보고서 없이 임명됐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임명강행을 많이 한 경우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10명의 후보자에 대해 임명을 강행했다. 취임 첫해인 2013년엔 현오석 전 기획재정부 장관, 최문기 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 장관, 이경재 전 방송통신위원장, 김진태 전 검찰총장,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 6명이 임명됐다. 2014년엔 강병규ㆍ정종섭 전 안전행정부 장관 등 2명이, 2015년엔 박상옥 대법관이 여당 단독 표결로 임명됐다. 지난해에도 이철성 경찰청장을 야당의 반대 속에 임명했다.
청문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34명중 끝까지 임명되지 못한 3명은 모두 박근혜 정부 때 인사였다. 김병관 국방장관 후보자와 정성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는 자진사퇴했고, 김명수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박 전 대통령이 지명을 철회했다. 그 외는 모두 장관직을 수행한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미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에 대한 임명을 강행했다. 6월 15일엔 사실상 강경화 외교장관 후보자에 대해서도 17일을 ‘마지노선’으로 임명할 뜻을 밝힌 상태다. 아직 정권 초기이긴 하지만 벌써 2명에 대해 임명 강행을 한 셈이다.
이렇듯 역대정권은 엄연히 법제화된 인사청문회 제도의 취지를 무시하고,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하는 퇴행적인 모습을 재차 삼차 반복하고 있다. 지지율 80%를 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다. 지지율 100%의 대통령이 오더라도 현재의 인사청문회 제도라면 대통령이 국회의 뜻을 외면하고 임명을 강행하는 상황이 올 수밖에 없다. 제도는 정치가 완결성을 추구하는 것에 대한 보조적인 장치에 불과하다. 제도가 정치의 머리 꼭대기에 눌러 앉아 퇴행적인 행태를 부리게 한다면 그것은 하루빨리 바꾸어야 하는 ‘적폐’에 불과할 뿐이다. 낡은 인사청문회 제도를 바꿀 때가 되었다. 그 누가 인간적인 흠결 앞에서 자유로울 수가 있겠는가. 예수 부처를 뽑는 게 아니라 낡고 고루한 시스템을 바꾸기 위한 전문가를 뽑는 자리로 인사청문회가 되돌아왔으면 한다.
성기노 피처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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